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연쇄살인범과 프로파일러, 묘하게 닮았다

[리뷰] 발 맥더미드 <인어의 노래>

등록 2011.07.11 14:24수정 2011.07.11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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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의 노래> 겉표지 ⓒ 랜덤하우스

▲ <인어의 노래> 겉표지 ⓒ 랜덤하우스

프로파일러는 범인을 잡지 않는다. 범인을 잡는 것은 경찰의 일이다. 대신 프로파일러는 사물을 때때로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다. 예를 들어 길에서 몇 미터 떨어진 풀숲에서 시체가 발견되었다고 가정해보자.

 

경찰은 그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탐문수사를 벌인다. 살인이 벌어졌을거라고 짐작되는 시간에 수상한 사람을 본 목격자가 있는지, 현장에 살인자의 정체를 알려줄 단서가 남아있는지 등을 수사한다.

 

반면에 프로파일러는 살인자에게 이 장소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아내려고 노력한다. 동시에 살인자가 이 장소에서 무엇을 보고 느꼈는지 알아내려고 한다. 프로파일러는 그런 과정을 통해서 수사의 초점을 좁혀나가도록 도움을 준다.

 

프로파일러가 범인의 이름과 주소를 알려주지는 못하지만, 특정한 범행을 저지른 사람이 살 만한 지역과 그의 직업을 알려줄 수는 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 프로파일러는 범인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야한다.

 

발 맥더미드의 1995년 작품 <인어의 노래>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프로파일러 토니 힐은 자신이 하는 일을 가리켜서 '미친 놈의 정신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라고 표현한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의 정신상태는 과연 어떨까.

 

살인자의 심리를 분석하는 프로파일러

 

괴물과 싸우다보면 자신도 괴물로 변할 수 있다. 프리드리히 니체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가 어둠의 심연을 들여다보면 그 어둠도 우리의 심연을 들여다본다. 미친 인간의 두뇌 속에서 허우적거리다보면 자신도 그 어두운 영혼의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그래서인지 <인어의 노래>의 토니 힐도 몇 가지 내면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 토니의 어린 시절은 그다지 행복하지 못했고, 그는 작은 체구 때문에 깡패같은 아이들의 괴롭힘을 받아야 했다. 어린 시절에 아버지는 떠났고 어머니는 그 일의 책임이 토니에게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토니를 경멸로 대하고 있다.

 

토니는 이런 과거를 극복하고 훌륭한 프로파일러가 되었다. 하지만 상처를 완전히 치유하지는 못했기에 결혼도 하지 못했고 대인관계가 원만한 것도 아니다. 그는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을 통제하며 무너지지 않는 방어벽을 쌓아올리는 방법을 터득했다. 함께 일하기에는 좋을지 몰라도 친구가 되기에는 어려운 사람이다.

 

이런 토니 앞에 잔인한 연쇄살인범이 나타난다. 토니는 연쇄살인범에게 '핸디 앤디'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핸디 앤디는 성인 남성을 살해한 후에, 게이들이 모이는 곳으로 유명한 장소에 그 시체를 유기한다. 언뜻 보기에는 게이를 혐오하는 사람이 벌이는 살인행각처럼 여겨진다.

 

핸디 앤디는 피해자를 죽이기 전에 심한 고문을 했다. 법의관의 표현에 의하면 '스페인 종교재판에서나 볼 것 같은 고문'이다. 토니는 경찰의 요청을 받아 정식으로 수사에 합류하지만 깔끔하게 살인을 저지르는 핸디 앤디를 추적하는 것은 쉽지 않다. 동시에 토니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내면의 문제와도 계속해서 직면해야 한다.

 

점점 잔혹해지는 연쇄살인

 

대부분의 연쇄살인범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환상을 현실에서 구현하기 위해 살인을 한다.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서 살인을 하는 것이다. 연쇄살인범들에게 나타나는 공통점 중 하나는, 살인의 간격이 점점 좁아진다는 것이다.

 

하나의 살인으로 자신의 환상을 충족시키려 했지만, 아무리 살인 과정을 다듬어보아도 현실은 그 환상에 절대 미치지 못한다. 다시 살인을 하더라도 감각은 점점 무뎌지기만 한다. 그렇다면 살인사이의 간격이 좁아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먹으면 먹을수록 식욕이 늘어나는 것처럼 살인도 그렇게 변해간다.

 

반면에 <인어의 노래>의 연쇄살인범은 살인의 간격을 거의 정확하게 지키고 있다. 그래서 더욱 추적하기가 어려워진다. 현장에는 아무것도 안남기고 시체는 깨끗하게 씻어놓기까지 한다. 살인범은 살인과 고문에 집착하면서 강박적일 정도로 청결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토니 힐도 이렇게 강박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 그는 자신의 파트너인 여형사에게 '미친 놈의 머릿속에 들어가 있으면 그놈처럼 편집광이 된다'라는 말을 한다. 어쩌면 그 머릿 속에 갇히게 될지도 모른다. 연쇄살인범과 프로파일러의 내면은 묘하게 서로 닮아있다. 그래서 더욱 흥미롭다.

덧붙이는 글 <인어의 노래> 발 맥더미드 지음 / 유소영 옮김. 랜덤하우스 펴냄.

인어의 노래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8-1

발 맥더미드 지음, 유소영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2011


#인어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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