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의 이야기'라는 단정은 어쩌면 작품의 다른 정체성을 가릴 수도 있다. 영화 <걱정 말아요>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우리가 사는 이곳에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이야기다.

'성소수자의 이야기'라는 단정은 어쩌면 작품의 다른 정체성을 가릴 수도 있다. 영화 <걱정 말아요>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우리가 사는 이곳에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이야기다.ⓒ (주)레인보우팩토리


'퀴어'라는 수식어는 아이러니하게도 퀴어 영화에 대한 관객의 접근을 방해한다. 해당 작품의 다른 모든 정체성을 가린 채 '성소수자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전면에 내세우는 단정적 표현이기 때문이다. 성소수자 또는 이들에 대해 거부감을 갖지 않은 관객만이 퀴어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향하고,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많은 관객은 이들 영화를 외면한다. 국내에서 나름 흥행한 퀴어 영화 <캐롤>이 고작 30만 명이 조금 넘는 관객과 만났다는 사실, 그리고 400만 관객을 모은 <아가씨>가 앞서 마케팅 단계에서 굳이 '퀴어 영화' 프레임을 꺼내 들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일 것이다.

영화 <걱정 말아요>를 퀴어 영화라고 부르는 게 조심스러운 건 그래서다. 이 작품은 게이와 트랜스젠더, 성매매 여성이 등장하는 자그마치 '옴니버스' 퀴어 영화지만, 결코 그 특별한 소재에 매몰되지 않는다. 밤거리의 고독 속에서 첫눈에 사랑에 빠진 사람의 환희를 그리고, 지나가 버린 옛 연인을 대하는 누군가의 아련한 기억을 조명한다. 동병상련의 두 사람이 서로를 민낯을 받아들이며 진정한 친구가 되는 과정을 다루기도 한다. 이 모든 일이 우리가 사는 이곳에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세 가지 이야기로 전개된다.

 <걱정 말아요>의 한 장면.

<걱정 말아요>의 한 장면.ⓒ (주)레인보우팩토리


첫 번째 단편 <애타는 마음>은 종로 거리의 택시기사 춘길(정지순 분)이 현준(이시후 분)을 손님으로 태우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현준에게 반한 춘길의 독백이 사랑에 빠진 개인의 자아도취적 감정을 코믹하면서도 절절하게 그린다. 외모와 어울리지 않게 수동적인 춘길과 짜증 섞인 '츤데레' 적 태도로 그를 몰아세우는 현준의 호흡이 퍽 사랑스럽다. 제13회 부산국제영화제와 제33회 서울독립영화제를 비롯해 유수의 국내외 영화제에서 호평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두 번째 단편 <새끼손가락>은 영화에서 가장 예쁘고 풋풋한 청춘 로맨스 작품이다. 게이 인권단체에서 일하는 혁(권기하 분)이 어느 날 사무실을 찾아온 옛 연인 석(박정근 분)을 만나면서 드러나는 둘의 기억이 영화의 큰 줄기다. 초록의 풍경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들의 행복한 한 때는 꿈결처럼 아름답고, 의심과 오해 속에서 이별에 다다른 둘의 모습은 어린 시절 풋사랑의 감정을 먹먹하게 담아낸다. "그냥 한 번쯤 보고 싶었다"는 석의 마지막 대사는 특히 긴 여운을 남긴다.

마지막 에피소드인 <소월길>은 영화에서 유일하게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단편이다. 아들과 사는 점순(박명신 분)이 매일 밤 남몰래 소월길에서 성매매를 하던 중 트랜스젠더 은지(고원희 분)와 가까워지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다. 풋풋한 연애를 시작하는 아들과 진정한 여자로서의 삶을 꿈꾸는 은지 사이 점순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과정은 감동적이면서도 쓰라리다. 점순이 은지를 이해한다면서도 그를 오롯이 여자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럼에도 위험에 처한 점순에게 은지가 손을 내미는 에피소드들은 가슴을 크게 울린다.

 <걱정 말아요>의 한 장면.

<걱정 말아요>의 한 장면.ⓒ (주)레인보우팩토리


<걱정 말아요>는 한 시간 남짓의 영화이고, 이를 셋으로 나눈 각각의 이야기는 20분 내외에 불과하다. 대단한 서사를 담지도, 심오한 메시지를 전하지도 않는다. 그저 사랑하고 싸우고 배신하고 또한 용서하는 '작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소리 높여 "나는 퀴어 영화"라고 외치는 대신 가만히 일상적인 삶과 관계를 바라볼 따름이다. 만약 이 영화가 '다름'을 '틀림'으로 대하는 사람들을 조금이나마 바꿀 수 있다면 그 덕분일 것이다. '걱정 말라'고, 곧 좋아질 거라고 말하며 천진하게 웃는 이 영화는 그렇게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오는 1월 5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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