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겨울만 되면 대어급 FA(자유계약선수) 선수들의 움직임에 모든 구단의 관심이 쏠렸다. 해를 거듭할수록 금액은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구단들의 치열한 눈치싸움에 시장 분위기가 과열됐다.

손 놓고 지켜볼 수 없었던 구단들은 하나둘 움직이기 시작했다. '비(非)FA 다년계약'이라는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FA 자격을 취득하기 전에 미리 원소속구단과 장기계약을 맺음으로써 구단은 일찍이 전력 누수를 방지하고, FA에 대한 부담을 덜어낸 선수는 '프랜차이즈 스타'로서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을 수 있다.

지난 시즌 개막에 앞서 비FA 다년계약을 체결한 선수는 크게 다섯 명이었다. 팀의 '와이어 투 와이어' 통합우승을 경험한 투수 김광현, 박종훈, 문승원, 외야수 한유섬(이상 SSG 랜더스) 그리고 구자욱(삼성 라이온즈)이 그 주인공이었다.
 
 이렇다 할 활약이 없었던 다년계약자들의 첫 해, (왼쪽부터) SSG 박종훈-문승원-한유섬-삼성 구자욱

이렇다 할 활약이 없었던 다년계약자들의 첫 해, (왼쪽부터) SSG 박종훈-문승원-한유섬-삼성 구자욱 ⓒ SSG 랜더스, 삼성 라이온즈


실망스럽기만 했던 다년계약자들의 성적

비FA 다년계약에 적극적이었던 SSG는 해가 넘어가기 전에 무려 세 명의 선수와 계약을 마무리했다. 2021년 12월 14일에 투수 박종훈(5년 총액 65억 원)과 문승원(5년 총액 55억 원)이 계약서에 사인했고, 성탄절이었던 12월 25일에는 외야수 한유섬(5년 총액 60억 원)이 도장을 찍었다. 시즌 개막을 앞둔 이듬해 3월 8일에는 미국에서 돌아온 김광현(4년 총액 151억 원)과 계약했다. 

원래대로라면 지난 시즌 이후 FA 시장에 나왔던 구자욱도 삼성에 남기로 마음을 먹었다. 스프링캠프가 시작된 지난해 2월 3일, 5년 총액 120억 원에 삼성과 다년계약에 합의했다. 삼성 구단 최초의 비FA 장기계약자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구단 입장에서는 나름 '통 큰 투자'를 했지만, 결과적으로 김광현을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은 첫 해 만족스럽지 못한 성적을 남겼다. 성공적으로 재활을 마치고 돌아온 박종훈, 문승원은 곧바로 선발진을 이끌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나마 준비 기간이 충분했던 키움 히어로즈와의 한국시리즈에서 불펜에 힘을 보탠 것이 위안거리였다.

2년 연속으로 20홈런 고지를 밟은 '주장' 한유섬은' 2018년(115타점) 이후 4년 만에 100타점을 달성하고도 활짝 웃을 수 없었다. 타율(2021년 0.278→지난해 0.264)을 비롯해 홈런(2021년 31개→지난해 21개), 장타율(2021년 0.534→지난해 0.478) 등 타격 지표에서 하락세가 나타났다. 한국시리즈(19타수 3안타 타율 0.158 4타점)에서도 장타 2개(홈런, 2루타 각각 1개) 이외에는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SSG처럼 팀 성적이라도 좋았다면 그나마 다행이었을 텐데, 구자욱은 개인 성적과 팀 성적 모두 챙기지 못했다. 말 그대로 '최악'의 시즌이었다. 1군 데뷔 이후 처음으로 100경기 이상을 소화하지 못한 시즌이었다. 모든 타격 지표에서 전년 대비 하락한 모습이었다. 2할대 초반의 타율로 4월을 보낸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7위로 시즌을 마감한 팀은 가을야구 초대장을 받지 못했다.
 
 올겨울 비FA 다년계약을 체결한 선수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왼쪽부터) 롯데 박세웅-NC 구창모-LG 오지환

올겨울 비FA 다년계약을 체결한 선수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왼쪽부터) 롯데 박세웅-NC 구창모-LG 오지환 ⓒ 롯데 자이언츠, NC 다이노스, LG 트윈스


결과물로 보여줘야

장기계약자들이 첫해부터 부진한 가운데서도 올겨울에도 비FA 다년계약 대열에 합류한 선수가 있었다. 투수 박세웅(롯데 자이언츠, 5년 총액 90억 원), 구창모(NC 다이노스 6+1년 최대 132억 원), 유격수 오지환(LG 트윈스, 6년 총액 124억 원)이 차례로 다년계약을 맺었다. '주축 선수 지키기'에 나선 구단들은 팀의 핵심 선수에게 거액을 안겨주었다.

2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 달성으로 선발진의 한 축을 지켰던 박세웅은 상무 입대를 포기할 정도로 올 시즌 활약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나타냈다. 오는 9월에 열릴 항저우 아시안게임 출전도 노리고 있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즌이 될 전망이다.

FA 선수들이 줄줄이 이적을 택한 NC는 FA 박민우(5+3년 최대 140억 원)에 이어 비FA 구창모를 묶었다. FA 자격 취득까지 두 시즌 이상 남은 선수의 장기계약은 구창모가 처음이다. 부상만 당하지 않는다면 구창모가 KBO리그를 대표하는 차세대 좌완 에이스가 될 것이라는 팀의 기대감은 여전하다.

캠프로 떠나기 전에 계약을 끝낸 오지환은 팬들에게 '종신 LG'를 선언했다. 30대 중반 이후로 접어드는 나이를 고려하면 부담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난해 20홈런-20도루를 기록한 만큼 팀의 신뢰를 받았다. 내야수로서는 처음으로 비FA 장기계약을 맺게 된 점도 눈길을 끈다.

어느덧 장기계약자가 8명으로 늘어나면서 비FA 장기계약은 KBO리그의 트렌드로 자리를 잡는 모양새다. 다만 지난해처럼 활약하는 선수보다 부진한 선수가 많다면 장기계약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올해는 결과물로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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