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캠프

힐링캠프 ⓒ SBS


198회 <힐링 캠프> 4대 천왕-정형돈 편이 방영됐다. 최근 연예계 이슈로 회자되고 있는 '4대 천왕', 그 첫 테이프를 정형돈이 끊은 것.

사실 말이 4대 천왕이지(정형돈처럼 굳이 누구라 밝히지 않는 것을 전제로) 이 단어의 요점은, 급이 어울리는가 여부를 두고 화제가 되는 한 명의 인물을 제외하고, 당연히 천왕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두 사람을 차치하고, 이제는 천왕급이 된 정형돈의 존재다. <무한도전>에서 '웃기지 못해' 고전하던 그가, 이제는 누구와 파트너가 돼도 빵빵 터지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 '명불허전'이 된 그가, 4대 천왕 시리즈의 첫 회를 장식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막상 500명의 MC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한 시간여 프로그램을 해낸 정형돈은 '예능 대세 정형돈'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말대로 "좋아하는 일이 이제는 가장 잘하는 일이 되어버린" 진솔한 모습의 프로페셔널한 방송인이었다. 4대 천왕으로서의 자부심과 성취감 대신, 두 아이를 둔 가장으로 사회생활의 전성기를 누리는 잘 나가는 남자의 뒤안길을 슬쩍 드러낸 진솔한 방송 - 어찌 보면 이날 방송은 개편된 <힐링캠프> 이래 가장 힐링(치유)의 본질에 다가간 방송이었다.

24일 방송 중 김제동이 무심코 내뱉은 4대강, 대통령 등의 용어에 정형돈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 것에 대해 논란이다. 하지만 막상 방송을 보면 그가 거부 반응을 보인 것은 그 단어들만이 아니다. 자신을 규정하는 그 어떤 정의에 대해서도 정형돈은 일관되게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마치 그날의 컨셉이 '자기 부정'이라도 되는 것처럼. 오히려 4대강, 대통령 등의 단어에 화들짝 놀라며 조심하는 모습을 보인 정형돈의 모습은, 거르고 또 걸러야 하는 연예인의 숙명을 '셀프 디스'한 역설적 표현이라 봐야 할 듯 싶다.

'우유부단'이라는 자막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시종일관 정형돈은 자기 자신에 대한 어떤 규정이나 정의에 대해 불편해 했다. 그리고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세상이 다른 누군가를 두고 또는 어떤 것을 놓고 예단을 내리는 것에 의문을 제기했다. 방청객 MC들은 그런 정형돈에 대해 "겉은 유재석을 닮으려 하지만 속은 박명수"라는 정의를 내리기도 하고, 500명을 앞에 두고 떨고있다는 우스개로 김제동이 나서기도 했지만, 정형돈은 그런 모든 규정에 대해 쉬이 수긍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형돈의 본 모습은 "죄송하지만 오늘 결코 끝까지 자신의 솔직한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할 것"이라는 고백에서부터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대학생들을 앞에 두고 한 두번 째 강연에서 '내가 뭐라고?' 하는 직시와, 그 뒤로 단 한번도 강연에 나서지 않았다는 자기 결단이, 어쩌면 오늘날 그 누구와도 좋은 호흡을 이루어 예능을 이끌어가는 4대 천왕이 된 정형돈의 저력을 엿보게 한다.

그리고 예능계의 대세가 된 정형돈이지만, 언젠가 자기에게 시간이 주어진다면 자신의 생각을 물건으로 구현해내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소망에서, 무형의 언어에 기탁하여 인기를 먹고 살아야 하는 연예인의 슬픈 숙명과 더 나아가 '밥벌이의 고달픔'마저도 엿보게 된다. 그래서 500명의 MC들은 '솔직하지 못한' 정형돈에게 그 어느 때보다도 공감하고 함께 힐링하게 된다.

 정형돈

정형돈 ⓒ SBS


24일의 방송 중 가장 빛을 발한 장면은 아이러니하게도 29살 먹은 직장인의 사연을 두고 함께 하지 못한 순간이었다. 새롭게 개편된 <힐링 캠프>의 방식대로 출연한 연예인은 MC라 지칭되는 방청객의 사연을 듣고 '멘토링'을 해주는 시간을 갖는다. 거기서 등장한 사연, 29살 먹은 보육 교사가 '바로 오늘' 직장에 사표를 냈다는 내용이었다.

뭔가 멋진 힐링을 기대했건만, 그 사연을 접한 정형돈은 이의를 제기한다. 자기가 뭐라고 남의 인생에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를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그가 강연을 하지 않게 된 사연 - "혹시라도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로 인해 영향을 받을까 함부로 이야기 하지 않는다"는 정형돈의 생각에, 김제동은 웃으며 "사람들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반박한다. 이 장면은 <힐링 캠프>의 새 포맷의 장단점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낸 순간이었다.

방청객이 MC가 된다는 <힐링 캠프>의 새로운 포맷, 불난 집에 불구경 하는 걸 최고의 재미로 치는 우리네 정서에 걸맞게, 방청객 MC들은 자신들이 미디어를 통해 접한 정보를 통해 게스트로 등장한 연예인과 소통하고자 한다. 자신을 드러내길 혼란스러워하는 정형돈에게 '겉은 유재석이지만 속은 박명수이기 때문 아니냐'고 질문한 방식이 그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연예인들은 그런 방청객 MC들의 질문에 적당히 호응하면서 자신들의 이미지 메이킹을 한다. 소통과 공감을 하는 듯이 보이지만, 그래서 또 천편일률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정형돈 편은 그런 일련의 스테레오 타입을 벗어났다. 정형돈은 방청객 MC가 내린 규정에 대해 불편해하며 소통을 거부한다. 그리고 자신의 사연을 들고나온 방청객에게, 당신의 삶에 대해 왜 내가 왈가왈부하느냐고 반문한다. 어쩌면 <힐링 캠프>의 존재론에 대한 반격이다. 하지만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신선했고, 그의 인간적인 매력이 돋보였다. 그는 과연 이 시대의 '예능 4대 천왕'으로 자리매김할 만한 내공과 자기 색깔이 있었다.

메인 진행자인 김제동은 어김없이 특유의 스타일로 쇼를 이끌어 가고자 했다. 하지만 정형돈은 완강히 그런 진행을 거부한다. 정형돈이 한 말에 대해 어느 틈에 김제동이 '예단' 하고 '정의' 내리려 하면, 정형돈은 그게 아니라고 '정정' 하고 '정의 내림을 거부'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김제동식 쇼'의 그림자가 서서히 부각되기 시작한다. 김제동의 이야기 쇼는, 진솔한 듯 보이지만, 김제동에 의해 '네이밍(이름 붙이기)' 되는 성격이 강하다는 점이다.

24일 <힐링 캠프>의 재미는 그런 김제동식 쇼에 정형돈이 휩쓸려 들어가지 않고 팽팽히 충동하지 지점에서 발생했다. 이것은 <힐링 캠프>의 가능성이자 동시에 숙명적인 과제로 남는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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