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후 일본 도쿄 아지노모토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7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 남자부 최종 3차전 한국 대 일본 경기. 신태용 감독이 네번째 추가골을 넣은 염기훈과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다.

16일 오후 일본 도쿄 아지노모토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7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 남자부 최종 3차전 한국 대 일본 경기. 신태용 감독이 네번째 추가골을 넣은 염기훈과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다. ⓒ 연합뉴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이 1월 해외 전지훈련을 앞두고 있다. 신 감독은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전지훈련에 참가할 선수단 명단을 발표한다. 대표팀은 22일 터키 안탈리아로 떠나 몰도바(27일), 자메이카(30일), 라트비아(2월 3일)와 차례로 평가전을 치를 예정이다.

 
월드컵이 열리는 해마다 연초에 이뤄지는 해외 전지훈련은 이제 '월드컵 로드맵'의 필수 코스로 자리 잡았다. 손발을 맞출 기회가 많지 않은 대표팀으로서는 최종엔트리가 확정되는 5월 이전까지 장기소집을 통하여 조직력과 전술적 완성도를 끌어올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해외 전지훈련을 통하여 가장 훌륭한 성과를 거둔 것이 바로 2002 월드컵이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대규모 전지훈련과 강팀과의 원정 평가전을 통하여 꾸준히 전력을 끌어올렸고 월드컵에서 4강 신화라는 업적을 이룩했다.
 
하지만 2002년 이후의 월드컵에서부터는 전지훈련의 효과에 대해서 평가가 조금 엇갈린다. 일단 히딩크 감독 시절만 해도 안정환, 설기현 같은 몇몇 해외파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국내파 위주의 선수들로 구성되며 선수 차출이 훨씬 쉬웠다. 여기에 협회의 전폭적인 지원까지 등에 업고 수시로 대규모 장기소집을 단행하며 자연스럽게 조직력 극대화를 기대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02년 이후 한국 축구에 유럽파를 포함하여 다양한 해외 무대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이 대거 늘어나며 예전처럼 수시로 정예멤버들을 소집하거나 장기합숙을 시키기 어려운 환경이 됐다. 또한 히딩크 감독은 최종엔트리 발표 직전까지도 전 포지션에서 선수들의 무한 경쟁을 유도했다면, 이후의 대표팀 감독들은 월드컵 본선을 5~6개월 앞둔 시점에서 어느 정도 팬들도 월드컵에 나갈만한 선수들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을 만큼 윤곽이 가려진 경우가 많았다.

평가전 부진하면 비난 뭇매... '잘 해야 본 전' 

이러다 보니 1월에 열리는 해외 전지훈련이 사실상 월드컵 구상에서 큰 의미가 없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어차피 최종엔트리 승선이 유력한 해외파들이 대부분 빠진 상황에서 월드컵에 나갈 가능성이 희박한 국내 선수들은 자신들이 해외파들의 빈자리를 잠시 메우는 '땜빵'이라는 생각에 의욕을 잃을 수 있다.
 
더구나 국내파 선수들에게 1월은 비시즌이다. 대표팀 합류를 위하여 휴식기를 일찍 마치고 조금씩 몸 상태를 끌어올려야 하는 시기인데 무리하다가 부상이라도 당하면 개인과 소속팀 모두에게 손해다. 체력훈련에 중점을 줬던 히딩크호도 연초에 전지훈련과 북중미 골드컵 등에서 저조한 경기력을 보일 때만 해도 비판 여론이 쏟아진바 있다. 체력이나 경기감각이 완전하지 못한 상태에서 평가전에 한두번 부진하기라도 하면 '그것봐, 무조건 유럽파가 있어야 돼' 같은 비난 여론에 시달릴 각오를 해야 한다.
 
평가전에서 실험을 시도하다가 만일 결과가 나쁘기라도 하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월드컵 본선을 준비하는 대표팀 분위기까지 악영향으로 이어질 수 있다. 대표팀 감독으로서는 최상의 전력을 확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선수단의 동기부여와 긴장감을 끌어내고 팀의 연속성을 유지해나가야 한다는 이중고에 시달려야 한다.
 
이러한 불안 요소가 모두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이 바로 지난 2014 브라질월드컵이었다. 홍명보 감독이 이끌던 대표팀은 조별 리그에서 1무 2패로 초라하게 탈락하는 수모를 당했는데 사실 그 복선은 이미 1월 전지훈련에서부터 불길한 조짐이 예고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홍명보 감독은 당시 브라질과 미국을 오가며 국내파 선수들 위주로 약 한 달 가까이 전지훈련을 단행했는데 내용과 성과 모두 역대 최악에 가까웠다. 당시 성인팀 지도 경력이 전무했던 홍 감독은 비시즌에 소집된 국내파 선수들의 컨디션 관리와 향상에 대한 노하우가 부족했고, 무엇보다 이들을 제대로 활용하는 방식도 알지 못했다. 평가전에서 부진을 거듭하며 애꿎은 국내파 선수들의 실력 문제가 팬들로부터 집중적인 비난의 표적이 되면서 팀의 사기도 곤두박질쳤다.

정작 전지훈련을 통하여 대표팀이 새로운 선수발굴이나 전술적인 플랜B를 모색하기보다는, 기존 유럽파와 런던올림픽 멤버들의 빈 자리를 어쩔 수 없이 잠시 채운다는 인상을 벗어나지 못하면서 국내파 선수들의 집중력과 의욕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당시 1월 전지훈련에서 발탁된 멤버 중 최종 엔트리까지 승선한 선수는 8명이었지만, 실제로 본선에서 중용된 선수는 김신욱, 이근호 등 일부에 불과했고 그나마도 주전급은 대부분 유럽파나 홍 감독과 예전부터 호흡을 맞춰온 런던올림픽 멤버들이 차지했다. 오죽하면 2014년 전지훈련이 남긴 의미는 홍명보 감독이 '의리 축구'를 선택할 명분쌓기에 불과했다는 혹평까지 나올 정도였다.
 
이번 1월 유럽 전훈만 해도 국제축구연맹(FIFA)이 정한 A매치 기간이 아니다 보니 손흥민과 기성용, 권창훈 등 주력 유럽파를 소집할 수 없다. 더구나 국내파와 아시아리거라고 해서 유리한 것도 아니다. 지난해 동아시안컵에 출전했던 멤버 가운데 김민우, 이명주, 주세종 등이 병역 문제로 합류가 불가능하다. 염기훈과 권경원 등은 소속팀의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 일정이 겹치는 게 변수다.

분위기 반전시킨 신태용호, 선수단 분위기가 중요   

K리그 구단들과의 상생과 협력을 중시하는 신 감독의 성향을 감안할 때 선수차출을 놓고 무리한 마찰은 피하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어설프게 해외파 위주의 반쪽짜리 선수단을 꾸렸다가 '대참사'를 빚었던 지난해 10월 유럽원정(러시아-모로코)의 악몽을 되풀이할 수도 있기에 신중해야 할 대목이다.
 
전지훈련에서 만날 상대 팀들의 수준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아쉬움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1월에는 어차피 강팀을 섭외하기 어려웠다는 것도 감안해야한다. 정예멤버가 모두 소집된 진짜 A매치는 3월 이후에 확인해도 늦지 않다.

꼭 강팀과의 대결이 아니라도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이번 터키 전지훈련의 진짜 목표는 비유럽파 중에서 월드컵에 나갈만한 자원을 가려내고, 새로운 조합의 점검과 전술적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신태용 감독의 선수단 장악력도 다시 한번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신 감독은 지난 2017 동아시안컵 우승을 통하여 자신에게 쏟아지던 비판 여론을 어느 정도는 반전시키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신태용호를 바라보는 기대치가 여전히 낙관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당장 평가전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는 것도 좋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감독이 얼마나 팀에 자신의 색깔을 자연스럽게 녹여내며 선수단의 분위기를 끌어올릴 수 있느냐다. 1월 전지훈련이 그저 잘해야 본전인 단순한 연례행사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신태용호가 월드컵을 앞두고 내부적으로 좀 더 단단해지는 계기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축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