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세월호 참사 2주기에 맞춰 <그것이 알고 싶다> '세타(Θ)의 경고! 경고! 세월호와 205호 그리고 비밀문서'(아래 <그알>)를 방영했다.

<그알> 팀은 방송을 통해 그동안 계속 제기되어 왔던 국정원과 세월호의 의심스러운 관계를 조명하고, 세월호가 침몰하는 순간에 구조가 왜 그리 더뎠는지를 고찰했다.

그 파장이 얼마나 큰지 <그알>은 아직도 포털 검색어 순위에 오르내린다. 2년 동안 적지 않은 이들에 '이젠 지겹다'는 평가를 받아온 세월호 참사가 이번 방송을 계기로 수면 위로 떠오를 기회를 다시 한 번 잡은 것이다.

총선 후라 가능했던 방송

사실 <그알>의 내용은 그동안 세월호 관련 기사를 유심히 지켜봤던 이들에는 딱히 새로울 게 없는 것들이었다. 세월호와 국정원의 이상한 관계야 이미 수많은 음모론이 떠돌고 있고,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는 순간 컨트롤 타워의 어처구니없는 대응 역시 이미 밝혀진 그대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번 방송에서 눈을 뗄 수 없었던 것은 방송 시기 때문이었다. 세월호 변호사 박주민 후보가 국회의원(은평갑)으로 당선되고, 여소야대가 이뤄진 4.13 총선 직후의 4월 16일, 세월호 2주기 아니던가.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와 더불어민주당 이종걸 원내대표, 국민의당 주승용 원내대표가 정의화 국회의장의 주선으로 18일 오전 국회에서 4.13 총선 뒤 처음으로 만나 손을 맞잡고 있다.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와 더불어민주당 이종걸 원내대표, 국민의당 주승용 원내대표가 정의화 국회의장의 주선으로 18일 오전 국회에서 4.13 총선 뒤 처음으로 만나 손을 맞잡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그동안 정부와 여당은 세월호 특조위를 계속 방해해왔고, 보수언론들은 세월호 유가족들을 보상금을 타기 위해 애쓰는 부모들로 폄훼해 왔다. 그런데 과연 총선 결과가 위의 흐름을 끊고 지상파 TV에도 반영되는지가 궁금했다.

천하의 <그알>이지만 MB정부 이후 망가질 대로 망가진 언론 환경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세월호는 이 정부의 아킬레스건 중의 하나이지 않은가. 추측건대, 이번 총선에서 야권 승리가 없었다면 이번 방송은 방영 자체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방영했었더라도 어떤 유·무형의 압박을 받았을지 모른다. 이런 불안감이 그저 나만의 망상일까.

다행히 <그알>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혹자들은 방송이 국정원과 세월호 관계를 좀 더 깊숙이 파지 않고, 세월호 침몰 원인에 대해서 다루지 않았다며 아쉬워했다. 하지만 이번 방송은 명명백백히 드러난 팩트만으로 최선을 다해 사람들에게 세월호를 다시금 상기시켰다.

굳이 제기되는 음모론을 나열하지 않더라도 세월호 참사는 그 자체로 말이 되지 않는 사건임을,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러도 우리가 꼭 해결해야 하는 사건임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한 것이다.

윗사람만 쳐다보는 관료들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접했던 세월호 소식이었지만, <그알>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다시 한 번 충격을 받았다. 세월호가 침몰하던 당시에 오갔던 해경본청 상황실과 청와대 위기관리상황실의 대화 때문이었다.

단순히 텍스트로 접했을 때와 달리 시시각각 세월호가 침몰해가는 장면과 함께 보니 너무도 한심하고 끔찍했던 대화들. TV는 네티즌들이 인터넷에서 죽으라 이야기를 해도 한낱 음모론 치부되는 것들을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인지시키고 있었다.

"아니, 그러면 여기 지금 VIP(대통령) 보고 때문에 그런데 영상으로 받으신 것 휴대전화로 보내줄 수 있습니까? (중략) 현지 영상 받아볼 수 없습니까? 아니면 사진이라도…. 구조 인원이 몇 명인지만 그 정도만 빨리 좀 알려주십시오."

"네. 그 다음부터는 해가지고 저희 확인을 해야 하는데 전화 받느라고 확인을 못 하고 있습니다."

전화하기 바쁜 해경본청 전화 받느라고 확인을 못했던 그들

▲ 전화하기 바쁜 해경본청 전화 받느라고 확인을 못했던 그들 ⓒ SBS


청와대는 그 급한 상황에서도 계속해서 해경본청을 독촉하고 있었다. 거듭되는 요구가 현장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긴박한 구조에 얼마나 방해가 될는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이유는 단 하나. 자신의 위치에서는 윗사람에게 정확한 보고를 하는 것만이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 영상(송출장치) 가지고 있는 해경 도착했어요?"
"아직 도착 못 했습니다."
"몇 분 남았어요?"
"네? 지금, 잠시만요."
"그 배가 빨리 가야 하는데."
"네. 지금 아직 도착을 못 했고요."
"확인해 봐요, 얼마나 남았어요 지금? 끊지 말고."
"잠시만요. 6마일 남았거든요."
"(영상촬영 한 해경에다가) 거기 지시해가지고 가는 대로 영상 바로 띄우라고 하세요. 그것부터 하라고 하세요. 다른 것 하지 말고."

보면 볼수록 어처구니없는 대화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익숙한 장면이기도 했다. 현장에서는 문제가 심각하게 불거지고 있는데, 정작 리더라는 사람은 책상머리에 앉아 밑의 사람이 올린 보고서만으로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양하는 모습. 그것은 현장보다 리더의 전지적 권한만 중요시하는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기도 했다.

만약 나라면 그 상황에서 청와대의 요청을 잠시 묵살하고 구조에만 전념할 수 있었을까? 아마 쉽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의 해결보다 청와대에 올릴 보고가 나의 안위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와 같은 풍토가 무능한 리더를 만났을 경우다. 이때 조직은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 리더가 무능할수록 자신의 권위를 더 확고히 하기 위해 현장의 자의적인 판단을 타박하게 되고, 밑의 사람들은 그만큼 리더의 입만 바라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알>은 이런 메커니즘이 현재 우리 관료사회를 얼마나 심각하게 망가뜨리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오로지 대통령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관료들. 그들은 자신의 철밥통에 대한 위협을 감수하면서까지 대통령에게 직언하지 않았다. 자신의 눈에서 벗어난 사람은 끝까지 용서하지 않기로 유명한 박근혜 대통령 앞에서 그들은 무력했고 비겁했다. 그러니 전대미문의 사건을 눈앞에 두고서도 계속해서 사진 타령만 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 죽어가던 그 일촉즉발의 상황에서도 VIP 이야기이니 일단 받아 적으라던 청와대의 어처구니없는 지시를 보라. 그것이 그 어려운 고시를 통과하고, 소위 사회의 엘리트라 불리는 사람들이 내릴 수 있는 판단인가. 결국, 리더가 무능하면 유능한 인력들도 쉽게 바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방송은 증명하고 있었다.

"VIP(대통령) 메시지 전해드릴 테니까 빨리 전해주세요. VIP 메시지 가져와! 첫째, 단 한 명도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 일단 적어. 그다음에 여객선 내의 객실 엔진실 등을 포함해서 철저히 확인해가지고 누락되는 인원이 없도록 하라."

악의 평범성

뒤늦은 질문 이제서야 외치는 그들의 안부

▲ 뒤늦은 질문 이제서야 외치는 그들의 안부 ⓒ SBS


VIP 보고를 위해 계속 해경을 독촉하던 청와대 담당자는 세월호가 거의 침몰한 오전 10시 52분이 되어서야 구조된 승객 이외에 탑승객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지금 거기 배는 뒤집어졌는데 지금 탑승객들은 어디 있습니까?"
"지금 대부분 선실 안에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네? 언제 뒤집어졌어요, 배가?"

그는 이후 그렇게 죽어간 탑승객들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시 한 번 인원 정리를 하며 오차가 생겼다며 투덜거린다.

"큰일 났네. 이거 아이씨. 이거 VIP(대통령)께 보고 다 끝났는데."

사람이 엄청나게 죽었어도 자신의 난처한 상황만을 떠올리는 청와대 담당자. 과연 그는 본질적으로 악한 인물일까?

아니다. 아마도 그는 전혀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단지 자신은 'VIP 보고'라는 막중한 임무에 충실했을 뿐이며, 모든 잘못은 자신의 질문에 대답하면서도 탑승객들을 구하지 못한 해경에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사람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과오를 접했을 때 대게 자기합리화를 통해 그 상황을 모면하기 마련이다.

독일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나치 전범들을 연구하며 '악의 평범성'을 이야기했다. 홀로코스트와 같은 악행들이 결코 광신자나 반사회성 인격장애인들이 벌인 것이 아니라 국가에 순응한 평범한 이들에 의해 자행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세월호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사회의 잘못된 시스템이 각 개인의 합리적인 판단을 막았고, 그것들의 총합이 결국 세월호 참사를 더 비극적으로 만들었다.

아직 세월호 사건은 끝나지 않았다. 다행히도 여소야대 정국으로 특조위 기간이 연장될 가능성이 커졌으며, 참사 2주기를 맞아 다시금 사람들이 세월호에 관해 관심을 보인다. 부디 정부는 이런 움직임에 찬물을 끼얹지 말고 적극적으로 세월호 사건에 대해 진실을 밝혀주기를 바란다. 평범한 사람들을 악마로 만드는 것은 한 번으로 족해야 하지 않겠는가. 진실은 절대 침몰하지 않는다.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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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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