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말아요>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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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단편 <애타는 마음>은 종로 거리의 택시기사 춘길(정지순 분)이 현준(이시후 분)을 손님으로 태우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현준에게 반한 춘길의 독백이 사랑에 빠진 개인의 자아도취적 감정을 코믹하면서도 절절하게 그린다. 외모와 어울리지 않게 수동적인 춘길과 짜증 섞인 '츤데레' 적 태도로 그를 몰아세우는 현준의 호흡이 퍽 사랑스럽다. 제13회 부산국제영화제와 제33회 서울독립영화제를 비롯해 유수의 국내외 영화제에서 호평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두 번째 단편 <새끼손가락>은 영화에서 가장 예쁘고 풋풋한 청춘 로맨스 작품이다. 게이 인권단체에서 일하는 혁(권기하 분)이 어느 날 사무실을 찾아온 옛 연인 석(박정근 분)을 만나면서 드러나는 둘의 기억이 영화의 큰 줄기다. 초록의 풍경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들의 행복한 한 때는 꿈결처럼 아름답고, 의심과 오해 속에서 이별에 다다른 둘의 모습은 어린 시절 풋사랑의 감정을 먹먹하게 담아낸다. "그냥 한 번쯤 보고 싶었다"는 석의 마지막 대사는 특히 긴 여운을 남긴다.
마지막 에피소드인 <소월길>은 영화에서 유일하게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단편이다. 아들과 사는 점순(박명신 분)이 매일 밤 남몰래 소월길에서 성매매를 하던 중 트랜스젠더 은지(고원희 분)와 가까워지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다. 풋풋한 연애를 시작하는 아들과 진정한 여자로서의 삶을 꿈꾸는 은지 사이 점순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과정은 감동적이면서도 쓰라리다. 점순이 은지를 이해한다면서도 그를 오롯이 여자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럼에도 위험에 처한 점순에게 은지가 손을 내미는 에피소드들은 가슴을 크게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