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회 정동진독립영화제에서 레드카펫을 밟고 입장하는 관객들

14회 정동진독립영화제에서 레드카펫을 밟고 입장하는 관객들 ⓒ 성하훈


 14회 정동진독립영화제 개막공연을 펼치고 있는 인디밴드 '허클베리핀'

14회 정동진독립영화제 개막공연을 펼치고 있는 인디밴드 '허클베리핀' ⓒ 성하훈


너른 운동장에 의자들이 놓여 지자 에어스크린에 바람이 채워지며 우뚝 솟아올랐다. 드라이 아이스대신 쑥불 연기가 자욱해졌고, 어둠이 내리 깔리며 영사기의 불빛이 스크린을 퍼져 나가는 순간 아이들이 뛰어 돌던 초등학교의 드넓은 운동장은 한순간 시네마천국으로 변했다.

레드카펫을 밟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극장'으로 삼삼오오 들어서는 관객들은 모두가 영화제의 귀빈들이었다. 로열석으로 제공된 모기장 텐트 속에서 영화를 즐기는 이들의 표정은 아늑해 보였다.

전국이 가마솥더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지만 적어도 정동진은 예외였다. 뜨거운 동풍이 태백산맥을 넘지 못하면서 영동지방은 불볕더위에 비켜서 있었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날씨덕분에 사방이 트인 야외상영관은 최적의 관람 환경을 제공해주고 있었다.

구럼비 응원하는 사회자...인디밴드에 열광하는 관객들

한 여름 독립영화 최대의 축제 정동진독립영화제(이하 정동진영화제)가 3일 저녁 정동초등학교에서 개막식을 갖고 14번째 행사의 막을 열었다. 2박 3일의 짧은 영화제지만 14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영화제답게 전국의 독립영화인들이 정동진을 찾았고, 수많은 관객들이 주상영관인 정동초등학교 운동장을 메웠다.

매해 빠짐없이 정동진을 찾는 독립영화의 대부 김동원 감독과 조영각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 임창재 한국독립영화협회 이사장, 배우 권해효 씨 등 단골 인사에 <원더풀 라디오> 권칠인 감독, 정상진 DMZ다큐멘터리영화제 부집행위원장 등등 영화계 인사들이 대거 모습을 나타내 정동진영화제의 개막을 축하했다.

 14회 정동진독립영화제 사회자. 배우 서영주, 김꽃비, 이혁상 감독

14회 정동진독립영화제 사회자. 배우 서영주, 김꽃비, 이혁상 감독 ⓒ 성하훈


개막식은 배우 김꽃비, 서영주, 이혁상 감독이 사회로 진행됐다. 정동진영화제의 개막식은 구색 맞추기식 축사나 인사말 없이 축하공연과 개막선언 만으로 간결하면서도 산뜻한 것이 특징이다. 4년째 붙박이 사회자가 된 배우 김꽃비는 여유롭게 초보 사회자들을 이끌었고 처음 사회를 맡은 배우 서영주 씨와 이혁상 감독은 "작년에 처음 왔었는데, 영화제가 너무 좋아 이 무대에 서고 싶었다"며 뜻을 이룬 것에 감격스러움을 나타냈다.

특히 배우 서영주 씨는 '구럼비를 죽이지 마라' 글귀가 쓰인 티셔츠를 입고 나와 사회를 진행해 해군기지 반대 투쟁을 벌이고 있는 제주 강정마을에 연대감을 표시했다. 

이어진 개막공연은 관객들의 열띤 호응 속에 올해도 큰 인기를 끌었다. 홍대 인디밴드 '허클베리 핀'의 공연이 시작되는 순간 야외상영관은 거대한 콘서트 장을 방불케 했다. 자유스러움이 특징인 영화제 성격에 맞게 인디밴드는 아주 열정적인 공연을 선보였고, 관객들은 환호했다. 보기 드물었던 앙코르까지 이어지며 뜨거운 열기를 내뿜었다.

첫날 땡그랑 동전상 <개와 열쇠>, 상금액수 역대 최다

 '땡그랑 동전상'을 수상한 김희정 감독의 '개와 열쇠'. 상금으로 10만 1720원이 동전이 수여됐다.

'땡그랑 동전상'을 수상한 김희정 감독의 '개와 열쇠'. 상금으로 10만 1720원이 동전이 수여됐다. ⓒ 성하훈


개막작은 장편과 단편 4편 등 모두 5편이 상영됐다. 유대얼 감독이 <에튀드 솔로>, 한지혜 감독의 <누가 공정화를 죽였나> 김희정 감독의 <개와 열쇠>, 최아름 감독의 <영아>, 오는 9월 개봉을 앞두고 있는 정대건 감독의 <투 올드 힙합 키드> 등이다. 최아름 감독을 제외한 4명의 감독이 개막식에 참석했는데, 관객상인 '땡그랑 동전상'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박광수 프로그래머 말대로 "재밌는 작품들을 엄선"한 탓인지 관객들 대부분이 영화에 몰두하며 독립영화의 재미에 빠져들었다. 영화 상영 직후 이어진 감독과의 대화에서도 관객들의 질문이 줄을 이었다. 특히 마지막 작품 상영 도중 영사사고가 발생해 30분 정도 상영이 중단됐음에도 불구하고 동요하거나 자리를 뜨지 않은 채 끝까지 영화를 관람하는 성숙한 관람 자세를 보이기도 했다.

모든 상영이 끝나고 12시가 넘어 시작된 개막파티에서 가장 큰 관심사인 '땡그랑 동전상' 수상자가 발표됐다. '땡그랑 동전상'은 3일 동안 매일 1편 씩 당일 상영작 중 관객들이 동전을 가장 많이 받은 작품을 선정한다.

영예의 수상작은 김희정 감독의 <개와 열쇠>가 차지했다. 개의 위협 때문에 자주 집 열쇠를 잃어버리는 초등학생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작품으로 동물과 아역 배우들이 연기가 인상적이었던 듯 관객들의 동전이 가장 많이 몰리며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상금은 이날 모아진 동전 총액인 10만 1,720원. 박광수 프로그래머는 "상금 액수가 역대 최다이며 동전 개수가 처음으로 1000개를 돌파하는 등 어느 때보다 관객들의 관심이 높았다"고 말했다.

독립영화와 관객 간 거리 좁히는 영화제

 14회 정동진독립영화제 영화 상영 후 뒤풀이 모습

14회 정동진독립영화제 영화 상영 후 뒤풀이 모습 ⓒ 성하훈


정동진영화제는 피서철 바닷가 옆에서 개최되기에 독립영화인들의 휴양영화제로도 명성이 높다. 한번 와 본 사람들은 그 매력에 흠뻑 빠지는데, 올해도 첫 방문한 감독들은 "사람들도 많고 분위기도 좋다"며 호감을 나타냈다. 관객들로서는 독립영화를 가까이하기에 좋은 기회라는 점에서 해마다 관객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4일에는 박성미 감독의 <희망버스 러브스토리>, 강릉 골프장 반대 운동을 소재로 한 <왜 우리는 다큐멘터리를 찍는가>, 서울독립영화제 수상작인 <요세미티와 나> 등 11편의 단편영화가 상영되며, 5일에는 김진만 감독의 애니메이션 <오목어>와 최시형 감독의 <경복> 등이 저녁 8시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상영된다. 영화 상영이 마친 후에는 체육관에 마련된 장소에서 뒤풀이가 이어진다.

낮 시간에는 해변에서 독립영화인들의 물놀이 등 친목행사를 갖는데, 이 때 시켜 먹는 자장면과 치킨이 별미로 유명하다. 상영이 마친 후에는 정동진영화제는 5일 밤 마지막 상영 직후 영화제 스태프들과 관객들의 기념 촬영을 끝으로 짧고 굵은 행사의 막을 내린다. 기념 촬영 또한 관객과의 거리가 존재하지 않는 정동진만의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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