우리에게 익숙한 대중 문화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우리에게 '스웨덴'은 어떤 나라일까? 아마도 '바이킹', '복지 국가'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복지 담론이 수면으로 떠오른 이후, 스웨덴의 사회민주주의는 늘 참고 대상이 되었다.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를 즐겨보는 축구 팬들 사이에서는 '즐라탄국'이라는 우스갯소리 역시 통하고 있다(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는 스웨덴 역사상 최고의 공격수로 손꼽힌다).

아마 올드팝 팬이라면 스웨덴을 곧 '아바'(ABBA)의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아바는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혼성 그룹으로 평가받고 있다. 'Dancing Queen', 'The Winner Takes It All', 'Take A Chance On Me' 등, 아바의 아름다운 멜로디는 시대의 벽을 넘어 사람들의 마음을 관통해왔다. 그러나 아바의 음악이 스웨덴 음악의 전부는 아니다.

'스웨덴 음악의 기적'

 스웨덴을 대표하는 팝 그룹 ABBA. 1979년 10월 24일,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촬영된 사진이다.

스웨덴을 대표하는 팝 그룹 ABBA. 1979년 10월 24일,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촬영된 사진이다.ⓒ Nationaal Archief


지난 수십 년 동안, 스웨덴은 북유럽에서 가장 손꼽히는 음악 강국으로 자리매김했다. 아바 외에도 록셋, 에이스 오브 베이스, 카디건스, 켄트, 잉베이 말름스틴 등 굵직한 뮤지션들이 계속 등장했다. 인 플레임즈, 아치 에너미, 소일워크 등으로 대표되는 '멜로딕 데스메탈' 스타일도 스웨덴을 기반으로 탄생했다.

스웨덴 출신의 프로듀서들도 많다. 그중에서도 맥스 마틴은 단연 손꼽히는 이름이다. 본조비, 백스트리트보이즈, 테일러 스위프트, 저스틴 팀버레이크 등 20년 동안 수많은 스타와 작업해온 그는 ASCAP Pop Music Awards에서 '올해의 작곡가상'을 열 차례 수상했다. 동시대에 전성기를 누리던 작곡가들이 하락세에 빠지는 동안에도, 그는 20년 가까이 최정상을 지키고 있다.

한편, 현대 대중음악은 EDM(일렉트로니카 댄스 음악)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스웨덴은 EDM과 관련이 깊다.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EDM 트리오 스웨디시 하우스 마피아(스티브 안젤로, 악스웰, 세바스티안 잉그로소), 에릭 프리즈, 아비치, 갈란티스 등의 뮤지션들도 모두 스웨덴 출신이다. 이렇게 스웨덴은 다양한 영역에서 대중음악을 움직이고 있다.

스웨덴은 인구 밀도가 아주 낮은 나라다. 우리나라보다 큰 영토에 약 1000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으니 말이다. 이 수치는 서울광역시의 인구와 비슷한 수준이다. 그런데 이 작은 나라가 어떻게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음악 수출국이 될 수 있었는지 궁금해진다. 'Swedish Music Miracle'(스웨덴 음악의 기적)이라고도 불리는 이 현상의 큰 원동력은 교육에 있었다.

'교육의 역할'을 고민한 스웨덴

 국내에서도 많은 팬을 보유한 스웨덴 DJ 아비치.

국내에서도 많은 팬을 보유한 스웨덴 DJ 아비치.ⓒ UMF 2015


스웨덴은 인구 밀도가 아주 낮은 나라다. 우리나라보다 큰 영토에 약 1000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다. 이 수치는 서울시의 인구와 비슷한 수준이다. 그런데 이 작은 나라가 어떻게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음악 수출국이 될 수 있었을까. 'Swedish Music Miracle'(스웨덴 음악의 기적)이라고도 불리는 이 현상의 원동력은 교육에 있었다.

스웨덴의 음악 교육은 194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초기에는 클래식 음악만을 중심적으로 가르쳤지만, 1980년대부터 교육 과정에서 록과 팝을 다루게 되었다. 이에는 아바를 비롯한 스웨덴 뮤지션들의 국제적인 성공이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현재 스웨덴의 학생들은 피아노를 포함, 1개 이상의 악기를 다룰 수 있도록 교육받고 있다.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밴드를 결성해서 합주하며, 록과 팝의 역사를 배우기도 한다. 1990년대부터는 믹싱과 녹음 기술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잭 블랙이 출연한 영화 <스쿨 오브 락>이 스웨덴에서는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의 관점에서는 이 모든 것이 낯설고 놀랍다. 그러나 우리가 삶에서 가장 많이 접하는 음악이 대중음악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결코 이상한 일만은 아니다. 이 교육 과정을 거치고 나면, 평범한 학생들도 음악 평론가 못지않은 식견을 가지게 된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배우고, 직접 하는 습관을 들인 학생들은 문화를 능동적으로 소비하는 주체가 된다.

2004년 'Swedish language study' 조사에 따르면, 당시 스웨덴 학생 중 30%가 방과 후 음악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즉, 의무적으로 진행되는 음악 교육 이외에, 심화 교육에 참여한 학생이 30%나 되었다는 것이다. 1971년생인 맥스 마틴 역시 이와 같은 방과 후 프로그램의 초기 수혜자다. 그는 공교육을 통해 연주와 믹싱, 녹음 기술을 배울 수 있었던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여기서 국가의 역할은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기초를 닦을 수 있는 터전을 만들고, 잠재된 재능을 꽃피울 수 있도록 유도한 것이다.

얼마 전, 콜드플레이의 첫 내한 공연이 열렸다. 당시 인터뷰에서 보컬 크리스 마틴은 인터뷰에서 '영국 음악이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러자 크리스 마틴은 '밴드로서 거둔 우리의 성공은 영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다'라는 취지의 대답을 했다. 분명 겸손의 표시이기도 했지만, 가장 정확한 대답이기도 했다. 스웨덴의 대중음악이 세계 시장에서 통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영어의 힘이 컸다.

EF 영어 능력 지수(EF English Proficiency Index)의 조사에 따르면, 스웨덴은 비영어권 국가 중 최고 수준의 영어 능력을 자랑한다. 실제로 다수의 스웨덴 국민은 모국어 못지않게 영어에 능통하다(축구팬들은 즐라탄이 영국에 처음으로 진출했을 때 한 영어 인터뷰 영상을 찾아보시라!).

단순히 '몰입'만을 강조하는 교육이 아니라, 언어를 인문학의 영역에서 이해했기 때문이다. 스웨덴의 언어 교육은 자기 생각을 글로 쓰고, 말하며, 토론하는 데에 초점을 두고 있다. 참여를 중시하는 교육 현장 속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더욱 창의적일 수밖에 없고, 자신의 재능을 빠르게 발견할 수 있다. 최근 팝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토브 로, 자라 라슨 등의 뮤지션들도 이와 같은 교육 현장 속에서 자라났다. 어린 시절부터 아이들을 교실과 학원에 몰아넣고 주입식 교육에 집중하는 우리나라의 교육과 질적으로 대조된다.

거, 음악하기 딱 좋은 나라네!

 프로듀서 맥스 마틴은 방과 후 음악 교육의 대표적 수혜자다. 2014년에는 스웨덴 음악 수출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프로듀서 맥스 마틴은 방과 후 음악 교육의 대표적 수혜자다. 2014년에는 스웨덴 음악 수출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Naringsdepartementet


교육뿐 아니라 스웨덴 대중음악 산업의 단단한 토양 역시 우리가 배워야 할 부분이다. 스웨덴 정부는 창작자들의 저작권 보호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으며, 불법 음원 유포에 대한 처벌도 강력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스웨덴은 대중음악인들에 대해 정부 차원의 지원을 한 첫 번째 국가이기도 하다. 프랑스의 미뎀, 미국의 SXSW 등 국제 음악 박람회에 진출하는 음악인에게는 적극적인 지원이 이루어진다. 'Music Export Prize(음악 수출 대상)'를 설립하고, 국제적으로 성공한 음악인들에게 상을 수여했다. (지금까지 스웨디시 하우스 마피아, 록셋, 맥스 마틴 등이 이 상을 받았다)

스웨덴은 성공한 음악인에게만 조명을 비추지 않는다. 신인 아티스트들에게는 리허설 공간이 제공되고, 스튜디오와 장비가 지원된다. 심지어 이들에게는 예술 교육의 기회도 제공된다. 스웨덴에서 사랑받고 있는 일렉트로닉 듀오 나이프(The Knife)는 데뷔 앨범을 제작하면서 6000달러가량의 정부 지원을 받았다.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아티스트들에게는 교단에 서서 자신의 재능을 십분 활용할 기회가 주어진다. 스톡홀름 뮤직 클러스터(대중음악 다국적 기업과 1인 음악 스튜디오의 협동 조직)의 목소리가 많이 반영된 결과다.

이렇듯, 스웨덴에서는 음악인들이 창작의 온전한 대가를 보장받고 있으며, 능력을 배양할 기회가 주어진다. 팝의 본거지인 영미권에서도 '스웨덴의 교육과 제도를 배워야 한다'는 의견들이 나오는 이유다.

언제까지 '제2의 강남스타일'을 기다릴 것인가?

우리 교육계에서 대중음악에 대한 교육은 사실상 없다시피 했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접한 한 음악 교과서에는 '서태지', '핑크 플로이드'와 '오아시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러나 이런 교과서는 아주 소수에 해당한다. 얼마 주어지지 않는 이 시간조차도 '국·영·수'에 밀려 줄어들었다.

그렇다면 문화 예술인에 대한 충분한 지원이 이루어졌는가? 2003년부터 문화관광부에 의한 인디 레이블 육성 사업이 진행되었지만, 이마저도 2008년에 폐지되었다. 그 대신 인디 뮤지션들의 음악이 빛을 볼 수 있는 다른 창구가 마련된 것도 아니었다.

최근 몇 년간, 대한민국 정부는 블랙 리스트를 만들고 시대를 퇴행시켰다. '인디 밴드를 음악계의 2군'이라고 표현했던 박근혜 캠프 관계자의 발언이 보여주듯, 예술을 국가주의 선전과 이익 창출의 수단으로만 보았기 때문이다. 음악성을 평가하는 시상식 '한국대중음악상'은 이명박 정부 때부터 정부 지원이 끊겼다. 음악인들에게는 합당한 보상이 돌아가지 않았다. 스트리밍 한 곡당 0.12원이 아티스트에게 돌아가고, 대부분 수익을 유통사가 가져가는 구조는 변하지 않았다.

우선, 국민의정부 시절 강조되었던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다시 한번 바로 서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더 나아가 문화 예술 교육의 전환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비정상적인 수익 구조를 개선하고, 음악인들의 설 자리도 확보되어야 한다. '생방송 인기가요'에 나오지 않는, 많은 음악이 알려질 수 있는 통로가 더욱 마련되어야 한다. 이러한 현실이 개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제2의 강남 스타일'만을 기다리는 것은 게으른 자세다. 케이팝, 한류, 국가주의 마케팅을 만능열쇠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정말 필요한 것은 기반을 단단히 세우는 일이다.

이 글에서는 스웨덴의 교육, 그리고 음악 산업 정책을 다루는 데에 대부분의 분량을 할애했다. 우리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무작정 스웨덴 정책을 따라가자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합의가 충분히 이루어져야 하고, 현실적인 예산 문제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스웨덴 음악의 기적'을 천천히 되짚어보는 일은 우리 음악의 미래를 위해서 필요하다.

대중 음악과 공연,영화, 책을 좋아하는 사람, 맨유팬, 흥이 넘치는 스물다섯 청년, 정치는 생활이라고 믿는 'SNS 글쟁이' http://blog.naver.com/2hyunpa

객관적이지 않습니다. 사심을 담습니다. 다만 진심입니다. 제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제 진심이 닿으리라 믿습니다. 공채 7기 입사, 사회부 수습을 거쳐 편집부에서 정기자 생활을 했고 지금은 오마이스타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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