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대하드라마 <정도전>의 이재훈 PD가 5일 오후 서울 여의도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정민
- 결국 '50부작' 이라는 현실적 한계가 있었다는 이야기 같다.정: "횟수를 두고 투정하는 건 작가로서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결국 내가 동의한 거니까 그렇게 정해진 거 아닌가. '이야기가 급해지지 않았냐'는 지적엔 아니라곤 말 못한다. 그런 측면도 있을 거다. 하지만 그것도 결국은 작가 책임인 거다. 업적을 다루는 것과 관련해선 모든 사람들이 만족할 순 없겠지만 작가로서의 고충이 있었다.
사실 <정도전> 대본을 썼지만 마치 미니시리즈 네 개를 쓴 기분이었다. 정몽주가 죽을 때 '감정과잉'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까지 극으로 치달았는데…. 그땐 드라마가 진짜 끝난 기분이었다. 시청자도 단순 재미를 원하는 건지, 정통 사극으로서의 재미를 원하는 건지를 정해 줬으면 좋겠다. 정말 재미만을 원한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정통 사극이라면 역사의 원형질을 훼손하면 안 된다. 그런 고충이 있다. 그런 점에서 '폐가입진'(고려 말 정몽주가 우왕을 폐위하고 공양왕을 옹립한 사건- 기자 주)을 앞두고 있었을 때가 가장 두려웠다."
강: "초반부터 그 부분은 상당히 문제가 될 게 많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가보자' 해서 갔다. 내심 기대도 했다. '정현민 작가는 이걸 어떻게 풀까?' 했는데 대본이 나오는 순간 '이거다' 싶었다. (웃음)"
정: "이틀간 그것만 고민했다. 정말 창문을 열고 뛰어내리고 싶을 정도였다. 벽에 부딪혔다 싶었다. '눈 딱 감고 정몽주 캐릭터를 깨버릴까'라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그러면 드라마가 어떻게 되겠나. 그래서 끝까지 고민하고 있는데, 보조 작가가 자료를 하나 주더라. 그걸 보다가 '성씨'라는 두 글자가 눈에 딱 떠올랐다. 그 순간 수가 떠올랐다. 그리고 대본이 휘리릭 써졌다. '누군가가 돕고 있구나' 싶었다. (웃음)"
강: "대본 독촉을 안 하는 편이었다. 시간을 주면 줄수록 (대본이) 잘 나와서. 그런데도 그 땐 '이건 답 없다, 그냥 평이하게 가자'는 독촉도 했다. 사실 (대본을) 기다리다 보면 촬영 일정에 문제가 생기니까 전화를 해서는 한숨을 쉬었다. '어떻게 돼가?'라고 물으면 '안 나온다'고. 그럼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오는 거다."
정: "그러면 나는 한숨 쉬지 말라고 했다. 그게 화내는 것보다 더 사람을 미안하게 만들더라. (웃음) 이야기가 거창해졌는데, 조선 건국 이후 내용에 대한 비판에는 공감하는 부분도 없지 않아 있다. 때론 '들켰다' 생각하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꼭 기회가 있으면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내가 정말 41, 42회 때 크게 삐진 적이 있다. 대학교에서 사학을 전공한 친한 형이 술 먹고 재방송을 보다가 새벽 2시에 문자로 '너마저 궁중 암투로 풀어 가냐, 실망이다'라고 한 거다. 그때 폭발해서 '형까지 이렇게 보면 어떻게 하냐, 1392년 7월에 조선이 건국돼서 8월에 바로 나온 이야기가 세자 책봉 아니었냐'고 했더니 '그런가?' 하더라. (웃음)"
강: "배우들도 '정몽주가 죽고 나서 이야깃거리가 없으니 (역사적으로) 뒤에 있는 걸 당겨 오는 건가, 왜 이렇게 빨리 세자 책봉을 하지?'라는 얘길 했다."
정: "그 부분이 작가로서 실수다. 이방원 캐릭터를 빨리 키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넙죽 세자 책봉 이야기를 물었던 거지. 왜 그렇게 41, 42회 때 비난을 받았을까 생각했는데, 아마 시청자는 '조선이 건국됐으니 이제 정도전이 활약하겠구나' 싶었을 거다. 그런데 실록엔 그때 정도전이 한 일이 없다. 그걸 보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거다.
설령 실제로 그랬어도 정도전에게 무언가 역할을 줘야 했다. 역할까진 아니더라도 캐릭터의 맛은 보여줬어야 했던 거다. 그런데 이방원이 '포스트 정몽주'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 이야기를 진행해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게 있어서 한 두 회 정도는 이방원과 강씨(이일화 분)가 붙으면 시청자도 재밌어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강: "그것(궁중 암투)도 드라마 PD로서 안 좋을 게 없다. 그래서 내가 조장한 것도 없지 않다. (웃음) 그런데 그게 40회까지의 성격과 너무 달랐기 때문에, (시청자가) 적응 못한 게 있었을 거다. 그렇다고 안하고 넘어갈 이야기는 아니었다."
==='정도전'의 세 남자, 강병택 PD-정현민 작가-이재훈 PD를 만나다=== ①-"겉돌았던 정도전이 우리 드라마 주인공인 이유?" ②-"낙마사고 당한 선동혁, 전투신 표정 가장 좋았다" ③-'정도전' 속 화제의 명장면, 어떻게 만들었나 알고 보니 ④-"매회 1회 같았던 '정도전', 이제는 넘어야 할 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