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자연 성우가 자신의 트위터(@KNKNOKU)를 통해 올린 포스팅. 티셔츠에 쓰인 문구도, 그녀가 사진과 함께 올린 대사도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 사진 한 장으로 인해 마녀사냥이 시작됐다.

김자연 성우가 자신의 트위터(@KNKNOKU)를 통해 올린 포스팅. 티셔츠에 쓰인 문구도, 그녀가 사진과 함께 올린 대사도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 사진 한 장으로 인해 마녀사냥이 시작됐다.ⓒ @KNKNOKU


[기사 보강 : 19일 오후 5시 25분]

"Girls Do Not Need A PRINCE"

여자에게는 왕자가 필요 없다. 여자는 가만히 앉아서 백마 탄 왕자가 구원해주기를 기다리는 존재가 아니다.

이 당연한 문구가 쓰인 티셔츠가 SNS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주인공은 넥슨의 온라인게임 <클로저스>의 신규캐릭터 '티나'의 목소리를 맡은, 아니 맡았던 김자연 성우이다.

그녀에게 가해진 십자가 밟기

 <클로저스>의 신규 캐릭터 '티나'를 소개하는 공식 페이지 화면 갈무리. 넥슨의 발빠른 대처는 아마도 상업적 고려였을 것이다. SNS와 커뮤니티 등에서 불거진 논란과 불매 움직임에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발빠른 대처가 오히려 더 큰 문제를 만들 수 있음을 몰랐던 것일까.

<클로저스>의 신규 캐릭터 '티나'를 소개하는 공식 페이지 화면 갈무리. 넥슨의 발빠른 대처는 아마도 상업적 고려였을 것이다. SNS와 커뮤니티 등에서 불거진 논란과 불매 움직임에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발빠른 대처가 오히려 더 큰 문제를 만들 수 있음을 몰랐던 것일까.ⓒ 넥슨


호드 진영에 블러드엘프가 합류할 때 '이건 내가 알던 아제로스가 아니야'라고 슬퍼하면서 얼라이언스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떠난 이후, 온라인게임보다는 비디오게임을 즐겼기에 <클로저스>에 대해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클로저스>는 지난 2014년 12월 23일 서비스를 시작한 온라인 액션게임이란다.

<클로저스>는 오는 21일 '강철심장 티나'라는 신규캐릭터를 출시할 예정이었으며, 김자연 성우는 이 캐릭터의 목소리를 맡아 연기했다. 그러나 19일, 넥슨은 갑작스럽게 티나의 성우 교체를 공지했다.

넥슨 측이 19일 낮 12시경 <클로저스>의 홈페이지에 올린 공지사항을 보면, "급히 성우 교체라는 결정"을 내린 이유는 "논란이 되고 있는 사안"에 대해 "우려 섞인 의견들을 확인"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논란이 되고 있는 사안"이란 한 벌의 티셔츠 때문이다. 김자연 성우는 상기한 "Girls Do Not Need A PRINCE"라고 적혀 있는 티셔츠 사진을 지난 18일 오후 8시께 자신의 트위터에 올렸다.

 <클로저스>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온 공지. 정확히 어떤 논란인지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시점과 맥락으로 보아 티셔츠로 인해 촉발된 게 확실해 보인다.

<클로저스>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온 공지. 정확히 어떤 논란인지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시점과 맥락으로 보아 티셔츠로 인해 촉발된 게 확실해 보인다.ⓒ 넥슨


그리고 김자연 성우를 향한 십자가 밟기가 시작됐다. 이 사상 검증의 주요 포인트는 '메갈리아'이다. 해당 티셔츠가 메갈리아를 후원하는 티셔츠라는 게 이유였다. 김자연은 메갈리아 활동을 했는가, 메갈리아를 지지하는가, 메갈리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왜 그 티셔츠를 입고 있는가 등등. 이에 대해 그녀는 "회원으로 활동한 적은 없어도", "미소지니(misogyny, 여성혐오)에 대응하는 웹사이트라고 생각"하며 "딱히 나쁜 인상을 갖고 있지는 않"다고 답했다.

메갈리아의 미러링이 적절한 전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메갈리아에 대한 개인적 호불호를 떠나, 그들은 많은 것을 이루었고 지금도 더 큰 가치를 위해 분투하고 있다. 젠더에 관한 담론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것도 그들이며, 잡지 <맥심> 표지에 철퇴를 내리고 소라넷 폐지에 기여한 것도 그들이다. 그들은 성 평등을 이룩하기 위한 전선에서 가장 거칠게 싸우는 전위대였기에 온갖 모욕과 박해를 받았다. 최소한 일베와 동일선상에 놓일 집단도 커뮤니티도 아니다.

그리고 그 박해의 골고다 언덕 중 하나가 페이스북이다. '김치녀' 등 편파적이고 혐오스러운 페이지에 대해서는 수많은 신고에도 움직이지 않으면서 메갈리아2와 메갈리아3는 가차없이 페이지를 삭제했다. 메갈리아는 페이스북 코리아의 이중잣대에 항의하며 소송에 들어갔고, 해당 티셔츠는 페이스북과의 소송 자금을 모으기 위해 지난 5월 27일부터 6월 20일까지 진행된 텀블벅 프로젝트로 판매한 것이다.

자, 이 티셔츠를 입은 게 대체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이 티셔츠에 혐오 발언이 쓰여 있는가. 티셔츠가 지지하는 프로젝트가 차별을 재생산하는 종류의 것인가. 아니다. 이 티셔츠를 입는다는 것이 메갈리아가 내건 깃발이나 행위의 A~Z까지 동의한다는 의미로 읽히는 것도 무리이고,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개인의 사회·정치적 의사 표시를 두고 마녀사냥식으로 돌팔매질하는 건 더 무리이다. 특히나 그녀의 직무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일이다. 대체 왜 그녀의 목소리가 게임에서 삭제되어야 하는가.

서유리에게 던진 돌, 김자연에게 한 번 더

 서유리 토콘

지난 5월 26일, 경희대학교에서 진행될 예정이었던 '마이리틀여혐' 토크쇼는 결국 취소됐다. 여성들의 사회·정치적 발언, 성 평등에 관한 문제제기에 '그 입 다물라'고 말하는 이들은 여전히 존재하며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마치 '가만히 있으라'고 말하는 그들처럼.ⓒ 서유리 블로그


서유리가 경희대학교 총여학생회에서 준비한 연단에 서 특강을 한다고 했을 때 돌팔매질했던 그들은 또 다른 먹잇감을 찾았다. 서유리가 논란이 됐다고 해서 라이엇게임즈는 <리그 오브 레전드>의 잔나나 시비르, 애쉬의 성우를 교체하지 않았다. (관련 기사 : '예쁜' 서유리는 좋은데 '성평등' 말하면 싫다?)

그러나 넥슨은 별다른 고민도 없이 김자연을 <클로저스>로부터 하차시켰다. <클로저스>의 공식 홈페이지나 SNS 등에서 지난 하루 동안 있었던 유저들의 김자연 성우 하차 요구를 신속하게 받아들였다. 그 신속함 속에 논란의 정도와 범위, 이유와 맥락을 살피는 행위는 없었다. 오히려 돌팔매의 피해자인 김자연 성우의 손을 놓았다. 고심 끝에 해경을 해체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정도의 대응이다.

<서든어택2> 논란을 관찰하며 확인한 걸, 이번 넥슨의 결정을 보며 재확인했다. (관련 기사 : '슴든어택' 논란, 캐릭터 삭제로 끝날 문제 아니다) 기본적으로 국내 게임 개발자들의 머리에 성 평등에 관한 인지 혹은 공감 능력은 '0'에 수렴한다.

19일 오후 5시 15분께, 넥슨은 홍보실 관계자를 통해 공식적인 입장을 전했다. 넥슨 측은 공지사항에서 언급한 논란이 티셔츠로부터 촉발된 논란임을 인정하면서 "해당 논란에 대해 넥슨은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김자연 성우의 목소리)사용을 자제하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김자연 성우에게 정중하게 요청드렸고, 원만한 합의 끝에 보이스 삭제를 결정"했으며 "이미 계약되었던 비용에 대해서는 다 지급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트위터는 지금 넥슨의 보이콧과 김자연 성우 지지 의사를 밝히는 해시태그들이 물결치고 있다. 넥슨 탈퇴 인증샷을 올리는 누리꾼들도 눈에 보인다.

김자연 성우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그 티셔츠를 입는 것이 죄라면, 나도 기꺼이 그 십자가를 지겠다. 그녀가 트위터에 인용한 대사의 말처럼, 그녀에게 영웅은 필요 없지만, 친구는 필요할 테니.

#넥슨_보이콧
#김자연성우를_지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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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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