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비에르 바르뎀이 발군의 연기력을 선보이는 <캐리비안의 해적: 죽은 자는 말이 없다>의 포스터.

하비에르 바르뎀이 발군의 연기력을 선보이는 <캐리비안의 해적: 죽은 자는 말이 없다>의 포스터. ⓒ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스페인 여왕의 후원으로 새로운 대륙을 찾아 헤매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1450~1506). 카리브해(海)에 인접한 지역은 1492년 콜럼버스가 발견한 곳이다.

식민지의 필요성이 간절했고, 신대륙의 자원을 약탈하고자 했던 스페인에겐 '보물창고' 같은 지역이었지만, 그곳에 살던 원주민들에게 유럽인들의 신무기와 성병(性病)은 재앙과 다를 바 없었다. 수십, 수백만의 원주민이 병에 걸려 죽거나 학살당했다.

이른바 '대항해시대'로 불리는 15~18세기. 카리브해는 스페인과 프랑스, 영국 등 제국주의가 각축하던 전쟁터에 가까웠다. 유럽과 남·북아메리카를 잇는 요충지인 동시에 앞서 말한 것처럼 금을 비롯한 각종 자원이 쏟아져 나온 때문이었다.

일확천금을 노릴 수 있는 이 기회의 '바다와 땅'에 사람들이 몰려들지 않을 수 없었다. 유럽에서 파견된 식민지 경영자들과 보다 많은 자본을 축적하고 싶었던 스페인과 영국 부자들의 고용인이 밀물처럼 들어왔다. 그리고, '벼락부자'를 꿈꾸던 또 한 부류가 카리브해를 떠돌았으니 바로 '해적'이다.

발군의 연기력 하비에르 바르뎀... 흥미로운 특수효과도

 스페인의 해적소탕선 '사일런트 메리'의 유령 지휘관으로 분한 하비에르 바르뎀.

스페인의 해적소탕선 '사일런트 메리'의 유령 지휘관으로 분한 하비에르 바르뎀. ⓒ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는 그 시절, 카리브해의 전설적인 약탈자 '잭 스패로우(조니 뎁 분)'를 주인공으로 제작된 영화다.

이전 만들어진 몇 편의 전작들이 세계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며, 누적수입 4조원을 넘는 자타공인 '흥행의 고속도로'를 달린 것처럼 최근 개봉한 시리즈의 신작 <캐리비안의 해적: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역시 경쟁작들을 제압하며 순항 중이다. 개봉 11일째였던 지난 4일 관람객 수가 230만 명에 육박했다.

영화는 예상한 대로 쏟아 넣은 '자본의 힘'이 여실히 느껴질 만큼 재밌다. 심해에 잠겨있던 유령선 '플라잉 더치맨'이 바다 위로 떠오르고, 스페인 함선 '사일런트 메리'는 하늘을 날아다닌다. 바다에서만 아니다. 수십 마리의 말들이 갈기를 휘날리는 육지에서의 추격전 역시 박진감이 넘친다.

특수효과를 위시로 한 흥미로운 볼거리 외에도 발군의 연기력을 선보인 <캐리비안의 해적: 죽은 자는 말이 없다>의 배우들도 주목받고 있다.

에단·조엘 코엔 형제의 문제작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무표정하고 냉혹한 소시오패스로 분해 깊은 인상을 남겼던 하비에르 바르뎀은 스페인의 해적소탕선을 지휘하던 유령으로 나와 최고 수준의 연기를 보여준다.

조니 뎁의 의뭉스런 '캡틴 스페로우' 연기 또한 초여름 더위를 날려줄 웃음을 선물한다. 여기에 조연으로 등장하는 해적들의 우스꽝스런 모습도 극장 안 객석의 폭소를 부른다. 시대적 배경이 수 세기 전임에도 진취적이고 현대적인 여성 '카리나'의 모습을 연기한 카야 스코델라리오는 <캐리비안의 해적: 죽은 자는 말이 없다>에서 발견한 푸른 보석이다.

그러나, '뭔가'가 빠져있어 어쩐지 아쉽다

 카야 스코델라리오(왼쪽)는 <캐리비안의 해적: 죽은 자는 말이 없다>에서 발견한 '주목할 만한 신예'다.

카야 스코델라리오(왼쪽)는 <캐리비안의 해적: 죽은 자는 말이 없다>에서 발견한 '주목할 만한 신예'다. ⓒ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웃으며 즐기는 영화'로선 손색이 없는 <캐리비안의 해적: 죽은 자는 말이 없다>. 하지만, '메시지'와 '의미'에 방점을 찍고 극장을 찾는 관객에게는 이 영화를 권하기가 저어된다.

그건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보물을 찾기 위해 망원경을 만드는 천문학자가 됐다'는 비역사적 설정이나, 인간과 유령이 서로 말을 나누고 싸움을 벌이는 황당한 장면이나, 죽은 아버지가 아들의 간절한 바람에 의해 살아 돌아오는 억지스런 해피엔딩 탓만은 아니다.

시리즈 전작들이 그랬던 것처럼 <캐리비안의 해적: 죽은 자는 말이 없다>에도 카리브해에 살았던 원주민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눈을 홉뜨고 찾아봐도 발견되지 않는다. 등장한다고 해도 그저 '무지하고 미개한 종족'으로만 묘사될 뿐.

제국주의 식민지 지배의 가장 큰 피해자이자, 해적들의 약탈 탓에 두려움 속에서 살았던 '캐러비안의 원주민들'. "그들에 대한 영화적 배려가 아쉽다"고 말하면 "할리우드 오락영화에서 별걸 다 바라고 있네"라며 비웃을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그게 숨길 수 없고, 숨길 필요도 없는 나의 '개인적 감상'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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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음악이 주는 기쁨과 쓸쓸함. 그 모든 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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