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예능 <집사부일체>의 한 장면.

SBS 예능 <집사부일체>의 한 장면. ⓒ SBS

 
진정성이 담긴 음식은 사람에게 단순한 한 끼 이상의 감동을 선사한다. 2월 20일 방송된 <집사부일체> '육채파 특집' 2편에서는 지난주 육식편에 이어 하루종일 채식 체험에 도전하는 멤버들의 이야기가 그려졌다.
 
전편에서 '육식 고문'을 마치고 다시 모인 멤버들은 의외로 지친 모습이었다. 육식으로만 무려 6코스를 소화한 멤버들은 "원래 고기를 먹으면 힘이 나야하지 않나", "고기로 맞은 느낌"이라고 기진맥진한 반응으로 웃음을 자아냈다. 유일하게 육식 후유증에서 멀쩡했던 효정은 "살면서 소화제를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며 여유를 보였다. 멤버들은 채식 특집에 유독 열광적인 반응을 보이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날의 채식왕 사부는 정관스님이었다. 사찰음식 열풍을 불러일으킨 주역으로 꼽히는 정관스님은 특이하게도 전문적으로 요리를 배운 적이 없음에도 독자적으로 개발한 채식 요리법으로 오늘날 세계적인 스타 요리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큰 주목을 받고 있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정관스님을 '철학자 셰프'라고 정의했고, 영국 가디언지도 '지구상에서 가장 인기있는 요리사'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정관스님이 출연한 <셰프의 테이블>은 2017년 에미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SBS 예능 <집사부일체>의 한 장면.

SBS 예능 <집사부일체>의 한 장면. ⓒ SBS

 
정관스님은 "사찰음식으로 인연을 맺는 이와 소통하고 공유하고 있는 스님"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대부분의 셰프들의 무대는 고급 레스토랑인데, 전문 셰프가 아닌 사람이 자연속에서 수행하며 음식을 만드는 모습이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관스님은 '채식은 단백질이 부족하다. 영양이 불균형하다'는 의견에 대하여 "고루한 생각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단호하게 반박했다. "채소는 찬 음식이다. 생채소에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기운이 있는데 그게 우리가 말하는 독이다. 그래서 독성을 순화시키기 위하여 삶거나 찌는 조리과정이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겨울에도 채식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정관스님은 "나물도 발효음식"이라며 미리 채취한 나물을 활용한 시래기, 우거지 등을 예를 들었다. 미리 채취한 나물을 햇빛에 말린 건나물은 비타민D와 식이섬유, 미네랄 등 영양소가 더 풍부하다. 봄에는 따뜻한 생명의 기운을 받은 파릇한 채소를, 여름부터 가을까지는 땅의 기운을 받은 채소를 먹으며 사계절 내내 채식을 즐길 수 있다는 것.
 
아울러 정관스님은 나물과 꼭 함께 추가해야 할 발효음식으로 바로 된장이나 간장을 언급했다. "찬 음식에는 열을 내는 발효양념을 곁들어야 채식을 올바르게 할 수 있다"며 양념까지도 인공적인 것이 아닌 자연이 준 선물 그대로 활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관스님은 "부처님이 말씀하시길 육식을 하면 자비로운 마음이 없어진다. 채식으로 기분 좋고 청량한 몸을 만들어주겠다"고 강조했다.

멤버들은 정관스님의 보물창고를 함께 둘러봤다. 정관스님은 직접 담궈서 장독대에 보관해왔던 20년된 간장과 된장 등을 공개하며 "모든 음식은 세월이다. 이 재료들은 나의 삶과 함께해온 세월의 동반자들"이라고 설명했다.
 
"식재료를 알아가는 게 곧 수행"

그러나 채식 세계로의 입문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지난주 폭풍처럼 몰아치는 강제 육식 코스에 고생했던 멤버들은, 이번에는 정반대로 채식을 즐기기 위하여 여러 가지 시험과 기다림의 과정을 통과해야 했다.
 
멤버들은 가래떡 시식을 놓고 '심신'을 한자로 적어내는 시험을 치른 끝에 이승기가 1등을 차지했다. 가래떡에 20년된 간장-참기름의 조합을 맛본 이승기는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 하지만 "가래떡과 고기 중 무엇이 더 맛있냐"는 정관스님의 돌발질문에 이승기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고기요"라고 솔직하게 대답하자 삐친 정관스님으로부터 간장을 박탈당하며 웃음을 자아냈다.
 
멤버들은 본격적으로 채식 요리 체험에 나섰다. 정관스님은 다양한 나물들을 손질하며 "요리하려면 식재료부터 잘 알아야 한다. 언제 캐고 어떻게 보관해야하는지, 식재료를 알아가는 게 곧 수행"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멤버들은 공복이 길어지면서 점점 지쳐갔다. 정관스님이 "소요시간 1분"이라고 다독였지만, 이후로도 한동안 나물 요리만 계속 추가될뿐 식사는 좀처럼 시작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급기야 김동현은 "너무 배고프다. 채식하면 두 끼는 못 먹겠다"며 시간과 인내가 요구되는 채식 체험에 기진맥진했다.
 
급기야 양세형은 정관스님에게 "나물이 아니라 저희를 들들 볶으시는 거냐"고 폭발했다. 양세형은 "어제는 육식을 과하게 했더니 폭력성이 나왔는데, 오늘은 채식을 아예 안 하니까 폭력성이 나온다"고 성찰하며 웃음을 자아냈다.
 
오곡밥과 다대미국, 나물 9중주로 이루어진 근사한 정월대보름 채식 한 상이 완성됐다. 정관스님은 다양한 채소들이 한 그릇 안에서 여러 가지 화음을 맞춘 것에 비유하며 "채식은 내 몸의 심금을 울리는 오케스트라"라고 설명했다. 멤버들은 오랫동안 기다린 식사를 시작하고 건강하면서도 풍성한 자연의 맛에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
 
 SBS 예능 <집사부일체>의 한 장면.

SBS 예능 <집사부일체>의 한 장면. ⓒ SBS

 
정관스님은 자신이 출가하게 된 사연을 밝혔다. 17세의 어린 나이에 본인을 등지고 집을 등지고 나와 가족도 모르게 수행자의 길을 선택했다고. 세월이 흘러 정관스님의 부친은 그녀를 찾아와 다시 집에 데려오려고 했지만, 정관스님은 직접 만든 표고버섯조림을 요리해드리며 아버지의 마음을 돌린 일화를 고백했다.

부친은 정관스님이 만든 표고조림을 맛보고 "고기보다 맛있다"고 극찬했고 딸이 선택한 길도 이해하게 되었다고. 딸에게 삼배를 해주고 집으로 돌아갔던 부친은 그로부터 일주일 뒤 잠자듯 세상을 떠났다. 정관스님에게 표고조림은 아버지와의 추억이 담긴 '인생의 음식'이 됐다는 이야기는 뭉클한 여운을 자아냈다.

정관스님이 만든 표고버섯 영장조림을 맛보며 멤버들은 묘하게 전복의 맛이 느껴진다며 감탄했다. 정관스님은 "야채에서도 고기와 생선의 맛을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양세형은 "아버님의 마음이 느껴지는, 가슴이 메어오는 맛"이라고 이야기했고, 김동현은 "밝은 모습 뒤에서 평범하지 않았던 스님의 삶이 느껴진다"고 밝혔다.
 
이승기는 음식의 각기 다른 매력을 희노애락(喜怒哀樂)에 비유하며 "육식이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 희(喜)와 같다면, 채식은 안온하게 즐기는 평화로운 기쁨에 가까운 락(樂)"으로 정의했다. 이승기는 "기분에 따라서 희와 락을 느끼고 싶을 때 균형을 찾는 게 중요할 것 같다"는 소감을 밝혔다. 효정은 "당연하게 느껴졌던 자연에 깊은 이야기가 담겨있다는 게 새롭고, 더 감사하며 살게 될 것 같다"고 고백했다.
 
최근 한국은 채식 인구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한국채식비건협회에서 추산한 자료에 따르면 채식 인구는 2022년 현재 250만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서울시에서도 월 2회 채식 급식을 시범 운영하는 방침을 도입했고, 기업의 사내 급식소에서도 채식 도시락을 구비한 곳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정작 채식에 대한 여러 가지 섣부른 편견과 오해도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정관스님은 "생명을 해치지 않는 자비로운 마음이 곧 채식의 본질"이라고 정의했다. 자연속 푸르른 생명들이 식재료를 거쳐 요리로 거듭나는 과정,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음식을 완성하고 먹는지, 자연을 중시하는 과정이 바로 채식의 진정한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정관스님을 조명한 다큐멘터리에서는 '자연의 모든 것이 조화로운 오케스트라다. 그게 우리를 만들고 우리 음식을 만든다. 그것이 스님의 음식이다"라고 사찰음식의 매력을 정의하기도 했다. "내가 죽순이 되고, 죽순이 곧 내가 되는 것처럼, 식재료의 본질과 나의 본질을 찾아가는 여행이 곧 수행"이라는 정관스님의 인생 이야기는, 음식 이야기를 넘어선 삶에 대한 깊은 통찰까지 담아내며 묵직한 울림을 자아냈다.
집사부일체 채식 정관스님 사찰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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