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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세차게 불어 뒤뜰에 수북이 쌓인 감나무 낙엽을 죄다 마당으로 쓸어다 놓더니 얼음이 얼고 방으로는 불청객이 들어왔다.

"오매, 이것이 믓이여, 이것이 믓이여."

자다가 어머니의 고함 소리에 벌떡 일어나서 앉았는데 쥐가 저도 놀랐는지 방향을 못 잡고 허둥거린다. 그것이 쥐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녀석은 내 무릎을 타고 오르는가 싶더니 금방 어깨를 건너 뛰어 텔레비전이 있는 쪽으로 갔다가는 여기도 아니네, 하는 듯이 돌아서서 찰나라고나 할 만한 순간 좌우를 살피고는 그제야 출구를 찾았다는 듯 물 위를 걷는 새처럼 날렵하게 이불을 건중건중 밟고 부엌으로 나간다.

어머니의 화장실 문제로 밤새 불을 켜두었기에 망정이었지 안 그랬으면 영문을 몰라 밤새 걱정을 할 뻔했다. 쥐가 방에까지 들어온 것도 어머니의 화장실 문제 때문에 항상 부엌문을 열어둔 까닭일 터이었다. 그나저나 대담도 하다. 쥐가 집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야 가끔 있어온 일이지만 사람이 잠자는 그것도 환하게 불이 켜진 방안까지 점령하겠다고 나서기는 이 집으로 이사 온 이후 처음이다.

고구마를 캐면서 이빨 자국이 많아진 고구마를 보고 이미 예상했던 일이기는 하지만 불청객은 역시 불쾌하다. 게다가 이제 한참 곰팡이꽃을 멋들어지게 피어내는 메주가 녀석들의 주 공격대상이 될 것이라 생각하니 불쾌하다 못해 끔찍하고, 그 어떤 치욕스러움까지 느껴진다. 어떻게 쑨 메주인데 저것들한테 뺏긴단 말이냐.

어떻게 쑨 메준데... 쥐들에게 뺏길 순 없어

부엌 천장 들보에서 한창 숙성중인 메주, 이미 쥐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부엌 천장 들보에서 한창 숙성중인 메주, 이미 쥐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 김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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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쥐가 일단 집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면 그것들은 금방 두 마리, 네 마리, 여덟 마리로 늘어나기 마련이다. 정찰을 나왔던 녀석이 돌아가서 주변에 산재한 친구들이며 가족들을 죄다 끌어들이기 때문이다. 그것들을 잡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고도의 인내와 노력과 그리고 정성을 다 바쳐야만 한다.

자다가 일어나서 춤춘다는 격으로 오래 전에 이미 준비해둔 쥐덫을 놓고 끈끈이도 포장을 뜯어 여기저기에 배치를 하기는 했지만, 그리 썩 미덥지는 않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그것부터 살펴보는데 역시, 깨끗하다. 쥐는 한 마리도 잡히기는커녕 무슨 영역표시를 하자는 것인지 아니면 도전장을 낸 것인지 여기저기에 똥만 내질러놓았다. 그것도 끈끈이 바로 옆에 똥들이 즐비하다.

요즘 쥐들은 이렇게도 집쥐 들쥐 가릴 것 없이 쥐덫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끈끈이도 아주 어린 생쥐 계급들이나 철이 없어 가끔 붙을까 큰 것들은 잘도 피해 버린다. 쥐덫이나 끈끈이에 희생된 선대의 학습이 어떻게 후대의 쥐들에게 계승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그들은 인간에 못지않게 지식을 축적하고 있다.

쥐는 못 잡고 사람 잡을 뻔한 쥐약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끈끈이에 쥐가 제법 붙기도 했지만, 이즈음은 여간 붙어주지를 않는다. 지금은 저렇게, 기가 막히게도, 바로 옆에 똥이나 내질러놓고 사라졌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끈끈이에 쥐가 제법 붙기도 했지만, 이즈음은 여간 붙어주지를 않는다. 지금은 저렇게, 기가 막히게도, 바로 옆에 똥이나 내질러놓고 사라졌다.
ⓒ 김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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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믿을 만한 것은 냄새 없는 쥐약이지만 이것은 몇 가지 곤란한 상황을 각오해야 한다. 약을 먹은 쥐가 밖으로 나가서 죽어주면 좋겠지만 천장이나 쥐구멍 같은 데서 은밀하게 죽어버리면 최소한 보름 정도는 엄청난 악취를 고스란히 당해야만 한다는 것을 나는 경험으로 이미 알고 있다. 악취뿐만 아니라 재작년 가을에는 새끼를 낳은 어미쥐가 약을 먹었던 것인지 천장에서 갑자기 새끼쥐들이 툭툭 떨어지는데 그것을 보고 내가 그만 가슴이 아파 미치는 줄 알았다.

아직 눈도 안 떴고 털도 안 난 것들이, 갓난아기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크기밖에 안 되는 것들이 저도 생명이라고 툭툭 떨어진 채로 찌, 찌이, 소리를 내며 고물고물하는데 그것을 보는 내 눈에서 눈물이 찔끔거리는 등 혼란도 그런 혼란이 없었다.

그렇게 마치 조문이라도 온 사람처럼 가만히 앉아서 생각을 해보니 어미쥐가 나타나지를 않으니까 새끼들이 배가 고픈 나머지 이리저리 뒹굴고 다니다가 작은 틈으로 몸이 빠지면서 그렇게 툭툭 떨어진 것 같았다. 쥐 아니라 그보다 열 배 천 배 혐오스런 것일지라도 그 신분에 앞서 생명이라는 관념이 발동하는 것이야말로 어쩌면 이 지구를 존재케 하는 동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얼핏 해보기는 했지만, 어쨌든 그리 기분 좋은 경험은 아니었다. 그토록 잡고자 했던 쥐를 잡아놓고도 슬픔을 느껴야 하는 상황은 정말이지 너무도 황당했다.

쥐약이 곤란한 것은 비단 악취 때문만은 아니다. 약을 먹은 쥐가 만약에 못된 인간들의 물귀신 작전 같은 것들을 모방한다고 한갓진 데가 아닌 얼마 전에 새끼를 낳은 개 집 앞으로 기어가서 나를 먹어봐, 하는 듯이 죽어 버린다면 어찌될 것인가. 고기라면 사족을 못 쓰는 개가 만일 어 고기가 왔네, 하고 정직하게 그냥 먹어버린다면 말이다.

아주 오래 전 우리집에서는 쥐약 때문에 셋째아우가 일을 당할 뻔하기도 했었다. 어머니가 멸치에 쥐약을 버물려 놓았는데 이제 막 젖을 뗀 셋째아우가 그것을 보고 "엄마, 꼬기, 꼬기"하니까 뭔가 다른 일에 바빴던 어머니 왈 "응 꼬기? 먹어"해 놓고 한참 뒤에 쥐약 생각이 나서 돌아보니 벌써 먹어 버렸더라는, 그래서 집안이 발칵 뒤집혀졌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내려온다.

기왕 사놓은 것이니까 놓아 보기는 하지만,  쥐덫으로 쥐를 잡는 것은 이제 옛말이 되었다. 요즘의 쥐들은 어찌나 섬세한지,어떤 때는 먹이만 먹어치우기도 한다.
 기왕 사놓은 것이니까 놓아 보기는 하지만, 쥐덫으로 쥐를 잡는 것은 이제 옛말이 되었다. 요즘의 쥐들은 어찌나 섬세한지,어떤 때는 먹이만 먹어치우기도 한다.
ⓒ 김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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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저런 이유 때문에 쥐약을 영 꺼려하는 나, 그렇다면 저놈의 쥐들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 아, 마지막으로 해볼 만한 방법이 하나 있기는 하다. 일명 토끼몰이 아니 쥐몰이. 그것은 아마 우리 선대들이 아주 정직하게 쥐를 잡는 방식이었을 것이다.

우선 창호지에 구멍을 뚫는다. 쥐 한 마리가 빠져나갈 정도의 크기면 된다. 그리고 한 사람이 밖에서 자루 하나를 구멍에 대고 기다린다. 다른 사람은 막대기를 들고 방 안의 세간을 투닥거리며 발로 차며 난리를 치고 다니면, 놀란 쥐가 튀어나와서 우왕좌왕하다가 구멍을 발견하고는 아 저기다 탈출구, 하고는 자루 속으로 쏙, 쏙 빠져드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덤비는 것은 또 아니다. 쫓기던 쥐가 앞가슴이나 바짓가랑이 속으로 뛰어들기라도 하면 낭패도 그런 낭패가 없다. 저도 들어가고 싶어 들어간 것이 아니라 얼결에 들어간 것이기 때문에 그곳은 안심할 수 있는 피난처가 아니라 오히려 불안과 공포가 넘실대는 소굴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녀석은 닥치는 대로 물어뜯게 되는데 이때 자칫하면 허벅지 안쪽 가장 연약한 부위를 물어뜯길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양말이나 대님 같은 것으로 바짓가랑이는 철저하게 꼭꼭 단속을 하고 앞가슴도 철저하게 여민 채로 작업을 해야만 한다.

'야들야들' 쥐고기 구워주던 아버지

아무튼 이렇게 해서 잡은 쥐를 고종사촌 형님과 아버지가 마주앉아 껍질을 벗기고 내장을 빼낸 다음 바라지에 걸어놓고 핏물이 빠지기를 기다렸다가 숯불에 굽는데 그때의 냄새, 그 고기 냄새는 정말이지 입안에서 침이 돌 정도였다, 지금이야 물론 쥐고기 먹을래? 하면 진저리를 치며 고개를 내젓겠지만, 그때는 그 어떤 고기도 쥐고기 맛을 따르지 못한다고 여겼던 것 같다.

그렇다. 그 맛을 나는 기억한다. 뭐라고나 할까. 쫄깃하면서도 아주 부드러운 것이 멧돼지 목살과도 비슷하다. 쥐는 천성적으로 가만히 있지를 잘 못하는, 운동을 엄청나게 많이 하는 까닭에 육질이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아직 소년이었을 적에, 몇 살이었는가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하여튼 어렸을 적에 고종사촌 형님과 아버지가 겨울 밤이면 가끔 쥐덫을 놓기도 하고 토끼몰이 하듯이 몰아서 잡기도 해서 밤이 깊도록 구워먹곤 했었다. 고기가 귀한 시절이기도 했지만, 직업군인이 되고자 했으나 외롭다고 하소연하는 어머니 때문에 제대를 결심하고 민간인 신분이 된 지도 얼마 안 된 아버지가 아마 군대에서 했던 쥐고기 요리를 당신의 조카에게 실증적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호기도 일정 부분 작용했다고 여겨진다.

그런데 껍질을 벗긴 쥐의 모양은 장화홍련전에서 계모가 '저년이 애를 배어서 유산을 했다'고 주장하며 증거랍시고 내놓을 때의 핏덩어리와 항상 겹쳐서 떠오른다. 하여튼 그 시기 몇 해에 걸쳐 겨울 이슥한 밤이면 쥐고기 파티가 벌어지곤 했었다. 물론 어머니께서는 징그럽고 끔찍하다고 방에서 한 발자국도 밖으로 나오지 않았지만, 쥐고기 파티가 그 시절에 있었다는 것만은 어렴풋이나마 기억이 나는지 그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진저리를 친다.

"아이그, 징그러."
"기억 나요? 그때 한 번이라도 그 쥐고기 맛 봤어요?"
"아이그, 몰러어."
"그나저나 저놈의 쥐를 어떻게 잡지?"
"어디 무슨, 쥐 들어왔간디?"
"아니에요. 심심해서 그냥 해본 소리예요."

나 한번 잡아보시지 그래? 간 큰 쥐새끼들

색깔은 있으나 냄새는 없는 쥐약, 아직은 더러 먹어주고 죽어주지만, 영리한 쥐들이 언제 이것도 피해가는 기술을 개발할지 모른다.
 색깔은 있으나 냄새는 없는 쥐약, 아직은 더러 먹어주고 죽어주지만, 영리한 쥐들이 언제 이것도 피해가는 기술을 개발할지 모른다.
ⓒ 김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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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쥐가 방안에까지 들어온다는 사실을 알면 어머니는 아마 이불을 뒤집어쓰고 말 것이다. 이렇게 되면 토끼몰이 방식은 쓸 수가 없다. 쥐를 잡는다고 소란을 피우면 어머니는 필경 공포에 질려 바들바들 떨 것이고, 잠도 이룰 수가 없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쥐약을 써야만 하는가? 

다시 밤이 깊었는데도 아직 결정을 못 내리고 고민만 하고 있는데 부엌에서 쥐들의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한두 마리가 아니다. 고양이처럼 소리도 안 내고 가만히 일어서서 살금살금 나가본다. 기도 안 막히다. 둘 세, 족히 다섯은 되는 것 같다. 그런데 이것들이 내가 명색이 사람인데, 사람이 나타났는데도 금방 달아나지도 않는다.

마치 나 잡아보라는 듯이 우뚝 서서 일이 초 정도씩 눈알을 뱅글뱅글 돌리다가 사라진다. 어떤 녀석은 싱크대 밑으로, 어떤 녀석은 냉장고 뒤쪽으로, 또 어떤 녀석은 아예 느긋하게 벽을 타고 천장으로 올라가기도 한다. 생각으로는 금방 손을 뻗어 잡을 것도 같지만, 내가 움직이는 순간 쥐는 벌써 그 자리를 떠나 있기 마련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아는 까닭으로 그저 멍청하게 보고 있는 수밖에는 달리 할 일이 없다. 그렇게 보고 있자니 속에서 금방 불이라도 날 것만 같다. 으, 저것들을, 저것들을 어떻게 하지.

그래, 어쩔 수 없다. 복잡하게 여러 생각할 것 없이 그냥 먹을 것으로 승부를 걸자. 쥐는 영리하지만, 먹을 것 앞에서는 그저 동물이 되는 것일 테니 말이다.


태그:#쥐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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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것이 일이고 공부인, 공부가 일이고 사는 것이 되는,이 황홀한 경지는 누가 내게 선물하는 정원이 아니라 내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우주의 일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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