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대하드라마 <정도전>에서 정도전 역의 배우 조재현이 1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KBS 대하드라마 <정도전>에서 정도전 역의 배우 조재현이 1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오마이스타 ■취재/이미나 기자·사진/이정민 기자| 그간의 사극은 '영웅'의 이야기를 다루는 데 치우쳐져 있었다. 그 영웅은 특별한 능력으로 고난을 이겨내고 화려한 업적을 세우거나, 끝내 비극적 운명 앞에 스러져 갔다. 이러한 가운데 KBS 1TV 대하드라마 <정도전>의 등장은 새로웠다. 정도전은 왕을 꿈꾼 사람도 아니었고, 업적을 남기려 한 사람도 아니었다. 대신 그는 새로운 세상을 그의 품에서 만들어 내려 했던 사상가였다.

이 사상가의 흥망성쇠는 몇 백 년의 시간을 뛰어 넘어 지금의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준다. 50대 이상 남성의 전유물로나 느껴졌던 대하드라마가 그토록 뜨거운 지지를 받은 것도 이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 울림은 <정도전>을 만든 사람들에게도 공통적이었다. 조재현은 <정도전> 마지막 회를 언급하며 "지금 이 시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고 했다. 이는 마지막 회 엔딩 스크롤과 함께 등장한 정도전의 연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저것이 조선의 하늘이다. 저 하늘을 열어젖힌 것은 백만 대군의 창검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꿈이었다.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이 가능하다는 희망이었다. 자랑스러운 삼한의 백성들이여, 이제 다시 꿈을 꾸자. 저 드넓고 푸른 하늘 아래, 이 아름다운 강토 위에 민본의 이상을 실현하고 백성 모두가 군자가 되어 사는 대동의 세상을 만들자. 나 정도전! 그대들에게 명하노라. 두려움을 떨쳐라. 냉소와 절망, 나태와 무기력함을 혁파하고 저마다 가슴에 불가능한 꿈을 품어라. 그것이 바로 그대들의 대업, 진정한 대업이다." (<정도전> 50회 중)

"마지막 촬영장에 온 '정몽주' 임호, 보는 순간 설레더라"

- <정도전>에서 빼놓을 수 없었던 건 정도전과 정몽주가 만들어 낸 '케미스트리'였다.
"묘한 경험을 한 게, 남자끼리도 감정이 생긴다. 보고 싶고 그렇다. (웃음) 마지막 회 정도전이 죽을 때 정몽주가 나타나지 않나. 설레더라. 정도전이 여자 이상으로 사랑했던 사람이, 보고 싶은 사람이 나타난 거니까…. 실제 촬영장에서 정몽주 역의 임호가 오랜만에 왔는데 저편에 왔다갔다만 하고 내 쪽으로 안 오는 거다. 정도전이 죽는 장면이었으니 감정을 잡으라고 배려한 것이었겠지만, 나는 '쟤가 왔어!'라며 설렜다. (웃음)

보통 풀샷(인물을 멀찍이서 잡아 장면 전체를 담는 화면-기자 주)을 찍을 땐 실제로 안 운다. 클로즈업(인물의 얼굴을 가까이서 촬영하는 화면-기자 주)을 찍을 때만 울지. 아역배우들이야 계속 울 수 있지만, 내 나이 정도 되면 눈물도 잘 안 난다. 눈물을 흘려도 잘 보이지 않기도 하고. (웃음) 그런데 이 날은 풀샷을 찍으면서도 눈물이 계속 났다. 대사도 짧았는데 아직도 기억난다. '나는 정말 최선을 다했네'라고 하는데, 그때 내 기분은 정도전 더하기 조재현이었다."

- 마지막 장면이라 생각해서 감회가 남달랐던 건가.
"사실, 정말 많이 참았다. 초반엔 '미스 캐스팅'이라 하지, '발성 안 좋다' 하지…. (웃음) 근근이 참아온 거다. 그래서 '최선을 다했다'는 건 정도전의 대사이기 이전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정말…가슴 아픈 대사다. (웃음)"


 KBS대하드라마 <정도전>에서 정도전 역의 배우 조재현이 1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최선을 다했다'는 건 정도전의 대사이기 이전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정말…가슴 아픈 대사다. (웃음)" ⓒ 이정민


- 초반 많은 사람들이 과거 <용의 눈물> 속 정도전과 지금의 <정도전>을 비교해서 그랬던 것도 같다.
"신기한 게, <용의 눈물>에서 정도전을 연기했던 김흥기 선배님과 마지막 무대를 같이 했다. 연극 <에쿠우스>였는데…. 그때 김흥기 선배님이 지금의 내 나이 또래였다. <용의 눈물>에선 할아버지처럼 나왔지만. (웃음) 생각해 보면 김흥기 선배님이 연기한 <용의 눈물> 속 정도전은 깊이 있고 고급스러운 표현을 하는 인물이었다. 또 드라마의 호흡이 굉장히 길다 보니 디테일함도 있었고.

하지만 우리는 50부작이다 보니 <용의 눈물>만큼 디테일하게, 깊이를 갖고 접근할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김흥기 선배님의 정도전과 같은 깊이는 없었지만, 내가 연기한 정도전의 매력을 찾는다면 정도전도 참 나약한 인간이고 외로웠다는 걸 표현한 거다. 자신의 대업을 위해 모든 것에도 굴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면서도 힘들고 외로웠다는 것을 보여준 것…. 그래서 <용의 눈물>의 정도전과 <정도전>의 정도전은 아예 다른 차원인 것 같다. 음식으로 치면 식당 자체가 다른 거다. 메뉴만 정도전으로 같을 뿐이지."

- <정도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다음에 사극 출연 제안이 오면 또 할 생각이 있나.
"전엔 사극 출연 제안을 받으면 무조건 안 한다고 했다. 첫 번째로 너무 힘들어서다. 한복이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다. 수염을 붙이는 것도 힘들고…. 하지만 이제는 할 것 같다. 다음 목표는 초반 '미스 캐스팅' 논란이 안 나게 하는 거다. (웃음)"

"지금 이 시대 '정도전'? 아직까진 없다"

 KBS대하드라마 <정도전>에서 정도전 역의 배우 조재현이 1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도전>을 계기로 건강하고, 시청률만을 쫓는 드라마가 아니면서, 또 너무 교육적이지도 않으면서도 유익한 드라마가 많이 생길 거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 <정도전> 후속인 <징비록>도 이런 분위기로 만든다면 좋지 않을까." ⓒ 이정민


- 유독 <정도전>은 젊은 시청자들로부터의 반응이 좋았다.
"얼마 전에 포털 사이트의 연령별 검색어를 보고 깜짝 놀랐다. 20대 싱글녀들의 관심 검색어 2등, 대학생 관심 검색어 1등이 <정도전>이더라. (웃음) 진짜 기분 좋았다. 이 시청층과는 관계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걸 보면서 드라마가 젊은 층에게 많이 다가갔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정도전>을 계기로 건강하고, 시청률만을 쫓는 드라마가 아니면서, 또 너무 교육적이지도 않으면서도 유익한 드라마가 많이 생길 거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 <정도전> 후속인 <징비록>도 이런 분위기로 만든다면 좋지 않을까."

- 젊은 층에게 인기가 많다 보니 별명도 생겼다. 특히 '정도전'은 '챌린지 정'('도전'이 영어로 '챌린지'(Challenge)인 데서 유래한 말-기자 주)이라고도 부르더라.
"인터넷 커뮤니티 같은 델 안 들어가는 척 했지만 다 들어가 봤다. 사실 배우는 몰라도 제작진이 그걸 보는 건 함정이라 생각했다. 그들(네티즌)이 참 잘 본다. 좋은 분석력도 갖고 있다. 그런데 나는 드라마를 끌고 가는 제작진은 그들의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눈높이에 맞추기보다는, 그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그들이 새로운 눈을 뜨게 해 줘야 하니까. 열광하는 걸 보면서도 '그래, 가만히 있어봐'하고 또 다른 부분에서 열광하게 해 줘야 하고. (웃음) 그래서 그들에게 고맙지만 가까이 가진 못했다."

- 젊은 층이 열광한 이유에는 드라마 속 정도전의 이야기가 현실에도 맞아떨어진 데 있었던 것 같다.
"(고개를 끄덕이며) 지금 이 시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특히 맨 마지막 대사, 에필로그에서 '두려움을 떨쳐라, 각자 가슴에 불가능한 꿈 하나씩을 품어라, 그것이 너희들의 진정한 대업이다'라고 말하는 부분은 정도전이 지금 이 시대에 부활했다면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상실감도 크고, 자부심보다는 초라함을 느끼고 있는 지금의 우리들에게 정도전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지금 이 시대에 정도전 같은 사람이 있나.
"지금까진 없었다. 앞으로 나와 주길 바라는 거지."

====KBS 대하사극 <정도전>의 조재현 인터뷰====

①-"분량 적었지만, '정도전'을 운영한 사람은 나였다"
②-"정도전이 부활했다면? '꿈을 품으라'지 않았을까"
③-"내가 뭘 보고 '수구꼴통', MB-김문수 '따까리'인가"

정도전 조재현 임호 김흥기 용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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