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호 연출의 영화 <부산행> 포스터. 이 영화는 결코 좋은 영화가 아니다.

연상호 연출의 영화 <부산행> 포스터. 이 영화는 결코 좋은 영화가 아니다.ⓒ NEW


팔다리를 휘저어 움직이기는 하지만 살아있는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닌 좀비(Zombie)는 미쳐가는 세상, 즉 디스토피아의 떠도는 '은유' 내지는 '상징'이다.

서인도제도의 전설 혹은, 풍문 속에 존재하던 좀비가 영화에 등장하기 시작한 건 오래 전 일이다. 맞다. 세계는 이미 디스토피아에 가깝다. 모든 영화, 아니 모든 예술은 현실의 반영 아니면 모사(模寫)다.

최근 화제를 모은 영화 <곡성>에서도 다소 뜬금없이 좀비가 등장해 사람들을 실소케 했다. 하지만, 별다른 등장의 이유 없이 나타나 곡괭이와 몽둥이 세례를 받은 <곡성> 속 좀비는 나홍진 감독이 관객을 대상으로 친 장난(?) 정도로 귀엽게 봐줄 수 있을 듯도 하다.

그런데, 좀비가 하나도 아니고 수천·수만, 조연도 아니고 주요배역으로 등장하는 영화 <부산행>(연출 연상호)은 보기에도 뜨악할 뿐더러, "전후 상황설명도 없이 이게 대체 뭐냐"라는 영화팬들의 의구심을 부른다.

불 보듯 빤한 <부산행>의 제작과 상영 배후

 좀비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미시적 성찰이 없는 <부산행>은 한없이 고루한 스릴러로밖에 볼 수 없다.

좀비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미시적 성찰이 없는 <부산행>은 한없이 고루한 스릴러로밖에 볼 수 없다.ⓒ NEW


<부산행>의 제작과 상영 이유를 짐작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여름이니 재난을 다루는 스릴러 영화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흉내를 내면 홈런이 아니더라도 2루타는 치겠지"라는 속 보이는 흥행계산에 "여성팬이 적지 않은 배우 공유에 연기 잘하는 정유미 정도를 결합시키고, 한국인의 아킬레스건인 '부모자식간 정'을 가져다 덧씌우면 제작비 정도는 너끈히 뽑겠지"라는 안일한 생각.

사실, 기자가 추정한 제작사와 감독의 전략은 일정부분 맞아 들어간 것 같다. 개봉 후 현재(22일 정오)까지 210만 명이 넘는 관객이 <부산행>을 관람했고, 예매율 역시 1위니까.

그러나, 수치 위주의 데이터만으론 "<부산행>은 좋은 영화일까?"라는 물음에 답할 수 없다. 이 질문에 선행해 연상호 감독에게 묻고 싶다 "왜 하필 좀비가 떼거리로 등장하는 재난영화인가?"

고만고만한 재주로 만든 길에 뒹구는 태작(駄作)

 배우 김의성(우)의 연기는 지나치게 도식화된 것이라 싱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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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은 쉽다. '창조'는 그것보다 어렵다. 우리가 예술가를 존중하고 흠모하는 이유는 모방이 아닌 창조의 길에 몸을 던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일랜드 작가 브램 스토커가 소설 <드라큘라>를 발표한 1897년 이후 이 작품을 모티프로 만들어진 흡혈귀 영화는 어림짐작으로도 수천 편이 넘는다. 그러나, 그 영화들 모두가 '단순 모방'이 아닌 '새로운 해석을 통한 재창조'에 이르렀다고는 말할 수 없다. 겨우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와 길예르모 델 토로, 아벨 페라라 정도가 고만고만한 조무래기 감독들 속에서 탁월한 연출력으로 관객을 매료시켰을 뿐이다.

'좀비'를 재료로 만들어진 영화도 그렇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좀비가 등장하는 영화는 피터 잭슨의 초기작에서 발견되는 유치함의 고루한 답습이거나, 대니 보일 연출의 <28일 후>처럼 매우 드문 '(좀비를 소재로 한) 좋은 영화'를 억지로 흉내 내려는 능력 부족한 자의 발버둥에 다름없었다. <부산행>도 마찬가지다.

<부산행>이 좋은 영화가 아닌 4가지 이유

유독·공해물질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정부와 거대자본이 좀비를 만들어냈다는 설정은 SF소설을 즐겨 읽는 중학생 정도면 누구나 생각해낼 수 있는 것이다. 해서, <부산행>은 상상력이 빈곤한 영화다.

맥락과 흐름상의 설득력 없이 마구잡이로 나타난 좀비가 부산행 KTX 속 승객의 목덜미와 팔뚝을 물어뜯는 장면과 '줄줄이사탕'처럼 기관차에 매달린 우스꽝스런 좀비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CG는 <월드워 Z>에서 이미 3년 전에 마르고 닳도록 본 것이다. 해서, <부산행>은 기술적 창의력도 없는 영화다.

"대체 저 상황에서 농담이 나와?"라는 조소를 부르는 마동석의 오버 연기는 보기가 불편하다. 극단의 상황에 처한 인간의 비루함과 악마성을 보여주고자 한 김의성의 연기 역시 지나치게 도식화된 것이라 싱겁기 짝이 없다. 해서, <부산행>은 배우의 연기력도 제대로 발휘되지 못한 영화다.

그리고, 마지막. 일밖에 모르는 무정한 아빠였던 배우 공유가 자신을 향한 딸의 애틋한 사랑을 뒤늦게 깨닫고, 딸 역할을 한 아역배우를 끌어안고 눈물 글썽이는 장면은 변사가 대사를 읊어대던 무성영화시대를 떠올리게 한다. 요새 어떤 관객이 감독의 "울어주세요 제발! 감동 받아주세요 제발!"이란 요구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한단 말인가. 해서, <부산행>은 신파, 그것도 삼류의 신파영화다.

<부산행>의 제작사와 연상호 감독은 이 영화를 '재난을 다룬 매력적인 스릴러'라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천만에. 기자가 보기에 <부산행>은 재난영화가 아닌 그 자체가 '재난'인 영화다.

<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등의 저자. <경북매일신문> 기자.

객관적이지 않습니다. 사심을 담습니다. 다만 진심입니다. 제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제 진심이 닿으리라 믿습니다. 공채 7기 입사, 사회부 수습을 거쳐 편집부에서 정기자 생활을 했고 지금은 오마이스타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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