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이끌 지도자가 가져야 할 덕목은 무엇일까요? 오마이스타는 드라마와 영화 등을 통해 '리더의 조건'을 살펴봅니다. [편집자말]
"한진 앞에는 선각 공장이 제일 따뜻해요. 공장 문 들어가는 그 담이 제일 따뜻하거든. 거기 아저씨들하고 이렇게 앉아서 발 말리는 때가, 그 광경이 제일 그리워요."

'가장 돌아가고 싶은 시절'을 묻는 말에, 1981년 대한조선공사(현재의 한진중공업)에 입사한 김진숙은 이렇게 회상했다. 고작 작업화 벗어두고 햇볕에 발 말리던 모습이라니. 날마다 같은 일과가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현장에서, 특별함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일상의 한 장면을 왜 그렇게 그리워하는 걸까?

그것은 김진숙이 더는 '평범한 노동자'로 남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더럽고 힘들어도 이 악물며 참아내고, 윗사람 앞에서 감정이란 감정은 최대한 숨긴 채 일에 몰두할 수밖에 없는 족쇄를 벗어던졌기 때문이다. 김정근 감독이 지난해 내놓은 <그림자들의 섬>은 노동자들의 그런 '피치 못할 변화'를 깊이 파고드는 영화다.

 다큐 영화 <그림자들의 섬>

"한진 앞에는 선각 공장이 제일 따뜻해요. 공장 문 들어가는 그 담이 제일 따뜻하거든. 거기 아저씨들하고 이렇게 앉아서 발 말리는 때가, 그 광경이 제일 그리워요."ⓒ (주)시네마달


노동자가 '투사'로 변한 이유

<그림자들의 섬>은 김진숙을 포함해 한진중공업에 오래도록 몸 담았던 다섯 노동자의 인터뷰로 채워져 있다. 이를 통해 한진중공업 내의 민주노동조합이 어떻게 탄생했고, 또 어떻게 싸워왔는지를 조명한다. '조선소 맨'으로서의 자부심을 만끽하던 입사 초기도 잠깐, 노동자들은 곧 극한의 환경으로 내몰린다. 콩알 만한 쥐똥이 굴러다니는 도시락이나 열악한 휴식처, 관리자의 폭언과 성희롱은 가벼운 애교 수준이다. 거대한 배를 만드는 작업장에서, 동료들이 약해빠진 지지대를 건너다 수시로 떨어져 죽는다. 한순간에 하나뿐인 목숨을 잃는다. 사측의 산업재해 처리는 고사하고, 동료의 죽음도 제대로 애도할 수 없다. 덤덤하게 "한 명 또 깨졌네"하고는 그대로 지나칠 뿐이다.

어느 날, 한동네에 살던 동료가 떨어져 죽었다. 동료의 어린 세 아이는 매일같이 내복 바람으로 집 앞에서 서성이다가, 퇴근하던 아빠에게 매달리곤 했다. 그 평범한 광경마저 눈앞에서 잃어버린 김진숙은 무언가 단단히 잘못됐음을 깨닫는다. 왜 노동자들에게는 안전한 작업 환경이 보장되지 못하는지, 왜 적정한 임금은 지급되지 않는지, 왜 사측은 아무런 사과도 조치도 해주지 않는지. 김진숙은 말한다.

"사람이 그렇게 일하다 죽고 다치는데도, 죽음이 개죽음이 될 수밖에 없었던. 그 억울한 죽음들에 대해서, 뭔가 할 얘기가 있지 않은가."

 다큐 영화 <그림자들의 섬>

"사람이 그렇게 일하다 죽고 다치는데도, 죽음이 개죽음이 될 수밖에 없었던. 그 억울한 죽음들에 대해서, 뭔가 할 얘기가 있지 않은가."ⓒ (주)시네마달


왜 모든 책임은 노동자에게 돌아오는가

그렇게 20대 여성노동자였던 김진숙은 한진중공업 노동조합 대의원에 출마해 당선된다. 거대 자본과 노동 사이, 지난한 싸움의 시작이었다. 어용노조의 부당함을 폭로한 김진숙은 사측으로부터 해고 통지를 받고, 이는 1987년 4500여 명의 노동자가 공장을 점거하는 대투쟁의 계기가 됐다. 그동안 지위를 이용해 단물만 빨아먹던 어용노조 간부들도, 조선소 소장도 튀어나와 무릎을 꿇었다. 요구했던 개선안을 관철했고, 끝내 노조위원장 직선제를 얻어냈다. 그렇게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은 '싸우면 변한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겪었다.

민주노조를 지켜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정부와 회사는 이들을 '강성노조'로 분류해 어떻게든 해체하려 했다. 1991년 박창수 노조위원장이 의문의 죽음을 맞았고, 해고자들의 복직은 미뤄졌다. 경영 정상화 명목으로 노조원들에게 거액의 손해배상이 청구됐고, 어용노조가 설립돼 민주노조 조합원을 분열시키고 회유했다. 정리해고의 칼바람이 휘몰아쳤다. 2011년 해고노동자 김진숙은 드높은 크레인에 올라 309일 동안 농성을 했다. 그렇게 치고받는 동안 한진중공업에서 네 명의 노동자가 세상을 떴다. 2003년 김주익, 곽재규, 2012년 최강서, 2013년 김금식. 이 싸움에 참여조차 하지 못한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간극은 더욱 벌어졌다. 결코 그들의 잘못이 아니었음에도, 그들은 서로 싸우고 배신감과 죄책감에 치를 떨어야만 했다.

 다큐 영화 <그림자들의 섬>

<그림자들의 섬>은 당사자의 입을 통해, 이 투쟁의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묻는다. 평범했어야 할 노동자들은 왜 이렇게 목숨을 내걸고 싸우게 됐는지, '투사'가 된 노동자들은 무엇을 그렇게 지켜내려 했는지.ⓒ (주)시네마달


<그림자들의 섬>은 당사자의 입을 통해, 이 투쟁의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묻는다. 평범했어야 할 노동자들은 왜 이렇게 목숨을 내걸고 싸우게 됐는지, '투사'가 된 노동자들은 무엇을 그렇게 지켜내려 했는지. 질문에 답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저 사람이 사람답게, 정직하게 땀 흘려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다. 내 일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고, 더는 사람이 죽어 나가지 않는 노동을 위해서다. 잘못된 것이 있으면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위해서다. 지극히 당연하고 상식적으로 보이는 이 조건을 위해, 노동자들은 30년이 넘도록 싸워야만 했다.

여전히 그림자처럼 어두운 노동의 현실

한가로이 들을 수 있는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한진중공업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경쟁과 효율의 논리에 밀려, 노동자를 극한으로 내모는 행태는 지금까지도 반복되고 있다.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열아홉 청년이 그렇게 죽었다. 여전히 노조가 존재조차 하지 않는 '관리의 삼성'에서 벌어진 백혈병 문제는 꼬박 10년을 넘겼다. 더불어민주당의 양향자 최고위원은 삼성 백혈병 피해자를 위한 단체 '반올림'을 '전문시위꾼', '귀족노조'라고 깎아내리는 발언을 했다가 사과했다.

정부의 허술하기 짝이 없는 대응에 무너져버린 조선업계에는 대규모 정리해고가 이어지고 있다. 2017년에도 여전히 노동자들은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거나 자리를 잃고, 다치거나 죽는다. 여전히 '노동'이라는 말은 천대받고 '근로'라는 말이 대신 쓰인다. 여전히 우리나라 노동조합 조직률은 10%를 맴돌고, 나라 경제를 살리는 데 발목만 부여잡는 과격한 '빨갱이' 집단으로 비친다. 아직도 노동의 환경은, 그리고 노동에 대한 인식은 어두컴컴한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다큐 영화 <그림자들의 섬>

새로운 지도자는 여전히 가라앉아 있는 현장의 저 그림자들을 보듬을 수 있어야만 한다.ⓒ (주)시네마달


2017년, 지도자에게 꼭 필요한 자질

대선이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2017년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많은 후보가 적폐 청산과 정권 교체에 대한 의지를 불태운다. 대연정이 어떻고, 사드가 어떻고 매일같이 갑론을박이 이어진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이 대선 국면에서 '노동'이라는 의제는 대체 어디로 간 걸까? 신규 일자리 몇백만 개를 통 크게 약속하고, 다가오는 제4차 산업혁명에 철저히 대응하겠다는 것이 다가 아니다.

새로운 지도자는 여전히 가라앉아 있는 현장의 저 그림자들을 보듬을 수 있어야만 한다. 산업재해 기준 확대와 노동시간 단축 등으로 안전하고 안정적인 노동 환경을 보장하는 것이 그렇다. 더는 노동자가 몸 던져 싸울 필요 없도록,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할 수 있는 의사결정 구조를 개편하는 것이 그렇다. 노동을 불온하게 바라보지 않도록 관련 교육을 확대해나가고 불안한 비정규직을 줄여나가는 것이 그렇다.

<그림자들의 섬> 속 노동자들이 보여주듯, 결국 모든 개선의 출발점은 '노동 그 자체'와 그것을 수행하는 '노동자'의 입장에서부터 시작돼야만 한다. 사무실에 앉아 있는 이들도, 현장을 다니며 몸을 쓰는 이들도 모두 같은 노동자다. 노동이 누구에게도 정직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노동사회'를 만들어나가는 것, 곧 결정될 새 지도자가 지켜내야 할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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