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노조 파업 닷새째인 3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예술극장 앞에서 MBC노조원들과 시민들이 죽은 공영방송 MBC를 추모하며 영정사진을 들고 노제를 지내고 있다. 
MBC노조원들은 공영방송의 정상화와 김재철 사장의 퇴진을 촉구하며 제작거부 파업을 벌이고 있다.

MBC노조 파업 닷새째인 3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예술극장 앞에서 MBC노조원들과 시민들이 죽은 공영방송 MBC를 추모하며 영정사진을 들고 노제를 지내고 있다. MBC노조원들은 공영방송의 정상화와 김재철 사장의 퇴진을 촉구하며 제작거부 파업을 벌이고 있다. ⓒ 유성호


번화가인 서울 명동 한복판에서 난데없이 곡소리가 울렸다. "아이고∼아이고오∼"하는 소리에 행인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누가 죽었나?"라며 행렬을 지켜보던 한 남성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남성이 "MBC가 죽었대"라며 '공영방송 MBC'라 쓰인 영정을 가리켰다.

3일 오후 3시 30분. 파업 5일차를 맞은 MBC 노동조합원들이 거리로 나왔다. 이들은 서울 명동 예술극장 앞에 모여 2시간여 동안 '죽은 공영방송 MBC를 추모하는 노제'를 지냈다.

"남극에도 봄이 오는데...MBC에도 곧 봄이 올 것"

 MBC노조 파업 닷새째인 3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예술극장 앞에서 열린 '죽은 공영방송 MBC를 추모하는 노제'에 참석한 정영하 MBC 노조위원장이 헌화를 하고 있다.

MBC노조 파업 닷새째인 3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예술극장 앞에서 열린 '죽은 공영방송 MBC를 추모하는 노제'에 참석한 정영하 MBC 노조위원장이 헌화를 하고 있다. ⓒ 유성호


이날 노제는 지금까지의 MBC의 죽음을 상징하는 운구 행진으로 시작됐다. 검은 양복을 입은 채 '공영방송 MBC'의 영정을 든 두 사람이 앞장섰고, 그 뒤를 침통한 표정의 정영하 노조위원장과 'MBC 국민의 품으로 돌아가겠습니다'라고 적힌 작은 펼침막을 든 십여 명의 노조원들이 따랐다.

이어 정영하 위원장이 추도사를 읽었다. 정 위원장은 "하늘마저 꽁꽁 얼어붙은 혹독한 겨울날, 우리는 차가운 거리에 서서 공영방송 MBC의 죽음을 비통한 마음으로 애도합니다"라며 "공정방송, 언론독립의 넋이 모두 사라져버린 MBC는 지금 추악한 병균들만 육신에 남아 비틀거리고 있으니, 영혼이 사라져버린 저 MBC는 더 이상 살아있는 MBC가 아닙니다"라며 낭독을 시작했다.

정 위원장은 "우리는 지금의 죽음이 새로운 탄생의 시작임을 믿습니다"라며 "그리하여 우리는 오늘, 이 슬픔이 더욱 큰 환희와 희망을 잉태할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해 싸울 것임을 다짐하고 또 다짐합니다"라고 추도사를 마쳤다.

 3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예술극장 앞에서 열린 '죽은 공영방송 MBC를 추모하는 노제'에 참석한 천정배 민주통합당 의원이 헌화를 마친뒤 자리를 나서고 있다.
이날 천 의원은 "제가 헌화를 했지만 부의금은 내지 않았다"며 "여러분이 꼭 공영방송 MBC를 되살려 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고 노조원들을 격려했다.
MBC노조원들은 공영방송의 정상화와 김재철 사장의 퇴진을 촉구하며 닷새째 제작거부 파업을 진행했다.

3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예술극장 앞에서 열린 '죽은 공영방송 MBC를 추모하는 노제'에 참석한 천정배 민주통합당 의원이 헌화를 마친뒤 자리를 나서고 있다. ⓒ 유성호


 3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예술극장 앞에서 열린 '죽은 공영방송 MBC를 추모하는 노제'에 참석한 <남극의 눈물> 김재영 PD가 영정사진 앞에 헌화한 뒤 규탄발언을 하고 있다.

김재영 PD는 "제가 남극에서 돌아온 이후 경험한 것은 남극보다 더 추운 방송환경이었다"며 "이런 일들이 다시는 재발해선 안 된다는 마음으로 거리에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MBC노조원들은 공영방송의 정상화와 김재철 사장의 퇴진을 촉구하며 닷새째 제작거부 파업을 벌이고 있다.

3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예술극장 앞에서 열린 '죽은 공영방송 MBC를 추모하는 노제'에 참석한 <남극의 눈물> 김재영 PD가 영정사진 앞에 헌화한 뒤 규탄발언을 하고 있다. ⓒ 유성호


다음 순서는 헌화였다. 정영하 위원장에 이어 이날 현장을 지지방문한 천정배 민주통합당 의원과 고진수 세종호텔 노조원이 영정 앞에 고개를 숙였다. 천 의원은 "제가 헌화를 했지만 부의금은 내지 않았다"며 "여러분이 꼭 공영방송 MBC를 되살려 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라고 말해 커다란 호응을 얻었다.

<남극의 눈물>을 연출한 김재영 PD를 비롯한 MBC 노조원들과 시민들도 헌화 행렬에 동참했다. 김 PD는 헌화 후 "<남극의 눈물> 마지막 편집이 있어 편집실에 있어야 하지만 거리로 나왔다"며 "남극에도 봄이 온다는 것에 놀랐는데, (MBC에도) 봄이 곧 올 것"이라는 소감을 남겼다.

조의명 기자 역시 "왜 투쟁하지 않느냐는 말에 부끄러웠다"며 "나갈 길이 분명하고 물러설 길도 없다, 죽기를 각오한다는 생각으로 싸우겠다"고 결의를 다졌다.

'인증샷' 찍는 시민들..."MBC는 국민의 것이다"

 MBC노조 파업 닷새째인 3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에서 '죽은 공영방송 MBC를 추모하는 노제'에 참석한 MBC노조원들과 시민들이 '국민의 품으로 돌아가겠습니다'라고 적힌 펼침막을 들고 행진을 벌이며 공영방송의 정상화와 김재철 사장의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MBC노조 파업 닷새째인 3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에서 '죽은 공영방송 MBC를 추모하는 노제'에 참석한 MBC노조원들과 시민들이 '국민의 품으로 돌아가겠습니다'라고 적힌 펼침막을 들고 행진을 벌이며 공영방송의 정상화와 김재철 사장의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MBC노조 파업 닷새째인 3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에서 열린 '죽은 공영방송 MBC를 추모하는 노제'에서 노조원들이 영정사진을 입관하는 퍼포먼스를 마친뒤 영정사진 대신 '국민의 품으로 돌아겠습니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MBC노조 파업 닷새째인 3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에서 열린 '죽은 공영방송 MBC를 추모하는 노제'에서 노조원들이 영정사진을 입관하는 퍼포먼스를 마친뒤 영정사진 대신 '국민의 품으로 돌아겠습니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죽은 MBC'를 묻고 '국민의 품으로 돌아간 새 MBC의 탄생'을 의미하는 퍼포먼스 이후, 조합원들은 펼침막을 들고 일렬로 행진을 시작했다. 이들이 명동 예술극장 앞길을 한 바퀴 도는 동안, 신명나는 사물놀이 가락이 그 곁을 지켰다. 일부 노조원들은 그 가락에 맞추어 어깨를 들썩이며 행진을 계속했다.

시민들은 각기 스마트폰이나 디지털 카메라를 꺼내 이 광경을 담았다. 인근 상점에서도 많은 이들이 이 광경을 지켜봤다.

갓 스무 살이 되었다는 세 여성은 청주에서 잠시 서울에 놀러왔다 노조원들의 행렬과 마주 했다. 이중 한 아무개씨는 "MBC는 국민의 것인데, 이마저 정권에 장악되면 옛날처럼 검열도 많아지고 국민들이 알아야할 것을 알지 못하게 될 것 같다"며 "계속 파업하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옆에 있던 장 아무개씨 역시 "좋은 프로그램을 보고 싶다"며 "몇 십명에게 탄압을 받는지는 모르겠지만, 몇 만 국민이 지켜보고 있을 것"이라고 지지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30대로 보이는 한 여성은 아이의 손을 잡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부천에서 왔다"고 자신을 소개한 정 아무개씨는 "카메라가 낮은 곳으로 가야 하는데, 그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MBC가) 시청률만 따지는 곳이 되었다"고 안타까움을 표시하며 "(파업) 시기 등에 대해 이견이 있을 수도 있지만, MBC에 대한 마음은 같을 것"이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MBC노조 파업 닷새째인 3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예술극장 앞에서 열린 '죽은 공영방송 MBC를 추모하는 노제'에서 MBC노조원들과 시민들이 공영방송의 정상화와 김재철 사장의 퇴진을 촉구하며 'MBC 국민의 품으로 돌아가겠습니다'라고 적힌 펼침막을 들어보이고 있다.

MBC노조 파업 닷새째인 3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예술극장 앞에서 열린 '죽은 공영방송 MBC를 추모하는 노제'에서 MBC노조원들과 시민들이 공영방송의 정상화와 김재철 사장의 퇴진을 촉구하며 'MBC 국민의 품으로 돌아가겠습니다'라고 적힌 펼침막을 들어보이고 있다. ⓒ 유성호


한편 정영하 위원장은 노제가 끝난 후 <오마이스타>에 "조합원을 회유하려는 (사측의) 움직임이 있다"며 "보도부문 CG나 PD 계약직을 뽑는다는 공고를 내며 현재 파업으로 빠진 인원에게 심리적 압박을 주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어 정 위원장은 "그러나 이로 인해 조합원들의 분노만 커졌을 뿐"이라며 "이것으로 조합원을 흔들겠다 생각한다니 저열하다"고 평했다. 그는 "(사측이) 하나를 내 놓으면 둘로 맞서겠다"며 "끝장을 보겠다, 이번엔 질 수 없다"고 결연한 모습을 보였다.

MBC 파업 MBC 노조 남극의 눈물 천정배 MBC제작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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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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