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엔 영화 내용의 일부가 담겨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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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슬 - 끝나지 않은 세월2>(이하 '지슬')은 제주 4.3 항쟁의 민간인 희생자를 위해 드린 영상 제례와도 같다. 마지막 장면에서 죽은 자들을 보여주며 제문이 적힌 종이를 태우는 데에서 가장 명확히 알 수 있다. 이 영화를 통해 많은 한국인들이 마음의 짐을 털어버렸으면 한다. 다행히 국내 관객들은 이 영화를 외면하지 않고 올해 최다 관객이 든 한국 독립영화로 만들어주고 있다.

먼저 이 영화의 예술성에 대해 말해보면 어떨까. 오멸 감독은 분명 <살인의 추억>(봉준호 감독)과 <제7의 봉인>(잉마르 베리만 감독)을 봤을 것이다. 특히 순덕이 사살된 후 만철이가 순덕의 죽음 소식을 마음에 묻은채 동네 지인과 함께 언덕을 올라가는 모습은 <제7의 봉인>의 후반부에서 등장인물들이 이른바 '죽음의 춤'을 추며 일렬로 이동하던 모습을 연상시킨다.

<지슬>에서 이렇게 언덕 위를 이동하는 걸 롱숏(피사체로부터 멀리서 전경을 모두 찍을 수 있도록 하는 촬영 방법)과 롱테이크(편집 없이 길게 찍는 방법)로 찍은 건 두 번 나오는데 마치 자연이 애도를 표하는 모습 같은 분위기는 이 영화의 예술적 품격을 더해주고 있었다.

이 영화에서 인상적인 장면은 바로 동굴에서의 신들이다. 영화 예고편에서 등장인물들이 다같이 감자(제주도 말로 '지슬')를 나눠 먹는 모습이 나오는 걸 보고 놀랐었는데 4.3 당시 제주 사람들의 모습을 수십년이 지나서 분명하게 재창조했다는 점 때문이었다. 실제 그 당시의 모습을 보지 않았는데도 봤던 것처럼 생각하게 영화를 만들었다.

동굴에서 사람들은 감자를 나눠 먹을 뿐만 아니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지슬>의 예술성은 영화 중반 이후 동굴에 사람들이 모여있는 모습만 작은 칸처럼 따로 떼어 검은 화면 위에 둥둥 떠있게 만든 표현력에서도 발견된다.

오멸 감독은 국내의 한 영화 잡지에서 '씨네아스트'로 불렸다. 씨네아스트란 작품 속에 자기 주관을 또렷하게 표현할 줄 아는 영화 작가를 뜻한다. 오멸 감독이 봉준호 감독과 박찬욱 감독의 뒤를 이을 작가로 불리울 수 있는 면이 영화 속에 존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영화의 초반부에 한 구덩이 속으로 동네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이는 장면에서 느껴지는 '웃픈 정서'(웃기면서도 슬픈)는 <살인의 추억>의 영화 전반에 깔려있는 정서와 유사하다. 또한 영화의 중반 이후 등장하는 원 신 원 컷으로 동굴 안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장면은 <올드보이>(박찬욱 감독)의 '장도리 신'을 떠올리게 한다. 이는 특정 영화를 따라하는 차원이 아니다. 아우라와 저력을 가지고 감성을 사용하는 감각이 오멸 감독에게 있음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차원이다.

보고나면 암울해지기보다 마음이 홀가분해져

오멸 감독이 <지슬>을 만든건 4.3 사건으로 희생된 이들의 영을 위로하고 제주사람들의 상처를 씻고자 하는 의도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지슬>은 그런 의도에 잘 부합된 영화다. 물론 이 영화는 많이 슬프고 아프지만, 보고나면 암울해지기보다 마음이 홀가분해진다.

이건 그저 4.3이라는 역사적 채무에서 벗어나서 느끼는 홀가분함이라기보다 감독이 영화를 통해 추구하고자 하는 그 주관이 멋지기 때문에 느끼는 홀가분함이다. 

이 영화에서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의 전형적인 스토리 전개를 기대하는 건 무의미한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질서없이 예술적 나르시시즘에 빠져 이해할 수 없는 장면들을 이어놓고 있지도 않다. 잘 살펴보면 4.3 사건 당시 민간인 지역을 초토화한다는 그 행위가 과연 당연히 했어야 할 정의로운 행위였는지에 대한 질문을 일관성 있게 다뤄주고 있다.

영화 속에서 민간인을 죽이러 다니는 군인들의 캐릭터가 사악하게 보이는 건, 과거 베트남전을 소재로 다뤘던 미국의 영화나 TV드라마 속에서 군인들이 그렇게 보였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정의롭지 않은 전쟁은 그렇게 사람을 사악하게 만드는 것이다. 왜 반전과 평화를 외치는 이들이 세상에 그렇게 많은지를 <지슬>을 보고서도 알 수 있다.

<지슬>은 학살하는 세력과 학살당하는 세력 양측의 등장인물들 개인의 사연과 성격에 집중한다. 그게 <지슬>의 감동 포인트가 된다.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키우는 돼지를 걱정하는 한 노인의 모습은 <워낭소리>(이충렬 감독)에서 자신보다 자신이 키우는 소를 걱정하던 주인공 노인의 모습과 겹친다. 어린 나이에 강제로 군에 들어와 하고 싶지 않은 민간인 학살 행위를 하는 군인들의 이야기도 마음에 찡한 여운을 남긴다. 

이 영화는 대중성과 예술성을 고루 갖춘,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한국적인 색채가 풍부한 영화이기도 하다. 혹자는 대중성이 부족하지 않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렇지 않다. 이 영화는 한국적 드라마도 담고 있으며 웃음도 있고 감동도 있다. 눈물도 흘리게 하고. 무엇보다 우리의 역사를 한국식으로 다루고 있다. 이 영화가 올해 두 번째 '천만 영화'가 되길 바라는 건 그래서다. 


지슬 오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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