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조저택 살인사건>의 포스터. 영화에서 매력적인 연기를 보여준 배우 임화영.

<석조저택 살인사건>의 포스터. 영화에서 매력적인 연기를 보여준 배우 임화영. ⓒ ㈜영화사 다


영화와 소설 중 사람들에게 더 큰 '상상력의 공간'을 제공하는 장르는 어떤 것일까? 쉽사리 답할 수 있는 질문은 아니다. 그러나, 영사막에서 움직이는 배우나 그림 없이 활자라는 단순 수단으로 독자에게 전달되는 소설이 선사하는 상상력의 공간이 조금은 더 크지 않겠냐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런 이유로 소설의 기본 틀을 해치지 않으면서 흥미롭게 영상으로 전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감독의 역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는 이미 전례를 통해 이 사실을 확인한 바 있다.

대부분의 독자와 관객들은 임권택 감독의 영화 <태백산맥>이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을 영상으로 빼어나게 잘 옮겼다고 말하지 않는다. 둘을 모두 읽고, 관람한 내 생각도 이와 다르지 않다. 반면 귄터 그라스의 소설 <양철북>을 영상으로 이전한 폴커 쉘렌도르프의 동명 영화는 소설만큼이나 호평받았다.

소설 <이와 손톱> → 영화 <석조저택 살인사건>

 1945년 경성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는 <석조저택 살인사건>의 한 장면.

1945년 경성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는 <석조저택 살인사건>의 한 장면. ⓒ ㈜영화사 다


서설(序說)은 이쯤에서 그만하고. 최근 소설을 영상으로 옮긴 또 하나의 영화가 개봉됐다. 정식·김휘 감독이 공동으로 연출한 <석조저택 살인사건>. 고수와 김주혁, 문성근과 박성웅 등이 출연한 이 작품의 원작소설은 미국 추리작가 빌 S. 밸린저의 <이와 손톱>.

결론부터 말하자면, <석조저택 살인사건>은 재미와 함께 극적 긴장감을 시종 유지하고 있다. 스릴러 영화가 갖춰야 할 기본 미덕은 성취한 것이다.

이 영화적 성취는 앞서 언급한 배우 박성웅(송태석 역)과 문성근(윤영환 역)의 핍진한 연기력에 힘입은 바 크다. 각각 검사와 변호사로 출연한 둘은 능글맞음과 날카로움 사이를 여유롭게 오가며 극 중 법정과 극장의 관객을 완벽히 장악한다.

여기에 <석조저택 살인사건>이 매력적인 이유 한 가지를 더하자면, 아주 오래전부터 세상을 떠돌던 "지독한 사랑은 파멸이다"란 문장을 매우 흥미롭고 효과적으로 스크린에 옮겼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선 젊은 배우 임화영(정하연 역)이 한몫을 톡톡히 해냈다.

사랑으로 인한 파멸... 그러나 아름답다

 <석조저택 살인사건>의 법정 장면. 배우 박성웅과 문성근이 보인다.

<석조저택 살인사건>의 법정 장면. 배우 박성웅과 문성근이 보인다. ⓒ ㈜영화사 다


1945년. 눈 내리는 경성. 떠돌이 마술사 사내가 오갈 데 없는 아름다운 여성 정하연을 도와준다. 그게 인연이 돼 함께 무대에 서며 결혼을 약속하는 두 사람. 그러나, 운명은 둘의 행복을 오래 허락하지 않는다. 이 젊은 연인은 위조지폐와 관련된 사건에 휘말리며 큰 위험에 빠지는데….

<석조저택 살인사건>은 마술사와 매혹적인 여인 커플의 러브 스토리와 1948년의 법정을 오가며 빈틈 없이, 숨 가쁘게 전개된다. 이와 같은 효과적인 교차편집은 관객들의 궁금증을 점층법으로 증폭시킨다.

게다가 영화가 시작되고 1시간 가까이는 '왜 서로 연관되지 않을 것 같은 이야기들이 동시에 보이는 걸까'란 의문까지 부른다.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반전을 노리는 연출자의 역량이 만만찮다. 정식과 김휘 감독이 스릴러 영화의 문법을 잘 훈련받았다는 게 확연하게 느껴진다.

<석조저택 살인사건>은 사랑과 복수를 담아낸 웰메이드 스릴러다. 동시에 성공적인 소설의 영화화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세상사 대부분 비극, 그것도 젊은 연인의 비극은 '사랑'이 그 이유다. 맞다. 사랑을 위해 살거나 죽을 수 없다면 그건 이미 청춘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영화에서 정하연을 연기한 배우 임화영은 영화 애호가들이 주목할 가치가 있다. 신인인 듯한데, 자연스러운 표정 연기와 캐릭터 해석력이 보통 아니다. 그래서, 오늘보다 내일이 더 기대되는 배우다.

석조저택 살인사건 정하연 임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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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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