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를 관람할 때 응원 팀을 두고 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상당한 차이가 난다. 좋은게 좋은 거라고 그때 그때 멋진 플레이를 펼치는 선수나 팀을 응원하면 된다는 사람도 있지만 응원팀 혹은 안티팀(?)이 있는 것이 몰입도나 충성도 등 감정적인 면에서는 좀더 집중이 잘되지 않나 생각된다.

 

물론 지나치면 곤란하겠지만 내가 응원하는 팀과 심적으로나마 한 시즌을 같이 보내고, 싫어하는 팀에게 귀여운 야유(?) 정도 보내는 팬이라면 해당스포츠에 대한 애정이 모자라지는 않을 듯 싶다.

 

세상 모든 인간사가 그렇듯 특정 팀을 응원하는 데에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연고지팀이라서, 특정 선수가 좋아서, 유니폼이 멋있어서 등 가지각색의 사연이 분명 있다. 그리고 때론 이같은 요소들은 직접 뛰고있는 선수들 못지 않게 해당 팀을 좋아하는 최고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난 프로농구를 좋아한다. 그런 만큼 나 역시 당연히 응원하는 팀이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 나는 응원하는 팀이 벌써 3번이나 바뀌었다. 야구 같은 경우 단 한 차례도 바뀌지 않고 있지만 그보다 역사가 훨씬 짧은 농구에서는 쉴새없이 응원 팀을 갈아 탄 것이다.

 

변덕? 아니다. 정말이지 나같이 꾸준하게 특정 팀을 응원한 사람도 없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어떤 선수(감독)가 가는 곳이 곧 나의 응원 팀인 것이다. 다름 아닌 허재가 나의 응원 팀을 결정하는 기준으로, 난 그가 가는 곳을 따라다니며 응원해왔다.

 

 농구천재 허재, 나에게는 그가 가는 곳이 곧 응원팀이다

농구천재 허재, 나에게는 그가 가는 곳이 곧 응원팀이다 ⓒ 전주 KCC

 

기량을 뛰어넘는 '투지'로 똘똘 뭉쳤던 사나이 허재

 

프로 원년 내가 응원했던 팀은 당연히 기아 엔터프라이즈였다. 실업 농구 시절부터 수많은 농구 팬들을 거느리고 다녔던 기아에는 강동희, 김유택, 김영만 등 수많은 스타급 플레이어가 즐비했다. 그리고 허재는 이 가운데서도 최고의 스타라고 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정상급 선수들로 무장한 기아는 프로 원년 너무나도 당연스럽게 우승을 차지했다. 외국인 선수들도 잘 뽑았지만 무엇보다도 양과 질적으로 국내 선수들의 기량이 타 팀들과 비교가 되지 않았다. 실업 시절부터 이어져온 기아의 절대 파워가 프로에서도 여전한 모습이었다.

 

나에게 원년 기아의 우승은 예전처럼 크게 기쁘지 않았다. 다름 아닌 허재가 감독의 홀대 속에서 결정적인 순간마다 벤치를 지키며 우승의 조연으로 밀려났기 때문이다. 아예 기량이 딸려서 식스맨으로 전락한 것이라면 그러려니 하겠으나 당시의 허재는 여전히 최고의 선수 중 한명이었던지라 그 아쉬움이 더욱 컸다.

 

그러나 역시 허재는 허재였다. 자존심이 크게 상한 그는 절치부심하며 이를 악물었고 다음해 플레이오프에서 외국인 선수 포함 실질적인 팀의 에이스로 맹활약했다. 특히 대전 현대(현 전주 KCC)와의 챔피언 결정전은 그야말로 "왜 허재가 천재로 불리는가?"를 재확인할 수 있는 경기였다.

 

당시의 현대는 조니 맥도웰-제이웹이라는 최고 용병 듀오에 이상민-추승균-조성원 등 절정의 기량을 선보이는 젊은 선수들로 중무장한 해당 시즌 최고의 팀이었다. 반면 기아는 외국인선수 한명이 태업성 플레이를 펼치며 사실상 용병 하나로 그들과 맞서야 되는 지극히 불리한 입장에 처해 있었다. 전력을 풀 가동해도 어렵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가장 중요한 외국인 싸움에서부터 크게 밀리고 말았던 것. 때문에 많은 전문가들은 현대가 기아를 손쉽게 제치고 우승을 차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승부는 쉽게 끝나지 않았다. 기아는 엄청나게 불리한 상황에서도 승부를 7차전까지 몰고 가는 투혼을 발휘했고, 아슬아슬한 차이로 현대가 우승을 가져갔다. 만약 기아의 나머지 용병이 꾸준하게 경기에 나서 주기만 했어도 우승의 향방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이렇듯 기아가 모두의 예측을 깨고 최고 전력의 현대와 대등한 승부를 펼쳤던 데에는 허재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당시의 허재는 이미 전성기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불같은 투혼으로 팀을 이끌며 현대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현대의 쟁쟁한 선수들은 더블 팀으로도 노장 허재를 막아내지 못하고 쩔쩔매는 모습이었는데, 특히 손등이 부러지고 이마가 찢어지면서도 승부욕을 버리지 않는 허재의 모습은 그를 싫어하던 팬들에게까지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었다는 후문이다.

 

결국 챔피언 결정전 최우수선수의 영광은 우승팀인 현대 선수들이 아닌 준우승팀의 허재에게로 돌아갔다. 팀은 비록 졌지만 허재는 자신의 가치를 충분히 보여줬던 것이다.

 

 전주 KCC 이지스는 갖은 악재에도 불구하고 허재 감독의 지휘 아래 서서히 탄탄한 조직력을 갖춰가고 있다

전주 KCC 이지스는 갖은 악재에도 불구하고 허재 감독의 지휘 아래 서서히 탄탄한 조직력을 갖춰가고 있다 ⓒ 전주 KCC

 

항상 멋있었던 끝마무리, 3번째 팀에서도 '감동' 볼 수 있을까?

 

이렇듯 최선의 노력을 보여준 허재는 이후 나래(현 원주 동부)로 이적한다. 물론 나 역시 허재를 따라 응원팀을 나래로 바꿨다. 당시 나래는 강원도 원주를 연고지로 하던 팀으로 팬들  사이에서의 인지도는 그리 높지 않았다. 프로 원년 깜짝 준우승과 '사랑의 3점슈터' 정인교 정도가 팬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전부였다. 하지만 허재 입단 후 나래는 일약 전국구 구단으로 비상한다.

 

허재는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주전과 식스맨, 포인트가드와 슈팅가드-스몰포워드를 넘나들며 팀의 간판스타로 활약했다. 그러나 나래의 전력은 우승을 노리기에는 2% 부족했고 그러는 사이 허재에게는 점점 은퇴시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자존심이 강한 그는 우승이라는 목표를 이루고 선수생활을 마감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나래의 우승은 어려워 보였던 것이 사실이었는데 이때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진다. 다름 아닌 신인드래프트에서 슈퍼루키 김주성을 뽑는데 성공한다. 허재는 만세를 불렀고 이후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김주성의 조력자로 매진하며 당시 최강팀인 동양(현 대구 오리온스)을 누르고 우승이라는 꿈을 이루고 명예롭게 은퇴한다.

 

이때의 허재는 사실상 팀의 주축에서 벗어난 식스맨 정도의 활약밖에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재는 정신적인 지주로서 팀에 단단히 이바지했다. 특히 챔피언 결정전 진행 당시 부상을 당해 병원으로 실려가야만 되는 상황에서 힘겹게 코트에 서서 경기를 지켜보던 장면은 기아에서 MVP를 받았던 시절 이상의 감동을 팬들에게 선사했다는 후문이다.

 

팀 내 최고참이 고통을 참고 경기를 지켜보는데 어찌 물러설 수 있겠는가, 그의 후배들은 더욱 악착같이 경기에 임했고 투지에서부터 동양을 눌러버렸다. 허재는 기량에서는 큰 도움을 줄 수 없었지만 자신이 소속된 팀에 근성과 정신력을 업그레이드시켜주는 역할을 제대로 한 것이다.

 

이렇듯 그는 팀을 옮길 때마다 확실한 결과물을 만들어냈고, 또한 그를 응원하는 팬들을 결코 실망시키지 않았다. 많은 나이와 부상도 경기에 대한 그의 열정을 가로막지는 못했다. 바로 이점이 내가 그를 따라다니며 응원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였다.

 

이제 난 그를 따라 3번째 팀인 전주 KCC를 응원하고 있다. 달라진게 있다면 예전에 응원했던 대상은 선수 허재의 팀이라면 이번에는 감독 허재의 팀이라는 정도다.

 

올 시즌 허재는 많은 팬들로부터 '지도자로서의 자질'에 대해 심한 질타를 당했다. 다름 아닌 KCC의 성적이 좋지 않았기 때문으로 바로 얼마 전까지 극심한 연패에 빠지며 일부에서는 퇴출운동까지 벌어졌던 것도 사실이다.

 

이충희-조성원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현역시절 훌륭했던 스타라고 해서 꼭 감독으로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팀의 성적이 나쁘면 저평가가 따라나오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이들은 떠밀리듯이 퇴출당하기도 하고, 스스로 부담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감독직을 내놓기도 한다. 허재의 열성 팬인 내 입장에서도 "저러다 허재가 자의반 타의반으로 하차하는 것은 아닌가?" 굉장히 불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선수 시절에도 그렇듯 승부욕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팀의 연패로 엄청난 스트레스와 부담감에 시달렸겠지만 결국 끝까지 책임감 있게 팀을 통솔하며 천천히 제 궤도를 찾아가고 있다.

 

시즌 초 야심 차게 밀어붙였던 '높이농구'는 실패하고 말았지만 서장훈과의 트레이드를 통해 새로이 팀에 합류한 강병현을 중심으로 한 '빠른 농구'로의 변신에 성공하며 선수시절 보여줬던 집념을 재확인할 기세다. 아직은 선수시절의 명성을 따라가기에는 한참 부족한 모습이지만 이러한 승부욕 때문에라도 난 여전히 그를 믿고 있다.

 

허재는 현재 많은 '시행착오'와 싸우고 있는 상황이다. 선수시절에는 '천재'였는지 몰라도 자신이 직접 경기를 뛰지 않는 이상 이제는 또 다른 길에서 '실패'라는 두려움과 맞서야만 한다. 그간 느끼지 못했던 벤치선수들의 설움과 다양한 리더십 등 앞에 높인 장벽들의 두께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난 그의 불타는 열정을 공감하며 KCC라는 3번째 팀을 응원하고 있다. 이번에도 그가 뜨거운 감동을 안겨줄 것을 기대하며…

2009.01.12 09:49 ⓒ 2009 OhmyNews
응원팀 수필 프로농구 허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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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디지털김제시대 취재기자 / 전) 데일리안, 전) 홀로스, 전) 올레 , 전) 이코노비 객원기자 / 농구카툰 크블매니아, 야구카툰 야매카툰 스토리 / 점프볼 '김종수의 농구人터뷰' 연재중 / 점프볼 농구카툰 'JB 농구툰' 연재중 / 점프볼 객원기자 / 시사저널 스포츠칼럼니스트 / 직업: 인쇄디자인 사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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