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취재/이미나 기자·사진/이정민 기자| KBS 1TV <정도전>이 사랑받았던 데에는 배우들의 열연도 한 몫을 했다. 정도전 역의 조재현을 비롯해 이성계 역의 유동근, 정몽주 역의 임호, 이인임 역의 박영규, 최영 역의 서인석 모두 이번 <정도전>을 통해 또 다시 주목받는 배우로 떠올랐다. 강병택 PD가 "5년 후면 대하사극 주인공이 될 것"이라 극찬한 이방원 역의 안재모부터 비극적인 운명에 희생된 우왕 역의 박진우까지, 젊은 연기자들의 약진도 눈에 띈다. <오마이스타>와 만난 <정도전> 제작진은 이 배우들의 활약에도 고마움을 표했다.

"굳이 지문 넣지 않은 이유? 배우들과 감독이 더 잘 알 테니까"

 KBS대하드라마 <정도전>의 이재훈 PD와 강병택 PD, 정현민 작가가 5일 오후 서울 여의도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KBS대하드라마 <정도전>의 이재훈 PD와 강병택 PD, 정현민 작가가 5일 오후 서울 여의도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 현장에서 배우들의 애드리브가 많았다고 들었다. 대본에 지문까지 꼼꼼하게 넣는 작가가 있는 반면, 정현민 작가는 지문이 거의 없었다고.

정현민 작가(이하 '정'): "내가 아는 형용사가 많지 않아서 그렇다. (웃음) 그리고 내가 써주는 것보다 현장에서 연출자나 배우들이 더 잘 하더라. 그래서 '꼭 이거다' 싶은 게 아니면 안 넣었다."

강병택 PD(이하 '강'): "작가마다 스타일이 다르다. 지문까지 꼼꼼히 넣는 분들이 있고, '대본만 이해하면 (지문을) 굳이 쓰지 않아도 그렇게 갈 거다'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 정 작가 스타일은 약간 후자였다. 뭔가 여백이 있었다. 그런 걸 (연출자나 배우가) 채워준다고 믿고 가는 거였고."

정: "대본 리딩할 때 보니까…강 PD가 배우들에게 설명하는 게 나보다 더 정확하더라. 그럼 (대본에) 굳이 표현 안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점점 (지문을) 줄였고, 써 놓고도 내가 잘 모르겠는 감정도 있어서 '알아서 하시라'고 한 부분도 있었다."

강: "여기 있는 이재훈 PD도 알겠지만, 배우들과 이야기하면서 합의를 찾아간 부분이 있다."

정: "예를 들어 이방원이 정도전에게 무릎을 꿇는 신. 나는 대충 썼는데 (강 PD로부터) 전화가 와선 '이 감정이 어떻겠냐'고 묻더라. 그게 맞는 것 같아 '현장에서 상의해 (촬영)하시라' 했다."

강: "결국 배우들이 자신의 인물에 대해선 우리보다 더 잘 알다. 이미 다 (준비해서) 갖고 온다. 그래서 맡긴 거다. 특히 안재모는 워낙 머리가 뛰어나서 자기 연기 톤을 다 잡고 왔다."

- 특히 유동근의 애드리브가 다양했다던데.

 KBS 1TV <정도전>의 스틸컷

KBS 1TV <정도전>의 스틸컷 ⓒ KBS


정: "내가 유동근에게 완전히 꽂힌 적이 있다. 사실 7회 강씨(이일화 분)와 이야기하는 장면이 작가 입장에서는 고민이었다. 유동근이라는 대배우가 출연하는데, 이야기 전개상 그때 이성계는 이야기 안에 안 들어온 인물이었으니 말이다.

강: "그것도 원래는 10회부터 나오는 거였다."

정: "또 방송 시간이 50분이다 보니 더더욱 4회 첫 등장부터 황산대첩 전까진 이성계가 나오는 장면을 쓰는 게 어려웠다. 한 신 아니면 두 신밖에 안 나오는데, 힘을 줘야 하니까. 그런데 부곡마을 이야기에 신진사대부 이야기를 하느라 이성계가 오롯이 따로 놀고 있는 상황이었던  7회엔 정말 나올 게 없었다. 결국 '징발'에 대한 '썰'을 풀자는 생각에 정말 공들여 대사를 썼다. 나는 나직하게, 독백 식으로 써 뒀는데 강 PD에게 전화가 와서는 '세게 갈 거다'라더라. '알겠다'고 하고 나중에 보는데…전율이 일었다."

강: "(유동근이) 조명도 안 켜진 세트 안에 혼자 먼저 들어가 있더라. 한 번에 촬영했다. 두 번 이상 가면 그런 연기가 안 나올 것 같았다. (유동근) 앞에 앉아 있던 이일화가 자기가 클로즈업되는 컷도 아닌데 울더라. 그 정도였다. (방송 화면과) 반대로 이일화 쪽에서도 촬영했어야 하는데 결국 못 찍었다."

정: "작가로선 주가 되는 이야기 안에 들어온 사람을 쓰는 게 쉽다. 위화도 회군 땐 반대로 정도전을 쓰는 게 어려웠고. 정몽주 같은 경우도 30~40회를 규정지어야 하는 사람인데 초반에 존재감이 없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어려웠다. 어떤 땐 사신으로 가서 한 신밖에 안 나오는데도 힘을 줄 땐 주고…. 그런 부분이 임호에게도 고마웠다. 이색(박지일 분)도 그랬다. '내공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려다 보니 이인임에게 한 마디 충고하는 장면에서도 존재감이 느껴지는 말을 해야 했다. 그 말을 찾는 게 진짜 어려웠다. (웃음)" 

"세 번 낙마한 선동혁, 오히려 '액땜했다'고 PD 위로"

 KBS 1TV <정도전>의 스틸컷

KBS 1TV <정도전>의 스틸컷 ⓒ KBS


- 그 정도로 '배우 유동근'의 존재감이라는 게 어마어마하다는 이야기 같다. 이재훈 PD와 유동근과의 첫 촬영은 어땠나.

이재훈 PD(이하 '이'): "나는 <정도전>이 연출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첫 프로그램이다. 앞서 유동근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서 위압감이 있었다. 처음으로 촬영한 게 최영 장군이 사대부를 유배 보내고 있는데 이성계가 말을 타고 지나가는 장면이었다. 원랜 대사가 없는 건데, 갑자기 '최영에게 한 마디를 해야겠다'고 하는 거다. (웃음)

아무래도 나는 처음 찍는 거니까 콘티도 꼼꼼하게 준비해 갔는데, 처음부터 돌발 행동을 하니 거기부터 콘티가 꼬였다. '중요한 신인데 내가 찍는 걸 두고 뭐라고 하진 않을까' 하는 걱정도 했다. 결과적으로 정신이 없었지만, 또 요구하는 대로 잘 따라 주더라. 나중에 듣기론 내가 '딱해 보여서' 아무 말도 안 했다고 한다. (웃음)"

강: "원래 이재훈 PD에게 야외 촬영분을 맡기면서 '유동근이 나오는 건 내가 찍겠다'고 했는데, 처음 촬영한 걸 보니 잘 나왔더라. 그래서 결국 다 맡겨 버렸다. (웃음) 유동근은 다른 배우들과 많이 다르다. 사고방식도 독특하고. 우리와 가끔 의견 충돌이 많았던 게 제작진은 전체적인 걸 보는데 배우들은, 특히 유동근은 어떤 신이든 자기가 나오는 장면은 최고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 그래서 매 신 그냥 지나가는 법이 없다. 뭘 넣으려고 하고, 보여주려고 한다. 그래야 드라마가 산다는 거다. (웃음)

가끔은 '무리한 거 아닌가' 싶기도 했는데 편집하고 음악까지 넣어보니 그렇게 해서 (장면이) 좋아진 경우도 많았다. 현장에선 힘들지만. (웃음) 그런 부분에서 '고수는 고수다'라고 생각했다. 주인공을 해온 배우다 보니 '어떻게 해야 시청자가 엮이는가'에 대한 감도 있고, 계산도 해 온다. 또 단순히 계산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그만큼 노력하고 준비를 해 온다. '연기자가 100%를 준비해 오더라도 막상 현장에 오면 50%밖에는 표현을 못하니, 100%를 표현하기 위해선 배우가 200%를 준비해 올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배우다. 그래서 정말 매회 200%를 준비해 왔다."

이: "다른 연기자보다 (유동근을) 믿고 갔던 부분이 있다. 확실히 방송을 보면 더 잘 나온 것 같은 기분이 들고…. (웃음)"

강: "정도전이 서신으로 우물 정(井)자 수수께끼를 낸 장면이 있다. 어떻게 보면 그 장면은 우리에겐 의미가 큰 장면이었다. 그래서 충실하게 그 내용을 전달해 주는 느낌으로 연출하길 원했다. 그런데 현장에서 (이재훈 PD로부터) '너무 나간 것 같다'고 전화가 온 거다. (웃음) 코믹한 느낌이 없었는데, (유동근이) 이지란(선동혁 분)과 코믹하게 맞춰 왔다고. '이러면 코믹함이 앞서고 정전제를 설명하는 내용은 죽지 않을까' 싶어 되게 걱정했다. 그런데 방송을 보니까 내용만 전달했으면 딱딱했을 텐데 코믹함이 있어 (장면이) 다 산 느낌이었다."

- 이지란 이야기가 나왔으니 이지란 역 선동혁의 '낙마 사고'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연출자로선 굉장히 아찔한 순간이었겠다 싶었다.

 KBS 1TV <정도전>서 이지란 역을 맡은 배우 선동혁

KBS 1TV <정도전>서 이지란 역을 맡은 배우 선동혁 ⓒ KBS


강: "그때가 (일정이) 사실 급했다. 빨리 황산대첩을 찍어야 해서 두 팀으로 나눠 몰아 찍는 중이었다. 그런데 무전이 온 거다. '(선동혁이) 쓰러졌다'고. 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정도전>을 하면서 가장 많이 말했던 게 '드라마가 안 되도 된다, 재미없어도 된다, 대신 무리하지 말고 사고 없이 촬영하자'였다.

(이후 강병택 PD는 <오마이스타>에 "낙마 사고는 왜구 침입으로 사망한 황연의 시체를 부둥켜 안고 울부짖는 정도전을 바라보던 이성계 일행이 말을 몰아 왜구를 쫓는 장면에서 일어났는데 그 다음 주부터 황산대첩 촬영에 전력투구해야 하는 일정상 빨리 그 전 상황을 마무리해야 하는 급한 일정이었다"며 "컷 소리와 함께 멀어지는 말무리를 뒤로 하고 다음 장면을 찍으러 이동하는 순간 '이지란이 낙마했다'는 무전을 받았다"고 밝혀 왔다-기자 주)

생각해 보니 내려가는 길이 좁은 데다, 돌탑까지 있었다. 순간 '돌탑에 부딪힌 것 아냐?'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였다. 그런데 (사고 당시를) 기억하지 못하더라. 그때부터 나도 '멘붕'이 왔다. 일단 병원을 보내 놓고, 다음 장면 촬영 준비를 하면서…'당장 저 몸으로 다음 주 황산대첩 장면을 촬영할 수 있을까' '이지란이 없으면 또 드라마가 안 되는데 계속 진행해야 하나' '방송을 미루든 잠시 접든 해야겠다' 등 별의별 생각을 다 했다.

촬영을 대충 마치고 병원에 가 봤더니 그때까지 (사고를) 기억하지 못하더라. 그런데도 계속 선동혁은 '촬영하러 가야 한다'고 했다. 일단 집으로 보낸 뒤 몸 상태를 매일 확인했다. 그리고 그 다음 주에 녹화하러 온 걸 보니 완전히 촬영을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말만 안태우면 되겠다'는 생각에 상반신 위주로 촬영하고, 대역도 쓰기로 했다. 이재훈 PD에게도 '말은 태우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촬영하는데 느낌이 이상한 거다. 전화를 해 봤더니 조연출이 '병원에 있다'고 하더라. (선동혁이) '이성계 옆엔 이지란이 있어야 한다'며 다시 말을 탔던 거다."

이: "최대한 (말에) 안태우려고 했는데 어쩔 수가 없었다. 본인도 현장에서 많이 걱정했다. '몸이 멀쩡했으면 액션도 더 잘했을 텐데'라고 말하기도 하고. 그래도 좋은 게 있었다면…황산대첩 방송분을 보면 밤새 싸우고 그 다음날 낮까지 싸운다. 실제론 (역사 속에서) 얼마나 힘들었겠나. 그런데 (부상 때문에) 선동혁의 얼굴이 그렇게 지쳐 보인다. 사실 그쯤 되면 고통을 참아 가면서 칼을 휘두른 거였으니까. 다 찍고 '형 표정이 가장 좋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정말 그렇냐'며 좋아하더라. (웃음)

강: "황산대첩 촬영이 끝나고 선동혁이 날 안심시키려고 '액땜한 거다, 내가 다 안고 갔으니 다시는 사고 안 날거다'라고 하더라. 그런데 실제로 그 뒤로 사고가 한 번도 안 났다. 한 번은 농담 삼아 인터넷에서 '이지란이 귀엽다'고 한 이야기를 갖고 (선동혁을) 놀렸다. '나이 60에 귀엽다는 말 들어 봤냐'면서. (웃음) 그 다음부터 기분 좋아하더라. 사실 이런 반응이 오는 드라마를 안 해본 배우들이었으니, (인터넷 반응에) 더 반응이 있는 거다. 이런 것도 참 기분이 좋았다."

==='정도전'의 세 남자, 강병택 PD-정현민 작가-이재훈 PD를 만나다===
①-"겉돌았던 정도전이 우리 드라마 주인공인 이유?"
②-"낙마사고 당한 선동혁, 전투신 표정 가장 좋았다"
③-'정도전' 속 화제의 명장면, 어떻게 만들었나 알고 보니
④-"매회 1회 같았던 '정도전', 이제는 넘어야 할 산"


정도전 유동근 선동혁 임호 조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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