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카운슬러'를 떠올려 보자. 2000년대 중반 유세윤이 강유미와 짝을 이뤄 각종 연애 고민을 주제로 실생활에 밀착한 아이디어와 날카로운 관찰력, 과장된 연기 톤과 슬랩스틱 코미디를 엮어 매주 갑남을녀들의 공감대를 이뤄내던 <개그 콘서트>의 추억의 코너 말이다. 아마 현재 개그맨 김기리에게 인지도를 가져다준 <불편한 진실> 속 '닭살 커플'의 조상격이 아닐까.  

물론 그 중심엔 유세윤과 강유미의 능청스러운 연기력이 있었다. 특히 유세윤은 느끼한 목소리와 한껏 고조시킨 표정 연기를 특유의 자신감으로 포장해 '복학생'과는 또 다른 캐릭터를 구축했다. 두 부류로 나뉜다는 '아이디어 좋은 개그맨'과 '연기 잘 풍부한 개그맨' 중 유세윤은 어떤 쪽일까를 가늠할 수 없게 만드는, 꽤 독보적인 성장의 발판이었다고 할까.

16일 방송된 tvN <SNL 코리아>는 유세윤이 '연기 잘하는 개그맨'임을 상기시키며 콩트 연기에 일가견이 있음을 확인하게 한, 반가운 무대였다. 더불어 유세윤만의 개그 포인트가 19금이라는 'SNL'의 특화점과 만났을 때 어떤 화학작용을 하는가를 확인시켜 준 방송이기도 했다. 물론 그는 뮤지션이기도 했다. 뮤지와 함께 UV의 히트곡 '집행유애' '이태원 프리덤'을 선보이며 뮤지션이라는 점 또한 잊지 않게 해 줬다. 이런 영민한 청년이라니. 

 'SNL 코리아' 유세윤 편 속 '기억의 습작'.

'SNL 코리아' 유세윤 편 속 '기억의 습작'. ⓒ tvN


90년대 키드 유세윤 19금 SNL의 절묘한 조화 

사실 유세윤의 개그는 많은 부분에서 실생활에 밀착한 리얼리티와 1990년대 정서를 기반으로 한 동 세대의 공감대로부터 시작한다. <세바퀴> 시청 세대는 유세윤을 '개코원숭이'로 기억하겠지만, 그를 UV로 인식하는 세대는 아마도 중학교 때 찍었다는 셀프 동영상을 잊지 못할 것이다.

대중문화에 대한 욕구와 수요가 폭발하며 대중문화 속 '아티스트'에 대한 호의와 존경이 가능했던 1990년대 키드. 음악마저 당시 복고 취향을 성공적으로 이식한 UV의 유세윤은 <무릎팍도사>나 <라디오스타>에서도 그런 무시무시한(?) 기억력을 바탕으로 추억 속 웃음을 길어내는 존재이다.

'이태원 프리덤' 외에 UV의 히트곡도 비슷한 범주에 속한다. '쿨하지 못해서 미안해'의 절절한 디테일이나 '그 여자랑 살래요'의 깨알 같은 가사와 1990년대풍 음악스타일의 결합 말이다. 호스트의 기존 이미지와 유명세를 활용하거나 비트는 식으로 호스트를 활용하는 <SNL 코리아> 제작진은 역시 유세윤의 이러한 감성에 19금 개그를 융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SNL 코리아' 유세윤 편의 '형아 어디가'의 한 장면

'SNL 코리아' 유세윤 편의 '형아 어디가'의 한 장면 ⓒ tvN


엄숙주의를 거부하는 유세윤의 다채로운 개그

오프닝에서 일찌감치 '개코원숭이'를 털어 버린 유세윤은 '기억의 습작' 콩트에서 이른바 '덕후'라 불리는 남성의 특징을 캐릭터로 절묘하게 승화시켰다. 소심하고 순수한 듯하지만 마음엔 '음란마귀'를 한 마리씩 키우는 남자 말이다. 그 직전, 깔끔한 외모로 '귀요미송'을 과감하게 패러디하며 동성애 코드를 가져오는 것도 꽤 엽기발랄했다.   

절정은 '형아 어디가'와 '연기 아카데미'였다. 먼저 '형아 어디가'는 전반적으로 다자녀 출산을 권장하는 공익광고를 패러디하면서, 아이를 괴롭히는 형의 모습을 줄줄이 나열했다. 각종 못된 짓을 시키고 손찌검도 서슴지 않는 '형아'로 분한 유세윤은 특유의 악동끼를 유감없이 선보였다.

허나 여기서 전시된 화면만을 놓고 '아동학대'만을 운운하는 건 조금 서운해 보인다. 10대들의 형, 동생 문화를 경험해 본 이들이라면, 이 '형아 어디가'의 디테일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프로그램 특성상 다소 과하게 비치긴 했지만, 온갖 나쁜 문화를 답습하게 하는 것이 결국 실생활 속 '형님 문화'의 산교육이라는 점을 실감나게 비틀고 꼬집는 것으로 봐줄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실제 저런 분위기를 체감한 유세윤의 세대에게는 쓴웃음과 함께 반성을 던져줄 가능성은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단순하게 "어른들에게서 아이들이 뭘 배우겠나"란 메시지를 읽기에도 충분해 보였다.  

여전히 문제시되는 학교 폭력과 유사한 권력의 속성과 유지, 답습 말이다. 오히려 전직 대통령까지 '시전'한 '형님 문화'의 속성을 실생활에서 잘 포착했다고 봐도 무방해 보이기까지 했다. <아빠 어디가>에서 제목만을 빌려 와 짧은 영상에 전혀 다른 이야기를 녹여낸 이 '형아 어디가'에 '아동학대'란 딱지를 붙인다면, 그야말로 경직된 우리 사회의 일면을 반영하는 것은 아닐까.

 'SNL 코리아'에 출연한 유세윤

'SNL 코리아'에 출연한 유세윤 ⓒ tvN


유세윤을 고정 크루로 '강추'하는 이유

가학 연기를 막장 드라마와 연결한 '연기 아카데미'는 '사랑의 카운슬러'를 'SNL'식으로 재구성한 콩트다. 만약 이 콩트 속 드라마가 '막장 드라마'의 패러디가 아니었다면 단순한 가학 개그에서 머물렀을지 모른다.

하지만 시각을 달리해 물음을 던져 보자. 호스트인 유세윤에게 따귀를 무차별적으로 때리며 가학성을 드높이는 이 짧은 패러디 개그가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이와 비교해 드라마라는 장르의 이점을 살려 각종 언어폭력과 극한의 상황, 막장 요소를 끌어들여 고공의 시청률을 올리는 드라마의 폭력성 중 더 유해하고 지속성 강한 쪽은 과연 어느 쪽인지 말이다. 심지어 <개콘>에 새롭게 등장한 '버티고'의 따귀 때리기보다 훨씬 유의미하지 않은가.  

교황 선출을 2030의 흔한 게임과 연결한 콩트와 '할 말은 하자'는 한 초코과자 광고를 패러디하며 마지막까지 웃음을 던진 유세윤 편에서 읽히는 건 역시나 유세윤의 캐릭터와 꽤 닮아 있었다. 전체 분위기에 잘 녹아든 '엄숙주의'에 반발과 시류를 읽고 그 안에 그럴듯하게 묘사된 특정 캐릭터를 담아내는 감각 말이다.

무엇보다 유세윤이 '동엽신'이자 '19금' 개그의 '동엽신' 신동엽의 힘을 크게 빌리지 않고 스스로 중심이 된 콩트를 선보였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신동엽을 영입한 <SNL 코리아>가 그만큼 궤도에 올라섰음에도 장진 감독이 빠진 이번 시즌 들어 부쩍 호스트의 편차에 따라 웃음 강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유세윤은 탁월한 호스트였다. 그는 자신의 이미지를 적절히 활용하면서도 그 이미지에 함몰되기보다 'SNL' 특유의 분위기와 상승 작용을 가져오는 '19금' 개그를 연이어 선보였다. 이날 가장 심심한 코너가 출연자 강용석과 김슬기의 어색한 조합과 진행이 민망했던 '위크엔드 업데이트'였을 정도로.

마지막으로, 정치풍자가 급격히 약해진 'SNL'에 유세윤을 고정 크루로 '강추'한다. 아마도 신동엽과의 시너지라면, <코리아 빅리그>를 무색하게 할, 지상파를 위협할 핵폭풍 급 프로그램으로 성장할 것 같은 예감이다. 물론 하루빨리 정치 풍자를 담당했던 장진 감독의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숙제도 남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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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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