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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촛불 전에 시애틀 축제가 있었네

[영화로 읽는 세상이야기 54] 다시 보는 희망 만들기 <배틀 인 시애틀>

10.11.03 16:31최종업데이트11.05.24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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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성 질환으로 죽거나 고통 받는 사람의 90%가 제3세계 국민입니다. 매년 1400만 명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약값이 더 싸면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으나 너무 비쌉니다. 선진국들이 약값 인하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러분 자식이 아프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치료법이 있는 걸 뻔히 아는데 단지 돈이 없어서 죽어가는 자식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면 말입니다. 여러분에게는 변화를 이끌어낼 힘이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에이즈에 걸린 어린이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회의에 참석한 '국경없는 의사회' 소속 의사 마릭은 찬밥 신세가 되자 준비해 온 원고를 집어 던지며 분노에 찬 목소리로 일갈합니다. 이 장면은 1999년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국제무역기구(WTO) 3차 각료회의를 저지하기 위해 왜 '시애틀에서 전투'를 치를 수밖에 없었는지를 읽게 해주는 상징적인 대사입니다.

평범한 시민들의 힘으로 과연 또 다른 세계를 만들 수 있을지, 그 가능성과 희망을 세미다큐멘터리 기법으로 스크린 가득 채운 영화 <배틀 인 시애틀>(2007)입니다.

민주주의와 WTO는 가는 길이 정반대다

시애틀 시가지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타워 크레인에 민주주의와 WTO가 정반대로 가는 화살표 모양의 펼침막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 인사이트 필름 스튜디오·하이드 파크 프로덕션


영화는 WTO 밀레니엄 라운드를 코앞에 둔 1999년 11월 29일부터 12월 3일까지 5일간 시애틀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현장을 보여줍니다. 이 거리 저 골목을 누비며 날 것 그대로 영상은 펄떡펄떡 살아 숨쉽니다. 

11월 29일. 시애틀 도심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타워 크레인에 환경운동가 제이(마틴 헨더슨) 등 일군의 활동가들이 올라가 '민주주의와 WTO는 가는 길이 정 반대'라는 뜻의 펼침막을 내겁니다. 반면 시애틀 시청에서는 WTO 개막 최종 점검 회의를 위해 시장과 경찰청장이 분주히 움직이는 가운데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냅니다.     

11월 30일. 메모리얼 스타디움에서 WTO 반대와 자유무역 반대를 외치며 행진하던 당시 집회 장면과 함께 투쟁은 불붙기 시작합니다. 이들은 원형의 통 안에 서로의 손을 쇠사슬로 묶은  '인간 블록'으로 회담장을 원천봉쇄하고, 도심 외곽 교차로 곳곳을 인간 블록으로 점거한 채 '더 나은 세상'을 외치며 135개 회원국 대표단의 접근을 차단해 버립니다.

해산 작전에 돌입한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과 최루액을 퍼부으며 도심은 한 치 앞도 분간 못할 지경이 됩니다. 그 와중에 일부 아나키스트(블랙 블록) 행동대원들이 상점 유리창을 부수는 등 폭력적 양상을 띠자, 당국은 기다렸다는 듯이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주 방위군을 투입하는 한편 통행금지령을 내립니다. 이윽고 경찰이 시위대 얼굴(특히 눈)을 겨냥해 최루액을 살포하면서 곤봉을 휘두르는 무자비한 진압이 시작됩니다.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아비규환의 도시에서 임신 5개월의 엘라(샤를리즈 테론)가 매장 문을 닫고 집으로 돌아가려다 경찰의 곤봉에 아랫배를 강타당하고 하혈을 하며 쓰러집니다. 유산 소식을 듣고 남편 데일(우디 헤럴슨)이 진압복 차림으로 병원을 찾지만 엘라는 한사코 그를 밀어 내기만 합니다.

병원 안에서는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엘라의 눈물과 형언할 수 없는 데일의 표정이 교차하고, 밖에서는 최루탄 쏘는 소리와 함성 소리가 교차하는 가운데, TV 뉴스는 이날의 비폭력 평화시위를 '시애틀 전투'라고 부르기 시작합니다.

광화문 촛불 축제 전에 시애틀 축제가 있었네

반세계화 시위대와 대치중인 경찰. 비폭력에 평화적으로 시위하는 시위대를 향해 경찰의 진압작전이 펼쳐지고 시가지는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 인사이트 필름 스튜디오·하이드 파크 프로덕션


영화는 오프닝 전 2차 세계대전 후 미국 주도의 자유무역을 위해 만들어진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를 대체하기 위해 1995년에 설립된 WTO가 글로벌 불균형이 비등해지면서 중재자 역할을 자임해 온 그 역사적 과정을 개략적으로 설명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습니다. 앞서 마릭의 호소와 제이가 시위 중 TV 인터뷰를 통해 "다른 행성들은 5억 년 동안 아무렇지도 않은데 왜 유독 지구만 오물로 뒤덮이고 있는지를 세계에 알려야 한다. 기업의 세계 지배가 더 이상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우리는 투쟁한다"고 한 말은 이를 뒷받침합니다. 반세계화 운동의 서막을 알린 '시애틀 전투'가 개전된 짧고 간결한 이유입니다.

1999년 당시 '시애틀 전투'는 영화처럼 고작 수백 명의 활동가들이 도로를 점거하는 상징적인 시위로 점화됐습니다. 하지만 학생들과 일반시민들까지 합류하면서 규모가 커져 회담장인 컨벤션 센터를 완전히 둘러싼 채 드러누워 버립니다. 마치 2008년에 거대한 촛불의 물결에 청와대가 고립되고 '어마뜨거라'며 부리나케 '명박산성'으로 방어했던 것처럼.

당황한 당국이 강경진압으로 돌아서자 분노한 시애틀 시민들이 거리로, 컨벤션 센터로 몰려나오면서 전세는 역전되고 전 세계가 주목했던 민주주의를 향한 '시애틀 전투'는 축제로 승화됐습니다. 군홧발과 방패에 짓밟혀 닭장차에 끌려가고 살수차에 나뒹굴수록 손에 손에 촛불을 켜고 광화문으로 모였던 촛불 축제처럼.

12월 1일 '시애틀 전투' 3일째. 시위대가 '평화 시위'를 연호하며 도로 위에 앉거나 입에 테이프를 붙인 채 비폭력 무저항을 하지만 경찰은 고무탄까지 발사하며 체포 작전에 돌입합니다. 휴가를 거부당한 채 폭발 일보 직전의 데일은 대치 중인 제이를 두들겨 패고 결국 제이는 만신창이가 된 채 체포당합니다. 

WTO 회의 결렬시키고 100만 달러 배상까지 받다

시애틀 경찰서 유치장 담벼락 밑에서 시민들이 손으로 브이 자를 그리며 수감 중인 동료들에게 ‘시애틀 전투’의 승리를 합창으로 전하고 있다. ⓒ 인사이트 필름 스튜디오·하이드 파크 프로덕션


'시애틀 전투'에서 제이와 장고 등 활동가들은 휴대폰과 노트북을 이용해 작전을 짜고 거리 시위를 이끌어갑니다. 이른바 인터넷을 중심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시민들의 요구사항을 표현하는 시민 저널리즘이 싹트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것은 그 뒤 2001년 7월 제노바의 G8 회의와 2003년 칸쿤에서 그리고 2005년 홍콩 각료회의와 2007년 G8회의 등을 거쳐 마침내 2008년 광화문 촛불에서 만개하기에 이릅니다.

최첨단 장비를 이용한 '시애틀 전투'는 12월 2일부터 시작된 석방집회로 총화됩니다. 시장과 협상을 하며 압박하는 한편 시애틀 경찰서 밖에 집결한 수천 명의 시위대는 체포된 600여 명 시위대의 전원석방을 위해 구호를 외치고 안에서는 손을 들어 화답합니다.

"우리가 보고 있다. 당신들은 혼자가 아니다! 시민들이 함께 싸우고 있다. 전 세계 30개 도시에서! 우리가 함께 할 것이다. 그대들이 석방될 때까지! 우리가 단결하면 지지 않을 것이다!" 

이튿날, 유치장 앞의 시위 모습이 방송을 타고 더 많은 시민들이 참여하고 노동계에서 시위대를 석방하지 않으면 총파업을 단행하겠다며 연대 투쟁에 나섭니다. 그리고 유치장 밖에서 시민들이 동료들을 향해 입을 모아 '합창'을 하며 덩실덩실 춤을 춥니다.

"WTO 각료회의는 완전히 결렬됐다! 수감자 전원이 석방될 것이다!"

전 세계 활동가들과 시애틀 시민들의 자발성과 다양성이 만들어낸 하모니 '시애틀 전투'는 7년여가 흐른 2007년 당시 연방법원에서 시위에 참여했다 체포된 175명에 대해 평화로운 시위대의 헌법적 권리인 집회의 자유를 침해한 데 대해 시 당국이 책임을 지고 모두 100만 달러를 배상하는데 합의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1999년 시애틀 그리고 2010년 서울... '전투는 계속된다'

뿐만 아니라 시애틀시는 경찰의 초과근무수당과 청소비용 등으로 6백만 달러를 추가로 들여야 했습니다. 당시 경찰청장은 과잉진압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임했으며, 폴 셸 시장은 차기 선거에서 낙선했습니다. 호미로 막으려다 초가삼간 태운 꼴입니다.

WTO는 세계은행 및 IMF와 함께 삼위일체를 이뤄 글로벌 불균등을 심화시키고 있으며, 그 위에 G20은 걸터앉아 있습니다. 문제는 G20 역시 G8처럼 임의로 구성된 기구이자 무형의 모임이라는 점입니다. WTO 등과는 달리 본부도 없습니다. 만나봤자 별다른 성과 없이 입장차만 확인하고 친목도모로 소일해 끊임없이 무용론이 제기되어 온 G8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는 국운을 걸고 호들갑을 떨고 있습니다.

지난 6월 캐나다가 토론토에서는 G20 4차 회의를 개최하면서 무려 8억9700만 달러(1조1000억여 원) 쓴 것으로 밝혀져 캐나다 사회가 발칵 뒤집어졌습니다. 소수의 사람들을 위해 사흘간 시간당 1200만 달러를 썼기 때문입니다. 이번 서울 G20에 이명박 정부가 얼마나 쏟아 부을지 지켜봐야 할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하여, 우리는 서울 G20에 따져 물어야 합니다. 제3세계의 고용과 실업, 환경과 건강 같은 의제에 관심이 있냐고. 사실은 국제금융질서의 패권을 누가 움켜쥘 것인가에 관심이 쏠려있는 것 아니냐고. 캐나다에선 경제적 파급효과가 5천만 달러 안팎이고 호텔업계와 식당, 택시업계가 재미 본 정도라고 하는데, 어떻게 서울에선 5조 원 이상의 경제적 효과를 볼 수 있느냐고. 혹시 G20과 민주주의는 가는 길이 정반대 아니냐고.

1999년 11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이 11년이 지난 2010년 11월 서울에서 어떤 모습일지 알 수 없습니다. 훗날 역사가 11월 11일을 어떻게 평가할지 현재로선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영화의 마지막 자막이 희망의 역사를 증언하려는 듯이 스크린을 밝히고 있습니다.

"전투는 계속 된다…."

배틀 인 시애틀 WTO 서울 G20 세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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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호열의 영화로 읽는 세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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