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아야지...참아야지..." 홈쇼핑 끊으니 금단증상 심각

[쓰레기 이동을 막아라-홈쇼핑①] 홈쇼핑 시청자의 2주일 동안 안보기 체험

등록 2008.06.04 11:12수정 2008.07.28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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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올 한 해 동안 연중기획으로 '쓰레기와 에너지'를 다룹니다. 지난 5월에 '친환경 결혼'을 주제로 쓰레기 문제를 다뤘고, 6-8월은 '쓰레기 이동을 막아라'는 주제를 통해 쓰레기 감량과 재활용 없이는 결국 쓰레기 절대치가 변함이 없다는 점을 확인할 계획입니다. 이번엔 매일 홈쇼핑 시청자와 홈쇼핑 미시청자가 서로 역할을 바꿔, 홈쇼핑이 우리 소비 행태에 미치는 영향을 돌아봅니다. <편집자주>

평소 쇼핑을 즐기긴 했지만, 쇼핑 중독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런데 어느날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오마이뉴스 편집부다.

 

"소문 듣고 연락했습니다.(무슨 소문?) 이번에 '쓰레기의 발생-이동-처리'에 관한 기획을 하고 있습니다. 그 중 홈쇼핑에 관한 비교 실험을 기획했습니다. 홈쇼핑은 집에서 워낙 손쉽게 물건을 살 수 있기 때문에 불필요한 물건을 사게 되고, 그로 인해 쓰레기가 많이 일어납니다. 택배과정에서 버려지는 포장 쓰레기도 엄청나지요. 오마이뉴스가 쓰레기 관련 기획을 하면서 홈쇼핑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기 위해 평소 홈쇼핑을 즐기는 분과 전혀 하지 않는 분들 간에 역할 바꾸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가능하시겠습니까?"

 

허걱, 순간 해보고 싶다는 호기심과 과연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동시에 밀려들었다. 호기심은 두려움을 이겼다. 하지만 결정을 한 그 순간부터 걱정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매일 밥 먹듯이 하던 일을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내가 너무 섣불리 결정한 것은 아닐까.

 

중독 단계는 아니니까 2주 정도 참는 거야 가능할 것도 싶다. 그런데 2주가 왜 이렇게 길게 느껴지지? 여기에 12일 동안 TV와 인터넷 홈쇼핑을 끊으면서 겪게 된 과정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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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내역이 가득한 메일통. ⓒ 김혜원

주문내역이 가득한 메일통. ⓒ 김혜원

 

[5월 18일 D-1일] 온라인 쇼핑 안하기...잘 할 수 있을까?

 

내일부터는 인터넷 쇼핑몰도 TV홈쇼핑도 보아서는 안 된다. 지구상에 넘쳐나는 쓰레기 문제를 다루면서 쓰레기의 발생 단계인 구매문제부터 살펴보겠다는 오마이 뉴스의 실험 '쓰레기 이동'에 동참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아이쇼핑이든 실제 구매든 하지 않기로 약속했으니 사고 싶은 것이 있으면 오늘 안에 사야 한다. 5월 30일 이사를 앞두고 있기에 사야할 것들이 적지 않다. 이번 기획을 한달쯤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은 다행이다. 미리 미리 필요한 것들을 주문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들이 하나 둘 생각나면 어쩌지?

 

오래된 정수기를 바꾸려고 했는데 마침 홈쇼핑에서 내가 원하던 정수기를 팔고 있다. 다행히 주문을 할 수 있었다. 내일부터는 절대 온라인 쇼핑은 보지도 하지도 말아야 한다지만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5월 19일 D-DAY] "안돼, 안돼 보면 안돼"

 

아침식사를 끝내고 한가하게 앉아 TV앞에 앉는다. 한손으로는 신문을 넘기며 화면을 응시한다.

 

"주문시간 30분 남았습니다. 이런 조건에 이런 가격 흔치 않죠."

 

'뭔데? 어허~ 음식물 처리기. 그래 저거 있으면 참 편리할 거야...아~ 사고 싶다... 아참, 홈쇼핑 안보기로 했지. 아차차!!!'

 

나도 모르게 넋을 놓고 빠져버린 홈쇼핑. 약속이 떠올라 황급히 채널을 돌린다. 심심하다.  신문을 펴니 백화점 세일전단이 떨어진다. 꿩 대신 닭이라고 백화점 광고지를 꼼꼼히 살펴보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랜다.

 

광고 전단을 분리수거함에 넣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포털에 접속하니 화려한 인터넷 쇼핑몰 광고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안돼, 안돼 클릭하면 안돼.'

 

메일통에는 그동안 애용했던 인터넷 쇼핑몰에서 온 수십 건의 광고메일이 군침을 삼키게 한다.

 

'할인티켓이 발행되었습니다.', '금주특가.', '인터넷 최저가.', '최신유행'....

 

쇼핑관련 메일을 열어보지 않고 쓰레기통으로 보낸다. 열지도 않고 버리려니 뭐가 들어있나 궁금해 죽겠다.

 

[5월 20일 2일째] 쇼핑을 끊으니 인생이 재미없네

 

정말 쇼핑을 하지 말아야 하나? 하루 종일 쇼핑에 관심을 끊고 사는 것이 이렇게 재미없는 인생일줄 몰랐다. 텔레비전을 보든 신문을 보든 심지어 인터넷에서 기사를 검색하든 이젠 모든 것이 쇼핑과 연관되어 궁금해진다.

 

'저 사람이 입고 있는 옷은 어디서 얼마에 파는 걸까?'

'소형 노트북이 나왔다는데 어디서 얼마에 파는 걸까?'

'냉장고 정리의 달인-바구니와 소쿠리 플라스틱 정리함은 얼마나 하나?'

뭔지 모르게 자꾸만 불안하다. 이게 소위 말하는 금단증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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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쇼핑 판매상품은 2중, 3중 포장으로 쓰레기를 많이 만든다. ⓒ 김혜원

홈쇼핑 판매상품은 2중, 3중 포장으로 쓰레기를 많이 만든다. ⓒ 김혜원

[5월21일 3일째] 쇼핑을 잊기 위해 외출을 했다 

 

쇼핑과 관련된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외출을 한다. 차라리 TV나 컴퓨터가 없는 곳에 가 있으면 잊을 수 있겠지. 쇼핑을 잊기 위해 하루 종일 사람을 만나고 피곤하게 일을 했다. 하지만 왠지 채워지지 않는 이 허전함은 무엇일까?

 

스트레스 때문인지 단 음식을 잔뜩 먹었다.

 

[5월 22일 4일째]  이 기간만 지나면 아주 하루 종일 보리라

 

감기에 걸렸다. 콧물에 미열에, 몸이 아파 다른 일은 아무것도 못하겠는데 와중에도 여전히 홈쇼핑과 인터넷 쇼핑이 궁금하다. 이리 저리 채널을 돌리다 잠깐씩 보이는 홈쇼핑 방송에 눈이 간다.

 

N홈쇼핑에서는 해삼을 팔고 있고, G홈쇼핑에서는 체리를 팔고 있다. 둘 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음식이다. 저걸 주문해서 먹으면 감기가 뚝 떨어질 것 같지만.

 

참아야지... 참아야지... 결국 5초 만에 채널을 돌렸다. 

 

'이 기간만 끝나면 실컷 보리라. 아주 하루 종일 보고야 말리라.'

 

그 날 저녁. 방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남편이 다급하게 나를 찾는다.

 

"여보 C홈쇼핑 좀 봐. TV판다. 우리가 사고 싶어 했던 그거. 가격 좋은데. 얼른 봐봐."

"안돼. 당분간 홈쇼핑 안보기로 약속 했어 쇼핑금지 아이쇼핑도 금지."

"어이구~ 내일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 그냥 보고 안 봤다면 되지 뭘 그러냐?"

"아냐. 나도 한번 해보고 싶어. 이 실험의 끝이 어떻게 날지 나도 궁금하거든."

"지름교 교주가 무슨 일이래. 결심이 대단한 걸. 하지만 며칠 못 갈 텐데."

 

도와주기는커녕 약을 올리는 남편. 정말 밉상이다.  

  

[5월 23일 5일째] 군대 간 작은아들이 휴가를 나왔다

 

군에 간 작은아들이 병장계급장을 달고 휴가를 나왔다.

 

'아들하고 시간을 지내다보면 쇼핑을 좀 잊을 수 있겠지.'

 

아들이 점심을 먹더니 동대문 시장에 간단다. 청바지를 하나 사 입겠단다. 가는 길에 나도 집에서 입을 만한 가디건을 사다달라고 부탁했다. 아들에게 대신 쇼핑을 부탁하면서 쇼핑을 하고 싶은 마음을 조금 위로 받는다.

 

간접쇼핑도 쇼핑인가?

 

[5월 24일 6일째] 평소에 절대 쇼핑중독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이사 갈 집의 잔금을 치르는 날이다. 일주일 후에 이사를 가려면 이것 저것 사야할 것도 많은데 벌써 6일째 아무것도 사지 못했다.

 

잔금을 치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우유와 반찬거리 몇 가지를 사기 위해 집 근처 쇼핑센터에 들렀다. 식품매장으로 직행해야 하는데 발은 자꾸만 다른 곳을 향한다.

 

신발매장 앞에서 발길을 멈춘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본 샌달. 얼마냐고 물어보니 내가 알고 있는 인터넷 판매가보다 훨씬 비싸다.

 

'역시 인터넷 쇼핑이 좋아. 쇼핑 금지기간이 지나면 인터넷으로 사야지.'

 

사고 싶은 심정을 억누르며 식품매장이 있는 지하가 아닌 2층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에 오른다. 그리고 2시간 후.

 

양손에 쇼핑백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참고 참았던 쇼핑욕구가 한 순간에 폭발해버렸는지 평소보다 훨씬 많이 쇼핑을 한 것이다.

 

치마 하나, 바지 하나, 티셔츠 두개, 블라우스 하나.

 

정작 애초에 사려고 했던 식품은 우유1리터와 돼지고기 한 덩어리가 전부다. 평소에 나는 절대 쇼핑중독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병은 병인가 보다.

 

[5월 25일 7일째] 일을 하니 차라리 쇼핑을 잊을 수 있다

 

이사 갈 집에서 하루 종일 청소를 했다. 일을 하니 차라리 쇼핑을 잊을 수 있다. 쇼핑 중독증이라면 하루 종일 바쁘게 일을 하며 쇼핑욕구를 잊어보는 것도 방법일 듯하다.

 

[5월 26일 8일째] 나의 참을성도 한계에 다다른 것 같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커튼이 새집 창에는 맞지 않는다. 버티컬을 달아야 하는데 어쩌나. 에라 모르겠다. 약속한 30일이 아직 안 되었지만 30일 이후에 사나 그전에 사나 다른 것이 무엇이랴. 나의 참을성도 한계에 다다른 것 같다.

 

결국 인터넷 쇼핑몰을 한 시간을 뒤져서 마음에 드는 버티컬을 맞췄다.

 

'음 바로 이 맛이야.하지만 밀려오는 이 열패감은 뭐람.'

 

[5월 30일 12일째] 쇼핑중독 확인! 이젠 기획구매를 할 수 있을까

 

이사를 했다. 내일로 인터넷, TV홈쇼핑 금지가 풀린다. 그동안 한번 아니 두 번 약속을 어겼지만 그래도 초인적으로 잘 참아왔지 싶다.

 

애초 이번 기획의 의도는 홈쇼핑이 불필요하게 물건을 사게 만들고, 그에 따라 쓰레기가 많이 생긴다는 가정을 확인해본다는 취지였지만 나한테는 의도했던 결과가 나온 것 같지는 않다. 아마 12일동안 실험기간이 습관을 바꾸기엔 너무 짧았기 때문이리라.

 

소득이 있었다면 나에게 쇼핑중독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홈쇼핑을 끊었을 때 나타난 금단증상도 경험할 수 있었다.   

 

쇼핑중독의 심각성을 체험했으니 이제는 기획구매를 하고 충동적인 쇼핑과는 인연을 끊어야 할까? 머리는 그래야 한다고 하지만 귀는 여전히 쇼 호스트의 현란한 말짓을 향해 열려있고 손과 눈은 인터넷 쇼핑몰을 헤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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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언론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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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한국언론재단 기획취재 지원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이뤄졌습니다.
#쓰레기 #홈쇼핑 #쇼핑중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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