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를 보았다 스틸컷

▲ 악마를 보았다 스틸컷 ⓒ 페퍼민트앤컴퍼니


<악마를 보았다>는 개봉 전부터 관객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톱스타 이병헌의 출연과 최민식의 5년 만에 충무로 복귀작. 여기에다 김지운 감독의 영화였기 때문이다. 덧붙여 개봉하기 전 영등위(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사실상 극장개봉을 할 수 없는 제한상영가를 받은 것 역시 대중들에게 큰 이슈거리가 되었다.

처음 이 소식을 접했을 때 도대체 수위가 얼마나 높기에 요즘 같은 시대에 제한상영가인지 적잖게 황당해 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니 관객들 사이에 수많은 이야기가 나올 것이 눈에 불 보듯 보인다. <악마를 보았다>는 정말 잔인하고 잔혹하다.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폭력과 잔인한 살인 장면의 수위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높다. 관객들이 어떤 상상을 하고 영화를 관람하든 그것 이상을 이 작품에서 보게 될 것이라 단언할 수 있다.

영화 줄거리는 상당히 간단하다. 김수현(이병헌 분)이 약혼녀가 잔인하게 살해당한 후 복수를 감행하는 것. 여기서 잔인한 살인마 역할을 맡은 인물이 바로 충무로 영화에 오랜만에 복귀한 최민식이다. 그는 장경철 역을 맡아서 단순히 즐거움으로 살인을 즐기는 완벽한 악마의 모습을 선보였다. 장경철에게 살인이란 것은 본능적으로 살아 숨쉬는 행위다. 그가 살인을 하는 데 다른 이유는 없는 것이다. 장경철은 마치 맹수가 먹잇감을 사냥하듯 다른 사람을 죽인다.

문제는 장경철과 김수현이 보여주는 대립구도가 잔혹함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의 제목 <악마를 보았다>처럼 두 사람 모두 각자의 이유가 있지만 제 삼자인 관객들이 보기엔 둘 다 선도 악도 없는 악마 그 자체들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약혼녀를 죽인 장경철에게 복수하려는 김수현은 얼핏 보면 정의가 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극장에서 영화를 확인하는 순간 김수현 역시 악마의 본성을 숨기고 있는 가해자일 뿐이다. 단지 그에게 일말의 정이 간다면 장경철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는 것 뿐.

악마 같은 두 주인공이 나오는 영화는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 잔혹한 장면을 스크린 위에 그대로 쏟아 놓는다. 여태껏 충무로에서 제작된 상업영화 중에 이보다 더 잔인하면서 관객들의 혼을 빼놓는 작품은 없었다고 단언해도 될 정도다. 예를 들어 신체 절단은 이 영화에서 그냥 지나가는 장면에 불과할 수준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극으로 시작해서 극으로 끝나는 영화에 잔인한 장면들이 계속 넘쳐나면서 관객들은 후반부로 갈수록 두 사람이 보여주는 폭력에 지쳐갈 수도 있다.

이만큼 잔인한 영화는 없었다... 김지운 감독, '극'으로 치닫다

악마를 보았다 스틸컷

▲ 악마를 보았다 스틸컷 ⓒ 페퍼민트앤컴퍼니


개인적으로 김지운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 그가 만든 작품들은 흥행에 성공한 것이든 실패한 것이든 모두 즐겨봤다. 물론 그의 작품에 비판 역시 존재한다. 알맹이 없이 겉모습에 더 치중해서 승부하는 감독이란 지적이 바로 그것. 하지만 이야기가 완벽하지 않더라도 영화에 감독이 생각하는 것들이 잘 녹아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길만한 작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나온 하드보일드 영화로 가장 뛰어난 작품 역시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이러한 점 때문이다.

문제는 <달콤한 인생>에서도 보기 쉽지 않은 장면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이것들이 영화 구조 아래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장면들이었다면, <악마를 보았다>는 영화라고 생각하기에 너무나 극사실적이고 리얼한 살인 장면과 폭력적인 장면들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마치 감독이 관객들에게 자신이 만든 영화가 이런 것이니 알아서 선택하고 볼 것을 강요하는 것 같이 느껴진다.

우리가 아주 잔인한 공포영화를 보면서도 현실적으로 크게 잔인하다고 느끼지 않는 것은, 이미 그 장면들이 극적인 재미를 위해 연출되어진 것임을 알고 있고, 좀처럼 현실에서 쉽게 일어날 수 없는 일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악마를 보았다>에서 보여준 잔인한 장면들은 이것이 영화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애매모호하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를 본 관객들이 심각한 정신적 충격에 빠질 수 있다. 영화에서 일어난 폭력과 살인들이 바로 우리 앞에서 펼치진 실제 사건 같은 느낌이다. 이것보다 더 심하게 이야기하면 실제 살인사건 현장을 목격한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이렇게 되면 영화는 완전히 극으로 치달았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관객과 소통하는 길 대신 김지운 감독 혼자 만족하는 길로 갔다고 평가내릴 가능성까지 있다. 특히 영화의 주인공인 김수현이 장경철에게 복수를 감행하는 방식 역시 잔인하기에 관객들이 느끼는 정신적 충격은 더 커질 수 있다. 장경철이 범인임을 알고 김수현이 선택한 복수는 죽지 않을 만큼 괴롭혔다가 놓아주기의 반복이기 때문. 아무리 인간 이하의 범죄자에게 행하는 복수라고 하지만 관객들이 예상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것이 사실이다.

한국형 하드보일드 영화의 새로운 장 VS 감독의 자기만족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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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마를 보았다 스틸컷 ⓒ 페퍼민트앤컴퍼니


<악마를 보았다>는 여러 가지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 충무로에서 이런 영화가 나왔다는 점에서 한국형 하드보일드 영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도 가능할 것 같다. 어떠한 이유를 대든 이 작품이 보여준 잔인한 폭력성과 여러 잔혹한 장면들은 한국영화가 시도하지 못했던 영역으로 그 범위를 넓히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표현의 자유에 새로운 장을 열어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요소로 생각할 가능성도 분명 있다.

하지만 문제는 많은 관객들이 <악마를 보았다>를 김지운 감독의 자기만족 영화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더 높단 것이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이야기가 너무나 단순하다. 그 부분을 채워주는 것은 두 배우가 보여주는 현실 같은 폭력과 살인뿐이다. 다른 어떤 것으로도 이 영화는 관객들을 설득하지 못한다. 왜 김수현이 영화 속과 같은 방법으로 장경철에 대한 복수에 매달릴까? 왜 장경철은 그런 식으로 김수현에게 반항할까? 이런 기본적인 물음에 대해서도 감독은 관객들에게 설득력 있는 답을 제공하지 못한다. 두 사람이 보여주는 폭력에 근본적인 진정성이 없단 것이다.

단순히 감독이 만들어 놓은 결과물을 관객들이 알아서 받아들이고 잔인한 장면, 폭력적인 장면 모두 관객 스스로 감내해야만 한다. 이런 부분들은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영화는 관객들과 함께 소통을 해야만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이러한 부분이 제거된 상태에서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는, 상상을 뛰어넘는 폭력적인 장면들로만 모든 것을 대신한 작품에 대해 좋은 평가를 내리기는 힘들 것이다.

자기 두 눈으로 직접 현장에서 잔인한 장면들을 본 것 같은 착각에 빠져 들게 만드는 것은 어떤 면에서 영화의 장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영화란 것은 완벽한 현실이 아니다. 우리가 아무리 잔인한 장면을 보더라도 정신적으로 크게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영화적 장치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악마를 보았다>에는 이런 장치가 없다. 모든 충격을 관객들 스스로 감내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http://www.moviejo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악마를 보았다 이병헌 김지운 최민식 무비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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