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년 간 부산국제영화제의 산파 역할을 해온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이 24일 오후 부산 우동 동서대 센텀캠퍼스 자신의 연구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김동호 명예집행위원장이 영화제에 독립성을 보장하는 내용의 정관 개정없이 조직위원장직을 맡게 된 것에 대해 섭섭함을 토로했다.
이 전 집행위원장은 "부산국제영화제와 부산시와의 문제에서 김동호 조직위원장이 왜 이렇게 섣부른 타협을 했는지 이상스럽다"며 "자신이 무능하고 부덕한 사람이라는 자괴감만 든다"고 말했다.
지난 20년 간 부산국제영화제의 산파 역할을 해온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이 24일 오후 부산 우동 동서대 센텀캠퍼스 자신의 연구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김동호 명예집행위원장이 영화제에 독립성을 보장하는 내용의 정관 개정없이 조직위원장직을 맡게 된 것에 대해 섭섭함을 토로했다. 이 전 집행위원장은 "부산국제영화제와 부산시와의 문제에서 김동호 조직위원장이 왜 이렇게 섣부른 타협을 했는지 이상스럽다"며 "자신이 무능하고 부덕한 사람이라는 자괴감만 든다"고 말했다.유성호

2014년 <다이빙벨> 사태 이후 1년 8개월 간 부산국제영화제는 외줄타기를 해왔다. 서병수 부산시장의 "상영하지 말아달라"는 '사소한 의견제시'를 받아들이지 않은 게 이 지난한 갈등의 시작이자 원인이었다. 자율성과 독립성 원칙에 따른 결과가 지금 영화제의 모습이라면, 여전히 한국 영화제와 영화계는 위태로운 외줄에서 못 내려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과연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나. 부산시는 감사원 조사와 검찰 기소 카드를 빼들었고, 지난 20년간 영화제를 키워오며 영화계 안팎의 존경을 받아온 이용관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불명예 퇴진을 당했다. 이런 전방위 압박에도 대오를 잃지 않고 영화계는 '영화제 보이콧'이라는 강수를 두었고, 영화제와 인연이 있는 젊은 감독들은 저마다 지지 글을 보내며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특별기획 : BIFF를 지지하는 젊은 목소리)

지난 4월말까진 괜찮았다. 상황이 급반전 된 건 5월 9일 김동호 전 명예집행위원장이 조직위원장직을 수락한다고 영화제 측이 밝히면서부터다. 이에 이번 사태 내내 침묵을 지켰던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이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김동호 조직위원장 체제를 반대한다"는 게 핵심이었다. 영화제 내부의 분열 조짐. 보이콧으로 힘을 실어주던 영화계의 대오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대체 일주일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지난 24일 임시총회를 통해 김동호 내정자의 조직위원장 선임 안건이 통과된 직후 <오마이스타>는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을 단독으로 만났다.

엇갈림의 시작

이용관 전 위원장의 속마음이 최초로 알려진 건 지난 12일.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가 주최한 간담회 자리에서다.(관련 기사 : 드디어 입 연 이용관 "이대로 BIFF 연다? 부산시에 면죄부") 기사에서 알 수 있듯 이 전 위원장은 서병수 시장의 사과와 재발 방지 및 독립성과 자율성 확보를 보장하는 정관 개정 없이 이렇게 김동호-강수연 체제로 나가는 건 미봉책도 아닌 (갈등 조장의) 큰 불씨를 남기는 것으로 보고 있었다. 참 시의적절하게도 같은 시각 프랑스 칸에서 열린 부산영화제 주최 오찬 자리에선 김동호 당시 조직위원장 내정자가 "어떻게든 이 위원장의 명예는 회복해야 한다"고 취재진에게 말했다.(관련 기사 : 김동호 "'독립 및 자율성 보장' 정관개정은 나의 숙제")

분명 임시총회에서 김동호 조직위원장은 영화제 개최 전 정관 개정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총회 개회 전 서병수 시장과 만난 자리에서 김 조직위원장은 영화제 전 정관 개정의 뜻을 피력했지만, 서 시장은 곧바로 반대 의견을 밝혔다.(관련 기사 : 돌아온 김동호 "BIFF 개최 전 정관 개정하겠다" 했지만) 이 소식을 전해들은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은 "어찌 면전에서 서 시장에게 그런 수모를 당하실까"라며 안타까워했다. 김동호 신임조직위원장이 서병수 시장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는 자신의 예측이 맞아 떨어지고 있다는 해석이었다.

- 지난 5월 9일 부산영화제 측이 합의안을 발표하기 직전까지 어떤 교감도 없었나.
"좀 복잡한데, 간략히 설명하면 이렇다. 작년 12월과 올해 1월 사이에 나의 연임 문제로 부산영화제 내부 이견이 있었다. 조직위에서 연임 안 시켜줄 걸 알기에 차라리 정관 개정 가지고 싸워달라 내가 제안했다. 날 가지고 싸우니 내 행동이 제약받는 거 같기도 했고. 그런데 이제까지 연임으로 싸워왔는데 방향을 바꾸면 명분이 약해진다고 항의를 받았다. 그 비판에 내가 약해진 거 같다.

2월 17일에 김지석 수석 프로그래머 등과 김규옥 부시장을 만나 연임 안 하는 조건에 정관 개정 해준다는 말을 들었다. 나중에 서병수 시장은 자긴 몰랐다며 발뺌했지만. 여튼 그래서 정관개정을 위한 임시총회를 3월 말에 열려고 했다. 그 전에 3월 1일 서울 모처에서 김동호 명예집행위원장을 만나서 정관이 개정되면 내가 나가야 하니 영화제 조직위원장을 해주십사 부탁을 드렸다. 그러자 그분이 (받아들이면서) 나에게 (나중에 법적인 문제가 끝나면) 명예집행위원장으로서 강수연 위원장을 도우면 되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부산시가 (연임 안하는 조건의 정관 개정 약속을 지키지 않고) 덜컥 자문위원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한 거고, 내가 바보가 된 거다.

또한 검찰 조사에서 전현직 사무국장 횡령 건이 터졌다. 도덕적 해이로 몰고갈 것이 뻔한 상황에서, 영화제 내부적으론 내 개인비리가 없다는 확신으로 '이용관을 지키자'는 방침 재확인을 했다. 그 연장선으로 영화계의 보이콧이 결정된 거고. 이 상태에서 시와 얘기하다보니 우리 쪽에서 원포인트 개정안이 나왔다."

- 원포인트 개정?
"시급한 것을 우선 개정하자는 거다. 부산시 사람으로 채워져 있는 당연직 조직위원 구성을 바꾸자는 것, 조직위원장 추천 방식을 바꾸자는 것 등이다. 그런데 이 핵심적인 두 가지가 빠지고 내가 모르는 사이 조직위원장은 김동호가 한다는 내용만 등장한 거다. 이걸 두고 (내부에서) 합의된 게 아니냐고 묻는데, 전혀 아니다.

부산시에서 몇몇 분을 접촉했더라. 내 기억으론 4월 24일 일요일에 임권택 감독님에게 조직위원장직을 제안했더라. 임 감독님이 몸도 안 좋고 어떻게 내가 하냐며 김동호 위원장을 추천했다. 부시장이 김동호 위원장을 찾아갔는데 그땐 조직위원장 자리 얘긴 안 했더라. 며칠 뒤, 4월 28일로 알고 있다. 그땐 또 부시장이 이춘연 대표(영화인회의 이사장)를 통해 안성기씨가 하면 어떤지 의사를 물었다더라."

이용관을 바보로 만든 부산시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은 "영화계가 위기에 빠진 영화제를 위해 보이콧까지 했는데 왜 이런 소중한 자산을 이렇게 밖에 활용하지 못하는지 화가 난다"며 "언제부터 영화제가 눈치꾼을 전락했냐"고 울분을 토로했다.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은 "영화계가 위기에 빠진 영화제를 위해 보이콧까지 했는데 왜 이런 소중한 자산을 이렇게 밖에 활용하지 못하는지 화가 난다"며 "언제부터 영화제가 눈치꾼을 전락했냐"고 울분을 토로했다.유성호

- 당시 협상은 강수연 집행위원장이 주도하지 않았나.
"그렇다. 이게 5월 3일 이야기다. (강 위원장이) 부시장을 만나러 간다기에 어떤 확답을 하지 말고 영화인들과 의논하겠다는 말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알았다고 했는데, 강수연 위원장과 김지석 수석프로그래머가 함께 부시장을 만나 다른 내용으로 합의가 된 거다. 당황했다. 내가 검찰에 기소를 당한 날이다. 그 다음날 (부산 지역) 신문엔 영화제가 사실상 부산시에 백기를 들었다는 논조의 기사가 나왔다.

그래도 늦지 않았다. 우리 의견이 아니고 영화인들과 의논하고 수락한다고 해도 안 늦는다고 말했다. 다 이미 발표가 됐는데 그럴 수 없다는 게 강수연 위원장 입장이었다. 이후 그가 서울로 올라갔고, 난 나머지 사람들에게 화를 냈다. 원포인트 개정이 이런 거였냐고. 앞으로 난 영화제 사무실에 오지 않겠다고 말하고 나왔다.

고민하다가 5월 5일에 김동호 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좀 아닌 거 같습니다. 조직위원들 임기가 2~3년이나 남았고, 나중에 정관 개정은 쉽지 않을 겁니다. 임시총회 전에 개정을 조건부로 하는 게 어떻겠는지' 말씀드렸다. 생각해보겠다고 하셨다."

- 결과적으론 뜻을 함께 했던 강수연 집행위원장, 김지석 수석 프로그래머 등이 협상력을 발휘하지 못한 건데.
"협상력이라기보다 왜 마음이 급하셨을까. 이게 한 편으론 칸영화제 때문에 그런 것도 있겠고, 강 위원장께서도 올해 영화제를 열어야 한다는 마음 때문인 것도 있고. 하지만 둘 다 급한 게 아니다. 사람들의 협조와 이해를 구하는 게 급선무다."

- 그 뒤로 교류가 없었던 건가.
"연락이 왔다. 부산으로 김동호 위원장과 강수연 위원장이 오신다기에 내가 올라갔다. 5월 7일이었다. 셋이 만났는데, 이미 김동호 위원장이 전화로 서병수 시장에게 조직위원장직을 수락한 뒤였다. 그래가지고 무슨 얘기가 되겠나. 난 그래도 '시간을 더 버십시오, 왜 이리 서두르십니까' 개인적 의견을 말씀드렸다. 안 받는 게 좋을 거 같다고. 정치적 탄압에 대해 사과를 요구하시라고. 만일 그게 어렵다면, 서병수 시장이 절대 사과할 사람이 아니라면, 조건부로 받아들이시라 말했다. 그 조건이라는 게 정관 개정을 먼저하고 조직위원장을 하시라는 거였다. 이렇게 위원장 자리만 받으시면 나중에 문제가 생길 수가 있는데 그게 두렵다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웃으시기만 하셨다.

기왕 수락하셨고 취소하기 힘들다면 며칠 시간을 버셔서 영화인과 의논하는 걸 제안했다. '보이콧까지 선언했는데 먼저 의논하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하니 칸영화제 다녀와서 의논하겠다고 하시더라. 마찬가지로 난 '거기 가서도 영화제를 무조건 한다고 말씀 마시고 (정상화를 위해) 노력 중이다, 도와달라고 하시라' 그랬다. 그랬는데도 안 들으시니 내가 어떻게 하나. 말씀드릴 건 다 드렸다. 하시고 안 하시고는 조직위원장의 몫이지만, 난 여전히 이 합의를 못 받아들이겠다고 말씀드리고 헤어졌다."

"5월 3일 강수연-김지석-부시장 3자 회동에서 다른 내용으로 합의"

- 그런데 칸영화제에서 김동호 조직위원장은 8일에 서병수 시장의 전화를 받았고, 그때 수락했다고 말했다.
"7일 오후 6시에 인사동에서 만나기로 했다가 강남으로 바꿨다. 그 전에 한 영화인을 만났는데 그 분도 문제가 있음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도 김동호 위원장님이 직접 날 부르셨으니 들으실 거라는 생각이 있었다. 차가 막혀 약속시간보다 15분 정도 지각했다. 두 분(김동호, 강수연)에게 죄송하다 말하려는데, 그쪽 전화벨이 울리더라. 서병수 시장이었다. 밖에 나가셔서 받으시는데 내용이 대충 들렸다. 그 자리에서 수락하시더라. 가슴이 미어졌다. 내가 드릴 수 있는 말은 다 드렸다고 할 수밖에 없다. 김 위원장님에 반대하고 의견이 다르지만 그래도 따르겠다고 차마 말하지는 못하겠더라."

- 당신은 지금의 합의를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김동호 조직위원장은 대외적으로 당신의 명예회복을 강조하고 있다.
"정치적 탄압인데 (그 분이) 어찌 명예회복을 시켜주나. 내가 그 분을 반대하는 건 미워서가 아니라 해결에 대한 생각이 달라서다. 서병수 시장이 세 번이나 약속을 안 지켰지 않나. 강수연 공동위원장을 모셔올 때도 1년 반에서 2년간은 공동 체제로 인수인계를 한 뒤 물러나게 해준다 했는데 안 지켰고, 그 당시 영화제 일을 그만두면 검찰 고발은 안 한다고 했는데 난 잘못한 게 없어서 안 받은 거고, 연임 안 하면 정관개정 합의해 준다고 했는데 안 해준 거 아닌가. 이 와중에 김동호 위원장님이 정관 개정하겠다고 하면 과연 해줄까? 믿는 게 이상한 거다.

내 입장은 하나다. 서병수 시장의 사과와 정관 개정이다. 만약 내가 이후 조직위원장을 하는 게 명예회복이라 생각하신다면 날 두 번 죽이는 거다. 영화제에 남지 않아도 떳떳한 게 중요하다. 내가 그나마 버텨서 부산시장의 당연직이던 조직위원장이 민간에 잘 이양됐고 정관도 개정됐다는 말만 있어도 충분하다."

- 검찰 조사 이후 공판을 남겨 두고 있다. 조사 결과가 나쁘지 않다고 들었다.
"난 무죄 아니면 벌금이냐였는데 검찰 조사에서 '개인 비리는 없다'는 문구가 들어갔더라. 이건 고마운 일이지."

여기까지만 보면 분열이다.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도 인정했다. 다만 그는 "양심적으로 내가 합의안 반대하면 분열인 건데, 이미 분열은 됐고 크게는 영화계 분열이 더 두렵다"고 속내를 전했다. "김동호 위원장께 드릴 말은 다 드렸으나 끝내 설득시키지 못한 내 자신이 밉다"며 자책했다.

그리고 힘들게 말을 이어갔다. 이후 이어지는 내용은 보이콧 선언을 한 영화인 및 부산지역 시민단체를 향한 그의 바람이며,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부산영화제에 대한 고언이다.

* 인터뷰는 두 번째 기사로 이어집니다.
[인터뷰②] 이용관의 고언 "언제부터 영화제가 눈치꾼 전락했는가"

부산영화제 이용관 김동호 강수연 서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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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영화(독립영화, 다큐멘터리, 주요 영화제, 정책 등등) 분야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각종 제보 환영합니다^^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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