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연예인들의 그런 이야기는 잘 알려지지 않습니다. 주로 우리는 간접적으로, 대중매체를 통해 그들을 만납니다. 그러기에 오해도 많고 가끔은 그들도 나와 같은 사람임을 잊기 쉽습니다. 동시대 예인들이 직접 쓰는 자신의 이야기, '오마이 스토리'를 선보입니다. [편집자말]
 MBC 드라마 <여왕의 교실>에 출연한 최윤영(좌)의 모습.

MBC 드라마 <여왕의 교실> 출연 당시 최윤영 ⓒ MBC


꿈이라기엔 막연해 보였던, 그저 한때 스쳐 지나가는 건 줄 알았던 게 인생의 전부가 되는 일이 있습니다. 사람들 앞에 끊임없이 자신을 세워야 하는 배우라는 직업은 겉보기엔 화려하지만 누군가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방황하는 지망생과 현실을 살아가는 직업인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부끄럽지만 제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꿈과 의리를 지켜내며 한 걸음씩 나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응원합니다. <배우 최윤영 드림>

"라이샌더! 날 좀 구해 주세요. 내 가슴에 이렇게 기어오르는 독사를 떼어 버려주세요!" (연극 <한 여름 밤의 꿈> 중)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집에서 나름 연습을 하긴 했지만 '입시 시험장'에서 대사를 하는 건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연기를 했다기 보단 그냥 또박또박 '읽었다'. 그래, 내 기억엔 그 표현이 정확했던 것 같다.

시험이 끝난 후 엄마에게 전화하는데 괜히 눈물이 났다. 나보다 잘난 애들이 많은 것 같다는 얘긴 자존심이 상해 차마 하지 못하고 그냥 공부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한 예술 고등학교 입시 시험장에서 생긴 일이었다.

그래도 어디서 꿀리지 않았는데....

 '고등학생' 최윤영(가운데)과 친구들

'고등학생' 최윤영(가운데)과 친구들 ⓒ 최윤영


초등학교 시절 연예인의 꿈을 꾸던 같은 반 세 아이 중 은혁과 준수는 모 소속사에서 연습생 생활을 시작했다. 꿈을 잊지 않은 채 중학교 시절을 보낸 나는 덜컥 안양예고에 원서를 냈고, 시험장에서 완전히 주눅이 들어서 돌아왔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소위 날고 긴다는 아이들...일산의 작은 동네에선 나...그래도 어디서 꿀리지 않는다 생각했는데, 정말이지 그 시간 그 장소에 우리나라의 예쁘고 잘생긴 아이들은 다 모인 것 같았다.

시험까지 엉망으로 치렀다고 생각한 나는 예고 진학을 완전히 포기하고 우울한 시간들을 보냈다. 일산에서 안양까지 다소 먼 통학거리 등을 생각하며 차라리 잘 된 거라며 위로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며칠 후 합격전화가 왔다. 나의 어떤 모습을 보고 합격을 결정했는지는 아직까지도 미스터리지만 나는 그렇게 예고에 진학했고, 내 꿈은 아주 작은 날개를 하나 달 수 있었다.

무서운 선배들, 눈물의 등굣길

 배우 최윤영의 고등학교 재학시절

배우 최윤영의 고등학교 재학시절 ⓒ 최윤영


큰 기대와 설렘 속에 시작한 예고 생활. 하지만 현실은 생각과 많이 달랐다. 날 가장 힘들게 했던 건 일산에서 안양을 가기 위해 매일 새벽 6시에 일어나야 했던 피곤함도, 수면 부족도 아닌 바로 무서운 선배들이었다.

입학식 당일부터 리본 달린 구두를 신었다고 머리를 쥐어 박혔다. 당시 1학년은 머리를 양 갈래로 땋는 전통이 있었는데, 선배들에게 잘 보이려고 머리끝까지 꼭꼭 땋았다가 파마했냐며 혼나기도 했다. 하다 못해 입술이 터서 립밤을 발랐다고 혼을 냈던 선배님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규율이 사회생활에 많이 도움이 되었다 생각도하지만, 당시 나는 절망 그 자체였다.

일산에서 동네 친구들과 어울리며 편한 생활을 하던 난 그런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그 후로 한 동안 선배들과 마주칠 수 있는 화장실은 피해 다녔고, 급식실, 매점 등은 일체 가지 않았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억압이었고 무엇보다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1학년 등굣길은 거의 울면서 다녔던 것 같다.

그럼에도 이를 악물게 해준 건 연기수업이었다. 매년 공연도 올렸었는데 연습과정이 너무 즐거웠고, 커튼콜을 하며 관객에게 박수를 받을 때 '아, 이게 진짜 내 길이구나'라는 구체적 확신이 생겼다. 꿈이 커지자 학교생활에도 차차 적응이 되었고 선배들을 요리조리 피하는 요령도 생겼다. 한때 날 주눅 들게 했던 끼와 열정을 가진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난 조금씩 나만의 개성을 찾을 수 있었고, 그건 대학교 생활도 마찬가지였다.

대학교 2학년 마치고 휴학, 무작정 극단 입성

 스무살 무렵 연극 무대에서 공연하는 최윤영(왼쪽에서 두 번째)

스무살 무렵 연극 무대에서 공연하는 최윤영(왼쪽에서 두 번째) ⓒ 최윤영


연극영화과로 진학했는데 대학교 역시 고등학교 생활과 다를 바 없었다. 처음엔 그 군기에 무섭기도 했지만 경험(?)이 있기에 남들보다 빠르게 적응했다. 유명한 교수님의 수업도 듣고, 로망이었던 C.C(캠퍼스 커플)도 해보고, 교내공연도 열심히 참여했다. 대학을 다니며 할 수 있는 건 몽땅 다 해보고 나니 더 큰물에서 현장경험을 하며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내 실력을 검증 받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형기획사에 들어가거나 오디션을 보는 등 연예계로 데뷔할 수 있는 빠른 길은 있었지만 대체 무슨 고집이었을까...왠지 그렇게 하기는 싫었다. 여태껏 차근차근 계단을 밟듯 꿈을 위해 준비했으니 남들과는 다른 길을 가고 싶었다. '연기자다운' 내공을 더 쌓고 싶었다.

그런 무식한(?) 이유로 나는 2학년이 끝나자마자 휴학을 했고, 대학로에 있는 한 극단에 무작정 들어가게 된다.

* 최윤영의 '나의 꿈 나의 의리' 3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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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최윤영은 2008년 KBS 21기 공채 탤런트 출신으로 드라마와 영화를 넘나들며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하고 있다. KBS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 <내 딸 서영이> <고양이는 있다> 등을 통해 주목받기 시작했고, 영화 <코리아> <무서운 이야기> <그댄 나의 뱀파이어> 등에 출연하며 활동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최윤영 내 딸 서영이 김준수 은혁 안양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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