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시장>이 천만 관객을 달성한 날, <개훔방>은 좌석점유율에서 국제시장의 17.4%를 크게 앞서는 21%. 근데 대부분의 극장에서는 오늘 <개훔방>을 종영한다고. 응?"

<국제시장>의 '천만 돌파' 분석기사가 쏟아지던 오늘(14일) 오전,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이하 <개훔방>)의 김성호 감독은 이런 글을 적었다. 성수기 한국영화가 수요일 개봉을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요즘, <오늘의 연애> <허삼관>이 개봉하는 14일 좌석점유율에서 선방하고 있는 <개훔방>의 스크린 수가 줄어든 것을 지적한 것이다.

<국제시장> 탓으로만 돌리기엔 무리가 있다. 그렇다고 시장논리만 반복하기엔 상황이 점점 악화되는 분위기다. 쏠림 현상이 심화될수록, 나날이 박스오피스의 속도전이 더 해갈수록 관객들에게 제대로 된 평가의 기회조차 받지 못한 숨은 영화들을 찬찬히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좋은 영화의 수명은 생각보다 오래고 질기다.

'허리급' 영화들의 중요성은 강조하고 또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다. 여름·겨울 성수기 시장을 노린 블록버스터급 영화가 아닌 중저예산 영화들이 살아남아야 한국영화의 다양성과 깊이가 보장된다는 목소리는 영화인이라면 귀가 아프게 듣고 또 내뱉는 말이다. 또 4대 배급사 배급망과 거리가 먼 중소 배급사 작품들의 경우 스크린 확보에 가히 전쟁을 치러내고 있다.  

그리고, 역시 이상과 현실은 달랐다. 2015년 초 극장가를 찾은 <개훔방> <더 테너 리리코스핀토>(아래 <더 테너>) <워킹걸>은 모두 각기 다른 장르와 색깔, 완성도로 언론시사 직후 가능성을 인정받은 영화들. 그러나 세 편 모두 미비한 흥행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들은 왜 이러한 대접을 받게 됐을까.   

<개훔방> - "영화계의 허니버터칩, 우리도 보고싶어요"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의 한 장면.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의 한 장면. ⓒ 리틀빅픽쳐스


"전체관람가인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의 영화 상영관과 상영시간이 너무 적어서 볼 수 없습니다. 대기업 영화에 밀려 좋은 작품을 볼 수 있는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습니다.
영화 시간이 조조와 야간으로 배치되어 있는 상황에서 아이들과 함께 보기는 불가능하며, 상영관의 수도 너무 적어 도심의 영화관에서 보기는 불가능합니다. 영화평이나 보고 싶다는 요청들은 SNS상에서 끝없이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 9일 서명인원 2500명을 목표로 올라온 '제가 보고 싶은 영화를 보게 해주세요'란 제목의 아고라 청원글은 14일 오후2시까지 2667명이 서명한 상태다. <개훔방>이 이렇게 상영관 확보에 어려움을 겪자 공식 서포터즈 '견포터즈'가 결성됐고, 타블로, 박휘순, 김수미, 진구 등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관객들과 함께 '단(체)관(람)'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사라진 아빠와 집을 되찾기 위해 개를 훔치려는 열 살 소녀의 기상천외한 도둑질을 그린 '견'범죄 휴먼코미디'로 홍보 중인 <개훔방>은 탄탄한 완성도와 이레를 비롯한 아역과 성인 연기자들의 앙상블, 한국사회에서 집의 의미를 되묻는 메시지 등으로 평단은 물론 관객들에게 호평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스코어는 13일까지 22만 명에, 스크린 수는 87개. <카트>에 이어 리틀릭픽쳐스가 배급한 <개훔방>은 200여 개의 스크린 수로 출발해 날개 한 번 제대로 펴보지 못한 격이 됐다. 호평과 입소문, 높은 좌석점유율에도 벌리지 못한 스크린 수나 스타급 배우 부재, 가족영화라는 한국에서 장르가 한계로 작용한 것이다. <개훔방> 이후 관객들은 얼마나 대중적이면서 완성도 있는 '한국산' 가족영화를 기다려야 할까.    

<더 테너> - 충무로에서 보기 드문 인터내셔널한 작품의 좌초 

 영화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의 한 장면.

영화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의 한 장면. ⓒ 모인그룹


사실 이 영화를 중저예산으로 분류할 순 없다. 갑산성 암으로 목소리를 잃었던 테너 배재철의 실화를 다룬 이 영화는 세르비아, 일본 등 해외 로케이션과 5년 여의 제작기간을 들인 대작에 가깝다. 출연진도 배재철 역의 유지태를 비롯해 배재철의 친구 사와다 코지 역의 일본의 톱스타 이세야 유스케, 세르비아의 나타샤 타프스코비치 등이 캐스팅됐다.

지난달 31일 BoXoo 엔터테인먼트와 제작사인 모인그룹이 공동 배급을 맡은 이 작품은, 그러나 13일까지 4만 8천여 명을 동원하는데 그쳤다. 185개 스크린으로 출발한 <더 테너>는 드라마 <힐러>에 출연 중인 주연배우 유지태가 드물게 예능에 출연하면서 홍보에 주력했으나 많은 관객의 선택을 받는 데 실패했다.

<더 테너>의 부진은 장르나 규모, 제작 환경에 있어 말 그대로 '다양성'을 담보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더 크다. 푸치니의 <투란도트>의 아리아 곡 '공주는 잠 못 들고'(Nessun dorma) 등 우리영화에서 보기 힘든 오페라 장르를 비롯해 지역성을 뛰어 넘으려는 로케이션 촬영과 출연진, 이를 아우르는 보편적인 휴먼 드라마 <더 테너>는 일본, 한국에 이어 대만에서 개봉을 준비 중이다.

<워킹걸>, 조여정과 클라라의 화제성에도 불구하고

 영화 <워킹걸>의 한 장면.

영화 <워킹걸>의 한 장면. ⓒ 메가박스(주)플러스엠


조여정, 클라라, 김태우 주연, <기담>의 정범식 감독 연출, 메가박스(주)플러스엠 배급, 19금 코미디. 지난 7일 개봉한 <워킹걸>은 외형만 놓고 본다면 사이즈를 줄인 충무로 영화의 전형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톱스타급 남자 배우나 4대 배급사의 부재, 규모를 확 줄인 제작비나 한국에서 마이너 장르인 19금 코미디라는 점에서 그렇다.

화끈한 노출을 기대했든 안 했든, <워킹걸>은 코미디라는 장르에 충실한 잘 만든 장르 드라마다. 허세 좀 있던 워커홀릭 워킹맘 여성이 섹스샵을 열게 되면서 성과 가족의 중요성에 눈뜨게 된다는 내용은 호기심을 자극하지만, 정작 뚜껑을 연 이 코미디는 근래 보기 드물게 자기 정체성을 잃지 않는 완성도를 보여준다.

망가질 줄 아는 조여정과 기대 이상의 클라라, 지질한 남편 역의 김태우는 제몫을 120% 이상 해줬다. 그 중 조여정과 김태우의 코미디 연기가 물이 올랐다. 정범식 감독의 연출은 가족주의로 귀결되는 이 건전한 코미디를 통해 장르 안에 자기 개성을 분명히 새겨 넣었다. 무조건 벗기거나 완성도가 엉망인 한국 19금 코미디의 선입견을 완전히 깨줄 만한 작품이다. 

스크린 수 296개로 출발한 <워킹걸>은 13일까지 13만 명을 동원했다.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러나 19금이란 태생적 한계와 개봉 2주차에 신작들의 공세에 밀릴 공산이 크다. 제 아무리 영화가 제각각 자기 운명을 타고 태어난다지만, 이 세 영화의 운명은 얄궂고 험난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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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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