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야동 찾아서 봐, 빨리."
"왜? 무슨 일 있었어?"
"오뎅이 털렸다니까, 무려 6실점이야."
"정말? 최악의 피칭이네. 그래 한 번은 져 줘야지. 절대 강자는 재미없잖아?"
"그나저나 여왕벌은 언제쯤 회복되려나…"

야동의 사전적 의미
① 시골아이
② 야한 동영상을 줄여 이르는 말

당신이 생각하는 '야동'을 머릿속에서 지우길 바란다. 여기서 말하는 '야동'은 19금 빨간 딱지를 붙이는 그것이 아닌, 전체관람가의 건전한 '야구동영상'을 말한다. 야구를 좋아한 그 순간부터 야동은 나에게로 다가와 '꽃'(야구동영상)이 되었다.

오뎅 또한 마찬가지다. 오뎅의 사전적 의미는 '[일본어] 어묵의 잘못'이지만 야구팬들에게는 삼성 라이온즈의 최고 마무리 투수 오승환이 포장마차 어묵보다 먼저 떠오를 테다. 한 때 SK 와이번스의 '벌떼 야구'(불펜투수로 버티는 야구)를 이끌었던 투수 정대현를 여왕벌이라 일컫는 공식 또한 마찬가지다.

일주일에 6일, 월요일을 제외한 저녁 시간이면 사람들은 야구를 떠올린다. 지난 4월 29일, 2012년 한국 프로야구는 역대 최소경기 100만 관중 돌파 기록을 세웠다. 야구를 즐기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남과 동시에 야구는 점점 사람들 생활에 자리잡고 있다. '오뎅'과 '야동'만큼이나 일상적인 스포츠가 된 야구의 열기가 뜨겁다. 나 또한 야구의 매력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한 지 몇 년이 됐다. 그동안 참 울고 웃을 일들이 많았다.

24년간 쌓아온 '조신한 딸' 이미지, 야구 때문에 와르르~

야구를 사랑하면서부터 나는 '욕쟁이'가 됐다. 좋아하는 팀이 연패라도 하는 날엔 인생이 허망해지기까지 한다. '보고있는 내가 미친×', '다시는 보나봐라, 꼴데(꼴지 롯데)야구,퉤'에서부터 '빌어먹을, 학교 따위는 가서 뭣해?'까지 그야말로 '멘탈 붕괴' 상태가 되어 욕지거리를 한다.

그래 뭐, 야구장에서 맥주 한 캔 원샷하고 욕 좀 한다 한들 나에게 뭐라 할 사람은 없다. 어이없는 병살타나 실책이 나오면 모르는 옆사람과도 맞장구치며 욕하는 게 야구장 아닌가. 일은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때는 2010년 가을, 롯데와 두산의 준플레이오프 경기가 열리던 추석이었다. 경남 출신의 '서울 유학생'인 나는 모처럼 집에서 가족들과 오붓하게 롯데 자이언츠의 가을야구(페넌 트레이스가 끝난 상위 4개팀의 플레이오프)를 즐길 수 있었다.

그 풍경은 참으로 볼 만했다. 할아버지와 아빠 그리고 내가 나란히 양반다리를 한 채 팔짱을 끼고 심각한 표정으로 야구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곧이어 전력분석에 들어간다. '선발투수가 얼마큼 이닝을 끌어줄 것인가', '우리팀 빠따들(타자)의 최근 타격 컨디션은 어떠한가' 우리는 각자가 전문가가 돼 오늘의 경기를 예측하고 분석했다. 3차전이 시작됐다. 세 아마추어 전문가의 예상과는 달리 열심히 응원하던 롯데의 패색이 짙어갔다. 그 때, 롯데팀 한 선수가 공을 놓쳤다.

"저 멍멍이(×새끼)가 저걸 왜 못잡아!"

할아버지도, 아빠도 아닌 딸의 입에서 나온 한 마디에 정적이 흘렀다. 아빠는 '내가 잘못 들었나'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어릴 적부터 아빠가 어려웠던 나는 늘 아빠 앞에서 작아지는, '소심한 큰 딸'이었다. 아빠는 평소 입을 가리고 웃고, 맥주 한 병에도 손사래를 치던 큰 딸이 사실은 야구장에서 팩소주 나발을 불며 욕을 퍼붓거나 소리를 지른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24년간 알아온 '조신한 큰 딸'은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에 아빠는 그 날 저녁 맥주를 들이켰다. 패배한 경기의 쓰라린 아픔과 함께 나는 그 날 이후로 다시는 아빠와 야구 경기를 보지 않는다. 

야구 때문에 이미지가 망가진 건 가족들 앞에서만이 아니다. 전국민적으로 망신을 당한 기억도 있다. 하마터면 '야구장 민폐녀'라도 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뻔했다. 2009년 인천에 위치한 문학구장으로 야구관람을 간 날이었다.

무려 두 시간 동안 지하철을 타고 간 그곳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친구와 함께 비가 그치기만을 그토록 빌고 또 빌었지만 하늘은 야속하게 비를 뿌려댔다. 결국 우천취소, 이 당황스러운 현실이 믿을 수 없었던 나는 물이 흥건한 응원단상에 올라 그라운드에 있는 SK 와이번스 관계자를 향해 "오늘 정말 경기 취소예요?"라고 물었다. '그렇다'는 대답으로 확인사살 당한 후 우울한 기분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다음날 더 큰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다.

직업정신이 투철한 어느 사진기자가 비오는 문학구장에서 절실한 표정으로 경기취소 유무를 묻는 내 모습을 찍었고 그 사진이 얼굴부분이 모자이크 처리된 채 인터넷 기사에 오른 것이다. 경기의 우천취소를 안타까워하는 리얼한 표정을 잘 살린 한 컷이었다. 기자에게는 'Best shot'이었겠지만 나에게는 'worst shot'이 될 판이었다. '시집도 못가는 거 아니냐'며 친구와 함께 심각하게 고민하기를 몇 날 몇 일, 사진기자에게 정중히 메일이라도 보낼까 고민도 참 많이 했다. 다행히 나를 알아보는 이는 없었다. '누군가 알아보지 않을까', '우천취소 됐다는데 안 가고 버티는 민폐녀라고 욕하면 어떡하나' 밤잠을 설쳤던 며칠 동안의 기억은 지금에서야 추억이 됐지만 당시에는 정말 끔찍했다.

이상형까지 바꿔놓은 야구... '야구 안 좋아하는 남자 만나야지'

 주말이나 여름방학을 이용해 서울에서 부산 사직구장까지 야구관람을 가기도 했다.
ⓒ 강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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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끔찍이 사랑하는 야구 때문에 나의 이상형까지 바뀌었다. 한때 나의 꿈은 야구를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는 것이었다. 그런 마음을 잘 아는 한 친구가 소개팅을 주선했다. '야구를 좋아하는 멋진 훈남'이라고 했다. 예감이 좋았다. 신촌의 한 카페에서 그와 나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기아 타이거즈의 팬이었고 출발은 괜찮았다. 서로 얼마나 야구를 좋아하는지, 어떻게 야구를 좋아하게 됐는지 얘기하며 하하호호 웃음꽃을 피웠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대화는 어긋나기 시작했다.

"롯데는 투수들이 약해서 큰일이네요. 이렇다 할 에이스 투수가 있나요? 우리는 윤석민이 있어서 든든한데…."
"어머, 무슨 말씀이세요. 우리팀 방망이가 얼마나 화끈한데요, 좋은 투수들도 많고요. 윤석민 선수만 야구하나요 어디?"
"확실히 믿을만한 국가대표급 에이스가 있으면 그 날 경기는 걱정할 필요가 없더라고요. 하하."
"윤석민 선수, 며칠 전에 화난다고 경기장 락커 부수다가 뼈 부러지지 않았어요?"
"젊은 혈기에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니겠어요?"
"…"
.
.
.

"그만 일어나실까요?"

야구로부터 시작된 설전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우리는 한동안 침묵했다. 애써 다른 화제를 찾아 이야기 해봤지만 한 번 어긋나기 시작한 대화는 어색하기만 했다. 분명 30분 전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던 서로의 다른 가치관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웃으며 시작한 소개팅은 정색하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각자의 갈 길을 가는 것으로 끝났다. 발걸음을 돌리자마자 그의 핸드폰 번호를 지웠다. 아마 그 또한 그랬을 것이다. 기대에 부풀었던 소개팅은 그렇게 끝이 났다. 주선자에게 전화를 걸어 '앞으로 야구팬은 사절'이라고 말했다. 그 날 이후, 나의 이상형은 바뀌었다.

'야구 안 좋아하는 남자를 만나자.'

어디 야구 때문에 있었던 일상 속 재미난 일들이 이 한두 가지 뿐이랴. 2010년 WBC야구경기를 챙겨보다 학교결석을 밥 먹듯 하기도 했고, 준플레이오프 1차전이 열리던 날은 목욕재계를 하고 무릎 꿇고 야구경기를 시청하기도 했다. 홈런 소식에 소리를 지르다 옆집에 민폐를 끼친 적도 허다하다.

나를 포함해 야구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겐 야구 때문에 생긴, 잊지 못할 재미있는 순간들이 많을 것이다. 치킨을 뜯고 맥주를 마시며 야구를 즐기는 공통된 어느날의 기억에서부터 각자 겪었던 특별한 날의 기억까지도. 그 모든 것이 추억이 되어 차곡차곡 쌓여있을 테다. 나의 추억을 더듬다보니 당신들의 추억이 궁금해진다. 야구에 얽힌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인가?

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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