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밤 스포츠 경기에 울고 웃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기는 날도 있고, 지는 날도 있지만 결과가 정해져 있는 경기는 없습니다. 강팀을 응원하는 사람도, 약팀을 응원하는 사람도 있지만 승리를 기대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스포츠를 좋아하는 이유를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초등학교 2학년이던 1986년, 아버지 손에 이끌려 1986 멕시코월드컵 최종예선 한일전을 보러 갔던 게 나의 인생 첫 스포츠 '직관'이었다. 하지만 내가 각 종목의 룰을 익히면서 본격적인 스포츠팬이 된 것은 1988년 서울올림픽이 결정적인 계기였다. 올림픽 기간엔 모든 방송국(이래 봤자 2개였지만)에서 어린이 프로그램을 비롯한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하루 종일 올림픽 중계만 했기 때문에 좋든 싫든 스포츠 경기를 자주 접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한국은 양궁과 유도, 레슬링, 복싱이 각각 2개의 금메달을 따내며 '효자종목'으로 강세를 보였지만 그 시절 나를 사로 잡았던 종목들은 룰이 복잡해 즐길 엄두도 내지 못했던 각종 구기종목들이었다. 올림픽 때는 중계진들이 경기 상황을 전달하는 것 만큼이나 종목을 소개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고 나는 그 기회를 통해 초등학교 4학년의 어린 나이에 야구와 농구,핸드볼 등 각 구기 종목들의 기본적인 규칙들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었다.

서울올림픽 때 익혔던 스포츠 규칙들은 40대 중반이 된 지금까지도 스포츠 중계를 볼 때 잘 써먹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내가 애정을 가지고 즐겨보는 종목은 바로 배구다. 물론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가슴 속까지 시원해지는 강스파이크를 볼 수 있는 남자배구를 훨씬 좋아했지만 지금은 7:3 또는 8:2 정도의 비율로 여자배구를 더 많이 보는 편이다. 그리고 내가 여자배구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지난 2005년 이 선수의 등장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V리그 출범과 함께 등장한 '코트의 꽃사슴'
 
 2004년에 설립한 한국배구연맹은 2005년 프로배구 V리그를 출범시켰다.

2004년에 설립한 한국배구연맹은 2005년 프로배구 V리그를 출범시켰다. ⓒ 한국배구연맹

 
사실 미를 채점하는 리듬체조나 아티스틱 스위밍(구 싱크로 나이즈드 스위밍) 같은 일부 종목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종목은 남자 경기가 더욱 박진감 넘치고 재미 있는 경우가 많다. 야구를 예로 들면 여자야구에서는 시속 150km를 넘나드는 강속구나 비거리 130m 이상의 대형 홈런을 거의 기대하기 힘들다. 농구에서도 매 경기 화려한 기술과 덩크슛을 볼 수 있는 남자농구에 비해 여자농구에서는 덩크슛 같은 화려한 플레이는 거의 보기 힘들다.

배구 역시 마찬가지. 남자와 여자가 가진 신체조건과 근력의 차이 때문에 남자배구는 여자배구에 비해 더욱 파워풀 하고 박진감 넘치게 느껴진다. 서울올림픽을 통해 배구의 재미를 알게 된 나도 여자배구보다 남자배구에 더욱 큰 매력을 느꼈다. 남자 실업배구는 90년대 중반까지 고려증권과 현대자동차써비스가 양분했는데 학창시절 나는 한장석과 최천식(인하대학교 감독), 그리고 박희상(송산고등학교 감독) 등이 활약했던 대한항공을 응원했다.

당시 여자배구는 80년 중·후반 지경희의 현대건설과 '코트의 여우' 박미희(KBS N 스포츠 해설위원)가 이끄는 미도파-대농이 치열한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 하지만 90년대 들어 '독사' 김철용 감독이 이끄는 호남정유가 급부상하면서 판도는 완전히 바뀌고 말았다. 1991년부터 우승행진을 시작한 호남정유는 LG정유로 이름이 바뀐 후에도 독주체제를 이어갔고 1999년까지 92연승 신화와 함께 겨울리그 9연패라는 전무후무한 금자탑을 세웠다.

하지만 90년대 후반 대한민국에 IMF 금융위기가 불어 닥쳤고 이는 스포츠계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여자배구에서는 한일합섬과 효성, SK 케미칼, 후지필름 등 실업팀들이 연쇄 해체를 하면서 여자부는 겨울리그 존속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그나마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던 현대건설에서 구민정, 장소연, 강혜미로 이어지는 국가대표 3인방을 영입하면서 '올스타팀'을 만들어 2000년부터 2004년까지  겨울리그 5연패를 달성했다.

2000년대 초·중반까지 남자부는 삼성화재, 여자부는 현대건설이 장기간 독주체제를 이어가면서 배구의 인기는 8·90년대에 비해 크게 떨어지고 말았다. 이에 배구계에서는 프로화에 대한 필요성을 느꼈고 2004년 사단법인 한국배구연맹을 설립하며 공식적으로 프로배구 'V리그'를 출범시켰다. 그리고 2004년11월에 열린 V리그의 첫 신인 드래프트에서 '코트의 꽃사슴' 황연주가 전체 2순위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에 입단했다.

올림픽 4강 2회 진출한 여자배구의 힘
 
 황연주의 통산 트리플크라운 4회 기록은 여전히 여자부 국내선수 최다기록으로 남아있다.

황연주의 통산 트리플크라운 4회 기록은 여전히 여자부 국내선수 최다기록으로 남아있다. ⓒ 한국배구연맹

 
흥국생명은 프로 원년이었던 2005 시즌 3승13패의 성적으로 GS칼텍스를 제치고(?) 최하위를 기록하며 '김연경 쟁탈전'에서 승리했다. 당시 나는 프로 원년 TV로 흥국생명의 경기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 황연주는 당시 신인임에도 강서브와 후위공격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나를 매료시켰다. 당시 황연주는 그저 후위공격이 '가능'했던 선수가 아니라 세트당 평균 3회 이상의 후위공격을 시도했을 정도로 후위공격을 주요 공격옵션으로 사용했다.

황연주의 화끈한 공격본능은 '여제' 김연경(흥국생명)이 입단한 후에도 변하지 않았다. 황연주는 김연경 입단 후 주공격수 자리를 김연경에게 내줬지만 후위공격과 서브 만큼은 여전히 그 위력을 잃지 않았다. 특히 여자배구의 인기가 높지 않았던 V리그 출범 초기에는 후위공격을 성공시키면 2점을 줬기 때문에 V리그 후위공격의 1,2인자 김연경과 황연주를 보유한 흥국생명을 앞설 팀은 아무도 없었다.

황연주를 응원하면서 자연스럽게 여자배구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그리고 여자배구의 국제 경쟁력이 남자배구보다 훨씬 높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실제로 남자배구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을 끝으로 한 번도 올림픽 본선무대를 밟지 못하고 있는 것과 달리 여자배구는 최근 10년 동안 두 번이나 올림픽 4강 무대를 밟았다. 황연주는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는 선수로, 2020 도쿄 올림픽에서는 해설위원으로 올림픽에 참가했다.

사실 177cm의 황연주는 아포짓 스파이커로서 썩 좋은 신체조건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2004년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지명됐던 나혜원의 신장은 184cm였고 2020 도쿄올림픽에서 대표팀의 주전 아포짓 스파이커로 활약한 김희진(IBK기업은행 알토스)도 185cm의 좋은 신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황연주는 작은 신장에도 뛰어난 운동능력과 기술, 그리고 상대 블로킹을 두려워하지 않는 대담한 성격을 앞세워 V리그의 살아있는 전설로 군림했다.

팬들이 앞당길 수 있는 '포스트 김연경 시대'
 
 30대 중반을 훌쩍 넘은 황연주는 다가올 2022-2023 시즌에도 여전히 '현역'으로 활약할 예정이다.

30대 중반을 훌쩍 넘은 황연주는 다가올 2022-2023 시즌에도 여전히 '현역'으로 활약할 예정이다. ⓒ 한국배구연맹

 
1986년생 황연주도 어느덧 한국나이로 37세의 노장선수가 됐다. 이미 소속팀 현대건설 힐스테이트에서는 맏언니가 된 지 오래고 리그 전체를 살펴봐도 황연주보다 나이가 많은 선수는 단 3명(정대영, 한송이, 김해란)뿐이다. 지난 2010년 현대건설 이적 당시 리그 전체에서 가장 많은 연봉을 받았던 황연주는 이번 시즌 현대건설 내에서도 연봉 9위(옵션 포함 1억200만원)에 불과하다. 난공불락이었던 주전 자리도 이미 외국인 선수에게 내준지 오래다.

하지만 황연주는 다가올 2022-2023 시즌에도 여전히 '현역'으로 자신의 18번째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비록 전성기 때처럼 상대 블로킹이 따라붙든 말든 자신 있게 상대 코트를 향해 강력한 공격을 퍼붓긴 힘들어 졌지만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현대건설의 맏언니로서 동생들을 이끌 예정이다. 이제 점점 은퇴를 준비해야 할 시기가 가까워오고 있지만 나는 여자배구의 진정한 매력과 재미를 가르쳐준 황연주를 끝까지 응원할 것이다.

지난 2020 도쿄올림픽 이후 김연경과 김수지(기업은행), 양효진(현대건설)이 나란히 대표팀을 떠나면서 현재 한국 여자배구는 큰 위기에 빠져 있다. 특히 지난 6월부터 7월까지 열렸던 발리볼 네이션스리그(VNL)에서는 15전 전패의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세계적인 스타 김연경이 없는 한국 여자배구는 이제 더 이상 국제무대에서 그 어떤 나라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증명된 셈이다.

하지만 김연경의 대표팀 은퇴 후 한국 여자배구가 크게 고전할 거란 사실은 배구팬들이라면 누구나 예상했던 일이다. 한국 여자배구는 어쩌면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김연경이 있던 '영광의 시절'로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배구팬들이 여자배구에 변함 없는 성원을 보내준다면 한국 여자배구가 부활하는 시기도 더 빨라질 것이다. 이는 한동안 힘든 시기가 이어질 걸 알면서도 내가 여자배구에 대한 애정을 놓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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