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죽일 놈의 식탐!

제대로 씹지도 못하는 삼겹살을 입안에 넣고 보니

등록 2011.03.22 10:40수정 2011.03.22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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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심은 매실이 꽃을 활짝 피워내고 있습니다. 나무를 심으면 꽃을 보고 열매를 얻는 기쁨을 누릴 수 있지만 필요 이상의 식탐은 생명을 죽이게 되고 결국에는 그 어떤 방식으로든 내게 고통으로 되돌아 옵니다. ⓒ 송성영


"고기를 안 드시네요?"
"아. 예, 그냥…."
"채식주의자인갑소?"


사람들은 요즘 내게 채식주의자냐고 묻곤 합니다. 나는 곧장 손사래를 칩니다.

"아뉴, 그냥 이빨이 시원찮아서."
"그라요? 얼마나 안 좋길래?"
"고기 씹을 만한 어금니가 거의 없어놔서요."

고기를 씹을 만한 어금니가 없을 정도로 요즘 대대적인 치아 공사 중입니다. 두 달 가까이 죽사발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보름에 걸쳐 아랫니 웃니 할 것 없이 하루 이틀 걸러 한두 개씩 왕창 왕창 뽑아내고 조만간 틀니를 박아 넣을 예정입니다. 그동안 뽑아낸 치아보다 잇몸에 박혀 남아 있는 치아 개수를 세는 게 더 빠릅니다. 그야말로 죽사발이 난 것입니다.

지글지글 익은 돼지 삼겹살을 입에 넣었는데...

그런데 말입니다. 치아가 죽사발 난 것보다 더 황당한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시원찮은 치아를 뽑을 만큼 다 뽑고 나서 두 달도 채 견디지 못하고 불판에 지글지글 익고 있는 돼지삼겹살 한 점을 습관적으로 입에 넣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 놈의 식탐! 부끄러워 견딜 수 없었습니다. 소고기는 체질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아 일년에 한두 차례 먹거나 말거나 했고, 두 달에 한 번 정도 먹을까 말까 했던 삼겹살이었는데 씹을 이빨조차 없으면서 냉큼 입안에 쑤셔 넣다니, 이 죽일 놈의 식탐은 도대체 어디서 부터 비롯된 것일까?

충격이었습니다. 씹지도 못하는 삼겹살을 입에 넣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아주 오래 전에 접한 그림 한 장이 떠올랐습니다. 동물 부부가(아마 소와 돼지 였을 것입니다) 인육 앞에 날선 칼을 들고 서 있는 '인육점'이라는 그림이 떠오른 것입니다.

씹지도 못하면서 고기를 입에 넣는 식탐, 내가 내 살을 씹고 있는 것처럼 참으로 참담하고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그 사건은 내 자신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습니다. 필요 이상의 식탐이 재앙을 불러일으키는 불행의 씨앗임을 입버릇처럼 말하고 있는 내가 정작 그러고 있었던 것입니다. 소와 돼지들을 생매장 시키는 구제역의 원흉이 따로 없었습니다. 구제역은 따지고 보면 인간의 탐욕이 불러일으킨 큰 재앙이니까요.

그 참혹한 식탐에 대한 충격으로 더 이상 돼지가 고기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참혹하게 죽어 있는 '생명의 살점'으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구제역으로 참혹하게 생매장 당하고 있는 소와 돼지들, 입안에 들어있는 삼겹살이 돼지고기가 아닌 살과 피와 뼈로 형성되어 있는 생명체, 나와 다름없는 생명체의 일부로 느껴진 것입니다. 끔찍한 충격이었습니다.

이런 끔직한 식탐이 치아를 상하게 한 것입니다. 치아가 한꺼번에 왕창 빠져나간 것은 어려서부터 잇몸에서 피가 나오는 괴혈증을 앓은 탓이 크지만 결국 술과 담배, 식탐이 무엇보다 가장 큰 원인입니다.

그리고 치아들이 너도나도 앞 다퉈 빠지게 된 또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새 집을 짓고부터였습니다. 새집을 짓다보면 보통 치아가 한두 개 빠져나간다고 합니다. 새집을 지을 때 그만큼 신경이 많이 쓰인다는 얘기겠지요. 거기다가 새 집을 지을 무렵이면 치아가 시원찮을 나이가 됐다는 것이고요.

이런 빤한 이유와 달리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새로운 터전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게 되면 본래의 환경이 달라지게 됩니다. 본래 자리에서 새 터로 옮겨진 나무가 몸살을 앓듯이 새 터에 깃들어 살다보면 이전의 마음자리며 몸의 균형감각조차 흐트러지게 됩니다

새 터에 집을 짓다 보면 그 자리가 본래 밭 자리이었든 논 자리이었던지 간에 일정부분의 자연환경을 까뭉갤 수밖에 없는 노릇입니다. 그 과정에서 본래 터에 깃들어 살던 수많은 생명들이 죽임을 당했을 것이고 또한 그 주변에서 살던 수많은 생명들이 쫓겨났을 것입니다.

집 지으면서 쫓아낸 온갖 생명들, 얼마나 원망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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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심은 매실이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새터에 집을 지으면서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죽어나가고 쫓겨 갔을까. 그 악업을 조금이나마 정리하는 차원에서 올해도 20여그루의 나무를 심었습니다. ⓒ 송성영


내가 개발에 쫓겨 정든 집을 등지고 새 터로 이주해 오면서 개발지상주의자들을 원망했듯이 우리 가족으로부터 쫓겨난 온갖 생명들은 우리 가족을 또 얼마나 원망했겠습니까. 그 원망의 기운들이 결국 우리 가족에게 그 어떤 악영향을 주었을 것입니다.

내가 그 어떤 생명에게 좋은 기운을 주게 되면 좋게 되돌아 올 것이고 나쁜 기운을 주게 되면 나쁘게 되돌아 올 것입니다. 그런 나쁜 기운들이 내 몸에 악영향을 미쳤을 것이고 그게 평소 시원찮았던 치아에 집중적으로 파고들었을 것입니다.

그 악영향이 내 치아에만 미친 것이 아닙니다. 얼마 전 학교 이층에서 떨어진 우리 집 작은 아이, 송인상 녀석의 사고에도 그 어떤 악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녀석이 이층에서 떨어진 것에는 본인의 실수가 가장 큰 원인이었겠지만 과학적으로는 해석할 수 없는 그 어떤 기운이 알게 모르게 영향을 주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구요? 분명 과학적인 눈으로는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소설 같은 일입니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현실들, 과학적인 눈으로는 도무지 이해 할 수 있는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현실은 과학으로 해석할 수 없는 얼토당토않은 불가사의 한 일들이 수많이 일어납니다. 과학적인 해석이든 생명의 불가사의한 기운이든 분명한 것은 그 어떤 결과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런 사고가 아니었으면 그 어떤 다른 사고가 일어났을지도 모릅니다. 30평짜리 집을 짓는데도 이러한 재앙을 감당해야만 하는데 아귀와 같은 인간의 욕망으로 시작된 4대강 개발, 인간의 끊임없는 식탐이 불러일으킨 구제역. 그로 인해 죽어간 수많은 생명들의  원한에 사무친 재앙은 오죽하겠습니까?

그렇게 수많은 생명들이 죽어가면서 내지르는 아우성 소리는 평화로운 마음자리를 뒤흔들어 놓고 분노를 일으키게 합니다. 그 분노는 몸을 망가지게 할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비명소리도 내지르지 못하는 온갖 생명들의 죽음으로 인한 악영향은 또 어떻겠습니까?

개발이 심한 지역 사람들에 비해 개발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지역 사람들은 답답할 정도로 느리지만 순박합니다. 순수한 마음자리가 있습니다. 개발이 심한 지역 사람들과 얼굴빛이 다릅니다. 인심이 살아있습니다. 자연환경이 살아있고, 살아 있는 자연환경만큼이나 평화롭습니다. 생명이 넘쳐 납니다. 느린 만큼 사람살이에 여유가 있습니다. 그만큼 뭇 생명들과 더불어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재앙, 결국 나에게서 비롯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현상들, 눈에 보이지 않는 모든 재앙들은 결국 나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제대로 씹을 만한 이조차 없으면서도 고기조각을 입에 넣는 식탐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합니다. 뭔가를 좀 더 소유하고 좀 더 먹고자 하는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좀 더 소유하고 좀 더 먹고자 하는 순간, 그만큼 세상의 평화는 깨져나가고 그만큼의 재앙을 예고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원인과 결과는 한자리에서 만나기 마련입니다. 일본의 핵발전소 폭발이 보여주고 있듯이 우리가 좀 더 소유하고 소비하는 만큼 재앙을 감수해야 합니다. 좀 더 많은 전력 소비를 위해 지어진 핵발전소가 폭발한 이유는 다름아닌 핵발전소를 감당해 내야 하는 전력 때문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빤히 지켜보고 있으면서도 좀 더 많은 전력 소비를 위해 핵발전소 건설을 부르짖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탐욕으로 얻은 것 중에 안전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성인처럼 탐욕을 말끔히 비우고 살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다만 조금씩 그 탐욕을 줄여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탐욕스럽게 집을 지으면서 뭇 생명들과 맺은 악업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  내 가 감당하고 풀어나가야 할 악업인 것입니다. 집짓기 전에 석고대죄 하듯 터에 깃들어 살던 뭇 생명들에게 그 죄를 낱낱이 고했지만 당하는 생명들 입장에서는 그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겠습니까? 결국 내 스스로 위안을 삼았을 뿐입니다.

하여 그 악업을 조금이라도 덜어내기 위해 집 주변 밭에 좀 더 많은 나무를 심기로 했습니다. 밭을 줄여 밭작물을 덜 먹으면 됩니다. 내가 장작보일러를 지피는 나무만큼은 턱도 없는 수치지만 그 나무에 뭇 생명들이 깃들게 될 것이고 나 또한 나무가 주는 열매를 얻을 수 있어 더불어 좋은 일이라고 봅니다.

망가진 뭇 생명들의 상처가 조금씩 치유되듯 작년에 심었던 매실 나무에서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매실나무, 감나무, 참 다래, 석류나무 등 20여 그루의 나무를 심었습니다. 나무를 심은 그 다음 날부터 내내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다락방 창문 너머로 달콤하게 내리는 빗줄기를 보면서 혀끝으로 입안을 쓸어 봅니다. 이빨이 빠져 나간 휑한 입안, 누군가 성성한 치아는 오복 중에 하나라 했습니다. 하지만 고기를 씹지 못하는 것은 여섯 번째 복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치아 없는 아기가 고기에 대한 식탐 없이 본능적으로 어미의 젖을 빠는 것처럼 말입니다.

육식에 대한 식탐을 줄여나갈 수밖에

죽은 고목에서 새순이 돋듯 나에게 과연 그런 여섯 번째 복이 있을까? 아기처럼 육식을 하지 않는 여섯 번째 복, 하지만 며칠 후 틀니를 끼워 넣고 나서도 과연 돼지 삼겹살에 군침을 흘리지 않을 수 있을까?  다락방에서 내려와 보니 아내가 '삼겹살 사건' 이후 육식을 까마득히 잊고 있던 내 식탐을 시험하듯 가스렌즈에 뭔가를 바글바글 끊이고 있었습니다.

"그게 뭐여?"
"이거, 소뼈 좀 사왔어 인상이 녀석이 뼈국을 먹고 싶다고 하길래..."

아내가 소뼈를 사다가 사골국을 끊이고 있었습니다. 이층에서 떨어져 여전히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인상이 녀석이 요즘 사랑니 때문에 통 입맛이 없는 모양입니다. 사랑니는 보통 열여덟 살이 넘어야 나온다는데 녀석은 올해 열여섯 살, 벌써 사랑니가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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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했던 골반 뼈가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있는 인상이 녀석이 병실에서 기타를 치고 있습니다. 사랑니로 입맛을 잃은 녀석이 뼈국을 찾은 것은 식탐일까? ⓒ 송성영


녀석의 성장 속도만큼 빠른 것이 또 있었습니다. 수술 했던 골반 뼈가 빠른 속도로 재생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의사 말로는 열흘 쯤 지나야 수술한 골반 뼈 사이에서 진이 나오는 게 보통인데 녀석은 일주일도 채 안 돼 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엉덩이에 세 개의 쇠를 박는 수술을 마치고 나오자마자 베시시 웃던 녀석, 어려서부터 산과 들을 쏘다니며 놀았던 건강 체질 밥돌이의 위력을 또다시 실감했습니다.

"요즘 채식주의자가 다 되어가고 있는디, 갈등 생기네..."
"사골은 고기가 아니잖어?"

'사골은 뼛속까지 우려내는 것인데 고기를 먹는 것보다 더 잔혹한 것이 아닌가? 그래도 아내 말대로 사골은 육식을 탐하는 것과는 상관없지 않은가? 인상이 녀석이 뼈국을 찾은 것은 식탐일까? 어긋난 골반 뼈를 바로 잡기 위한 본능적인 욕구이기에 식탐이라 할수 없지 않은가...'라는 나름대로의 기준을 정해 놓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기준의 폭이 넓어지는 만큼 그 어떤 생명이 죽음을 맞이할 것입니다. 그 죽음을 불러일으키는 식탐으로 인해 알게 모르게 고통 받게 될 것입니다. 그 사실을 빤히 알면서 그날 나는 사골 국 한 사발을 맛있게 먹어 치웠습니다. 채식주의자가 되는 길은 멀고 험난했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채식주의자가 되기보다는 육식에 대한 식탐을 줄여나갈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채식주의자 #식탐 #악업 #재앙 #여섯번째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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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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