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필름 김태우 대표가 5일 오후 서울 충무로에 위치한 신영필름 사무실에서 영화와 관련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한 뒤 전시되어 있는 추억의 촬영장비를 배경삼아 미소짓고 있다.

김태우 대표가 5일 오후 서울 충무로에 위치한 신영필름 사무실에서 영화와 관련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한 뒤 전시되어 있는 추억의 촬영장비를 배경삼아 미소짓고 있다. ⓒ 이정민


편안하게 극장 의자에 앉아서 관객들은 영화를 보지만 영화가 스크린에 걸리기 이전까지의 과정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치열하다. 완성도 높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 충무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총출동해 수 개월 동안 치열한 협업을 통해서 한 편의 영화가 만들어진다. 

이 한 편의 영화가 나오는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으니 바로 배우들을 찍는 촬영 카메라. 과거 필름 카메라 시절에서부터 이제 디지털로 모든 카메라가 대체될 때까지 충무로 카메라 역사와 그 세월을 같이 한 이가 있다. 바로 신영필름 김태우 사장이다.

김태우 사장의 영화의 꿈은 독일에서부터 시작됐다. 한국이 격동기였던 1964년,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던 그는 파독광부로 지원해 독일에서 광부로 3년 동안 탄광에서 석탄을 채집했다. 

3년 동안 그가 독일에서 광부 일을 하면서 벌었던 돈은 2만 3000마르크. 당시에 독일에서는 집 한 채 정도를 살 수 있는 가격이었다고.

"어느 날 TV에서 '쇠는 살아 숨쉰다'라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었어요. 그때 내 인생은 영화라고 다짐했습니다. '시청각 영화를 만드는 기술자가 되야겠다'고 다짐을 했어요. 근데 3년 동안 광부일을 마치고 조사를 해 보니, 영화를 만드는 카메라가 전세계에서도 독일의 아리프렉스가 최고더라고요. 1930년대 히틀러가 대단한 과학자들을 불러 놓고 카메라를 만든 것이죠. 그게 영화 카메라의 시작이 됐고요."

 신영필름 김태우 대표가 5일 오후 서울 충무로에 위치한 신영필름 사무실에서 영화와 관련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 뒤 독일에서 가져왔던 옛 카메라를 보여주며 촬영하는 모습을 재연하고 있다.

신영필름 김태우 대표가 5일 오후 서울 충무로에 위치한 신영필름 사무실에서 영화와 관련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 뒤 독일에서 가져왔던 옛 카메라를 보여주며 촬영하는 모습을 재연하고 있다. ⓒ 이정민



김태우 사장은 아리프렉스(Arriflex) 카메라를 사기 위해 뮌헨으로 갔다. 통장에 있는 돈 2만 3000마르크를 가지고. 독일어로 의사소통을 하며 아리플렉스 카메라를 사고, 카메라를 사용하는 교육을 받고, 그는 68년 4월 12일에 귀국을 했다. 그래서 귀국 후 그 카메라를 갖고 5일 후부터 충무로 영화계에 뛰어들었다. 

68년 4월에 귀국한 김태우 사장. 세계적으로도 최고의 카메라를 갖고 들어왔으니 충무로의 모든 감독들이 탐을 낸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귀국 5일 후에, 장일호 감독이 제작하는 <황혼의 브루스> 촬영을 맡으며 충무로 영화계에 뛰어들었다. 이후 1969년에는 신영필름을 세웠다.

70년대 들어서 김태호 사장은 정책홍보영상을 만드는데 주력했다. 당시 경제개발시기와 맞물려 정부에서 다수의 의뢰가 들어왔던 것. 박정희 대통령이 주재한 월례경제동향보고 회의, 전두환 대통령 시절 기술진흥확대회의 등에 선보일 정책홍보영상을 제작했다.

"1972년에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산을 푸르게'라는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황폐화된 국토를 푸르게 만들어야 한다는 박 대통령의 철학이 담긴 작품입니다. 한 커트, 한 커트 다 찍고 전국을 다니면서 완성해 나갔고 그 영화는 지금도 미국 하버드 대학교에 있어요. 영국 BBC에서는 판권을 사서 편집해서 틀기도 했고요. 그 외에도 소양강 댐, 포항제철, 경부고속도로 등등 국가의 경제적 역점 사업을 영화로 만들었습니다." 

 5일 오후 서울 충무로에 위치한 신영필름 사무실에서 오마이스타와 만난 신영필름 김태우 대표가 영화와 관련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5일 오후 서울 충무로에 위치한 신영필름 사무실에서 오마이스타와 만난 신영필름 김태우 대표가 영화와 관련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 이정민


그 이후 90년대 들어 대전 엑스포 한국주제관 '달리는 한국인'을 제작했다. 당시에 한국에 없었던 70mm 카메라를 들여와 리비아, 남극 등의 무대를 배경으로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을 마무리했다.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영화 촬영 기술 전문 용역회사로 탈바꿈해서 첨단 동시녹음 카메라를 한국에 도입했다. 그렇게 90년대 <쉬리><실미도><JSA 공동경비구역>등을 비롯해 최근 <최종병기 활> <건축학개론> 등 다수의 영화에 카메라가 모두 신영필름의 카메라로 세팅됐다.

"카메라와 세월을 함께 하면서 가장 큰 변화가 왔던 시점은 2007년이었습니다. 그때부터 필름 메커니즘이 디지털로 전환됐어요. 미국 레드 컴퍼니에서 '레드'라는 디지털 카메라가 나왔죠. 필름스타일의 레드 카메라를 2007년에 출시했는데, 당시 정말 혁명적인 카메라였습니다. 미국의 모든 과학 우주산업까지 뒷받침하는 카메라였죠. 2007년부터 2008년까지 필름 카메라 제작이 중지됐고, 저는 그때 미국으로 건너가서 디지털 기술, 촬영 방법 등을 배우는데 올인을 했습니다. 그리고 돌아와 디지털 카메라로 전환했고, 국내에서도 디지털 카메라 장비들이 활성화됐습니다. 이제는 영화뿐만 아니라 SBS, MBC 등 방송국에서도 디지털장비로 거의 전환됐습니다."

 신영필름 김태우 대표가 5일 오후 서울 충무로에 위치한 신영필름 사무실에서 영화와 관련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한 뒤 촬영장비들을 보여주며 설명하고 있다.

김태우 대표가 5일 오후 서울 충무로에 위치한 신영필름 사무실에서 영화와 관련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한 뒤 촬영장비들을 보여주며 설명하고 있다. ⓒ 이정민


"우리는 외국에 비해서 자본력이 부족해서 너무 투자를 급격히 빠르게 많이 하면 무너져버려요. 처음에 개발했던 카메라에서부터 너무 빠르지 않게 너무 늦지도 않게 조심스럽게 발전해 가는 게 중요합니다. 아니면 너무 퇴보하거나 아니면 너무 앞서가서 시행착오를 그대로 겪어 손해를 보기도 합니다."

지금 충무로는 물론 전세계에서도 최고의 카메라는 무엇일까. 김태우 사장은 알렉사(독일 ARRI의 카메라 브랜드 'ALEXA')라고 전했다.

"독일의 아리프렉스는 100년의 역사가 있는 회사입니다. 16미리, 35미리 필름 카메라에서부터 HD 카메라까지 갔죠. 필름을 고집하다가 디지털 시대가 오고 '레드'가 나오니까 아리프렉스에서 축적된 기술력을 모두 총동원해 알렉사를 내놓았습니다.

1980년대부터 일본 소니에서 디지털쪽에서는 1인자로 자리를 잡았지만 이제 미국과 독일 아리프렉스 카메라를 따라갈 수가 없어요. 소니에서 F60을 내놓았는데 도저히 따라가지를 못하더라고요. 45대를 미국에 팔았는데 다 리콜됐고 저도 테스트를 해 보고 안 샀습니다."

 신영필름 김태우 대표가 5일 오후 서울 충무로에 위치한 신영필름 사무실에서 영화와 관련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한 뒤 최신의 촬영장비들을 보여주며 설명하고 있다.

신영필름 김태우 대표가 5일 오후 서울 충무로에 위치한 신영필름 사무실에서 영화와 관련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한 뒤 최신의 촬영장비들을 보여주며 설명하고 있다. ⓒ 이정민


김태우 감독은 필름에서 디지털로 변환은 굉장히 어려운 과정이었다고 전했다. 카메라 뿐만 아니라 모든 기술의 호환이 디지털로 되어야 하기 때문. 더불어 연출이나 촬영감독의 의도대로 가기 위해 디지털 후반작업 또한 엄청나게 공을 들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제 디지털 카메라는 어느 정도 평준화 된 것 같아요. 캐논300을 가지고 찍든, 5D를 가지고 찍든, 알렉사를 가지고 찍든 레드로 찍든, 소니 F65로 찍든 디지털로 어느 정도 평준화된 것 같아요. 미술 하는 사람들의 물감이나 펜은 거의 다 훌륭하지만 모두 같은 재료를 쓴다고 좋은 그림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듯 카메라도 하드웨어, 소프트웨어가 평준화됐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연출가가 어떤 연출력으로 그 카메라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죠. 그것으로 보는 사람에게 가슴에 와 닿는 영상을 만들어내고 어떻게 편집을 하느냐의 문제가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올해 72세의 김태우 사장. 앞으로 어떤 꿈을 또 그리고 있을까. 그는 파주에 영상단지조합을 만들어 누구라도 와서 영화 촬영을 해보고 영상을 만들어볼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전했다.

"우선 파주에 땅을 확보해 뒀습니다. 10월부터 설계에 들어가요. 거기에 영상단지를 짓고 싶어요. 촬영 스튜디오도 짓고, 연구소도 짓고 싶어요.

사람은 태어나서 늘 기록을 남기고 싶어 합니다. 그림도 그리지만 영상으로도 남기고 싶어 하죠. 그래서 난 그 연구소에서 할아버지, 아버지 대대로 있는 족보 영상을 남기도록 하고 싶어요. 손자들하고 가족들이 2박3일 정도 금요일에 와서 일요일까지 시나리오도 쓰고, 촬영도 하고 편집도 하면서 20분짜리 영상을 만들어 DVD로 가지고 가게 하려고요. 가족의 역사가 담긴 영상이죠. 그런 영상 라이브러리 연구소를 만들고 싶습니다.

또 이 연구소에는 2,3평짜리 방 5,6개를 두고 각 대학교 교수들을 초청하고 싶어요. 여름방학 때 학생들 데리고 와서 연구도 하시고 그러면서 전공분야면 학점도 줄 수 있게 하고 싶어요. 그리고 이런 영상단지를 운영하면서 나온 수익금의 어느 정도는 학생들에게 등록금도 주고 싶고요. 그게 제 남은 꿈입니다."

 신영필름 김태우 대표가 5일 오후 서울 충무로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영화와 관련된 지난날의 추억을 전해주며 미소짓고 있다.

신영필름 김태우 대표가 5일 오후 서울 충무로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영화와 관련된 지난날의 추억을 전해주며 미소짓고 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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