슛하는 김진수 9월 2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 대 카메룬 축구 대표팀의 평가전에서 한국 김진수가 슛을 시도하고 있다.

▲ 슛하는 김진수 9월 2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 대 카메룬 축구 대표팀의 평가전에서 한국 김진수가 슛을 시도하고 있다. ⓒ 연합뉴스

 
프로축구 전북 현대의 수비수 김진수는 최근 아찔한 상황을 겪었다. 지난 10월 5일 울산 현대와의 대한축구협회(FA)컵 4강전에서 후반 38분 전진 패스를 시도하다가 갑자기 오른쪽 허벅지를 붙잡고 주저앉았다. 김진수는 더 이상 경기를 지속하는 것이 어렵다는 판정을 받고 그라운드 밖으로 나갔다.
 
그나마 들것에 실려나가지 않고 자기 발로 걸어나가기는 했지만 보행이 불편해보이는 모습으로 심각한 부상에 대한 불안감을 키웠다. 전북은 김진수의 공백에도 불구하고 울산을 잡고 FA컵 결승진출에 성공했다.
 
다행히 정밀검진을 받은 결과 김진수는 큰 부상은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전북 구단 측에 따르면 김진수가 오른쪽 허벅지 근육에 부상을 입었고 선수보호 차원에서 8일 열리는 울산과의 K리그1 리턴매치에서는 결장시킬 것이 유력해졌지만, 심각한 수준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K리그 6연패와 FA컵 '더블' 우승에 도전하는 전북으로서는 가슴을 쓸어내릴 수밖에 없었던 순간이다.
 
김진수의 몸 상태를 지켜보며 마음을 졸였을 것은 전북만이 아니다. 축구국가대표팀 '벤투호' 역시 김진수의 부상에 가슴이 철렁했을 것이다. 김진수는 전북은 물론 대표팀에서도 부동의 왼쪽 측면 주전 수비수로 활약하고 있다. 유럽파를 총망라한 최정예 멤버가 소집된 지난 9월 A매치 2연전(코스타리카·카메룬)에도 선발 왼쪽 수비는 변함없이 김진수가 차지했다. 만에 하나라도 그가 부상으로 월드컵에서 낙마한다면 대표팀도 큰 타격이 아닐 수 없다. 2옵션으로 홍철(대구)이 있지만 최근 경기력이 그리 좋지 않다.
 
김진수에게 부상이 유독 민감한 것은 이전에도 같은 이유로 무려 두 번이나 월드컵 본선에 낙마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2014년 브라질 대회를 앞두고는 발목 인대를 다쳤고, 2018년 러시아 대회 때는 무릎에 탈이 났다. 하필 월드컵 직전에 당한 부상이라 회복할 시간이 부족했다.
 
이영표 이후 국내 최고의 레프트백으로 꼽히는 김진수는 부상만 아니었다면 이전 두 번의 월드컵에서도 모두 주전으로 중용될 가능성이 높았다. 이번 카타르 대회까지 포함하여 3회 연속 본선출전 기록을 세울 수도 있었다.
 
벤투호 위협하는 '부상'의 그림자

최고의 선수가 큰 국제대회를 앞두고 부상으로 낙마하는 것은 축구계에서 드문 일이 아니다. 이는 대표팀에도 큰 타격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지켜보는 축구팬들로서도 손해가 아닐 수 없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황선홍은 국내 출정식을 겸했던 중국과의 평가전에서 상대의 거친 플레이에 뼈아픈 무릎 인대 부상을 당했다. 그럼에도 황선홍은 최종엔트리에 결국 포함되어 대표팀과 함께 출국했지만 정작 본선에서는 한 경기도 뛰지 못했다. 에이스를 잃은 대표팀은 본선에서 네덜란드에 오대영 참사를 당하는 등 힘 한번 못 써보고 조별리그 탈락을 받아들여야 했다.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이동국은 본선을 3개월 앞두고 K리그 경기 중 십자인대파열 부상을 당하며 월드컵에 나갈 수 없게 됐다. 역시 월드컵에서 주전으로 나설 가능성이 높았기에 더욱 안타까웠던 장면이었다.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는 핵심 센터백 곽태휘가 최종엔트리 발표를 앞두고 치른 벨라루스와의 평가전에서 인대 부상을 당하며 낙마했다.
 
특히 지난 대회였던 2018 러시아월드컵은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의 본선 도전사를 통틀어 가장 최악의 부상대란이 휩쓸고 지나간 대회로 기억된다. 당시 김진수, 김민재, 염기훈, 이근호 등 월드컵 승선을 사실상 예약해놓은 것으로 평가받던 핵심 선수들이 리그 경기에서 줄줄이 부상을 당하며 낙마했다. 대표팀은 월드컵을 코앞에 두고 선수구성과 전술을 원점에서 완전히 새롭게 다시 짜야 하는 난감한 상황에 직면해야 했다.

이번 벤투호가 역대 대표팀보다 부상에 더 민감한 것은 핵심 선수들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기 때문이다. 보수적인 경기운영을 선호하는 벤투 감독은 한번 신뢰를 준 주전들을 어지간해서는 잘 바꾸지 않는다. 선수들이 모두 최상의 컨디션일 때는 조직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만일 부상으로 인한 전력누수같은 변수가 발생했을 때는 대응력이 취약하다는 게 아킬레스건으로 꼽힌다.

만일 월드컵을 앞두고 '에이스' 손흥민이나 '수비의 핵심'인 김민재 같은 선수들이 부상을 당하기라도 한다면? 상상하기 싫지만 현실에서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는 시나리오다.

월드컵 본선이 이제 두 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회복할 시간도 없다. 최소 6주 이상의 부상이라면 억지로 최종엔트리까지는 어떻게든 합류시킨다고 해도 본선까지 경기력을 회복할 것을 장담하기 어렵다. 사실상 대체자가 없는 벤투호로서는 상상만 해도 난감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부상 방지는 선수의 노력과 자기관리도 중요하지만, 단지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소속팀과 대표팀 차원에서 선수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와 효율적인 활용법이 병행되어야 한다. 현대축구는 시장 규모가 커지고 참가하는 대회가 늘어나면서 '선수 혹사' 논란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프로선수는 일단 어떤 경기든 나서면 최선을 다해야 하고 대회의 경중이나 부상을 걱정하여 몸을 사릴 수는 없다.
 
김진수는 소속팀 전북에서 K리그1 외에도 ACL(아시아챔피언스리그)와 FA컵을 소화해야했으며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A매치까지 포함하면 올해에만 50경기 이상을 소화하고 있다. 김상식 전북 감독과 벤투 대표팀 감독은 일단 김진수가 정상적으로 출전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무조건 선발로 기용했다. 김진수가 최근 부상을 당한 햄스트링은 바로 근육에 피로가 누적되며 발생하는 경우가 많기에 이미 예고된 상황이었고 회복한다고 해도 재발 가능성이 높다.
 
또한 이런 상황은 김진수만의 문제가 아니다. 올해 K리그 선수들은 카타르월드컵이 열리는 것을 고려하여 K리그가 개막 일정을 앞당기면서 예년보다 빨리 시즌을 시작해 몸상태를 일찍 끌어올려야 했다. 무더운 여름에는 한층 타이트해진 일정과 많은 경기수를 소화해야 했으며, 대표급 선수라면 A팀이나 연령별 대회은 물론, 휴식기간에도 올스타전같은 이벤트 경기까지 나서야 했다.
 
K리그가 올해 일정을 수립하면서 선수들의 상황과 컨디션을 배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올해 카타르월드컵이 11월에 열리면서 이미 장기레이스를 마치고 지칠대로 지친 K리그 선수들이 과연 부상없이 K리그를 마친다고 해도, 월드컵에서 최상의 컨디션을 보여줄 수 있을지 우려되고 있다.
 
또한 유럽파는 그나마 여름 휴식기가 있었지만 손흥민처럼 아예 제대로 휴식을 제대로 취하지 못한 선수도 있는 데다 올시즌 개막 이후 이적문제와 주전경쟁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컨디션을 찾지 못하는 선수들이 많아서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최근에는 사실상 김민재 외에는 소속팀에서 안정적인 컨디션을 보여주는 선수가 보이지 않는다.
 
어떤 세계적인 강팀도 부상자가 많아지면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없다. 40여 일 앞으로 다가온 월드컵 본선과 최종엔트리 발표를 앞두고 가장 경계해야 할 내부의 적은 역시 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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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수 벤투호 카타르월드컵 D-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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