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구경이 불구경과 싸움구경이라 했던가. 서로 경쟁을 붙여 떨어뜨리고 싸움을 붙이며 즐겨대는 오락 프로가 넘쳐나는 비정한 세상이라지만, 그게 확실히 자극적이고 재미있는 건 솔직히 맞다.

싸움구경을 즐기는 게 인간의 본능이라서 그럴까. 그래, 그래서 이번엔 무슨 싸움이냐고? 국가와 국가의 자존심을 건 전 지구적 스케일의 세계대전이다.

이름하야 미국과 영국의 음악 전쟁 60년사! 너무 크게 치고 들어간 거 아니냐 싶겠지만, 꼭 글을 읽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리고 재미를 위한 대결구도니 너무 정색하지는 말자. 제발.

[1950년대] '기름진' 트럭기사 엘비스 프레슬리의 첫 번째 선제공격

엘비스 프레슬리 엘비스 프레슬리

▲ 엘비스 프레슬리 엘비스 프레슬리 ⓒ 엘비스 프레슬리 공식 사이트


1954년. 한국전쟁이 끝나고 지구촌 곳곳에서 미국과 소련의 냉전구도가 지구를 두 쪽 내던 시절. 미국과 소련 외에 새로운 라이벌 구도(영국-미국)에 불을 지핀 이가 미국에서 홀연히 등장한다. 그의 직업은 트럭기사.

나이 스물 아홉에 기름진 구레나룻, 짤랑짤랑 가죽옷과 노홍철의 저질댄스를 능가하는 '개다리춤', 여기에 블루스와 컨츄리 음악을 자기 맘대로 섞어 부르는 게 주특기인 이 총각. 바로 엘비스 프레슬리다.

그가 데뷔 당시에 부른 하트브레이크 호텔(Heartbreak Hotel)이 순식간에 전 세계를 휩쓸면서 그는 트럭 대신 리무진 타는 인생으로 신분 상승한다. 데뷔 2년 뒤인 1956년, 역사적인 그의 첫 정규앨범 1집이 발매됐다. 앨범은 곧바로 배를 타고 영국으로 건너갔다. 미국의 첫 번째 선제공격인 셈이다.

기타를 치면서 추는 노골적인 하반신 댄스와 백인음악과 흑인음악이 난잡하게 섞인 잡종 음악에 보수적인 영국사회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문제는 여기부터다. 그의 음악이 예상외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영국사회는 두 번 충격에 빠졌다. 스테이지의 젊은이들이 모두 개다리춤을 추는 국가적 굴욕을 지켜 볼 수밖에 없었던 영국의 '음악신'은 훗날을 기약하며 이를 갈기 시작한다.

[1960년대] 양아치 비틀즈와 롤링스톤스의 미국 침공

<비틀즈> 멤버들 영국의 전설적인 록밴드 <비틀즈>의 멤버 사진.

▲ <비틀즈> 멤버들 영국의 전설적인 록밴드 <비틀즈>의 멤버 사진. ⓒ TheBeatles.com


1963년 10월. 엘비스의 로큰롤로 기습당한 영국의 대대적인 반격이 시작됐다. 음악으로 한 방에 뜨고 싶다며 리버풀의 클럽을 전전하던 이들이 공격의 선봉을 맡았다.

밴드의 이름은 비틀즈. 영국 ITV의 인기 프로그램 '일요일 밤 런던 팔라디움 극장에서'(Sunday Night at the London Palladium)에서의 공연 이후 왕창 떠버린 친구들이다. 그들은 엘비스 프레슬리가 남긴 로큰롤을 기타, 드럼, 베이스 등으로 좀 더 정갈하게 다듬어 좀 더 백인에 적합한 음악을 만들었다. 이른바 록 뮤직이다. 

'비틀 마니아'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영국에서 신드롬을 일으킨 이들은 여세를 몰아 다음 해인 1964년 2월 직접 미국으로 가 음악시장 진출을 시도한다. 결과는 엘비스가 준 충격 그 이상이었다. '쉬 러브스 유'("She Loves You")와 '아이 워너 홀드 유어 핸드'(I Want To Hold Your Hand)를 포함해 다섯 곡이 빌보드 1위부터 5위를 휩쓸면서 미국의 음악시장은 아노미 상태에 빠졌다.

이후 미국의 모든 클럽은 버섯머리에 수트 차림의 밴드들이 가득가득 들어찼다. 이후 진출한 롤링스톤스는 그들의 위대한 곡 새티스팩션(Satisfaction)으로 그로기 상태에 빠진 미국 음악계를 향해 확인 사살을 자행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영국의 문화 침공(British Invasion)이다. 이 두 그룹 덕에 영국은 60년대 전 세계의 음악적 트렌드를 쥐고 흔드는 문화 패권국으로 자리를 잡았다. 한때나마.

[1970년대] 미국의 회심의 카드 디스코. 영국의 치명상

비틀즈와 롤링스톤스의 연속 침공으로 버섯 머리 총각들이 미국의 클럽 음악을 점령하던 시절. 절치부심한 미국은 회심의 카드를 꺼내든다.

한때 엄정화가 소리 높여 부르던 디스코. 단순한 박자에 흥겨운 리듬감, 전문 댄서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이 혁명적인 댄스음악은 미국을 다시 세계 음악 산업의 리더로 부상하게끔 만들었다.

칙, 빌리지 피플, 도나 서머 등을 앞세운 미국의 디스코 군단이 전 세계를 뒤흔들었다. 한국도 일본도, 전 세계 모든 젊은이가 저마다 전축을 틀어놓고 디스코 댄스를 추기 바빴다.

롤링 스톤스의 뒤를 잇는 레드 제플린과 펑크의 왕 클래쉬, 섹스 피스톨스를 믿고 자만했던 영국은 다시 미국에게 시장 주도권을 빼앗기고 말았다. 불과 3, 4년 사이에 트렌드 주도권이 뒤바뀐 상황을 영국은 쉽게 인정할 수 없었다. 

[1980년대] 전설의 마이클 잭슨 강림. 미국의 독주체제 확립

마이클 잭슨 마이클 잭슨

▲ 마이클 잭슨 마이클 잭슨 ⓒ MTV


80년대 이후 미국은 30년간 세계 음악 시장의 트렌드를 주도하는 단 하나의 국가가 된다. 미국의 30년 독주체제를 이끈 장본인은 바로 마이클 잭슨이다.

그가 1982 발매한 '스릴러' 앨범은 미국에서만 2500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하는 괴력을 선보이며 세계 최고의 팝 황제로 군림한다. 이 분에 대해 더 많은 설명이 필요한가. 굳이 더 설명해서 무엇하리오. 이 정도의 빛나는 '위엄'은 설명보다는 그냥 느끼는 게 빠르다.

전설 마이클 잭슨의 등장으로 인해 가뜩이나 골골한 상태의 영국의 음악신은 다시 그로기 상태에 빠진다. 마이클 잭슨이 당시에 발매한 스릴러 앨범은 오아시스가 1995년 왓츠 더 스토리 모닝 글로리(What's The Story Morning Glory?)앨범을 발매하기 전 까지 13년 간 영국에서 단시간에 가장 많이 팔린 앨범으로 역사에 남았다.

미국의 공세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메탈리카와 메가데스를 중심으로 하는 헤비메탈의 세계적인 인기와 미국의 뮤직비디오 음악방송 MTV가 1981년 개국 이후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면서 미국은 영국을 완전히 굴복시키고 공고한 1극 체제를 구축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1990년대∼2000년대. 20년간 미국의 독주체제

이후 20년은 미국의 시대다. MTV를 중심으로 한 방송-음악의 강력한 시너지 효과와, 미국 인디신의 꾸준한 실험정신은 슈퍼파워 미국의 트렌드 주도권을 지속시키는 원동력이 됐다. 90년대에는 너바나(Nirvana)를 중심으로 투박한 사운드의 한 그런지 록과 랩과 록을 뒤섞은 뉴메탈이 전 세계 젊은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후 미국에서 새롭게 대두된 네오펑크와 이모코어, 에미넴의 돌풍을 중심으로 한 흑인음악과 일렉트로닉 하우스 음악 연달아 인기를 끌면서 영국은 트렌드의 변방으로 밀려난 듯한 인상마저 주었다. 

그렇다고 영국의 칼날이 완전히 무뎌진 것은 아니었다. 백스트리트 보이즈와 스파이스 걸스 등이 빌보드에서 정상을 차지하며 인기를 과시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영국 언론에서 제3차 미국 침공이라는 표현을 써 가며 내심 기대했던 브리티시 팝 트로이카(블러, 오아시스, 스웨이드)세 밴드의 미국 진출은 기대했던 것만큼 성공적이라는 평을 듣지는 못했다.

이후에도 간결한 사운드의 장르인 개러지 펑크를 미국으로 수출하고 영국의 간판 밴드인 뮤즈, 콜드플레이가 미국 시장에 진출해 빌보드 상위권에 랭크되는 등 일정부분 성공을 거뒀으나 역시 시장의 커다란 전환을 가져왔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2010년대] 심상치 않은 영국의 반격. 승자는?

 영국 출신 가수 아델(Adele)의 2집 앨범 '21' 재킷

영국 출신 가수 아델(Adele)의 2집 앨범 '21' 재킷 ⓒ XL recordings


굴욕의 30년. 영국은 미국으로부터 트렌드 주도권을 다시 가져올 수 있을까. 요즘 들어 영국의 반격이 심상치 않기는 하다. 영국의 디바 아델이 이번 주를 포함해 17주 째 빌보드 앨범차트 1위를 기록하고 있고 영국에서 태동한 일렉트로닉 장르인 덥스텝이 미국 젊은이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침공이라고 부를 만큼의 파급력이라고 단정짓기는 어렵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영국산 장르가 젊은이들에게 다시금 어필하고 있다는 것은 영국으로서는 분명 주목할 만한 성과다. 게다가 특정 인물이 특정 장르를 대표하는 시대가 지나갔다 생각하면 지금의 성과는 더더욱 놀라운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10년은 어떻게 될까. 미국이 기존의 패권을 유지해 40년 독주체제를 이어갈까. 영국이 그간의 설움을 씻어내고 트렌드 패권을 탈환할까. 절대강자 미국이지만 영국 역시 만만하지 않다. 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은 이 싸움이 흥미진진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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