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리 토콘

방송인 서유리씨가 출연하기로 예정돼있던 '마이리틀여혐-여혐러에게 고하는 사이다 토크쇼'. ⓒ 서유리 블로그


# 장면 하나

방송인 서유리씨가 경희대학교 총여학생회가 주최하는 '마이리틀여혐-여혐러에게 고하는 사이다 토크쇼'에 출연하기로 하자 그의 사진이 인쇄된 콘서트 입간판이 반으로 구겨지고 발자국이 찍힌 채 훼손당한 일이 발생했다. 그의 SNS에는 외모와 학력을 비하하거나 성적으로 모욕하는 댓글이 달렸고, 서유리씨는 이에 대응할 것이라는 의사를 밝혔다. 결국 26일로 예정됐던 콘서트는 취소됐다.

"예쁜 여자는 페미니즘 안 한다" "못 생기고 남자한테 사랑받지 못한 여자나 페미니즘 한다"는 말, 들어보셨는지? 페미니즘에 대한 편견(혹은 공포)에서 비롯된 오해임에도 많은 이들이 사실이(어야만 한다)라고 굳게 믿고 있는 말들이다.

하지만 여성은 남성에게 사랑받을 때가 아니라 남성처럼 하나의 인간으로서 독립적인 주체가 되었을 때 온전한 삶의 기쁨을 누린다. 거칠게 정의하자면, 페미니즘은 남성과 여성뿐만 아니라 양성으로 규정되지 않는 다른 모든 젠더를 아우르는 '성평등주의'다. 페미니즘은 소수자들의 '인간 선언'이다.

방송인 서유리의 경우, 콘서트에 출연하기에 앞서 굳이 본인을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양성평등주의자'라고 소개했음에도 '여자 편을 들려는 것으로 보인다'는 이유로 욕설과 조롱을 들어야 했다.

주체적인 모습을 보이면 '통수녀'가 된다

 그녀의 행동이 '뒤통수를 친 것 같은' 배신으로 다가왔다는 '팬들'의 분노는 그들이 그녀에게 기대한 역할이 무엇이었는지를 가늠케 한다.

그녀의 행동이 '뒤통수를 친 것 같은' 배신으로 다가왔다는 '팬들'의 분노는 그들이 그녀에게 기대한 역할이 무엇이었는지를 가늠케 한다. ⓒ 서유리 트위터 갈무리


그녀의 행동이 '뒤통수를 친 것 같은' 배신으로 다가왔다는 '팬들'의 분노는 그들이 그녀에게 기대한 역할이 무엇이었는지를 가늠케 한다. 예쁜 외모와 재기 있는 입담으로 프로그램의 분위기를 띄워주는 역할, 그들이 그녀에게 기대했던 것은 거기까지였다. 그녀가 시민으로서, 여성이라는 주체로서 말을 하려 하자 팬들의 찬사는 비난으로 바뀌었고 그녀의 입은 봉쇄당했다.

지난해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세계 성평등지수'에서 한국은 145개국 중 115위였다. 객관적으로 봐도 우리 사회는 남성의 절대적 지배하에 있는 남성중심 사회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남성의 시각에 의해서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규정된다. '김치녀' '된장녀' '개념녀' '강된장녀' 등 수많은 'OO녀'시리즈만 봐도 알 수 있다. 또한 여성을 대상화하는 무수한 말 만큼이나 여성에게 요구되는 기준 또한 까다롭고 세세하며 다양하다.

'OO녀'로 낙인찍힌다는 것은 배제와 차별, 폭력에 노출되는 일이므로 여성들은 남성들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엄격한 자기검열에 시달린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취업과 승진, 연애, 결혼, 사회생활에 불이익을 받는다. 여성혐오적인 문화에 피해를 보면서도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여성혐오 문화에 동참하게 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여성들은 '살기 위해' 여성혐오적 문화를 내면화한다.

설현과 지민이 눈물 흘리자 비난 멈춘 언론과 대중

 지민과 설현이 안중근 의사를 알아보지 못해 논란을 일으켰다. 그들의 무지도 문제지만, 역사 인물을 대하는 가벼운 태도가 더 문제였다.

인기 아이돌 가수 설현과 지민이 케이블 방송에서 퀴즈를 풀던 중 안중근 의사를 몰라봤다는 이유로 네티즌들의 집중포화를 받았다. ⓒ 온스타일


# 장면 둘

인기 아이돌 가수 설현과 지민이 케이블 방송에서 퀴즈를 풀던 중 안중근 의사를 몰라봤다는 이유로 네티즌들의 집중포화를 받았다. 역사적 인식의 부재를 비난하는 댓글이 쇄도했고, 각 포털 메인에는 그들이 잘못을 빌며 눈물을 쏟아내는 사진이 앞다투어 올라왔다.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의견과 지나치다는 여론이 한동안 인터넷을 달궜다.

올 초 설 특집으로 방영된 TV프로그램 <본분 금메달>을 기억하는가? 이 프로그램은 여성 아이돌을 모아놓고 외모, 여성스러움 등을 노골적으로 평가해 여성을 상품화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몰래 몸무게를 재고, 바퀴벌레 모형을 던진 후 놀라는 표정과 망가진 모습을 '품평'하는 식이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예쁜 표정을 지어야 하고 남성들이 보기에 좋은 이미지를 유지하는 것이 여자 아이돌의 본분이라는 생각은 우리 사회에서 낯선 것이 아니다. 하다못해 외모 점수가 '떨어지는' 여성은 '마음이라도 고와야 여자다.'

평화연구자 정희진은 칼럼 <사랑받지 않을 용기>에서 가부장제 사회를 "가부장제는 남성에게 여성을 보호(사랑)할 가치가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를 분류하는 권한을 부여한 인류 최악, 최고(最古)의 노예제다"라고 정의했다. 아름답지 않거나, 젊지 않거나, 순종적이지 않거나, 순결하지 않다면 그 여성은 남성에게 '성적'으로 가치 있고 보호받을 만한 여성이 아니다.

한 가지 더. 여성은 남성보다 똑똑하거나 반대로 너무 몰라도 안 된다. 여성은 아는 것도 모르는 척해야 '사랑받는다.' '남자는 자기보다 잘난 여자를 싫어한다'는 말과 '예쁜 여자는 멍청하다(dumb blonde)'는 속설이 동시에 통용되는 사회에서 여성은 남자들의 기대를 상회해도, 혹은 못 미쳐도 지탄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남성에게는 보다 덜 엄격한 잣대가 적용되는 것 같다. 3년 전 <무한도전>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아이돌들의 한국사 상식을 묻는 퀴즈 코너에서 남자 아이돌 그룹 인피니트의 성열이 '일본에 문물을 전파하던 조선의 외교사절단'인 '조선통신사'를 물어보는 문제에 '정신O'라는 답변을 적었다. 마지막 글자는 화면에 잡히지 않았지만 많은 시청자가 '정신대', '정신사', '정신소' 등을 연상했다. 성열 또한 민감한 문제를 건드렸음에도 그에 대한 과한 비난이나 인신공격, 떠들썩한 기사들은 거의 나오지 않았다.

안중근 의사의 얼굴을 모르는 것이 무지한 것일 수는 있지만 죄는 아니다. 하지만 여자 아이돌이 모른 것은 죄가 되었고, 대중은 여자 아이돌에게 채찍을 휘둘렀다. 사과문을 올렸음에도 사그라지지 않던 분노는 그녀들이 눈물을 쏟아내자 주춤해졌다. 그녀들의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향해 플래시를 터뜨려대는 언론은 대중이 무슨 장면을 원하는지 훤히 꿰고 있었다.

여성은 늘 당신 마음대로 움직이는 인형이 아니다

 22살 대학생 이아무개씨가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해 "키 작은 남자는 루저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남자들의 거센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22살 대학생 이아무개씨가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해 "키 작은 남자는 루저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남자들의 거센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 KBS2


# 장면 셋

2009년 22살 대학생 이아무개씨가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해 "키 작은 남자는 루저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남자들의 거센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후폭풍은 대단했다. 제작진은 교체되었고 한 남성은 정신적 피해를 보았다며 방송사를 상대로 1000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도 했다.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해당 여성의 신상을 궁금해하는 글이 간혹 올라온다.

"내가 여자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여성혐오를 하겠느냐"라고 생각하는 남성들이 많다. 하지만 여성에 대한 숭배와 찬양은 손쉽게 경멸과 멸시로 뒤바뀐다. 숭배와 멸시는 여성혐오(misogyny)라는 동전의 앞뒷면이다. 여성혐오적 시선은 여성을 인간이 아니라 하나의 성적 기호로서 호불호의 대상으로 판별한다. 젠더화된 여성의 몸은 가부장제 남성의 욕망이 투사되는 장소로 기능한다. 여성의 신체는 커다란 눈, 오똑한 코, 도톰한 입술, 뾰족한 턱, 풍만한 가슴, 잘록한 허리, 가느다란 뼈대 등 비현실적인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 여러 조각으로 분열된다.

통제당하는 것은 몸뿐만이 아니다. 젊고 어릴수록 여성은 성적 욕망을 함부로 드러내서는 안 된다. 가부장제 사회는 순진무구하고 순종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향유한다. 한지희 경상대 교수는 <우리시대 대중문화와 소녀의 계보학>에서 "이는 소녀들의 육체와 성적 욕망까지 통제하고자 하는 가부장적 사회의 남성 욕망"이라며 여성들 스스로도 "가부장적 보호자에게 의존하는 것을 소녀가 갖춰야 할 필수적 덕목으로 내면화했다"고 비판했다.

여성의 육체는 남성이 보기에 충분히 '아름다워야' 하면서도, 성적 쾌락은 거세당한다. 남성이 자신의 성기를 이용해 즐기는 법을 배워나가는 것과는 반대다. 여성의 몸은 어릴 때부터 자기 소외를 당한다. 어린 여성의 몸에 대한 이상은 '섹스 없는 섹슈얼리티'를 구현한 바비인형을 빼닮았다.

캐롤 오크먼의 <바비 이야기>에 따르면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상징하는 거대한 유방과 이를 부인하는 듯한 가는 몸통을 가진 일종의 정신분열증적 신체"(관련기사 : 김윤은미,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는 플라스틱 인형 바비-현대판 '여신'이 던지는 흥미로운 에피소드」, <여성주의 저널 일다> 2003년 6월 20일)야말로 가부장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의 몸이며, 여성은 이러한 기형적인 몸에 걸맞은 지위를 부여받는다.

남성은 평가하는 위치에 있고, 여성은 평가당하는 위치에 있다. '루저(loser)'라는 비하표현은 남성들 사이에서는 자조적인 유머가 될 수 있지만, 여성이 남성에게 해서는 안 되는 말이었다. 남자들은 참을 수 없었고 그녀는 철저히 응징당했다. '감히' 남성을 '평가'하려 했기 때문이다. 겨우 그만한 정도로 가부장제의 위계질서가 흔들리지는 않을 테지만, 그럼에도 남성들은 폭발했다. 남성들이 보인 '과민 반응'은 남성성의 기반이 그만큼 불안정해졌다는 뜻일지 모르겠다.

남성들은 고정된 성별 규범에서 여성이 조금만 벗어나도, 자신의 인권을 조금만 언급해도 '벌을 내릴' 태세를 취한다. 헨릭 입센의 희곡 <인형의 집>에서 주인공 노라는 자신이 가정에서―남편으로부터―'인형' 취급을 받아왔음을 깨닫고 집을 뛰쳐나온다. 노라의 가출은 일종의 '인간 선언'이었다. 현재 대한민국은 거대한 '인형의 집'이다. 우리 사회가 변하지 않는 한, 여성들의 저항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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