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철 사장 퇴진과 공정방송 쟁취를 위한 MBC노조 파업이 100일을 넘긴 가운데 9일 오후 서울 홍대앞 한 클럽에서 파업중인 MBC 아나운서들이 일일 주점 '우리 백일됐어요'를 열었다. 손님 입장을 앞두고 MBC아나운서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재철 사장 퇴진과 공정방송 쟁취를 위한 MBC노조 파업이 100일을 넘긴 가운데 5월 9일 오후 서울 홍대앞 한 클럽에서 파업중인 MBC 아나운서들이 일일 주점 '우리 백일됐어요'를 열었다. 손님 입장을 앞두고 MBC아나운서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 권우성


MBC 아나운서들이 7일 특별한 상을 하나 받았다. 한국아나운서협회로부터 '2012 아나운서 대상' 장기범상을 받은 것이다. 장기범상은 포화가 빗발치던 6·25 당시에도 마이크를 놓지 않았던 한국 아나운서들의 '대선배' 고 장기범 아나운서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상으로, 그해 모범이 된 아나운서에게 주어진다.

그런데 수상자 이름이 단순히 'MBC 아나운서들'이 아니다. 한국아나운서협회는 그 앞에 '공정방송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지난 1월 파업을 시작해 170일 넘게 이를 계속했고, 그 파업이 끝나고 난 뒤에는 다시 마이크를 잡지 못한 이들을 일컬은 말이다.

한 관계자는 "그간 장기범상 수상자 중 이런 수식어가 붙은 단체는 없었다"며 "MBC의 상황에 공감해 준 타사 아나운서들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이번 시상이 이루어진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협회 차원에서 이 같은 수식어를 붙인 것은, 현재 MBC의 상황에 이들이 공감하고 응원과 격려를 보내준 것과 같다"는 것이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김완태 아나운서의 '개념 수상소감'을 소개합니다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열린 '방송3사 공동파업 콘서트-방송 낙하산 퇴임 축하쇼'에서 공연을 지켜본 시민들이 성의껏 공연비를 모금함에 넣자, 김정근 MBC 아나운서가 감사의 인사를 하고 있다.
김 아나운서는 MBC 파업에 참여한 이유로 '정직 2개월' 징계를 받았다.

지난 3월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열린 '방송3사 공동파업 콘서트-방송 낙하산 퇴임 축하쇼'에서 공연을 지켜본 시민들이 성의껏 공연비를 모금함에 넣자, 김정근 MBC 아나운서가 감사의 인사를 하고 있다. 김 아나운서는 MBC 파업에 참여한 이유로 '정직 2개월' 징계를 받았다.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 유성호


이날 수상자로는 김완태 아나운서가 나섰다. 김나진·오승훈 아나운서 등 후배들도 뒤에 자리했다. 이날 김완태 아나운서는 "1년 만에 마이크 앞에 처음 선다"며 긴 수상소감을 말했다. 소위 말하는 '개념 소감'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여기, 김완태 아나운서의 수상 소감을 전문으로 전한다. 김완태 아나운서의 발언에 어떠한 편집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공정방송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MBC 아나운서들이라는 이름으로 '장기범상'을 받았습니다. 이 상은 저희가 무얼 잘 해서 주신 상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상은 대한민국 언론의 한 어두운 현실을 몸과 마음으로 경험하고 그래서 생겨난 상처를 보듬어주시는 여러분들의 따뜻한 손길이라 생각합니다.

저희 MBC 아나운서들은 일산에, 성남에, 용인에, 잠실에 흩어져 방송을 못 하고 있습니다. 저도 1년 만에 마이크 앞에 처음 섭니다. 눈 내릴 때 시작해 다시 눈 내릴 때까지 저희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세상엔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사람과 좋은 영향을 주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흰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사람들로 인해 시청자들께 좋은 영향을 주는 방송을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다시 돌아가 '방송의 힘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좋은 영향을 시청자들에게 전해주는 방송을 하는 아나운서들'이 되겠습니다. 저희가 다시 저희 자리로 돌아갈 때까지 여러분의 응원과 격려 부탁합니다. 고맙습니다."

"MBC, 1등 방송국으로 만들겠다"…김 사장님, 진심이세요?

 MBC노조 파업 첫날인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MBC사옥 로비에서 열린 노조파업출정식에서 주말뉴스데스크를 진행하고 있는 문지애 아나운서가 기자회가 발행한 비상대책위원회 특보를 쥐고 연설을 듣고 있다.

MBC노조 파업 첫날인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MBC사옥 로비에서 열린 노조파업출정식에서 주말뉴스데스크를 진행하고 있는 문지애 아나운서가 기자회가 발행한 비상대책위원회 특보를 쥐고 연설을 듣고 있다. (<오마이스타> 자료사진) ⓒ 이정민


 전국언론노조 MBC본부가 12일 오후 여의도공원 '희망캠프' 현장에서 연 '방송대학'에서 허일후 아나운서(오른쪽 두번째)와 김초롱 아나운서(맨오른쪽)가 언론인 지망생들과 취업 상담을 하고 있다.

전국언론노조 MBC본부가 지난 5월 12일 오후 여의도공원 '희망캠프' 현장에서 연 '방송대학'에서 허일후 아나운서(오른쪽 두번째)와 김초롱 아나운서(맨오른쪽)가 언론인 지망생들과 취업 상담을 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 김시연


'MBC의 얼굴'이라 일컬어진 이들답게, 파업 중 MBC 아나운서들의 참가는 특히 빛을 발했다. MBC 노조가 주최한 각종 강연과 바자회에도 끊임없이 얼굴을 내비쳤고, 지난 5월에는 '우리 파업 100일 됐어요'라는 이름의 일일호프도 개최했다. 일일호프로 얻은 수익은 "아름다운 세상의 소리와 바르고 '올바른 소리'를 들려주고 싶다"며 고스란히 선천적 청각 장애를 앓고 있는 두 아동의 수술비로 내놨다. 일상적인 집회에서도 늘 묵묵히 자리를 지키던 이들의 모습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만큼 이들에게 주어진 '대가'는 가혹하다. 상당수의 아나운서들이 파업 후에도 마이크 앞에, 시청자 앞에 얼굴을 내밀지 못하고 있다. 먼저 파업이 중단됐던 7월 17일 늦은 오후, 신동진 아나운서가 사회공헌실로, 허일후 아나운서가 미래전략실로, 김상호·김범도 아나운서가 서울 경인지사 수원총국과 인천총국으로 발령 났다. 김정근 아나운서는 이미 정직 2개월의 징계를 받은 상태였다.

이후에도 아나운서들은 속속 화면 뒤로 사라졌다. 강재형·김완태·박경추·최율미·김경화·최현정 아나운서는 대기발령을 받고 서울 신천역에 위치한 MBC 아카데미, 속칭 '신천교육대'에서 업무와는 관계없는 징계성 교육을 받는 고초도 치렀다. 지난 11월 교육이 끝난 후에도 업무 복귀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김완태 아나운서는 미래전략실, 박경추 아나운서는 서울 경인지사 성남용인총국으로 향했다. 이외에 휴직을 신청한 이도, 프리랜서로 전향한 이도 있다. 아무런 이유 없이 방송에 나오지 못하고 있는 이들도 있다.

그리고 또다시 6일 최현정 아나운서는 사회공헌실로, 최율미·김범도 아나운서는 용인 드라미아 개발단으로 가게 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김경화·김상호 아나운서와 징계 후 교육에 합류했던 김정근 아나운서는 '신천교육대'에서 3개월간 재교육을 받으라는 인사발령 공고가 났다는 소식도 함께다. 이렇게 아나운서들의 방송 복귀가 또다시 미뤄진 가운데, 이들이 장기범상을 받았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달 30일 열렸던 'MBC 창사 51주년 기념식'에서 김재철 사장은 "내년에는 반드시 1등을 해야 한다"며 "매출도 1등, 영업이익도 1등, 시청률도 1등을 해야 한다. 세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옳은 말이다. 그런데 그 '1등 방송'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선수'들의 현 주소는 아나운서국이 아니라 미래전략실, 사회공헌실, 드라미아, 서울 경인지사다. 김재철 사장의 결연한 다짐이 '흰소리'가 아닌가 의심하게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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