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의 정수장, 복토 보존 반대한다." 대책위는 구의 정수장을 모래로 덮고 그 위에 야구장을 짓는 계획에 대해 큰 우려를 나타냈다.

▲ "구의 정수장, 복토 보존 반대한다." 대책위는 구의 정수장을 모래로 덮고 그 위에 야구장을 짓는 계획에 대해 큰 우려를 나타냈다. ⓒ 이호영

 

이날도 시민단체들은 서울시청에 모여 시위를 했다. 동대문운동장 철거반대와 보존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25일 오전 11시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들의 입장을 밝혔다.

 

벌써 3번째다. 대책위는 같은 장소에서 지난 8월 20일 '동대문운동장 수호 기자회견 및 100인 선언'을 했고 9월 4일에는 역사문화 환경을 파괴하는 서울시의 재개발정책을 규탄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기존 계획대로 일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선용진 문화연대 공동사무처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기자회견은 동대문운동장 철거 후 대체구장 부지로 거론되는 '구의 정수장에 대한 복토계획 문제' 관련 김란기 문화유산연대 집행위원장의 발언으로 시작됐다. 이어 아마추어 야구팬 홍현선씨가 서울시 계획에 대한 아쉬움을 말했고 황평우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장이 서울시의 반문화적 행태를 지적했다. 이후 정종권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위원장의 성명서 발표를 끝으로 대책위는 요구사항을 외치며 기자회견을 마감했다.

구의 정수장 매몰 계획, '현실성' 있나?

 

구의 정수장은?

 
구의 정수장 1·2공장 항공사진 구의 정수장은 근대 문화재로 지정, 그 보존 가치를 인정받았다.

▲ 구의 정수장 1·2공장 항공사진 구의 정수장은 근대 문화재로 지정, 그 보존 가치를 인정받았다. ⓒ 문화재청

구의 정수장은 1936년부터 1984년까지 4개의 정수시설이 있어, 상수도의 시대적 변천과정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국내유일의 정수장이다.

제1공장은 1936년에 지어진 것으로 현존 최고(最古) 급속여과지의 원형이 보존되어 있으며, 제2공장은 1959년에 미국의 원조 및 기술 지원으로 지어진 것으로 당시 신기술인 상하류식 고속응집침전지 설비가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곳이다. 두 공장 모두 착수부터 약품처리, 혼화, 응집, 침전, 여과, 정수 등 수도시설의 전 과정이 잘 남아있다.

- 문화재청 보도자료

구의 정수장은 당초 서울시가 동대문운동장을 철거하는 대신 7개의 대체구장을 짓겠다고 약속했던 부지 중 한 곳이다. 하지만 구의 정수장이 지난 22일 문화재청에 의해 문화재로 등록되면서 대체구장 건설 문제는 난항을 겪고 있다.

현재 구의 정수장의 1·2공장은 노후화로 가동이 중단된 상태며 3·4공장만을 가동하고 있다. 만약 야구장이 들어설 경우 1공장 자리의 상당한 훼손은 불가피하다.

 

서울시와 문화재청은 이곳을 모래로 채워 원형을 보존하고 그 위에 흙과 잔디를 깔아 간이야구장을 세운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와 관련 대책위는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구의 정수장 매몰 계획을 전면 철회할 것"을 강력히 주장했다.

 

김란기 문화유산연대 집행위원장은 "구의 정수장은 한국의 근대 상수도 역사를 시대별로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근대 산업유산으로 가치가 높다"며 "보존되어야 마땅한 또 다른 근대 문화유산인 동대문운동장을 철거하면서 그 대안으로 구의 정수장을 선택한 것 자체가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어 "대체 야구장을 짓는다는 명목으로 구의 정수장을 파괴해서는 안 된다"라고 덧붙였다.

김 집행위원장은 "서울시는 구의 정수장에 모래를 채우고 그 위에 야구장을 세운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며 "하지만 현재 구의 정수장은 가동을 중단한 지 5년이 넘은 시설이어서 폐쇄 시설의 노후화가 심각하고 구조의 안정성을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녹슨 철근이 노출되어 있고 갈라짐도 발견되고 있는 콘크리트 구조물 위에 모래를 넣고 야구장을 건설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그는 "서울시가 금년 말에 야구장을 완공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 자체도 무리"면서 "서울시가 어떻게 하나 현장에서 지켜볼 생각"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황평우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장도 구의 정수장 철거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그는 "구의 정수장은 환경 유원지로 활용해야 한다"며 "이번에 철거가 되지 않도록 등록 문화재로 보존 운동을 추진할 계획이며 법적 소송도 불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구의 정수장 보존을 위해 끝까지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야구팬들, 대체로 동대문운동장 철거 반대


철거 위기의 동대문운동장 동대문운동장은 근대 문화유산으로 충분한 가치를 지녔음에도 불구 철거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서울시는 11월 동대문운동장을 철거할 예정이다.

▲ 철거 위기의 동대문운동장 동대문운동장은 근대 문화유산으로 충분한 가치를 지녔음에도 불구 철거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서울시는 11월 동대문운동장을 철거할 예정이다. ⓒ 이호영

 

이날 기자회견에는 아마추어 야구팬인 홍현선씨도 참석했다.

 

홍씨는 "서울시가 야구장 문제를 꼭 해결해 주길 바란다"며 "지금 구의 정수장 위에 세우려는 400명 규모의 간이 야구장은 규모가 많이 모자라는 것 아니냐"고 우려했다.

그는 기자의 질문에 "동대문운동장과 구의 정수장 모두를 보존했으면 좋겠다"며 "만약 문화유산인 구의 정수장을 없애고 그 위에 새로운 야구장을 짓게 된다면 관중이나 뛰는 선수들 마음이 편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피력했다.


홍씨는 "서울시가 야구 인프라 구축을 위해 노력하려 한다면, 동대문운동장은 개보수를 통해 보존하고 주민들의 환영을 받는 곳에 새로운 구장을 지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물론 보다 중립적인 야구팬들도 있다. 기자가 만난 야구팬 가운데는 "동대문운동장 철거를 기본적으로 반대하지만 동대문운동장의 위치가 워낙 시내 한가운데 위치해 있으니 서울시 입장에서는 철거 계획을 세울 수밖에 없을 것"이라면서 "이 경우 대체 구장의 건설이 대학 및 고교야구대회에 차질을 주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지금 상태로는 내년 아마추어 야구대회 운영의 차질이 불가피하다. 벌써부터 내년에는 목동 야구장에서 대회가 치러진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시간 부족하지만 끝까지 싸우겠다"

[인터뷰] 이병수 체육시민연대 사무차장

 

"동대문운동장은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동대문운동장에 체육시민연대와 문화연대가 걸어 놓은 현수막이 걸려있다.

▲ "동대문운동장은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동대문운동장에 체육시민연대와 문화연대가 걸어 놓은 현수막이 걸려있다. ⓒ 이호영

 

체육시민연대는 동대문 철거 반대를 주도하고 있는 단체 중 하나다. 기자회견과 일련의 사건 전개에 대해서 이병수 체육시민연대 사무차장과 일문일답을 나눠봤다.

 

- 최근 대책위의 활동 방향은?
"최초 계획대로 동대문운동장 철거 반대를 주장하고 있다. 체육 시설이 내몰리고 있는 현 실태에 대해 불만의 목소리를 모으고 항의를 할 예정이다. 물론 가장 우선적인 사안은 동대문운동장 철거 문제다. 일단 이 문제가 많이 그리고 정확히 알려지는 것이 중요하다. 체육인들에게 조차 동대문운동장 철거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어 문제다. 기존 언론이 사건의 실체를 자세히 다루지 않고 있다는 점도 못내 아쉽다."

 

- 주위의 반응은 어떻나.
"전보다는 훨씬 호응이 좋다. 예전엔 정말로 별 반응이 없었다. 동대문운동장을 혐오 시설로 취급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엔 달라졌다. 체육 관련 학회나 진흥공단이 대책위와 의견을 함께하겠다는 의사를 표현했다. 일부 유명한 금메달리스트 또한 적극적으로 문의를 해오고 있다. 과거와는 큰 차이다."

 

- 문화재청의 태도에 불만이 많은 것 같다.
"정작 구의 정수장은 모래를 채우는 과정까지 거쳐 보존하면서 동대문운동장은 보존 대상에도 없다는 것이 유감이다. 문화재청은 최근 태릉사격장 폐쇄 문제로 사격계와 갈등을 빚고 있기도 하다. 이렇게 체육 문화는 문화로써 존중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문화재청과 서울시가 체육 문화 말살 정책을 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문까지 든다. 가치 있는 부분은 보존하려고 해야 하는데 그것이 아니라 아쉽다."


- 한국야구위원회(KBO), 대한야구협회와의 연대 계획은 없나?
"우리는 이들 단체가 동대문운동장을 빌미로 7개의 대체구장을 지어주겠다는 약속을 파기하고 동참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두 단체는 서울시와 대체구장을 놓고 합의를 했던 바 있어 다소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우리도 접근하기 조심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물론 우리는 대체구장 건설을 아예 배제한 채 활동하고 있지만 연대의 문은 언제든지 열려 있다."

 

- 시간이 많이 모자란다(서울시는 11월 중 동대문운동장 철거를 계획 중이다).
"인정한다. 이번 일은 체육인들만 나설 문제는 아닌 것 같다. 피해자는 체육인뿐만 아니라 서울시민들이 될 수도 있다. 동대문운동장이 없어지면 다 없어진다는 각오로 임하겠다. 가만히 지켜보면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 무리임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 향후 대처 방안은?
"동대문운동장 철거 반대 스포츠인 100인 선언(가칭)을 추진 중이다. 또 서울시가 실제 철거를 감행할 경우 물리적인 충돌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프로야구 선수들이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주관으로 촛불시위를 했던 것과 비슷한 행사도 고려하고 있다. 지속적인 기자회견을 펼칠 예정이기도 하다. 아마도 다음주 중 문화연대 주최로 토론회가 있을 것이다. 동대문운동장과 재개발 문제에 대한 것인데 서울시 관계자를 초청한 것으로 안다. 그간 무관심으로 일관한 서울시가 이번에는 적극성을 보이길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필자 블로그
 http://aprealist.tistory.com

2007.10.25 20:07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필자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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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운동장 체육시민연대 구의정수장 문화재청 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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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동작구위원장. 전 스포츠2.0 프로야구 담당기자. 잡다한 것들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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