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전 집행위원장이 12일 저녁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가 주최한 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전 집행위원장이 12일 저녁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가 주최한 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 정민규


"집행위원장이라고 하시는데, 저는 '전 집행위원장'입니다."

12일 저녁 만난 이용관 전 부산국제영화제(BIFF) 집행위원장은 호칭부터 정리했다. 지난 20년을 지켜왔던 BIFF와 마치 선을 그으려는 듯, 그는 자신이 '전 집행위원장'임을 강조했다.

그동안 외부 활동을 자제해왔던 이 전 위원장은 이날 저녁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가 주최한 간담회에 참석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그동안 벌어졌던 BIFF 사태에 대해 솔직한 심정을 거침없이 밝혔다. 이 전 위원장이 이번 BIFF 사태 이후 공개적인 발언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전 위원장과의 만남은 밤 늦은 술자리까지 꽤 길게 이어졌다.

최근 부산시와 BIFF 집행위원회는 김동호 명예집행위원장을 조직위원장에 추대하기로 합의하면서 올해 영화제를 열겠다고 약속했다. 일부에서는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다이빙벨> 상영으로 촉발됐던 갈등이 해결됐다며 축포를 터트렸다. 지난 9일 서병수 부산시장과 강수연 BIFF 집행위원장이 활짝 웃으며 손 맞잡던 날, 하지만 이용관은 그 자리에 없었다.

"정치적 탄압으로 시작해서 20개월이 됐습니다. 정치적 탄압이란 건 개인적인 의견이 아니라 영화계와 시민사회에서 말한 건데 그 부분은 다 증발했습니다. 저는 (이번 합의가) 거기에 면죄부를 준다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은 저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정치적 탄압 희석하면서까지 영화제 해야 하나"

 서병수 부산시장(오른쪽)과 강수연 부산국제영화제(BIFF) 집행위원장이 9일 오전 부산시청에서 올해 BIFF 개최 합의 내용을 발표하기 앞서 손을 맞잡고 있다.

서병수 부산시장(오른쪽)과 강수연 부산국제영화제(BIFF) 집행위원장이 9일 오전 부산시청에서 올해 BIFF 개최 합의 내용을 발표하기 앞서 손을 맞잡고 있다. ⓒ 정민규


이 전 위원장은 부산시와 BIFF가 맺은 영화제 개최 합의를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부산시와 BIFF는 영화계에서 지속적으로 요구했던 '독립성 확보'는 일단 올해 영화제를 치른 다음인 내년 총회를 통해 논의하자는데 합의한 바 있다. 김동호 명예집행위원장을 임시로 조직위원장에 앉히자는 것 외에는 별달리 정리된 것은 없다. (관련기사: 부산시-BIFF, 발등의 불만 끈 '미완의 합의')

이 전 위원장은 "정치적 탄압을 희석하면서까지 영화제를 해야 하나"라고 물으며 "영화계에 분열 양상이 벌어지면 어떻게 되겠나"라고 쓴소리를 냈다. 그는 이번 합의를 "미봉책만이 아닌 큰 불씨"라고 표현하며 "절대 영화제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며, 어떤 경우도 (영화제와는) 끝났다고 생각한다"고 강도 높게 말했다.

"(이번 사태가) 제가 의도했든 아니든 <다이빙벨>에서 비롯된 건 확실합니다. 그걸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럼 거기에 대한 답이 있어야 합니다. 김동호 위원장은 (영화제를) 하면서 어떻게든 또 해나가자는데 저는 그것이 너무 낭만적인 생각인 것 같습니다. 제가 20개월을 겪어보고 밑에서부터 겪었지만, 이게 그렇게 수월치 않은 거 같습니다."

"이렇게까지 독하게, 치졸하게 탄압하는 경우는 처음"

 2016 부산국제영화제(BIFF) 정기총회가 25일 오후 부산시청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서병수 부산시장(왼쪽)이 이용관 BIFF집행위원장이 발언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2016 부산국제영화제(BIFF) 정기총회가 지난 2월 25일 오후 부산시청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서병수 부산시장(왼쪽)이 이용관 BIFF집행위원장이 발언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 정민규


이 위원장은 "김대중 정부부터 4명의 대통령을 겪었지만 외압은 크게 작게 다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게 얼마나 표면화되느냐 정도의 차이였다"고 회고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본격적인 '표면화'가 됐던 건 이명박 정부부터였다. 이 전 위원장은 "MB 정권 초기에 이미 BIFF를 좌파 영화제라 낙인찍어서 다 내쫓으려는 시나리오가 치밀하게 전개됐다"고 말했다.

그는 (수많은 외압이 있었다는) 지난 20년과 최근 20개월을 구분 지어 설명했다. 그만큼 지난 20개월은 그에게 힘든 시간이었다. 이 전 위원장은 "나는 이걸 정치적 탄압이라 생각한다"면서 "정권 차원의 일이라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특히 서병수 시장을 향해서는 "이렇게까지 독하게, 치졸하게 개인감정까지 섞어서 탄압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고 억울한 심정을 숨기지 않았다. 이 전 위원장은 "전임 시장들이라고 왜 외압을 받지 않았겠느냐"라면서 "하지만 전임 시장들은 본인들이 그 외압을 막아주었다"고 말했다. 인사말 40초를 넘기지 말아달라는 BIFF 집행위의 요청에 기어이 20초를 더 말해 1분을 채우고 내려와선 "내가 20초만큼 술살게"라고 말했다는 문정수 전 시장의 이야기를 하면서는 "그때는 그때대로 낭만이 있었는데"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는 전임 시장과 서병수 시장이 분명 달랐다고 했다. 부산시는 시장까지 나선 <다이빙벨> 상영 저지가 먹히지 않자 BIFF에 대한 대대적 감사에 나섰다. 감사원까지 나서 감사를 벌였다. 감사원은 이 전 집행위원장을 고발하라고 요구했고, 부산시는 이를 따랐다. 검찰은 이 전 위원장을 업무상 횡령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물론 부산시는 이 모든 게 <다이빙벨> 상영과는 상관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때 <다이빙벨> 안 틀었다면 이민 갔어야 했을 것"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전 집행위원장이 12일 저녁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가 주최한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전 집행위원장이 12일 저녁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가 주최한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정민규


"저는 그런 걸 몇 번 겪어서 개인 신상털기를 조심해왔고, 이번에도 검찰에 가는 문제를 걱정하지 않았어요. 감사원 감사도 별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몇 번 점검했다고 생각하는데 의외의 것이 크게 나오면서 (BIFF가) 도덕적 해이 집단이 됐습니다."

검찰은 이 전 위원장이 사무국장과 공모해 협찬 업체와 허위 중개계약을 한 뒤 수수료 명목으로 2750만 원을 지급했다고 판단하고 이 전 위원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이에 대해 이 전 위원장은 "기소 내용을 받아들일 수 없고, 더군다나 공모를 했다는 부분은 인정할 수 없는 만큼 법정에서 시시비비를 가리겠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검찰, BIFF 전 위원장 기소... 영화계 "정치적 탄압" 반발)

마음 한편에서 그는 자신과 함께 법정에 서게 된 전·현직 BIFF 관계자들에게 미안함을 갖고 있었다. 이 전 위원장은 "나만 물러나면 된다는 소리가 들려올 때 그만뒀으면 다른 사람들은 괜찮았을 거란 생각 때문에 힘들었다"고 말했다.

혹시라도 상황을 돌려 2014년 영화 <다이빙벨>을 틀어야 하는 그 날로 돌아간다면? 그가 어떤 선택을 내릴지 궁금했다.

"<다이빙벨>을 안 틀었다면 전 이민을 갔어야 했을 겁니다. 다시 <다이빙벨>을 틀라고 하면 저는 틉니다. 그건 제가 트는 게 아니라 프로그래머가 트는 것이고, 프로그래머에게 틀지 말라고 하면 검열이 됩니다. 외부보다 심한 게 내부검열이고, 내부보다 심한 게 자기검열이거든요. 저는 이민 안 가고, 자식들이 손가락질 받지 않는 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


이용관 BI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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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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