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시대, 대기업 로마의 교훈은?

[로마인 이야기] 대기업 로마의 경영전략으로부터 배운다

등록 2007.07.01 10:35수정 2007.07.01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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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에서는 그리스인보다 못하고, 체력에서는 켈트인이나 게르만인보다 못하고, 기술력에서는 에트루리아인보다 못하고, 경제력에서는 카르타고인보다 뒤떨어지는 것이 로마인들이라고, 로마인들 스스로가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 1권 서두에서 이렇게 말하면서 어떻게 로마가 커다란 문명권을 형성하고 유지할 수 있었는지에 의문을 제기한다. 개별적인 조건만을 분리해 놓고 보면, 시오노 나나미뿐 아니라 로마사에 관심을 둔 사람들이 이러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는 로마인을 하나의 민족으로 규정했다는 잘못된 전제가 내재 되어 있다. 로마는 하나의 민족으로 이뤄진 민족 공동체가 아니었다. 최초의 로마는 라틴족에 의해 건설됐지만, 건국 후 사비니족을 시작으로 타민족을 포섭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로마는 그리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다민족 국가가 된 것이다. 타국의 민족에 비해 열등하다고 평가받는 로마인들이 다른 국가들을 복속시키고 대 제국이 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

로마에는 그리스인도, 켈트인도, 에트루리아인도, 카르타고인도 모두 속해 있었고, 거기에 덧붙여 건국 후부터 계속해서 타민족을 수용해 온 역사에 맞게 이들의 좋은 면을 수용해 나가는 개방성도 지니고 있었다. 그렇기에 두드러진 장점이 없었을지는 모르지만 로마는 종합적인 면에서 타민족을 능가할 수밖에 없었다.

우수하지 않은 국가는 결코 패권을 장악할 수 없다. 로마의 패권 장악은 단순히 타민족에, 운에 의존한 결과물이 아니다.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구멍가게 로마가 대기업으로 발전할 수 있었는지, 또 어떤 방법으로 밑바닥부터 출발해서 일구어 놓은 대기업을 천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유지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답을 로마인들이 로마를 경영한 방법을 알아봄으로써 찾아낼 수 있다. 또 로마에 대한 성찰을 통해 우리는 하나의 작은 기업이 세계에 어떠한 방식으로 도전장을 내밀어야 하는지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로마의 평등한 인재 등용 방식

현대의 세계는 로마가 존재했던 고대와 비교할 때 그 무대가 훨씬 넓다. 가치관도 풍습도 고대와 현대는 비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차이가 크다. 그러나 부와 권력에 대한 인간의 가치관은 변화하지 않아서일까, 역사는 발전해 나가면서도 끊임없이 순환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원전부터 존재했던 로마의 경영 방침은 현대의 기업 역시 본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로마가 하나의 거대 기업으로서 성공할 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일까. 그 첫 번째 이유로 로마의 인재 경영방식을 들 수 있다. 대부분의 고대 국가에서는 신분이 개인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그러나 로마에서 개인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은 타고난 신분이 아니라 능력이었다. 로마인들은 공화정 이전의 왕정 시기부터 정착한 지 십 년이 될까 말까 한 외국인이나 출신이 불분명해 노예였을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있는 사람도 왕으로 맞을 정도로 능력 있는 개인에게 우호적이었다.

이러한 포용성은 공화정으로 넘어간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최고 권력자인 집정관도 평민과 귀족이 차별 없이 선발될 정도로 인재 등용에서 개방적이었다. 고등교육을 받지 않은 마리우스조차 집정관에 당선된 로마에 반해 현대의 우리 기업은 학연과 지연에 얽매여 창의성 있는 인재를 발탁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개인에게 능력이 있다고 판단되면 학벌이 대단치 않고 배경이 보잘 것 없어도 CEO 자리에 앉혔던 로마에 비해 우리 기업은 신입사원을 뽑는 데도 출신에 연연하고 있는 것이다. 인재 등용에서 배경에 구애받지 않았던 로마의 과감성은 우리 기업이 본받아야 할 경영 방침 중 하나다.

로마의 평등한 인재 등용은 사회적 단결에도 큰 역할을 했다. 평민 계급과 귀족 계급의 대립은 이러한 인재 등용을 통해서 해결한 것이기도 한데, 로마 내 기업 구성원의 단결은 로마가 세계로 나아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나라가 불안정하면 국가에서는 내분이 일어난다. 특히 기득권이 맞물린 계층끼리는 더더욱 그러한데, 로마는 이러한 내분을 각 계급이 손을 잡음으로써 해결한 것이다.

기업 구성원의 단결은 기업 내의 이익 집단들이 서로에게 양보함으로써만 실현될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단결력이 와해되는 예로 노사 분쟁을 들 수가 있는데, 실제로 노사 분쟁에서는 노·사 양측 다 자기 집단의 이익만을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갈등을 얼마나 현명히 타협하여 해결하느냐가 기업의 단결력을, 그리고 더 나아가 그 역량까지 결정하는 것이다.

상당히 효율적인 대기업 로마의 M&A 전략

로마는 결과적으로 그들의 단결력을 기반으로 타국을 포섭하고 패권을 장악했다. 그 과정에서 로마인들은 자기가 장악한 도시를 약탈하거나 유린하지도 않았으며, 그 도시에 살던 시민들을 노예로 삼지도 않는 관용을 보였다. 심지어 그들은 타국민의 지도층들을 로마의 지도층으로 편입하기까지 했다. 이들은 노예를 늘리는 대신 시민을 늘려 군사력, 즉 기업의 자산을 증식했고, 흡수한 회사의 간부들을 다시 채용해 새로운 회사를 보다 효과적으로 경영할 수 있었던 것이다.

대기업 로마의 M&A는 상당히 효율적이었으며 전략적이었다. 그리고 패자도 포용하는 윈-윈을 추구했다. 로마인들은 무차별 합병보다는 기업의 내실을 쌓는 것을 추구했다. 로마인의 이러한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한니발이 로마 연맹의 해체에 애를 먹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훌륭했던 점은 로마인들이 이러한 합병 과정에서 회사에 손실을 입힌 인물들을 벌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들은 계층이나 타국에 대해서뿐 아니라 패자에 대해서도 관용을 베푼 것이다. 물론 이는 순수하게 관용에서 기인했다기보다는 귀족 계층이나 평민 계층의 CEO를 처벌하여 다른 계층의 반발을 사지 않고자 한 전략적인 이유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들의 패배자에 대한 포용은 로마의 경영에 큰 도움이 되었다.

또 처벌받지 않는다는 장점은 전투에 임하는 장군의 판단이 패배에 대한 두려움으로 흐려지지 않게 하는 데 도움을 주었고, 패배한 장군들은 다시 전투에 임할 때 자기의 실수 원인을 되짚어 볼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용서받은 장군들은 과거의 패배를 미래의 승리로 이끌었다. 더불어 로마인은 전쟁에서는 각 지휘관에게 전권을 위임했는데,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결단을 내리기 위해서 왕에게 허락을 받아야 했던 타국과는 달리 로마는 실제 상황에 빠르고 유연성 있게 대처할 수 있었다.

현대의 기업 역시 많은 협상을 거치며 전쟁을 한다. 윈-윈이 가능한 협상도 있지만, 승자와 패자의 구별이 뚜렷한 협상에 임해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협상에 임하는 직원을 전폭적으로 신뢰해 주는 것, 그리고 그 직원이 실패를 하는 경우라도 책임을 추궁하지 않는 것. 이는 기업이 협상에서 승리하고자 한다면 수용해야 할 비법이다.

기업이 잘 운용되기 위해서 좋은 인재가 필요하다는 것은 처음에 언급한 사실이다. 로마인들은 배경에 연연치 않고 끊임없이 새 인재를 등용했는데, 그것은 집정관의 임기가 그만큼 짧았고, 종신제였던 원로원 역시 전쟁을 통해 계속해서 교체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한 기업이 선별해서 등용한 인재들이 충분한 실무 경험을 쌓은 뒤 새로운 CEO의 임명과 함께 직장을 떠나버린다면, 그 기업은 손실을 보는 게 아닌가. 그러나 전(煎) 집정관은 새로운 집정관이 임명되면서 정치적 지위가 낮아져도 개의치 않고 새 직위에 머물러 일했다고 한다. 로마인들의 태도에서 가장 본받을만한 점이 이 점이 아닌가 한다.

물론 앞에 언급했던 다른 이유들이 없었다면, 로마가 세계적인 기업으로 부상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상위직에서 밀려난 로마인들이 하위직에서 일하는 걸 불명예스럽게 여겼다면, 세계적인 기업이 된 로마가 이를 유지하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다. 상위직에 있었던 사람이 하위직에서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인적 자원의 손실이다. 더 나아가 장기적으로는 상위직에 있었던 사람들이 아예 그 자리를 지키고자 한 것이다. 그렇게 되면, 초기의 로마가 새로운 인재를 등용해 발전을 꾀할 수 없었다는 건 자명하다.

40·50대의 대기업 간부들이 많이 퇴직하는 것은 애써 키워놓은 인재를 늙었다고 퇴물 취급하는 기업 내 분위기도 조성되어 있지만, 더 낮은 지위에서 일하는 것에 대한 요구를 사표를 쓰라는 요구와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기업은 경험자를 예우하는 태도를 그리고 기업 구성원은 어떤 직책을 맡아도 명예롭게 일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 것이다.

세계화시대 우리 기업의 좋은 모델

로마에는 역사적으로 뛰어난 인물들이 많이 있었다. 그러나 로마에 영웅이 출현할 수 있었던 것은 로마인들의 개방성 덕분이었다. 그 시대 배출된 타국의 영웅들은 모두가 왕이나 귀족이었다. 로마인이 자랑하는 카이사르는 집안은 명문이었으나 집정관도 한 세기에 한 명을 배출한 보잘것없는 집안에서 태어났었고, 그가 로마를 전성기에 올려놓기까지의 반석을 깔아 준 많은 집정관들은 평민 출신이었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구멍가게가 대기업이 되기까지는 부단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고, 효과적인 전략이 필요했던 것이다. 로마인들은 그들의 방식에 맞춰서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그들의 기업을 경영했던 것이다. 물론 로마 역시 후에 쇠퇴기를 맞으면서 초기의 장점을 많이 잃어간다.

그러나 점차적으로 발전했던 로마, 그 로마를 천 년이나 유지했던 로마인들의 역사는 로마의 쇠락에도 불구하고 세계화 시대 우리 기업의 좋은 모델이 된다. 우리의 기업도 세계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로마와 같은 노력과 시간과 전략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로마의 본받을 점은 본받되 로마를 모방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알렉산더 대왕의 전략을 자기(自己)에 맞게 구사한 카르타고인 한니발, 그의 전략을 다시 수정해 본받아 로마를 일군 스키피오와 같이 우리도 로마의 역사를 우리에 맞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꺼이 새로운 전략을 도입할 과감성과 의지, 그리고 꾸준한 노력이다.

로마인 이야기 1 (1판 1쇄) -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한길사, 1995


#로마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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