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배급 시사회에서 <야경: 죽음의 택시>의 주민하(좌), 정보름(우) 배우와 함께 한 오인천 감독(가운데).

언론/배급 시사회에서 <야경: 죽음의 택시>의 주민하(좌), 정보름(우) 배우와 함께 한 오인천 감독(가운데). ⓒ 영화맞춤제작소


2년 전, 옴니버스 공포 영화 <십이야: 깊고 붉은 열두 개의 밤 Chapter 1>(2015) 인터뷰를 위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오인천 감독을 만났다. 당시 오인천 감독은 "한국의 미이케 다카시와 오우삼"이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미이케 다카시는 야쿠자 무비 액션-호러를 겸한 'B급 영화'의 거장으로 꼽히는 것은 물론 거대 자본 상업영화까지 만드는, 다작의 '괴물' 감독이다. 오우삼 역시 <영웅본색> <첩혈쌍웅> 등 걸출한 액션 영화의 장인으로 홍콩에서 출발해 할리우드를 거쳐 현재는 중국에서 영화를 만들고 있다.

오로지 장르 영화의 한길만 가겠다는 목표도 선명했다. 영화계에서 공포 장르는 점점 지평을 잃어가던 시기였지만 오인천 감독은 영화 <소녀괴담>(2014)을 선보이며 의미 있는 발자국을 새긴 이후였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재학과 시절 만든 단편영화부터 장편 데뷔작 <소녀괴담> <십이야 : Chapter 1> <잡아야 산다>(2016)까지.

오인천 감독의 일관된 장르는 '호러 스릴러 액션'이었다. 게다가 실로 부지런하다. 20일 개봉한 신작 영화 <야경: 죽음의 택시>(아래 <야경>)과 <월하>를 세상에 내놓았다. '페이크 다큐 공포 스릴러 프로젝트'라는 생소한 듯 신선한 저예산 장르 영화들이다.

지난 15일 열린 기자 시사 자리에서도 오인천 감독은 이 장르 영화에 대한 애정을 감추지 않았다. <야경>의 살인마는 <할로윈>(2007)의 살인마 이미지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거나 브라이언 드 팔마의 <필사의 추적>(1981)이나 알프레드 히치콕의 <사이코>의 오마주가 드리워져 있다는 사실 역시 '쿨'하게 인정했다.    

그러니까 '젊은' 오 감독의 장르에 대한 경외감과 열정은 히치콕과 드 팔마의 관계처럼 거장을 향한 애정을 영화로 승화시키는 것과 중첩돼 있는 것처럼 보였다. 또 오우삼 감독처럼 전 세계에서 인정받는 동시에, 미이케 다카시 감독처럼 장르를 넘나드는 '장인'을 꿈꾸는 듯했다. 두 사람 모두 일정 수준 이상의 재미와 완성도를 지닌 것은 물론이다.

이를 응원하기라도 하듯 <야경>은 올해 몬트리올 국제영화제 '포커스 온 월드 시네마' 부문에 초청됐다. 로스앤젤레스 호러 영화제는 오인천 감독과 <야경>에 각각 베스트 감독상과 베스트 사운드디자인상을 안겼다. <월하> 역시 포틀랜드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다.

이밖에도 영미권 및 유럽의 국제 장르영화제가 <야경>과 <월하>를 주목했다. 상업 대중영화부터 재기발랄한 저예산 영화까지, 장르 영화 한 우물만 파는 오인천 감독. 그가 배우로도 출연한 영화 <야경>과 <월하>를 좀 더 들여다보자.

<야경: 죽음의 택시> 장르의 순수 결정체

 영화 <야경: 죽음의 택시>의 한 장면.

영화 <야경: 죽음의 택시>의 한 장면. ⓒ 영화맞춤제작소


굉장히 '순수'한 형태의 장르적 활력. <야경>의 첫인상은 그러했다. 실제 사건에서 모티브를 취한 36번 국도 살인사건을 전면에 내세우고, 이를 쫓는 탐사보도 전문 프리랜서 기자와 사운드 기사, 그리고 이 둘의 '액션'을 잡는 카메라맨의 카메라와 목소리가 영화의 시선을 지배한다. 격렬한 핸드 핼드 카메라는 그대로 관객의 시선과 일치한다. 그렇다. <야경>은 한국에서 쉽지 않은 '페이크 다큐' 장르다.

살인마를 뒤쫓는 긴장이 영화 전편을 지배하는 동시에 그 살인마가 언제 습격할지 모르는 공포가 '진실'을 쫓는 카메라의 시선과 뒤엉키며, 때때로 강렬하고, 때로는 오싹한 감정과 리얼함을 선사한다. '페이크'라는 형식을 의식하더라도 공포와 긴장, 심지어 유머까지 담보하는 71분의 영화적 경험은 꽤나 짜릿하다.

이러한 경험은 평소 상업 공포영화의 문법, 즉 과잉으로 점철된 음악이나 배배 꼬아 놓은 이야기 구조, '쇼크'를 주기 위한 카메라 형식과는 거리가 멀다. 그 반대로 저예산이기에 가능한 '미니멀'한 형식과 시도가 의외의 집중도를 선사한다. 거추장스러운 형식을 걷어내니 영화적 활력이 살아나고, 장르적인 재미와 감정 그 자체에 오롯이 '올인'하게 만드는 식이다. 누구 눈치볼 것 없이 만든 장르의 순수 결정체랄까. 

의외의 애드리브나 저예산 현장이 줄 수 있는 소소한 재미는 덤이다. 페이크 다큐니만큼 '인터뷰'나 짧은 '공포' 푸티지, 일본이나 미국으로 건너 간 '살인마'의 흔적, 엔딩 크레디트나 후반부 음악까지 영화적인 소소한 재미도 곳곳에 흩뿌려져 있다.

그래서일까. 극장을 나서면, 그 71분의 경험이 찝찝하다거나 공포의 잔상을 되새기기보다 재기발랄하고 '귀여운' 장르 영화 한 편을 보고 나온 개운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월하> 오인천 감독의 영화적 센스 돋보여

 영화 <월하>의 한 장면.

영화 <월하>의 한 장면. ⓒ 영화맞춤제작소


<야경>과 함께 개봉한 <월하>는 비슷한 듯 또 다르다.

"<블레어위치> <파라노말 액티비티> <REC> 류의 페이크 다큐 스타일의 영화를 좋아했기 때문에 예전부터 만들고 싶었습니다. <월하의 공동묘지>와 같은 고전 공포를 모티브로 재해석 하거나, 실제 사건의 진실의 틈새를 재구성 하는 이야기를 소재로 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그런 작품들을 페이크 다큐 형식을 빌려서 해 본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만들게 됐습니다."

오인천 감독의 설명이다. '페이크 다큐'를 표방한 두 작품은, 촬영 시기도 엇비슷하지만, 시작 자체가 닮아 있다. 의문의 사건을 쫓는 이가 있고, 이를 촬영하는 카메라의 시선으로 영화가 전개된다. 또 얼굴이 보이지 않는 카매라맨(오인천 감독)의 질문과 설명, 리액션이 영화 초반을 이끈다. 그러한 예열의 과정을 거친 뒤, 서서히 살인마(<야경>)와 정체 모를 안내인과 '묘지'(<월하>)와 마주하면서 공포를 키워 나간다.

 영화 <야경>의 한 장면.

영화 <야경>의 한 장면. ⓒ 영화맞춤제작소


<월하>는 그래서 훨씬 더 선명하고 단도직입적인 작품이다. 예산 문제를 감안할 수밖에 없겠지만, 배우들의 대사와 연기, 그리고 공간과 카메라 형식이 주는 그로테스크함이 의외로 지속적인 충돌을 이끌어낸다. '월하의 공동묘지'라는 <전설의 고향> 류의 괴담을 먼저 '선포'하는 동시에 그 '아우라'를 영화적인 활력으로 끌고 간다는 점 또한 '영리'하다.

이미 2000년대 중반 <목두기 비디오> 류의 페이크 다큐가 잔잔한 반향을 일으킨 바 있지만, <월하>는 그와는 다른 결을 간다. '진짜'임을 증명해내려 한다거나 과시하기보다 '영화'라는 외피를 감추지 않으면서도 묘한 불쾌감과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준비된 공포감을 후반까지 유지하려 노력한다. 몇 가지 디테일만을 가지고, 일제 강점기 시대로 공포의 연원을 무한대로 확장시키는 '영화적'인 센스도 그러한 노력 중 하나다.  

다만, 두 남자 주인공(과 안내인)의 끊임없는, 상황을 설명하는 '대사'가 흘러넘치는 것은 약점으로 지적될 만 하다. 아이디어와 형식만으로 뛰어넘을 수 없는 저예산이란 영화 바깥의 한계를 상기시킨다고 할까.

대작 영화들이 극장가를 점령한 연말, 오인천 감독이 부지런히 찍고 공개하는 두 편의 공포영화는 분명 색다른 재미를 안겨줄 것이다. 비록 이번엔 단관 개봉에 가까운 형태로 선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개봉을 통해 두 작품 모두 향후 2차 플랫폼에서라도 공포영화 팬들이 오래 즐길 수 있는 단초가 마련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영화 <야경: 죽음의 택시>의 현장에서 살인마 역할의 배우와 함께 한 오인천 감독.

영화 <야경: 죽음의 택시>의 현장에서 살인마 역할의 배우와 함께 한 오인천 감독. ⓒ 영화맞춤제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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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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