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준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유승준

▲ 유승준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유승준 ⓒ 아프리카TV


유승준이 지난 19일 아프리카 TV에 출연하여 국민의 용서를 구했다.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은 모습이었다. 그는 젊은 시절의 잘못된 결정에 대하여 사죄하고, 병무청에서 선처를 해주어 군대를 갈 기회를 다시 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고 읍소하였다. 그러나 국민의 반응은 여전히 차갑다.

이재명 성남시장까지 나서서 유승준을 질타하는 글을 SNS에 올려 기사화되었다. 그 기사의 댓글을 보면, 그에 대한 칭찬이 절반을 차지하고, 나머지는 유승준에게 퍼붓는 비난으로 채워졌다. 십년 넘게 국민의 차가운 시선과 여론의 몰매를 맞아온 유승준에게 유명 정치인까지 나서서 돌멩이 하나 더 얹는 모습은 씁쓸함을 자아낸다. 

정치인도 나서서 돌멩이 하나 더 얹는 행태

병역 기피가 결코 용서받지 못할 죄인가? 현재 대한민국에선 '그렇다' 이다. 도박도 용서되고, 마약도 용서된다. 심지어 패륜과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초대형 비리도 용서받는다. 그러나 결코 용서치 못하는 것은 병역 기피다. 그렇다면 사회를 혼란케 하고 정신을 병들게 하는 폭력, 도박, 마약, 비리, 패륜 등의 범죄보다도 병역 기피가 훨씬 더 중한 죄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앞서 나열한 범죄보다 병역 기피가 더 무거운 죄라고 말할 수 있을까?

유승준이 문제의 행위를 했던 시기는 미국 영주권자였던 그가 국적을 결정해야 했던 지난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그때 한국 국적을 택하지 않고 미국 국적을 택했다. 이것은 예상치 못했던 엄청난 파장을 가져왔다. 이 행동은 '병역 기피를 목적으로 한 국적 포기'로 간주되어 법무부로부터 입국 금지 조치가 내려졌다. 이는 한국에서의 연예활동 금지 뿐 아니라 한국 땅을 영원히 밟을 수 없다는 것을 뜻했다. 그의 노래와 춤에 열광하던 사람들은 배신감에 그를 맹비난하며 차갑게 등을 돌려버렸다.

이후 해외에서 활동한 유승준은 간간히 국내 언론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고국을 그리워하는 마음과 한국에 가고 싶은 심정을 종종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차가워진 여론은 쉽게 돌아설 줄 몰랐다. 유승준은 한국사회에서 완전히 매장되었다. 그리고 잊혀졌다. 간혹 미국이나 중화권에서의 활동이 국내 언론에 보도될 때면 여전히 분기탱천한 국민이 다시 야유를 퍼부을 뿐, 13년 동안 그는 숨을 쉬고 있었으나 죽은 인생이었다.

유승준의 비극이 가슴 아프다

나이 마흔에 가까운 그가 오래전 일에 대하여 용서해달라고 읍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수 뿐 아니라 배우로도 활발하게 활동하며 해외에서 기반을 잡은 유승준이 한국에서의 활동이 욕심나서는 아닐 게다. 지난 19일에 생방송으로 방영된 70분간의 아프리카 TV인터뷰를 보았을 때, 매우 어눌하지만 강하게 호소하려고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자신과 자녀들의 정체성이었다. 그가 되찾고 싶어 하는 것은 돈도 명예도 아닌 '유승준'이란 석자 이름이었다. 한국어를 모국어로 쓰고 한국인의 생김새이고, 주변 사람들이 모두 '코리안'이라고 부르는데, 10년 넘게 한국에 들어갈 수 없고, 한국으로부터 배척당하고 있는 현실이 매우 고통스러웠음을 짐작케 했다. 결혼하여 자녀를 낳고 기르면서 내적 갈등과 괴리감은 커졌을 것으로 보인다.

본향에 대한 정체성은 사람에게 매우 중요하다. 특히 외국에 나가서 사는 이민자들에게는 특히 더 그렇다. 국가가 나를 적절히 보호해주지 않아도, 심지어 신체를 구속을 하고 자유를 억압하더라도, 스스로 한국인이라고 생각하고, 타인에게 한국인으로 인정받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유승준이 미국 시민권을 택했던 20대 중반에는 이러한 것을 잘 알지 못했을 것이다. 병역 문제가 입국 금지까지 가져올 것을 예상치 못했던 것처럼 말이다.

국민이 믿어주든 안 믿어주든, 그는 '군복무를 피할 생각이 전혀 아니었다'는데 병역 기피자가 되고 말았다. 그로 인해 한국 땅을 밟을 수 없게 되었으며, 이제는 군대를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죽을 때까지 이방인으로 살아야 하는 것. 이것이 가수 유승준이 겪는 비극이다.

더 얻을 것도, 잃을 것도 없는 유승준이 용기를 내어 어제 사죄를 하였다. 국민이 용서한다고 해도 그가 그토록 원하는 입대는 어려울 테지만, 그의 병역 기피가 고의적이든 고의적이지 않든 간에 이 문제로 한 사람의 인생이 온통 엉켰다는 점은 참으로 안타깝다. 이 같은 일은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에서만 발생하는 일이기에 더욱 그렇다.

우리는 솔직해져야 한다

현재 대한민국의 군대는 구타, 총기 사고, 인권 유린, 왕따, 탈영, 자살 등 엄청난 문제를 안고 있고, 과거에도 이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나을 것이 없었다. 폐쇄적인 군대 시스템에서 20대 청년들이 고통스럽게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있다. '참으면 윤 일병이 되고, 못 참으면 임 병장이 된다'라는 말도 생겨났다.

지난 해 윤일병 학대, 살인 사건은 국민을 크게 분노케 했다. 단순 사고사로 묻힐 수 있었던 이 사건에 대하여 용기를 내어 진실을 알린 사람은 윤일병의 동료 병사였다. 그러나 그는 진실을 말한 후, 배신자의 낙인이 찍혀 왕따가 되어 우울증을 겪는 등 괴로운 군 생활을 했다고 한다. 군은 멀쩡한 젊은이를 학대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 것도 모자라, 내부 고발을 한 용기 있는 군인을 보호해주지 않았다. 군은 여전히 반성조차 하고 있지 않으며, 잘못된 시스템 개선은 매우 요원해 보인다. 이 같은 현실에서도 군대에 꼭 가야하고, 안가면 매국노라는 논리가 과연 옳은 것일까?

우리는 좀 솔직해져야 한다. 유승준을 비난하는 심리는 국방의 의무 준수에 대한 경외감, 애국심이 아니라, 나와 내 자식은 그 지옥 같은 곳을 다녀왔고 가야하는데 너는 얼마나 잘났기에 안가냐는 심리가 더 강하다. 유승준을 용서하지 않는 강퍅한 마음은 애국도 무엇도 아닌 피해의식과 복수심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돌아보아야 한다. 만약 그렇다면 유승준을 애국, 조국, 의무 등을 운운하며 비난하는 일은 매우 가식적이다. 

한국에서 남자로 태어난 것을 한탄하며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수행하는 병역의 의무. 이에 결혼하면 아들을 낳지 않겠다는 예비역들의 자조 섞인 한탄은 결코 농담이 아니다. 피할 수 만 있다면 피하고 싶고, 손쓸 수 있다면 손써서 군대를 편하게 갔다 오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 것이 솔직한 심정이지 않은가.

자식이 고생스럽게 군대 생활 하기를 바라는 부모는 대한민국에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군대라는 곳이 함께 가보자고 권면할 곳이 못 되는데 왜 병역 문제가 있으면 이토록 가혹한지. 나도 갔으니 너도 가야한다는 논리는 매우 폭력적이고 맹목적이다. 13년이 지난 지금도 온 국민이 똘똘 뭉쳐 유승준을 비난하고 용서치 않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매우 슬픈 일이다.

연예인에게 더 큰 고민, 병역의 의무

가수 싸이는 과거 공익요원으로 군복무를 마쳤으나, 병역기피 의혹이 불거져 현역으로 재입대하는 상황에 처했었다. 현역 복무 기간을 모두 마치고 제대하자 그는 비로소 대중의 용서를 받을 수 있었다. 군대를 두 번이나 갔다 온 것에 대한 동정심도 작용했는지 다시 인기를 얻었고, '강남 스타일'의 대히트로 세계적 스타가 되자 대중은 그를 애국자의 반열에까지 올렸다.

아이돌그룹 HOT 출신의 가수 문희준은 병역문제로 엄청난 안티 팬을 형성했던 연예인이었다. 악성 유언비어와 함께 '안티 백만 대군'이 항상 그를 따라다녔다. 병역문제는 음악성 폄하로까지 확대되었다. 대중은 댄스 가수 출신이 록 음악을 하는 것에 대하여 못마땅한 시선을 보냈다. 이 모든 논란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그의 현역 군 입대였다. 군대를 다녀온 후 그는 비로소 자유를 얻었다. 음악 앨범을 꾸준히 냈고,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인기를 얻고 있다. 군대를 다녀온 일 하나로 어떻게 백만 안티가 순식간에 사라졌는지 의아할 정도다. 미움의 핵심은 병역을 기피했다는 의혹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 점이 풀리자 다른 것은 문제 삼을 일이 없게 되었다.

병역 기피문제는 일반인보다는 연예인과 운동선수들 사이에서 더 크게 불거져왔다. 그들은 직업인으로서의 사활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미지를 먹고 사는 연예인이 그 이미지를 걸고라도 병역 기피라는 불법을 감행한다. 한창 활동 중인 연예인에게 군복무로 인한 2~3년의 공백은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군대 문제를 고민하는 연예인에게 소속사의 부추김도 한 몫 한다. 운동선수 역시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등의 혁혁한 성과를 내지 않은 이상 군복무 면제를 받을 수 없고, 군대를 갔다 오면 선수생활을 접는 각오까지 해야 하니 무척 고민되는 일이다.

물론 병역 기피가 바람직한 행위는 아니다. 그러나 유승준에게 13년 동안이나 쏟아졌던 비판과, 언어폭력에 가까운 공격, 사죄하는데도 결코 용서치 않으려는 강퍅함 역시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는다.

유승준이 이번 인터뷰를 하지 않았어도 그를 더 욕할 사람은 없었다. 논란과 비난이 일 것이 불 보듯 뻔한데도 굳이 사죄의 인터뷰를 한 까닭은 어떻게든 진심을 전달해보고자 했던 마음이 컸을 것이다. 그는 늦게나마 결심하고 용기를 내어 무릎을 꿇었다. 유승준은 용서를 구했고, 용서하는 일은 대중의 몫으로 돌아왔다. 그의 진심을 얼마나 전달받았는가는 각자 다를 것이다. 그러나 그가 겪었을 심적 고통과 진심을 보려는 마음조차 차단하지 않았으면 한다.

율법을 어긴 여인에게 돌을 던져 죽이려던 군중을 향해 예수는 "누구든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고 외쳤다. 공항에서 입국 거부를 당한 2002년 2월의 그날부터 인터뷰 자리에 나온 어제까지 유승준은 무려 13년간이나 마음에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았다. 병역 기피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으니 계속 그 짐을 지고 살라고 요구할 만큼 스스로 떳떳한 '애국자'가 이 땅에 있을까? 있다면 그가 유승준에게 돌을 던져야 할 것이다.

유승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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