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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참 좋았던 때였다. 치솟는 물가 무서운 줄 몰랐다. 나는 대학 재학시절, 3년 동안 대학 신문사에서 학생기자로 살았다. 대개 대학 신문사는 하나의 계좌로 공동 소비, 공동 구매가 이뤄지기 때문에 내가 지출해야 할 돈은 그리 많지 않았다. 돈이 드는 취미를 갖고 있지도 않았기에 내 은행 계좌에는 항상 일정 금액의 돈이 나를 든든히 지켜줬다.
 
그렇게 행복했던 3년여가 덧없이 흘러 2011년. 학생기자 임기가 만료되고 개인적인 사정으로 1년 동안 휴학을 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란 남자, 원래 물가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저 '쓰는 사람이 아끼면 되겠지'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휴학 기간 동안 물가의 무서움을 제대로 느꼈다.
 
특히 나처럼 본가가 지방에 있어 부득이하게 하숙이나 자취를 해야하는 이들에게 치솟는 '물가'는 두려우면서도 미운 존재다. 이런 고물가가 가장 미워질 때는 나름 나는 '절약'을 하고 있는데, 남의 눈에 '궁상'으로 비칠 때다. 하지만 어쩌랴, 난 힘 없는 하숙생인걸. 2012년이 밝았지만, 난 '언제쯤 정부가 제대로 된 물가정책을 내놓을까, 이건 정말 미친 물가야'란 생각을 하면서 여전히 궁상 아닌 궁상을 떨고 있다.
 
[궁상①] 밥값이 무서워... 반드시 꼼꼼해야만 한다
 

대학생활 초년병이었던 3~4년 전까지만 해도 생활 편의시설의 물가는 그나마 납득이 가능한 수준이었다. 특히 대학가 근처의 물가는 주머니가 얇은 대학생들을 염려해서인지 다른 곳보다는 낮았다. 하지만 1~2년 새에 대학가 토종 식당도 1인분 기본 4500원 이상을 기준으로 가격이 책정됐다. 게다가 값비싼 프랜차이즈 커피점이나 음식점이 대학가 깊숙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서면서 상황은 역전됐다. 500원을 들고 편의점에 가봤자, 살 수 있는 물건은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그동안 맛 없다고 천대 받던 학생식당이 전성시대를 맞이하는 우스운 상황도 발생했다. 대학가가 이럴진대 번화가의 물가는 오죽할까. 물론 돈을 써야할 때는 쓰지만, 쓰고 나면 텅 비어버리는 계좌는 나를 눈물짓게 한다.

 
나는 휴학하는 동안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여러 곳을 옮겨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러던 중 지난해 11월부터 고속터미널역 근처에서 사무직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조건에 맞는 아르바이트 찾다 보니 고속터미널로 흘러들어왔다. 일자리는 만족스러웠지만, 문제는 밥값이었다. 고속터미널 근처 밥값은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평균 6000원인 밥값을 감당하다 보면 '이래서 식대 주는 아르바이트가 좋다고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분식집과 패스트푸드 런치세트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식당 밥값이 이 정도 수준이었다. 회사 앞 잠원동 아파트 단지 안의 한 분식점은 참치김밥 한 줄이 3500원이나 했다. 착한 가격의 분식집을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와 같다.

 

나란 남자, '마일리지'에 민감한 남자

 

 

결국, 밥값을 절약하기 위해 난 그 누구보다 '꼼꼼'해질 수밖에 없었다. 


"저기 오늘은 라면으로 때울까요? 이번 주는 식당에 많이 간 거 같아요."
"그래 그럴까? 같이 컵라면 사러 가자."

같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료와 일주일에 한두 번은 편의점 컵라면 '흡입' 신공을 발휘했다. 게다가 방학을 맞이해 초등학생들로 북적이는 패스트푸드점을 용감무쌍하게 뚫고 지나가는 것도 우리 일상이 됐다. 오후 3~4시가 돼 배가 출출하면? 어쩔 수 없다. 안 그래도 엥겔지수가 최고치인 휴학생은 무조건 지갑을 닫아야 한다. 대학 입학부터 살았던 하숙집의 아침·저녁 식사를 꼬박꼬박 챙기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다.

또 한 가지 변화가 생겼다. 바로 '마일리지'에 무척 민감해졌다는 것이다. 마일리지, 카드 혜택 이런 정보에 젬병이었던 나는 고물가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다양한 카드를 구비해 놨다. GS, 롯데, CJ, 해피 포인트, 자주 가는 서점, 신세계 등등 대략 8개 정도의 프랜차이즈 카드와 다수의 군소 자영업점 카드를 사용하고 있다. 물론 이들은 나의 신용과는 전혀 상관없는 플라스틱들. 하지만 이것들은 아주 작은 단위의 할인 혹은 적립으로 나를 '경제적 인간'으로 만들어 주기도 한다.
 
"고객님 마일리지 카드 있으세요?"
"그럼요!"

[궁상②] 사는 곳이 궁상... 하지만 감사해야 한다

"이런 도시빈민…. 네가 사는 곳이 이런 곳이었어?"

내가 기거하는 좁다란 하숙집에 피치 못하게 들렀던 선후배, 동기들은 고맙게도 이런 말을 잊지 않고 해준다. '스마트'란 단어가 어울리는 시대에 1980년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집 모양새. 덕분에 나의 별명은 '도시빈민'으로 낙점됐다.

내가 사는 하숙집은 일반적인 하숙집이 아니다. 언론매체에 등장하는, 학생들이 단란하게 모여 있고 비교적 안락한 방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하숙집을 생각하면 오산이다. 쪽방촌이나 고시원을 떠올리게 하는 구조에,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중년 남성들이 다수 기거하는 곳이다. 나는 철모르고 상경했던 시절, 친지가 구해준 무보증금 월세 30만 원짜리 하숙집에서 무려 4년째 거주하고 있다.
 
사실 30만 원이면 하숙집 중에서는 싼 편이다. 아침·저녁 주는 밥값이 포함된 가격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대학가의 살만한 하숙집은 월세 40~50만 원을 호가한다. 내가 상상했던 '서울라이프'를 완전히 깨버린 하숙집. 당초 이 하숙집에 발을 들여놓은 뒤, '1~2년 후에 이곳을 떠날 것'이라고 굳게 다짐했다. 하지만 대학가에 폭풍처럼 휘몰아친 전·월세 인상과 비싼 민자 기숙사 열풍에 그냥 눌러앉아 버렸다. 나는 쓸모없는 자기 합리화로 하숙집에 대한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래 대학생이 무슨 호화를 누리겠다고, 몸 뉘일 곳만 있으면 되지…. 열악한 이 집도 적응이 됐으니까…. 밥도 주잖아? 최저가 고시원 보다는 낫겠지….'

내가 사는 하숙집은 열악한 샤워시설과 화장실에, 겨울에는 외풍이 심하고 여름에는 찜통이 되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일상생활에서도 <정글의 법칙>을 촬영하고 있는 셈이다. 좁디 좁은 방이건만, 겨울에는 한쪽 구석만 난방이 된다. 난방마저 초라하다.
 
치솟는 전기요금... 주인아저씨가 독해졌다
 

그렇게 독한 환경에 적응하며 매일 매일 <정글의 법칙>을 자체 제작하고 있던 어느 날, 저녁을 먹고 있는데 주인 아저씨가 나를 불렀다.

 

"학생, 혹시 온열관련 전기제품 쓰나? 그런 제품들은 전기요금이 많이 나와서, 혹시 가지고 있다면 미리 나한테 줘. 내가 보관하고 있을게. 숨겨봤자 소용 없어. 어차피 방마다 돌아다니면서 확인할 테니깐. 학생 뭐 가지고 있지?"

"그게요. 전기장판이랑요…."

 

"그래? 혹시 열풍기도 가지고 있어?"

"아저씨. 근데요. 전기장판은 갖고 있으면 안 될까요? 방이 추워서 그게 없으면 잠을 못자요. 그리고 열풍기는 작년에도 아저씨가 전기요금 얘기하셔서 거의 쓰지도 않았어요. 그냥 제가 갖고 있으면 안 되나요?"

"학생, 안 돼. 갖고 있으면 안 쓰리란 보장이 있나? 음…. 그럼 열풍기만 갖고 내려와."


학생들 중에서는 이 집에 가장 오래 살았다는 나름의 자부심(?)이 있었는데, 나에게 깐깐하게 구는 아저씨가 야속하기도 했다. 그래도 지금은 감사하다. 끝 모르고 올라가는 대학가 집값 상승 열풍에도 주인아저씨가 방값을 올리지 않아서. 천혜의 자연환경을 제공해줘도 감사하다. 어쨌거나 노숙하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집값 '덕분에' 군 전역 후에도 이곳에 다시 들어오게되진 않을까, 걱정된다.

 

사실 등록금도 못 내는 형편의 대학생들에 비하면 내 이야기는 단순한 '징징거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도 과자, 라면 값 100~200원 인상에 민감한 일반 서민의 자식이다. 특히나 대학생은 의식주 중 '식'과 '주'에 민감하지 않은가.
 
군 전역 즈음인 2년 후 물가를 생각하면 벌써부터 눈앞이 캄캄하다. 복학하고 열심히 미래를 향해 달려나가야 할 때, 보나 마나 다시 부모님의 손을 벌려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마음 편하게 공부하고, 연애도 하는 대학 생활을 할 수는 없는 걸까? 내가 무조건 아끼기만 하면 해결될 문제인 걸까? 참 고민이다.

태그:#물가,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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