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해보이는 작은 선택, 작은 우연들이 모여서 인간의 운명을 바꿀 수도 있다. 아름다운 외모와 훌륭한 인품, 세계적인 외교봉사활동 등으로 '서민들의 왕세자비(People's Princess)'로 불릴 만큼 영국인들의 사랑을 받았던 다이애나 비는 왜 불행한 최후를 맞이해야만 했을까.
 
9일 방송된 JTBC 새 예능프로그램 <세계다크투어>에서는 영국 왕실의 비극으로 꼽히는 '다이애나비 사망사건 미스터리'에 대하여 조명했다. 장동민, 박나래, 이정현, 박하나, 피터 빈트가 투어 패널로, 정치학자 김지윤 박사가 투어 가이드로 나서서 다이애나 비의 마지막 날을 조명했다.
 
1997년 8월 31일, 영국의 전 왕세자비였던 다이애나 스펜서가 프랑스 파리의 알마 터널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전 남편 찰스 왕세자와 이혼한지 불과 1년 만이었다. 그녀와 함께 차에 타고 있었던 이집트의 억만장자 애인 도디 알파예드도 함께 목숨을 잃었다. 영국을 비롯한 전세계가 충격적인 소식에 경악을 금치못했다.
 
불과 20살에 '세기의 결혼'으로 주목받으며 왕세자비가 된 다이애나는 우아한 미모, 세련된 패션, 영화같은 신데렐라 스토리의 히로인으로 주목받으며 당대 여성들의 스타일 아이콘이자 이슈메이커로 꼽힐만큼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그 대가로 불행한 인생을 살아야했던 다이애나 비는, 결국 마지막 순간 비극적인 영화의 슬픈 피날레처럼 36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사고 당시 차량에는 다이애나와 도디, 운전기사 앙리 폴, 경호원 트레버 리스 존스까지 4명이 탑승하고 있었다. 사고 당일날 자정, 다이애나 일행은 호텔 뒷문으로 빠져나와 차량에 탑승하자마자 전속력으로 질주했다. 사고 장소인 알마 터널에 진입할 당시 주행속도는 무려 110Km에 달했다.
 
호텔 출발 이후 약 5분만인 0시 25분, 다이애나의 차량은 터널 안에서 앞차와 1차적으로 충돌하면서 통제력을 상실했고, 터널 기둥과 2차로 충돌하여 다시 180도 회전 이후 터널벽을 들이받고서야 정지했다. 미디어에 공개된 사고 차량의 처참한 상태는 사고 당시의 충격을 짐작게 한다. 이 사고로 유일하게 존스만이 큰 부상을 입기는 했지만 살아 남았고, 다이애나를 포함한 3명은 모두 사망했다.
 
다이애나의 차량은 사고 당시 왜 그렇게 위험한 질주를 할 수밖에 없었을까. 바로 다이애나를 극성스럽게 따라붙는 파파라치 때문이었다. 다이애나는 왕세자비가 된 이래로 평생 파파라치들에게 시달려야 했다. 이들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않고 다이애나를 따라다녔다. 다이애나가 극심한 스트레스와 고통을 호소하며 자제를 요구했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대중의 관심이 높은 다이애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사진으로 올리는 것 자체가 '돈'이 되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당시 다이애나의 사진과 뉴스는 매일같이 타블로이드 신문의 1면을 장식했다. 다이애나가 휴가지에서 도디와 포옹하는 모습이 찍힌 사진은 당시 무려 250만 프랑(2022년 기준 한화 약 40억원)에 거래됐을 정도였다.

첩보영화 방불케 하는 추격전
 
 JTBC 새 예능프로그램 <세계다크투어> 한 장면.

JTBC 새 예능프로그램 <세계다크투어> 한 장면. ⓒ JTBC

 
사고 당일에도 다이애나는 일행은 호텔을 나와 도디의 집으로 가는 과정에서 파파라치를 따돌리기 위하여 첩보영화를 방불케 하는 추격전을 펼치다가 사고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다이애나가 생애 마지막으로 남긴 사진 역시 파파라치를 피하여 자동차에 오르는 장면이었고, 사고가 나기 전 마지막으로 남겼다는 말은 "날 좀 내버려둬(Leave me alone)"이었다고.
 
심지어 사고 당시 최초의 응급조치를 담당했던 의사 프레데릭 말리에즈의 증언에 따르면, 다이애나가 중상을 입어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주변에 있던 파파라치들은 오진 사진을 찍는 데만 급급했다고. 사고를 방치했다는 이유로 몇몇 파파라치들은 연행되었고, 영국에서는 파파라치들에 대한 사회적 비난 여론이 크게 높아졌다.
 
다이애나의 충격적인 사망은 수많은 의혹을 불러왔다. 다이애나가 사망하기 10개월전에 작성했다는 자필 편지가 뒤늦게 공개됐다. 여기에서 다이애나는 "제 인생에서 가장 위험한 시기다. 나의 차 사고, 브레이크 고장, 심각한 머리부상을 계획하고 있다. 내 남편 찰스 왕세자가 내연녀와 재혼하기 위해서"라는 놀라운 의혹을 제기했다.

결과적으로 다이애나는 편지에 예언한 그대로 사망했다. 이는 다이애나의 죽음이 사고가 아닌, '영국 왕실에 대한 고의적 타살'이라는 음모론을 불러일으켰다.
 
수상한 정황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차량사고 당시 다이애나의 차량과 1차적으로 충돌하고 사고 현장을 그대로 빠져나갔던 흰색 차량의 정체를 두고 추측이 무성했다. 차의 소유주로 지목된 파파라치 제임스 안단손은 다이애나 사망 3년 뒤, 2000년 한 숲속에서 불에 탄 시체로 발견됐다. 프랑스 경찰은 약 4천대에 가까운 차량을 조사했지만 사고 당시 흰색 차량의 정체를 끝내 밝혀내지 못했다.
 
두 번째 의혹은 사고차량의 운전기사였던 앙리 폴의 음주운전 의혹이었다. 호텔에서 사고 약 20여분 전에 촬영된 화면이나 파파라치에 이하여 촬영된 사진들을 보면 폴에게서 취한 기색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데 유일한 생존자였던 트레버 리스 존스는 1998년 인터뷰에서는 폴의 음주운전을 부정했지만, 2000년 출간한 책에서는 "폴이 술을 마신 것을 알면서도 운전하게 한 것은 실수였다"라고 진술을 번복했다.
 
사고 이후의 처리 과정도 석연치 않았다. 사고 직후 도디와 폴은 현장에서 즉사했으나 다이애나는 중상을 입기는 했지만 아직 살아있었다. 구급차가 도착한 것은 사고 직후 약 7분만이었고, 주변에는 20분 이내에 갈 수 있는 병원이 5곳이나 있었다.
 
하지만 구급차가 다이애나를 싣고 병원으로 출발한 시간은 무려 48분이나 지난 새벽 1시 20분이었다. 더구나 구급차는 병원으로 직행하지 않고 주변을 빙빙 돌거나 속도를 늦추며 시간을 지체한 끝에 다이애나가 병원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2시 6분이었다. 사고 발생 시간으로부터 무려 1시간 34분이나 지체됐다. 병원은 새벽 4시에 다이애나에게 최종 사망 판정을 내렸다고 발표했다.
 
프랑스 구조 당국의 해명에 따르면, 다이애나를 파손된 차량에서 꺼내는 과정과 현장 응급처치에 시간이 걸렸고, 이송중에는 환자의 상태가 심각하여 쇼크 방지를 위하여 저속 주행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다이애나는 외상보다도 사고로 인한 내부 장기 파열이 치명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이애나의 불행은 어쩌면 왕실과 인연을 맺을때부터 예고된 것이었다. 영국 왕실은 찰스 왕세자의 배우자를 찾기 위하여 오랫동안 노심초사했다. 영국의 명문귀족인 스펜서 백작가문의 막내딸이었던 다이애나는, 혈통이나 환경면에서 영국 왕실이 원하던 조건과 잘 부합했다.
 
하지만 정작 찰스와 다이애나는 성향부터 잘맞지 않았다. 평생 왕실의 일원으로 고상한 상류층의 삶을 살아온 찰스와 달리, 다이애나는 귀족 출신이지만 차분한 성격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가무를 즐기는 활동적인 성향에 아이를 좋아하여 유치원 교사와 보모로 일했을 만큼 성격이 극과 극이었다.
 
찰스는 "다이애나와 결혼하던지, 아니면 왕세자 자리에서 물러나던지"라는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다이애나와 불과 12번의 만남 끝에 결혼했다. 당시 다이애나의 나이는 19세에 불과했다.

동화 속 왕자님과의 순수한 사랑을 꿈꿨던 다이애나의 기대는 현실과 달랐다. 인터뷰에서 "사랑에 빠졌냐"는 질문에 바로 "물론"이라고 대답했던 다이애나와 달리, 알수없는 표정으로 '사랑이 뭘 의미하든지 간에"라고 모호한 답변을 남긴 찰스의 동상이몽은, 두 사람의 파국을 예고한 것이었다.
 
찰스에게는 이미 다이애나를 만나기 전부터 카밀라라는 내연녀가 있었다. 하지만 신분이 미천하다는 이유로 왕실이 강력하게 반대하여 찰스와 카밀라는 이어지지 못했다. 다이애나는 카밀라를 찰스의 친구로만 생각하여 가깝게 지냈으나 훗날 두 사람의 관계를 뒤늦게 알고 충격을 받았다.
 
찰스는 이를 추궁하는 다이애나에게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화를 냈다. 카밀라는 찰스의 친구와 결혼하는가 하면, 찰스와 다이애나의 결혼식에 마치 신부를 연상시키는 하얀 드레스와 면사포까지 입고 등장하는 기행을 저질렀다.
 
 JTBC 새 예능프로그램 <세계다크투어> 한 장면.

JTBC 새 예능프로그램 <세계다크투어> 한 장면. ⓒ JTBC

 
 JTBC 새 예능프로그램 <세계다크투어> 한 장면.

JTBC 새 예능프로그램 <세계다크투어> 한 장면. ⓒ JTBC

 
왕실도 다이애나를 돕지 않았다. 다이애나는 시어머니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여러 차례 도움을 호소했으나 여왕은 이를 무시했다. 여왕은 오히려 시민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에이즈 환자와 악수하거나 지뢰폭발로 다리를 잃은 흑인 소녀를 무릎에 앉히는 등 영국 왕실의 권위와 전통에 얽매이지 않는 다이애나의 파격 행보를 탐탁지 않게 여겼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립된 다이애나는 결혼생활 내내 우울증과 섭식장애에 시달렸고, 훗날에는 결혼식 당일이 "내 인생의 최악의 날이었다"라고 회상하기도 했다. 다이애나는 왕실 소속 경호원이었던 배리 매너키와 내연관계를 맺으며 "모든 것을 버리고 이 사람과 도망가고 싶었다"라고 이야기할 그를 의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이애나와의 추문이 퍼지면서 매너키는 왕실에서 쫓겨났고, 불과 8개월 뒤에 의문의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다이애나는 큰 충격을 받았고 왕실이 배후에 있다고 의심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된 다이애나와 찰스는 서로에 대하여 폭로전을 벌였다. 찰스는 "한번도 다이애나를 사랑한 적이 없다"라고 고백했고, 다이애나는 "찰스는 왕이 될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비판했다. 왕실의 이미지가 추락하자 결국 엘리자베스 여왕은 다이애나에게 편지를 보내어 이혼을 종용한다. 시작부터 끝까지 본인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진행된 정략결혼의 한계였다.
 
다이애나는 이혼 후에도 영국 왕실의 골칫거리였다. 다이애나의 연인인 도디는 이집트인이었기에, 만일 다이애나자와 재혼을 한다면 그녀가 낳은 영국 왕자들의 계부가 무슬림인이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로 인하여 다이애나의 사망에 영국 왕실이 개입했다는 의혹은 끊이지 않았다.
 
다이애나의 사망 이후 10년간 영국은 여러차례 찰스 왕세자와 왕실에 대대적인 조사를 벌였지만, 끝내 공식 결론은 파파라치의 무리한 추격과 운전자의 음주운전으로 빚어진 사고로 마무리됐다. 하지만 영국 왕실은 쏟아지는 비난 여론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뒤늦게 엘리자베스 2세가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는 성명을 낸데 이어, 장례식도 왕실장으로 치르기로 입장을 번복했다.
 
다이애나의 장례식때 많은 국민들이 운집하여 진심으로 그녀를 추모하고 애도했다. 특히 어머니를 잃고 슬픔에 잠긴 두 왕자의 모습은 많은 이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다이애나가 결혼생활을 했던 켄싱턴 궁전 앞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추모하기 위하여 쌓은 꽃다발만 1.5m에 이르렀다고. 지금도 많은 영국 시민들의 가슴속에 다이애나는 아름답고 사랑스러웠던 왕세자비로 기억되고 있었다.
 
<세계다크투어>는 최근 방송가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인문학강의 예능에 여행과 역사 강의를 결합했다.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은 최근 젊은 층을 중심으로 새롭게 퍼져가는 여행의 형태로, '흑역사 여행'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밝은 분위기와 멋있는 경치, 맛있는 음식이 함께 하는 일반적인 여행과 달리, 전쟁이나 테러, 암살과 살인 등 각종 사건사고와 자연재해 등 피해자들의 아픈 기억이 있는 역사를 통하여 '반면교사'의 교훈을 추구하는 프로그램에 가깝다. 여기에 전문가들의 강의를 통하여 잘못된 정보나 상상으로 음모론에 대한 팩트체크를 더했다.

다만 <꼬리에 꼬리는 무는 이야기>나 <당신이 혹한 사이>, <벌거벗은 세계사>등과 같이 이미 넘쳐나는 비슷한 포맷의 프로그램을 이리저리 짜깁기한 듯한 이미지를 어떻게 벗겨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 하겠다. 
세계다크투어 다이애나비 인문학예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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