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속 악역은 '엔진'과도 같다. 악역다움의 정도와 질에 따라 드라마의 궤도가 정해진다. 그들의 악행이 어느 만큼 진폭을 보여주는가에 따라 주인공들의 활약상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운 드라마들은 보다 더 악한 캐릭터를 창조해 내고자 고심한다. 그런 면에서 tvN의 월화 드라마 <군검사 도베르만>과 수목 드라마 <킬힐>은 중견 배우 오연수와 이혜영을 앞세운다. 그녀들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행, 그리고 그런 악행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해치워버리는 강단에 드라마가 힘을 받는다.
 
세상 남자들 위에 군림하겠어 
 
 군검사 도베르만 노화영

군검사 도베르만 노화영 ⓒ tvn

 
'잘랐어, 내가 잘랐어,' 자신의 약점을 잡았다고 의기양양해하는 변호사 앞에서 노화영(오연수 분)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말한다. 지뢰밭에 들어가 부하를 구한 영웅이라 칭송받지만 사실 다리를 다치지 않은 수색대장, 그 사실이 드러나면 노화영이 쌓아올린 것들도 무너진다. 그러자 노화영은 스스로 나서 수색대장의 다리를 자른다.

선천적으로 오른손 검지 한 마디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 장애는 그녀의 인생에 큰 걸림돌이 아니다. 우수한 성적으로 육사를 졸업 후 승승장구 여성 최초 사단장이 된 노화영은 당대 여성들의 '워너비'한 존재다. 

하지만 당사자인 노화영은 아직 만족스럽지 않다. 사단장 부임 후 첫 행사로 치른 장관 취임식 날 아들의 탈영 사건으로 인해 취임식을 망치자 장관은 그녀의 뺨을 때린다. 더는 세상의 남자들이 자기 위에 군림하지 못하도록 만들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그녀의 뺨을 내줘야 하는 처지이다. 그리고 뺨이 아니라, 자신의 자리조차 내걸어야 했다. 

표정 변화 하나 없이 차분하게, 하지만 시릴 정도로 냉정한 눈빛으로 자기 앞을 가로막는 그 누구라도 다 해치워버리는 노화영, 아들도 예외가 아니다. 그녀가 차우인의 아버지로부터 빼앗은 방산업체를 아들에게 맡겼지만 그 아들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자, 아들을 군대로 보내버린다. 이제 그 군대에서 탈영을 하며 다시 아들이 말썽을 일으키자 최전방으로 배치한다. 그녀의 앞길을 막는다면 아들도 예외가 아니다. 

아니다. 아들은 예외다. 목숨은 부지시키니까. 자신의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부하의 다리 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스스로 자르는 노화영, 그렇게 그 자리에 오르기 위해 차우인의 아버지도, 도배만의 부모도 희생시켰다. 그녀가 세상의 남자들 위에 군림하려는 목표에 그 어떤 수단도 상관이 없었다. 최초의 여성 사단장, 방산업체의 실질적 오너, 그렇게 해서 얻은 것들이다. 
 
넘어서는 안되는 거? 그걸 왜 지들이 정해!
 
 킬힐의 기모란

킬힐의 기모란 ⓒ tvn

 
그래도 노화영에 비하면 <킬힐>의 기모란(이혜영 분)은 나은 편일까? 사람을 죽이거나, 직접 누군가의 다리를 피를 튀겨가며 자르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전쟁터와도 같은 홈쇼핑 업계에서 그녀의 세 치 혀에 누군가의 밥줄이 오간다면 그런 면에서 노화영과 막상막하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물간 쇼호스트가 되어 MD에게도 대놓고 무시를 당하는 처지에 놓인 우현, 판매를 망친 채 사람들 앞에서 주저앉아 버린 우현에게 손을 내민 건 모란이었다. 모란의 인도주의였을까? '왜 이제서야 너를 발견했을까?' 그건 우현이 모란의 오너인 UNI 홈쇼핑 사장 현욱의 첫 사랑과 닮았다는 걸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우현을 통해, 우현이라는 인물을 첫사랑과 닮았다는 점을 이용해 사장을 자기 손아귀에 넣으려는 시도를 하려는 것이었다. 

UNI 홈쇼핑 평사원으로 부터 시작해서 전무가 된 기모란, 사람들은 그녀의 대단함을 칭송하지만, 칭송을 얻기 위해 그녀가 바쳐야 하는 것들이 있었다. 사장 부인의 카톡 한 줄에 달려가 그녀의 히스테리를 다 받아내고, 그녀가 말하기 전에 알아서 사장 주변을 기웃거리는 여성들을 처리하는 게 그녀의 일이었다. 그렇게 윗사람들의 뒤치닥거리를 군소리없이 해주며 그 자리에 올랐다. 아마도 그런 뒤치닥거리에는 아직 그녀가 간직한 사장의 첫 사랑에 대한 '처리'도 있지 않았을까?

그렇게 그 자리에 오른 그녀에겐 늘 보험이 필요했다. 더 나은 자리, 예를 들면 계열사 사장 같은 자리로 가기 위해, 우현처럼 사장의 첫사랑을 닮은 여자를 스스로 쥐락펴락 할 수 있는 그런 보험들 말이다. 우현이 사장을 뒷배로 삼으며 자신의 영역을 확장시켜 나갈 때 모란은 그런 우현에게 '야옹~'하며 조롱한다. 그녀에게 사장은 '호랑이'가 아니라, 장난감을 쥐어주며 놀아주면 되는 고양이였다. 하지만 그 고양이가 이제 모란에게 자신이 우현을 아낀다며 우현에게 프로그램을 빼앗으려 했던 모란에게 경고를 한다. 그런가 하면 오랜 벗인 줄알았던 옥현이 그녀에게 칼을 겨눈다. 하지만 애초에 승승장구하던 옥현의 자리를 빼앗은 건 모란이니 인과응보일까?

노화영과 기모란, 두 드라마에서 '악의 축'이 된 그녀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녀들은 남들보다 똑똑했고, 그 자신의 똑똑함에 걸맞는 자리를 욕망했다는 것이 아닐까. 단지 안타까운 점은 그 욕망을 실현해 가는 과정이 전혀 정의롭지 않았다는 점이라는 것이다. 여성들이 사회적 진출을 가로막는 '무형의 유리 천장', 어쩌면 노화영과 기모란이 벌이는 '악행'들은 그녀들이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유리천장을 깨뜨린 것들이 아니었을까. 그 유리천장을 깨뜨리고 끝없이 성공하려는 그녀들의 욕망이 결국 그녀들을 '괴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https://5252-jh.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군검사 도베르만 킬힐 오연수 이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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