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현대인에게 가장 큰 스트레스를 주는 것 중 '마감'을 빼놓을 수 없을 겁니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매일매일, 그리고 순간 순간 마감과 마주합니다. 때로는 인생 자체가 마감에 비유되기도 하지요. 지금 이 시각 우리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을 '마감'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편집자말]
마감에 치여 사는 현대인. 그렇다면 일주일 중 그들이 마감에 대한 애환을 가장 처절하게 느끼는 시간대는 언제일까. 여러 가지 답이 있겠지만 수많은 사람들은 매주 토요일 오후 8시 34분 즈음을 꼽을 법하다. 바로 '6/45 나눔로또'(로또) 방송이 편성된 시간이기 때문이다.

드디어 방송이 시작되고, 숫자가 적힌 공들이 순차적으로 기계에서 미끌어져 나온다. 당첨번호 선정이 완료되는 순간, 수십 만 혹은 수 백 만이 될지도 모르는 사람들 입에서는 아쉬움, 욕, 비명(?)이, 그리고 회심의 미소가 새어나온다. 방송이 끝남과 동시에 사람들의 희로애락이 분출되는 것이다.

'대박'과 '인생역전'이란 화두 속에 사회적인 화젯거리가 되곤 하는 로또. 로또는 이미 서민들의 삶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실제 로또 방송 직전이자 판매 마감 시각인 토요일 오후 8시 직전의 시민들 표정은 어떨까. 지난 17일 서울시 노원구 상계동의 S편의점을 찾았다.

로또 마감시각, 명당에 가득찬 '희망'들

한 손님은 "이 가게가 세계에서 복권이 가장 잘 팔리는 가게인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한 손님은 "이 가게가 세계에서 복권이 가장 잘 팔리는 가게인 것 같다"고 말하기도.
ⓒ 박기훈

관련사진보기


S편의점은 전국의 여러 로또명당 중에서도 가장 유명하다. 지난 2002년 12월 로또가 처음으로 발매된 이후 1등 당첨자를 무려 15번이나 '배출'했다. 내가 찾은 이날도 수많은 사람들이 대로 사거리 목 좋은 곳에 위치한 이 편의점 문을 밀고 들어갔다.

가게 안은 북적북적했다. 마치 중요한 시험을 보는 것 마냥 로또 슬립용지에 마킹을 하는 사람들. 그리고 "자동 복권 구입할 분들은 여기로 오세요!"라고 외치는 점원의 목소리로 분주했다. 사람들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은 이곳에서 로또 이외의 물건을 사러 온 손님은 찾기 쉽지 않았다. '편의점'이란 이름이 무색하게 다른 물건들은 거의 구비해놓지 않았다.

서울시 성북구에서 왔다는 대학생 이동훈(26)씨. 그는 편의점의 외양이 인상 깊은지 입구에서 태블릿PC로 간판 사진을 찍기도 했다. 성북구에도 로또를 파는 가게들이 여러 개는 될 텐데 왜 그는 굳이 노원구까지 발걸음을 했을까.

자가용을 가지고 복권을 사러 오는 손님이 많기 때문에 달린 배너.
 자가용을 가지고 복권을 사러 오는 손님이 많기 때문에 달린 배너.
ⓒ 박기훈

관련사진보기

"친구에게서 노원구에 로또명당이 있다고 들었어요. 평일에는 로또를 살 수 있는 시간이 나지 않아 토요일에 이렇게 와보게 됐죠. 보통 한 달에 로또를 두세 번은 사는 편이거든요."

'로또 명당' S편의점은 그 명성에 걸맞게 외지에서 차를 타고 로또를 구입하러 오거나 심지어 택배로 로또를 구입하는 손님이 있을 정도다.

이날도 여러 대의 차들이 가게 앞에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만약 로또 당첨금이 이월되기라도 하면 편의점은 그야말로 '난리'가 난다고. 편의점 근처 주민인 심정희씨는 당시의 기억을 생생히 전해줬다.

"지난해 말쯤이었던가? 상금이 이월 돼서 당첨 금액이 크게 불어난 적이 있었어요. 그 주 로또 마감 날은 가게에 줄이 엄청 길게 늘어져 있었다니까요. 사람이 너무 많아 줄이 아파트 단지 근처까지 갔죠."

로또 발매 초기에는 1등 당첨자가 없을 경우, 연속 이월이 총 5회까지 허용됐다. 7, 8, 9회 로또는 3주 연속 1등 당첨자가 없어 연속 이월됐다.

1등 상금이 무려 835억 원으로 껑충 올라섰다. 당연히 '로또 광풍'이 몰아닥쳤고, 이로 인한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2003년께 연속 이월을 2회로 제한했다. 하지만, 단 1회라도 당첨금이 이월되면 1등 당첨 금액이 커지는 건 로또의 변함없는 특성이다. 당첨 금액이 큰 주 토요일의 로또 명당은 손님들로 장사진을 이룰 수밖에 없다.

마감 직전에 로또 사면 괜찮다고요?

복권을 구입하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
 복권을 구입하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
ⓒ 박기훈

관련사진보기


로또 명당은 평일에도 손님이 끊이지 않지만, 마감 날인 토요일은 손님이 더 많다. 또 다른 로또 명당인 서울 은평구 녹번동의 B편의점 점원도 "토요일은 하루 종일 손님이 방문한다"고 말했다.

토요일에 손님이 몰리는 이유에 대해 가게 직원들은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S편의점의 김한길(57) 사장은 정신없이 몰려드는 손님을 맞이하느라 바쁜 와중에 설명을 이어갔다.

"토요일 매출이 저희 가게 전체 매출의 30%에 달해요. 토요일에 손님이 몰리는 건 당연할 수밖에 없어요. 손님들이 결과를 오래 기다리지 못하기 때문이거든요. 다른 사행산업도 가만보면 다 비슷해요. 손님들은 결과를 즉시 확인하기를 원하죠."

현장에서 로또를 사는 시민들도 "마감시간이 돼가니까" 혹은 "조금만 있으면 로또 방송이  시작되니까 토요일에 로또를 구매한다"는 대답을 많이 했다.

한편, 다른 이유로 마감 날에 로또를 산다고 대답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로또 당첨에 관한 각종 루머들을 믿고 있는 이도 있었다. '재물복도 사람의 노력 여하에 달려있다'고 믿는 한 70대 손님은 "매주 토요일 여기에서 수 만 원어치를 구매하는데 나의 12간지, 즉 띠에 대응되는 때에 찾아와 로또를 구매 중"이라며 '띠' 논리를 설파했다.

특정 시간에 로또를 구입하면 성공한다는 '당첨 시간'에 대한 논란도 분분했다. 50대 송아무개씨는 자신이 들었던 일화를 소개했다.

"마감시각 직전에 사야 당첨 승산이 크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지. 한 때 토요일 오후 5시에 사면 당첨된다는 소문이 있었어요. 그 시간에 많이들 샀지요. 근데 지금은 그런 소문이 잦아들었어. 근데, 처음에 그런 소문을 듣고 구입한 사람들은 나중에도 매주 그 시간대에 찾아오더라고. 로또를 자주 사는 사람들은 구매 시간이 습관이 된 경우가 많아."

'토요일 오후 5시'를 소개해준 송아무개씨와는 반대로 로또 마감 직전인 오후 8시에 만났던 젊은 30대 주부 김아무개씨의 이야기는 달랐다.

"신랑 심부름으로 매주 5천 원에서 1만 원 정도 소액 구매를 해요. 신랑이 인터넷으로 본 얘기를 해주더라고요. 오후 8시에 거의 가까워졌을 때 로또를 사야 당첨 확률이 높다고 그러던데요? 그래서 지금 온 거예요."

당신에게 로또가 주는 의미

기자도 처음으로 복권을 구매해봤다. 만 원어치를 구매했지만 모든 게임에서 5천 원 조차도 당첨되지 못했다. 내심 기대했건만.
 기자도 처음으로 복권을 구매해봤다. 만 원어치를 구매했지만 모든 게임에서 5천 원 조차도 당첨되지 못했다. 내심 기대했건만.
ⓒ 박기훈

관련사진보기



다수 시민들은 "당첨 확률이 똑같기 때문에 당첨은 오로지 '운'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로또 명당이라는 표현에도 일견 냉소적이었다. 그럼에도 자주 여기를 찾아오는 이중적인 모습 또한 엿볼 수 있었다.

로또를 구입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중년 남성과 여성이 많았다. 지난해 로또 당첨자의 평균연령은 46세.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하는 중년의 시민이 복권을 가장 많이 구입한 것이다. 50대 송아무개씨는 "로또를 가지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질 때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팍팍한 삶 속에서 건전하게 이용만 한다면 '즐거운 상상과 희망'을 준다는 복권. 로또를 구매하는 사람들은 당첨됐을 때 하고 싶은 것들이 참 많다. 지금도 매주 토요일 오후 8시, 로또 마감시각에는 개개인이 품은 소망들이 '명당'에 모여든다.


태그:#마감, #로또, #복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