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페이지 분량의 지구 종말, 이유가 있군

[리뷰] 로버트 매캐먼 <스완 송>

등록 2011.07.20 13:40수정 2011.07.20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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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완 송> 겉표지 ⓒ 검은숲

▲ <스완 송> 겉표지 ⓒ 검은숲

지구에 종말이 찾아온다면 그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영화 <2012>처럼 지구내부의 온도상승으로 대륙이 산산조각날 수도 있고, <딥 임팩트>나 <아마겟돈>처럼 혜성이 엄청난 속도로 지구와 충돌해서 모든 것을 파괴할 수도 있다.

 

지구 내부의 온도상승이나 혜성과의 충돌은 과학자들이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 온도가 언제쯤 치명적으로 상승할지, 혜성이 언제 어디에 충돌할지 등. 그러니 일반인들도 거기에 대비할 시간적 여유가 있는 셈이다.

 

반면에 어느날 갑자기 3차대전이 터져서 지구상에 있는 핵탄두가 특정 시간 안에 모두 폭발해 버린다면 어떨까. 물론 상대국과의 군사위기가 심각하게 고조되면 일반인들도 나름대로 대비에 들어갈 것이다.

 

하지만 적군이 쏘아보낸 핵미사일이 언제 어디로 떨어질지 일반인들에게 알려줄 사람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이 생기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수밖에 없다. 핵전쟁이 끝나더라도 대기와 물은 방사능에 오염되고, 폭발로 인한 먼지가 하늘을 뒤덮어서 햇빛은 차단되고 기온이 떨어지는 핵겨울이 시작된다.

 

실제로 이런 전쟁이 터진다면, 시작되고 몇 시간 만에 죽은 사람들이 오히려 행복할지 모른다. 이후에 수천 가지 형태의 부작용으로 나타날 영원한 저주를 견뎌야 하는 것은 살아남은 사람들이 될 테니까.

 

핵전쟁으로 폐허가 된 지구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지만 '종말 이후'는 상상력 풍부한 작가들에게는 흥미로운 소재가 될 수 있다. 로버트 매캐먼의 1987년 작품 <스완 송>에서 바로 그런 대형 핵전쟁이 터진다. 작품 속에서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을 붕괴시켰고 핵잠수함을 동원해서 미국을 압박하고 있다.

 

인도가 파키스탄을 화학무기로 공격하고 이란이 이라크에 소련제 미사일을 쏟아 붓는다. 소련의 군사적압박에 시달리던 미국의 강경파들은 대통령에게 결단을 촉구한다. 미국이 겁먹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라도, 긴장을 고조시키는 자들에게 단호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갈등 끝에 강경파의 입장을 받아들이고, 이렇게 해서 저주받은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다. 미국과 소련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핵무기를 상대 영토에 날려 버린다. 그 결과로 너무도 짧은 시간 만에 종말이 찾아온다. 수천 년의 지혜로 쌓아올린 문명과 꿈이, 바로 그 문명의 어두운 힘에 의해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종말이 오더라도 살아남는 사람들은 있기 마련이다. 작품의 주인공인 아홉 살 소녀 스완도 살아남았다. 스완은 엄마와 함께 엄마의 고향으로 가던 도중에 핵폭발을 목격한다. 그 자리에는 우연히 거구의 흑인 프로레슬러 조시도 함께 있었다. 핵폭발이 일어나자 조시는 스완과 그녀의 엄마를 데리고 근처에 있는 건물 지하실로 숨는다.

 

폭발 당시 커다란 부상을 입은 엄마는 그 안에서 숨을 거두고, 시간이 지나서 지하실을 빠져나온 스완과 조시는 함께 긴 여행을 시작한다. 어딘가에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믿으면서, 모든 것이 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믿으면서.

 

살기 위해서 길을 가는 사람들

 

<스완 송>은 700페이지가 넘는 책 두 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웬만한 장편소설 네 편을 합한 분량이다. 처음에 책을 들면서 '뭐가 이렇게 두꺼울까'하고 생각했지만 가만 보니까 그럴 것도 같다. 종말 이후에 살아남은 사람들 앞에는 다양한 운명이 펼쳐져 있을 테니, 그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야기도 길어질 것이다.

 

실제로 이런 상황이 생기면 사람들은 본성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법도 의미가 없어졌고 경찰과 군대도 사라졌다. 눈 앞에는 무법천지가 펼쳐진다. 남의 것을 빼앗아도, 타인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살인을 저질러도 막거나 응징할 방법이 없다.

 

<스완 송>에서도 살아남은 사람들은 여러가지 모습을 보여준다. 어떤 사람들은 마을을 만들어서 평화롭게 살려고 하고 어떤 사람은 혼자서 조용히 오두막에 은둔하는 쪽을 택한다. 스완과 조시처럼 무언가를 찾아서 끝없는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 가하면, 한곳에 웅크리고 살다가 지나가는 행인을 덮치는 강도도 있다.

 

군대를 조직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민병대를 만들어서 다른 민병대와 계속 전쟁을 벌이며 점점 세력을 넓혀간다. 종말 이후는 정말 어떤 모습일까. 핵전쟁 뒤에도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대립과 파괴를 계속한다면, 살아남더라도 희망은 없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스완 송> 1, 2. 로버트 매캐먼 지음 / 서계인 옮김. 검은숲 펴냄

스완 송 1 - 운명의 바퀴가 돌다

로버트 매캐먼 지음, 서계인 옮김,
검은숲, 2011


#스완 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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