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오후 폭염이 계속되는 2일 오후 서울 남산에서 열화상 카메라로 촬영한 도심 일대가 붉게 표시된다. 온도가 높을수록 붉은색, 낮을수록 푸른색으로 표시된다.

▲ 붉은 오후 폭염이 계속되는 2일 오후 서울 남산에서 열화상 카메라로 촬영한 도심 일대가 붉게 표시된다. 온도가 높을수록 붉은색, 낮을수록 푸른색으로 표시된다. ⓒ 연합뉴스


[기사 수정 : 6일 오후 4시 54분]

그동안 야구나 축구 같은 야외스포츠에서 날씨가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십중팔구 우천이었다. 비가 많이 쏟아지는 장마철이나 태풍이 찾아오는 경우 야외스포츠의 정상적인 경기 진행이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 들어서는 더위가 중요한 변수로 떠올랐다. 기상 관측 이래 최악의 폭염이 장기간 이어지면서 야외스포츠 경기운영에 비상이 걸렸다. 차라리 비가 오는 경우 야구는 경기를 취소하고 휴식을 취할 수도 있고, 축구는 대개 우천과 상관없이 경기가 진행된다.

그러나 올해 같이 40도를 넘나드는 이상 폭염에 대해서는 전례가 드물다 보니 아직 구체적인 대응 규정이나 매뉴얼이 부족한 실정이다. 장기간 살인적인 폭염에 노출된 상황에서 경기를 소화해야 하는 선수들은 물론이고 경기장을 찾은 관중들의 건강도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40도 넘나드는 폭염, 야구·축구 등 야외 경기하는 종목 어쩌나

프로야구와 프로축구에서 아직까지 더위로 인해 경기가 취소된 사례는 없었다. 프로스포츠는 대부분 더위가 다소나마 잦아드는 저녁 시간대에 경기가 열리기 때문이다. 낮 경기가 가능한 주말에도 여름철에는 저녁대로 시간을 옮기는 게 보통이다.

프로축구 K리그는 최근 폭염 대책의 일환으로 일부 경기 시간을 모두 오후 8시로 조정했다. K리그는 하절기에는 보통 오후 6시나 7시에 킥오프를 하곤 했는데 시간을 더 늦춘 것이다. 또한 몇몇 경기에서는 '쿨링 브레이크(Cooling Break)' 타임이 도입되기도 했다. 경기 도중 심판의 재량으로 약 2~3분 동안 경기를 중단시키고 선수들이 수분을 섭취하거나 잠시 숨을 돌릴 수 있게 하는 휴식시간이다.

이 제도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던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처음 도입되어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바 있다. 프로축구연맹 규정에서는 킥오프 전 측정한 기온이 섭씨 32도를 넘어갈 경우, 심판진이 협의해 쿨링 브레이크를 전후반 각 1회씩 실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무더위 속 워터타임 지난 7월 25일 경남 창원시 성산구 창원축구센터에서 열린 2018 KEB하나은행 대한축구협회(FA)컵 32강전 경남 FC와 FC 서울 경기. 경남 파울링요 등 선수들이 워터 타임 때 물을 마시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 무더위 속 워터타임 지난 7월 25일 경남 창원시 성산구 창원축구센터에서 열린 2018 KEB하나은행 대한축구협회(FA)컵 32강전 경남 FC와 FC 서울 경기. 경남 파울링요 등 선수들이 워터 타임 때 물을 마시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 연합뉴스


프로야구는 최근 선수협회가 선수 보호 차원에서 한국야구위원회(KBO)에 프로야구 경기 취소를 검토해달라고 요청한 것이 알려지기도 했다. 선수협회는 폭염이 지속될 경우 경기 개시 시간을 늦추는 방안도 고려해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KBO는 아시안게임 휴식기나 포스트시즌 일정 등 고려할 사항이 많아 경기 취소와 시간대 변경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 다만 2군 경기인 퓨처스리그에서는 이미 여러 차례 폭염으로 경기 취소가 이루어졌다.

팬들의 반응도 대체로 선수협회의 주장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타 종목이나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과 비교하여 높은 몸값과 대우를 받는다는 게 주된 이유다. '프로야구 선수들이 날씨가 덥다고 경기를 못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배부른 투정'이라는 비난도 쏟아졌다.

사실 경기 취소나 시간대 변경은 임시 방편일 뿐 폭염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라고는 할 수 없다. 저녁에도 열대야가 계속되는 최근의 상황에서는 해가 지더라도 지열이 남아 있어 경기 시간을 잠시 늦춘다고 체감온도에 큰 변화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더구나 경기 시간을 늦추면 관중들의 귀가 시간 또한 덩달아 늦춰진다. 축구는 그나마 경기가 연장전이 아닌 이상 2시간이면 끝나지만, 경기 시간 제한이 없는 야구는 경기가 길어질 경우 관중들에게 큰 불편을 줄 수 있다. 어차피 8월 중순이면 아시안게임으로 인한 휴식기도 잡혀있는 만큼 당장 폭염으로 인한 경기 취소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은 편이다.

다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런 문제가 언제든 다시 발생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앞으로는 폭염 같은 '기상 이변'으로 경기가 취소되거나 시간대 변경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은 충분하다. KBO는 지난 4월 '미세먼지'로 인하여 프로야구를 4경기나 취소하는 결정을 내렸는데, 이는 프로야구 출범 이후 최초의 사건이었다. 야외스포츠를 위협하는 기상 이변의 종류가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장면이다.

'재난' 수준의 기후 현상, 구장 시설의 문제도 드러냈다

오늘날 폭염이나 미세먼지는 이상 기후를 넘어 일종의 '재난'으로 취급받고 있다. 제아무리 프로 선수들이 체력적-정신적으로 잘 관리한다고 해도 개개인의 노력만으로 극복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전후반 내내 그라운드를 뛰어다녀야 하는 축구 선수들이나, 마스크-헬멧 등 무거운 장비를 착용하고 뙤약볕에서 서 있어야 하는 야구 선수들이나, 단련된 직업 운동선수라도 사람인만큼 힘든 것은 당연하다.

실제로 이미 한화 제라드 호잉이 경기 중 어지럼증으로 교체되는 등 몇몇 선수들은 폭염으로 인한 어지럼증, 탈수, 구토 등 온열질환 증세를 호소하는 사례가 나와서 우려를 자아내기도 했다. 지금까지는 잠시 휴식을 취하고 회복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만일 심각한 인명피해가 나오기라도 했다면 폭염 속에 경기를 강행한 것이 큰 문제로 지적되었을 수도 있다.

그나마 폭염 사태가 초래한 야외 스포츠계에 가장 긍정적인 영향이라면 여전히 낙후되어 있는 국내 프로 경기장 '시설 개선'에 대한 문제의식을 다시 환기시켰다는 점이다. 전통적으로 더위가 심하기로 유명한 대구를 연고로 하는 삼성은 라이온즈파크를 신축하면서 덕아웃과 관중석에 대형 에어컨과 미스트 노즐 등을 대거 설치하여 다른 구장에 비하여 쾌적한 환경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삼성이 여름 들어 강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도 구장효과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폭염에 관중도 '뚝' 폭염이 이어진 지난 7월 25일 오후 프로야구 한화와 기아 경기가 열리는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 폭염에 관중도 '뚝' 폭염이 이어진 지난 7월 25일 오후 프로야구 한화와 기아 경기가 열리는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 연합뉴스


반면 한용덕 한화 감독은 지난 7월 28일 두산과 잠실 원정을 앞두고 전날 내린 비로 경기 시간이 1시간 가까이 지연되면서 잠실구장의 시설 문제에 쓴소리를 내뱉기도 했다. 홈팀 선수들이 널찍하고 쾌적한 라커룸에서 대기한 것과 달리 잠실은 원정팀을 위한 휴식 공간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선수들이 무더운 복도나 더그아웃에서 대기하느라 더위에 그대로 노출돼 컨디션 관리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는 것이다.

잠실구장은 두산과 LG 두 구단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데다 구장의 관리 주체가 서울특별시 체육시설관리사업소라서 홈팀이 마음대로 시설을 개보수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한화의 홈인 대전구장을 비롯하여 창원 마산구장(NC), 부산 사직구장(롯데) 등도 시설이 좋지 않은 대표적인 야구장으로 꼽힌다. 국내 유일의 돔구장인 고척돔(넥센)이나 광주 기아 챔피언스필드(기아), 라이온즈파크(삼성) 등 신축구장들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구단 차원의 문제를 떠나 야구계와 지자체간의 지속적인 협력 및 논의가 요구되는 부분이다.

'아, 더워' 1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두산과 LG의 경기.

두산 오재일이 더그아웃에 설치된 냉풍기 앞에 앉아 더위를 식히고 있다.

▲ '아, 더워' 1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두산과 LG의 경기. 두산 오재일이 더그아웃에 설치된 냉풍기 앞에 앉아 더위를 식히고 있다. ⓒ 연합뉴스


봄 미세먼지, 여름엔 폭염... 협회·연맹의 대책 마련해야

기상 문제에 대한 협회 혹은 연맹 차원의 제도적인 보완책도 필요해 보인다. KBO는 경기당일 폭염 주의보가 발령돼 있을 경우 심판위원 및 경기관리인과 협의해 경기 취소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규정이 있지만 실제로 이행된 적은 없다. K리그에서는 폭염이나 온도에 따라 경기 개최 여부를 결정지을 수 있는 세부 규정이 아예 없는 실정이다.

장기레이스를 운영하는 야구나 축구에서는 앞으로 7~8월 혹서기에 한하여 '여름 휴식기'를 의무적으로 도입하는 것도 검토해볼 만하다. 특히 야구의 경우에는 여전히 무리한 일정이라고 지적받는 144경기 체제의 효율성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논의가 필요해 보이는 부분이다.

야외스포츠만이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 이제 기후 문제는 점점 재난 수준의 심각한 현안이 되어가고 있다. 스포츠계에서도 최근의 폭염 사태를 단지 올해에만 국한된 특수한 상황으로 여기기보다 내년, 내후년까지 고려한 적극적인 대책을 고민할 시점이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야구 축구 폭염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