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가씨>에 욕망과 불꽃을 선물한 두 여배우 김민희(우)와 김태리.

영화 <아가씨>에 욕망과 불꽃을 선물한 두 여배우 김민희(우)와 김태리.ⓒ CJ엔터테인먼트


"욕망은 형상을 만들고, 피조된 형상은 다시 욕망과 조응한다"고 말한 게 프랑스의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1884~1962)였을 것이다. 욕망이 비단 형상만을 만들까? 그렇지 않다. 인간 삶의 대부분은 욕망으로 인해 추동되고, 좌절되며, 완성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실상이 그렇다.

최근 세라 워터스(영국)의 소설을 자기 스타일로 변주해 스크린에 옮긴 박찬욱 감독의 신작 <아가씨>가 개봉됐다. "김민희와 신인배우 김태리의 최고 수위 노출", "상상을 넘어서는 영화미술의 절정" 등등의 시끌벅적한 풍문과 함께.

박찬욱이란 연출자의 이름이 주는 무게감과 적지 않은 고정 팬을 가진 배우 김민희와 하정우의 출연, 거기에 호기심을 자극하는 영화의 카피들은 잠재 관객들의 욕망을 효과적으로 자극했다. 개봉 일주일을 넘어선 현재 250만 명이 <아가씨>를 관람했으니까.

영화 <아가씨>의 줄거리는 평면적으로 보일 만큼 간명하다. 유럽의 합리주의를 동경하면서도 음란 서적에 집착하는 늙은 사내(조진웅 분)와 눈먼 돈을 빼앗아 신분상승을 꿈꾸는 젊은 사내(하정우 분)가 대립하는 구조. 여기에 외면은 순진하지만 속은 보통내기가 아닌 의뭉스런 아가씨(김민희 분)와 겉으론 발랑 까져 보이나 내면은 진실한 애정을 갈망하는 하녀(김태리 분)가 사랑을 키워가는 과정을 덧씌웠다.

밋밋한 스토리라인, 그러나 간과 못할 미덕 담은 영화

 <아가씨>에서 '파애'의 메타포로 사용된 두 배우 하정우(좌)와 조진웅.

<아가씨>에서 '파애'의 메타포로 사용된 두 배우 하정우(좌)와 조진웅.ⓒ CJ엔터테인먼트


초반 하녀의 시점에서 전개되던 영화는 중반을 넘어서며 아가씨의 시점으로 변화됐다가, 다시 제3자의 객관적 시점으로 바뀐다. 이 정도가 <아가씨>가 보여주는 영화적 스킬의 전부. 쉽고 단순한 영화라는 이야기다. 과도한 신체 노출 장면만 없다면 고교생이 봐도 무방할 듯한 그저 그런 추리극의 구조다.

스토리 자체가 크게 흥미를 끌 만한 소재를 담고 있지 못함에도, <아가씨>는 분명한 미덕 한 가지를 지녔다. 바로 반목하고 갈등하고 충돌하는 인간과 인간, 세계와 인간, 세계와 세계를 스크린에 담아냄으로써 욕망의 민얼굴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는 것. 그런 까닭에 기자는 상영시간 내내 앞서 언급한 가스통 바슐라르의 목소리를 들었다.

비천한 신분에서 벗어나 제대로 한몫 잡아보려는 하녀의 '욕망'은 누구보다 뜨겁다. 그 욕망을 이루기 위해선 아가씨의 재산을 가로채려는 젊은 사내와 한통속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세상일이란 예측대로만 되지 않는 법. 사기를 쳐야 할 대상에게 사랑이란 이름의 '욕망'을 느끼기 시작한 하녀. '욕망'이 '형상'을 '피조'시키기도 전에 혼란에 빠져버린 것이다.

잔꾀와 멋들어진 연기력으로 자신의 처한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아가씨의 '욕망'도 처음엔 단순했다. 하녀를 희생양으로 삼아야 하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그게 무슨 대수일까? 그러나, 그렇지 못했다.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했던 이가 갑작스럽지만, 진실한 사랑 앞에 서면 흔들린다. 아가씨의 '욕망' 역시 현실에서의 탈출로 '형상'화 되지 못한다. 그 앞에 전혀 예상치 않았던 '형상'이 다가서니 바로 사랑이다. 국경과 인종은 물론, 성별까지 초월한.

욕망에 관한 진지한 탐구, 그러나 아쉬움도...

사실 <아가씨>에선 '늙은 사내' 조진웅과 '젊은 사내' 하정우의 존재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그들의 연기가 시원찮아서거나, 캐릭터 설정이 허술해서가 아니다. 그 둘이 눈에 띄지 않는 이유는 '아가씨' 역을 맡아 생애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 김민희와 신인이라기엔 너무나 노련한 눈빛과 명민한 배역 해석력을 가진 '하녀' 김태리가 돌올해서다.

충돌하는 욕망과 이로 인해 튀는 불꽃. 그 불꽃의 온도가 <아가씨>를 뜨겁게 한다. 이전의 한국 영화에선 쉬이 발견할 수 없었던 '동성 간의 사랑'이란 코드도 달아오른 영화의 전개에 기름을 들이붓는다. 이는 에어컨 켜진 영화관 객석이 뜨겁게 달궈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몇몇의 골수 팬이라면 박찬욱에게 '새로운 길을 발견한 (영화예술의) 탐험가'라는 꼬리표를 달아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일관된 칭송은 사람을 오만하게 하는 법. 이건 이야기를 해야겠다. <아가씨>의 마지막. 두 사내가 벌이는 '신체 훼손의 카니발'은 그 잔인함이 과도하다. 물론, 그게 이뤄지는 사랑(아가씨와 하녀)에 대비시키기 위해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을 은유하는 장면이란 걸 안다. 하지만, 잘려나가는 하정우의 손가락에서 파애(破愛)의 메타포를 읽어낼 관객이 얼마나 된다고….

그리고, 진짜 마지막으로 하나. 세상을 떠도는 문장 중엔 "모든 육체는 슬프다"란 것이 있다. 하지만, <아가씨> 이후라면 그 문장은 수정돼야 한다. "모든 육체는 아름답다"라고.

만 45년을 살아오며 수천 편의 영화에서 수만 가지 베드신을 봤다. 그 어떤 것도 '아가씨' 김민희와 '하녀' 김태리의 정사 장면보다 아름답지 못했다. 해서, 특별히 호모포비아(homophobia)들에게 이 영화를 권한다.

 영화 <아가씨> 포스터. 두 배우의 베드신은 아름답다. 지금까지 본 어떤 영화의 베드신보다도.

영화 <아가씨> 포스터. 두 배우의 베드신은 아름답다. 지금까지 본 어떤 영화의 베드신보다도.ⓒ CJ엔터테인먼트



<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등의 저자. 경북매일 기자.

객관적이지 않습니다. 사심을 담습니다. 다만 진심입니다. 제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제 진심이 닿으리라 믿습니다. 공채 7기 입사, 사회부 수습을 거쳐 편집부에서 정기자 생활을 했고 지금은 오마이스타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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