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랑 후에 남는 것들

연인처럼 '무 자르듯' 끝나는 관계가 또 없다. 연인 관계에서는 뜨뜻미지근한 감정을 용납지 않는다. 별로 친하지 않은 친구나 직장 동료를 대하듯 느슨한 관계로 남기보다, 치열한 내적 고민을 거친 후 더 나은 관계로 나아가거나 '무 자르듯' 이별을 선언하는 게 연인. 이별하고도 남아있는 미련이나 앙금은 선언 외적으로 감당할 문제다.

영화 <최악의 하루>는 거짓말을 일삼는 여자 은희(한예리 분)와 뻔뻔한 남자 현오(권율 분), 징그럽게 '찌질한' 남자 윤철(이희준 분) 사이의 만남과 이별을 보여준다. 애초에 이들의 만남은 단내 풍길 만큼 뜨겁지 않다. 우선 은희와 현오는 연인이면서도 끝내 서로를 신뢰하지 못한다. 각기 다른 사람에게 '한눈판'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가지고 있는 불신은 '배우'라는 직업을 통해 잘 드러난다. 현오는 아침드라마에 출연하는 자신의 지위를 과대 해석한 나머지 항상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쓰고 은희를 만난다. 단순히 복장의 문제가 아니다. 은희는 좀처럼 현오의 눈과 얼굴을 볼 수 없다. 모텔에서 보는 현오의 눈은 흥분으로 달떠 있을 뿐 진심이 들여다보이지는 않는다.

영화 <최악의 하루> 연인인 은희(한예리 분)와 현오(권율 분) 사이에는 신뢰가 없다.

▲ 영화 <최악의 하루> 연인인 은희(한예리 분)와 현오(권율 분) 사이에는 신뢰가 없다. ⓒ CGV 아트하우스


결국 그녀가 자꾸만 현오의 선글라스를 벗기려 드는 것은 단순한 장난이 아니라 밝은 햇빛 아래에서 진심을 엿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는 현오도 마찬가지다. 그는 은희를 신뢰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드러내놓고 밝힌다. 배우인 은희가 자신의 직업적 특징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미지근한 두 사람 관계의 균열점에는 윤철이 있다. 그는 자기애가 매우 심한 사람이다. 유부남과 이혼남의 애매한 경계에 서 있던 윤철은 결국 은희와의 사랑을 깨뜨리고 여기에 죄책감을 느낀다. 그러나 죄책감은 은희에 대한 미안한 감정 때문이 아니라, 자신을 가상의 비극으로 몰아놓고 그 카타르시스를 즐기기 위한 것이다.

영화 <최악의하루> 두 사람에게는 상대를 사랑하는 내 감정이 더 중요하다

▲ 영화 <최악의하루> 두 사람에게는 상대를 사랑하는 내 감정이 더 중요하다 ⓒ CGV아트하우스


'카타르시스'를 즐기는 것은 은희도 마찬가지다. 은희는 윤철을 버리고 현오를 택했다고 말하면서도 윤철 앞에서는 그에게 미련이 남은 것처럼 필요 없는 연기를 한다. 이상한 일이다. 윤철을 붙잡아 '양다리' 연애를 이어갈 생각은 없으면서도 맡은 바 역할에는 충실한 모습이 기이하게 보이기까지 하다.

여기서 세 사람의 관계에서 사랑이나 치정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사랑과 치정은 남산 산책로라는 무대 위에서 세 사람이 만나 양다리가 폭로되고 예정된 '파국'을 맞이하기 위해 존재하는 장치일 뿐이다. 결국 사그라지는 사랑에 대한 안타까움보다 파국 그 자체의 양상과 사랑 후에 남은 것들에 주목해야 한다.

극단적 모순이 만들어낸 상태

사랑 후에도 남는 것은 자기 자신뿐이다. 은희에게는 윤철을 사랑했던 자신과 현오를 사랑했던 자신이 각각 남는다. 그녀는 윤철을 만날 때는 머리를 묶고 현오를 만날 때는 머리를 푼다. 외모뿐 아니라 성격조차 아예 다르다. 윤철 앞에서는 상처받기 쉬운 세심한 성격을 드러내고 현오 앞에서는 저돌적이고 직설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둘 다 진실한 그녀의 모습일 수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녀는 연극을 하듯 맡은바 배역에 따라 '페르소나'를 자유자재로 바꾸는 것뿐이다. 이는 조금 과장되었을 뿐 우리가 현실에서 매양 하는 일이다.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며 상대와의 관계에 따라 성격과 행동을 마음대로 바꾼다. 그 중 어느 쪽의 '내'가 진실일까?

아니 질문을 바꿔보자. 어느 쪽이 거짓일까? 거짓된 것은 없다. 우리가 관계를 맺을 때마다 표변하는 것은 우리의 내면이 상황에 맞는 가면을 뒤집어쓰고 표출된 것이다. 가면만 둥둥 떠다닐 수는 없다. 우리가 택한 사회적 입장, 감정과 태도 등은 때로 아예 다른 사람의 모습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하나의 내면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영화 <최악의하루> 최악의 하루, 최악의 순간을 맞이하는 은희

▲ 영화 <최악의하루> 최악의 하루, 최악의 순간을 맞이하는 은희 ⓒ CGV아트하우스


문제는 페르소나의 모순이다. 한 인간의 다른 측면이 한 자리에서 노출되면 혼동이 생긴다. 예컨대 엄하고 완벽한 아버지가 직장 상사에게 호되게 꾸지람을 받는 상황을 목격한다면 우리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리를 피할 것이다. 한 사람의 내면이 각자의 자리에서 아주 다른 모습으로 표출될 수 있음을 인정하고 따로 또 같이 공존하도록 두는 것이다.

세 사람의 관계 속에서 은희가 맡은 두 개의 역할도 공존할 수 있다. 세 사람의 사랑은 뜨겁게 이어지거나, 차갑게 끊어지는 대신 허위 속에서 미지근하게 연속되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산 산책로에서 삼자대면이 이루어진 순간, 공존은 불가능해진다. 세 사람의 관계는 다자연애에 동의하지 않고서야 받아들일 수 없는 '극단적 모순'이다.

'양다리'가 폭로된 후 윤철 앞에서 세상이 무너진 듯 울던 은희는 없다. 현오의 선글라스를 벗기며 관심을 갈구하던 은희도 더는 없다. 아니 적어도 남산에서 맞이한 최악의 하루, 최악의 순간 동안에는 거의 모든 은희가 사라진다. 그녀는 가면을 바꿔 쓰며 강박처럼 연기하던 경극 무대에서 내려와 긴장을 풀고 망아의 상태에 빠진다.

거미줄같은 관계를 덜어낸 청쾌함

영화 <최악의하루> '안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복잡한 은희의 내면

▲ 영화 <최악의하루> '안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복잡한 은희의 내면 ⓒ CGV 아트하우스


그런 은희를 구해주는 것은 소설가 료헤이(이와세 료)다. 료헤이는 작품 속 등장인물들에게 '최악의 하루'를 선사하는 글쓰기를 즐긴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는 수많은 관계들이 서로 모순되는 형태로 잠재해 있는데 최악의 고난에 부닥치게 만들면 그 모순들이 형상화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료헤이는 자기 작품 속에서 폭로되는 '모순'이 자신의 욕망에서 발현한 것이 아니라 그가 관찰한 실존인물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어떤 인물을 관찰하면 그의 민낯을 알 수 있고 거기에서 뻗어나간 관계와 모순을 역추적 하는 방식으로 구현해 독자들에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예컨대 료헤이는 은희를 관찰한다. 두 사람은 길을 묻다가 우연히 만난 사이다. 그러나 료헤이는 본능적으로 은희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 한 토막을 떠올린다. 그는 은희가 배우라는 사실과 처음 보는 남자에게 열과 성을 다해 길을 알려주고 은근슬쩍 '커피 한 잔'을 요구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나 이 모습은 은희가 낯선 이와 만나서 뒤집어 쓴 가면일 뿐이다. 료헤이는 그 가면 너머에 진짜 은희를 추측한다. 그리고 진짜 은희를 가면 밖으로 끄집어내기 위해 온갖 역경을 부여한다. 결국 은희가 현오와 윤철 사이에서 겪은 최악의 하루는 료헤이가 진짜 은희를 끌어내기 위해 구상한 고난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게 은희를 '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고난을 겪는 과정에서 은희가 내보인 반응도 그 상황에 맞는 가면을 뒤집어 쓴 것일 뿐이지 근본의 은희는 아니다. 결국 또 하나의 가면을 씌우기 위해 등장인물을 망아의 상태에 빠뜨리는 것은 인물을 이해하는 행동이라기보다 소설가 개인의 욕망을 구분 없이 드러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료헤이는 기자와의 대담을 통해 '내가 관찰한 인물과 소설 속 인물들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쩌면 등장인물들이 겪는 고난이 오롯이 소설가인 자신의 욕망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제 그는 고난을 통해서만 모순과 진심을 드러내는 게 아니라 등장인물이 상황 속에서 뒤집어 쓴 가면을 있는 그대로 보려한다.

영화<최악의하루> 두 사람의 만남은 '어둠 속에서' 이루어졌을지도 모른다.

▲ 영화<최악의하루> 두 사람의 만남은 '어둠 속에서' 이루어졌을지도 모른다. ⓒ CGV아트하우스


료헤이는 최악의 하루를 맞이하고 남산 산책로 위에서 멍하니 앉아 있는 은희에게로 간다. 두 사람의 만남이 <최악의 하루>라는 영화 속에서 이루어진 것인지 아니면 '어둠 속에서'라는 소설 속에서 이루어진 것인지는 모호하다. 은희를 찾아간 것이 영화감독 '김종관'이든 소설가 료헤이이든 '최악의 하루'라는 서사를 바로잡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은 틀림없다.

료헤이는 은희에게 자신이 새로 구상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료헤이의 이야기는 어느새 겨울을 맞이한 남산 산책로에서 진행된다. 눈 오는 산책로 위를 걷던 은희는 무심코 뒤를 돌아본다. 거기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찌질하고 자기애가 심한 남자나 뻔뻔한 남자 혹은 그들 사이의 모순된 관계 따위가 아니다.

거기에는 그냥 '끝'이 기다리고 있다. 수많은 관계의 모순 속에서 끝없이 고통 받고, 서로 다른 가면을 수없이 바꿔 쓰느라 하루 종일 스트레스를 받은 은희에게 료헤이가 선물한 '해피엔딩'은 '끝' 그 자체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모든 인간은 끝이 없는 인생과 관계 속에서 고통 받는다. 여름날 거미줄처럼 질척이는 관계들을 때로 다 걷어내고 싶을 때도 있다.

료헤이가 선물한 '끝'은 청쾌함을 준다. 이는 비현실적이지만 달콤한 선물이다. 영화 내내 최악의 하루를 맞이하고 고통 받은 주인공을 보고도, 관객들은 기묘한 설렘을 안고 영화관을 떠나는 이유다.

ⓒ CGV아트하우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영화 리뷰 블로그 '4인칭' (http://blog.naver.com/4thperson)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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